오능득지(吾能得之)
제가 그것을 구해올 수 있습니다
吾 : 나 오
能 : 능할 능
得 : 얻을 득
之 : 갈 지
삼국사기 권 41, 김유신(金庾信) 상(上)과 신라본기 제5
선덕여왕 11년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선덕여왕 11년 임인(任寅; 서기 642년)에
백제가 대량주(大梁州) 지금의 陜川으로
사기에 대야성(大耶城)으로도 기록
함락 하였을 때 춘추공(金春秋)의 딸 고타소랑(高陀炤娘)이
남편 품석(品釋)을 따라 죽었다.
사랑하는 자식과 사위를 잃은 부모 마음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찌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당시에 춘추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다음과 같은 기록도 있다.
춘추가(그의 죽음) 듣고 기둥에 의지하여
하루 종일 눈을 깜박이지 않고, 사람이나 물건이
그의 앞을 지나가도 알지를 못하더니,
얼마 후 말하기를, "슬프다,
대장부가 어찌 백제를 멸하지 못하랴" 하고
왕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신(臣)이 고구려에 가서
군사를 청(請)하여 백제에 대한 원수를 갚고 싶습니다"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춘추는 고구려의 도움을 받아
백제를 치기위해 고구려를 찾았으나,
오히려 첩자로 오해를 받고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고구려왕은 일부러 춘추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한다.
고구려왕은 "마목현(鳥嶺)과 죽령은
본래 우리 땅이니 돌려주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 하니,
춘추는 "국가의 토지는 신자(臣子)로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여
왕은 노하여 옥에 가두게 된다.
죽을 처지가 된 춘추는 고구려왕이 신임하는
선도해(先道解)에게 뇌물로 청포(靑布) 300보(步)를
비밀리에 주었는데 이때 선도해가 우회적으로
들려준 이야기가 '구토지설'이다.
여기서 잠시 이야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해 용왕의 딸이 심장(心臟)병을 앓았는데,
의원(醫院)이 토끼의 간을 얻어 약을 지으면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해중(海中)에는 토끼가 없으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때 한 거북이 용왕에게 아뢰어
자기가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육지로 나와 토끼에게 하는 말이,
"바다 속에 한 섬이 있는데 샘물과 흰 돌에,
무성한 숲, 아름다운 실과가 있으며,
추위와 더위가 없고, 매와 새매가 침입하지 못하니,
네가 가기만 하면 편히 지내고 아무 근심이 없을 것이라" 하고,
이어 토끼를 등에 업고 헤엄쳐 2. 3리 쯤 가다가,
거북이 토끼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지금 용왕의 딸이 병이 들었는데,
토끼의 간(肝)이 있어야 약을 지을 수 있기에,
이렇게 수고로움을 불구하고,
너를 업고 오는 것이다" 하였다.
토끼가(그 말을 듣고)
"아 아, 나는 신명(神明)의 후예(後裔)라,
능히 오장을 꺼내어 씻을 수 있다,
(공교로이) 일전(日前)에 속이 좀 불편하여
간(肝)을 꺼내어 씻어서 잠시 바위 밑에 두었는데,
너의 감언(甘言)을 듣고 바로 왔기 때문에
간이 아직도 그곳에 있으니,
어찌 돌아가서 간을 가져 오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면, 너는 구하는 것을 얻게 되고,
나는 간이 없어도 살 수 있으니
어찌 이쪽 저쪽이 다 좋은 일이 아니랴?" 하니,
거북이 그 말을 믿고 도로 나가 언덕에 오르자마자
토끼는(거북의 등에서 내려서)
"너는 어리석기도하다.
어찌 간(肝) 없이 사는 자가 있으랴" 하니
거북이 멍청하여 아무 말 없이 물러갔다 한다.
춘추는 그 말의 뜻을 알게 되었고,
고구려왕에게 거짓으로 글을 올린다.
"두 령(조령과 죽령)은 본래 大國(고구려)의 땅입니다
신이 귀국하면 우리 왕에게 청하여 돌려 드리겠습니다
내 말을 믿지 못하신다면 저 해를 두고 맹세하겠습니다"고 하여,
춘추는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죽음 위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국경을 넘어
안전지대로 접어든 춘추는 전송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백제에 대한 원한을 풀려고 와서
군사를 청하였던 것인데 大王(고구려왕)은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토지를 구하니, 이것이 신하로써 할 일이 아니다.
전번에 대왕에게 글을 보낸 것은
죽음을 면하기 위한 것이다."
춘추의 탈출은 향후 고구려와 신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고구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신라는 당나라의 도움으로
'나당연합군'을 결성하게 되고,
곧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도 망하게 된다.
이로서 삼국이 통일이 되니
그 가운데는 김춘추(후에 무열왕)가 있었다.
당나라의 끈임 없는 침략을 받아왔던 고구려,
당시의 삼국중 제일 강한 국력을 갖고 있었던 고구려가
왜 신라의 도움을 거절 하였을까?
만약 고구려와 신라가 손을 잡았다면 당나라와의
전쟁 승리는 물론이고, 삼국통일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 이야기는 어찌보면 어리석은(?) 용왕(龍王; 보장왕)과
지혜로운 토끼(김춘추)의 또 다른 이야기는 아닐 런지?
'구토지설'의 이야기와 비교되어 자꾸만 뇌리를 맴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역사 속 그 시절
우리 조상들의 세계가 눈에 보이듯 아롱거린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