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교회내의 예배 갱신 운동
예배의 원래의 뜻은 '절하다', '엎드리다', '경의를 표하다'이며, 경건의 태도와 의식을 포함하는 존경하는 삶 전체를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족장시대에는 제단을 쌓고 희생 제사를 드리는 형태였으나, 성전예배가 이루어지면서 보다 복잡한 의식과 제도를 갖게 되었고, 포로기
이후에는 회당 예배가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기독교의 예배는 말씀의 가르침, 기도, 찬송, 성경낭독, 세례와 주의 만찬, 헌금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간략하게 예배의
정의와 현재 한국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형태를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교회가 현재 위에서 말한 예배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이와 같은 예배의 틀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한국 교회 내에서 예배의 갱신 운동이 차츰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예배의 갱신 운동은 예배의 틀을 바꾸는 것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예배의 틀을 바꾸는데 있어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 것이 찬양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현재 한국 교회 대부분은 교단에 상관없이 찬양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극소수의 보수주의 교단을 제외하고는 이는 자연스럽게 예배의 한 형태로 이어졌고 앞으로도 더욱 확장될 전망이다.
이를 가능케 한 여러 원인이 있으나 경배와 찬양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80년대에 미국의 경배와 찬양을 받아들여서 한국 교회에
소개하며 동시에 한국 교회 현실에 맞게 적용한 경배와 찬양이 다른 교회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외에도 선교 단체에서 드려지는 찬양예배도 아울러
생각해야 한다.
찬양 예배가 처음부터 한국 교회에 정착한 것은 아니다. 이를 두고 많은 논쟁과 교회의 분열이 있어 왔다. 그러나 주일 오후 예배나 저녁
예배로부터 시작하여 이 찬양 예배는 이제 정착되어 있다. 아직까지도 주일 대예배 만큼은 찬양 예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배적인 흐름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고 말이다.
찬양 예배는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드라마 예배가 그것이다. 설교가 시작되기 전 혹은 예배 중에 드라마를 통해서 메시지를 좀더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드라마가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예배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교회에서 점차적으로 드려지고 있다. 아직까지도 정착되지는
못했지만 지속적으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술의 발달 역시 예배의 틀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찬양 예배와 드라마 예배는
프로젝트와 컴퓨터 등의 발달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현대 한국 교회의 예배 갱신 운동은 예배의 형태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다음은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가 진정 어떠한 예배인지를 살핀 후 현재 한국 교회 예배 갱신 운동을 평가할 것이다.
성경적 예배관
신약 성경에서 예배에 관한 언급은 크게 세 차례이다. 이 중 두 번은 바울이 언급했고 한 번은 예수님이 언급하셨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바울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우리의 몸을 통해서 드려질 것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몸이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거룩한 예배를 받으심을 말씀하고 있다. 이는 레10:3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자는 거룩해야 함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거룩인 것이다. 그리고 이 거룩은 일부분의 거룩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 우리의 몸 전체가 거룩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자를 받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것들로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할지라도 거룩이 그에게 없으면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으시지 않는다.
두 번째로 예수님과 수가성 여인과의 대화를 살펴보자. 예수님은 여인에게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기 때문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을 자연스럽게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온 마음을 다해서 예배하라는 것으로 다가온다. 구약에서도 하나님께 예배할
때 온 맘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예배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한 눈 팔면 아니된다. 또한 두 마음을 품어서도 아니된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예배해야 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예배의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여기서는 이 두 가지만을 가지고 현재 한국 교회의 예배의 모습
속에서 혹은 갱신 운동의 모습 속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현대 한국 교회 예배의 문제점
현재 한국 교회가 예배에 대해서 중요성을 갖고서 특별히 사람들을 하나님께 예배하는 데에 나아가게 하려는 노력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다양한 프로그램과 예배의 형태를 탈피해서라도 모두가 예배드리려고 하는 모습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인가? 하는 문제이다. 위에서도 말한 것 같이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에게서 거룩을 보시기를 원하신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
드리는 헌금, 많은 수의 열광적인 찬양은 하나님께 우선순위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드리려고 하는 예배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 교회 교인들의 문제는 세상 사람들과 매스컴이 더 많이 알고 있다. 교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거룩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까지 손가락질을 받는 모습으로 전락되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할 때 과연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시겠는가? 하나님은 거룩한 자를 찾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많은 교회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에
초점을 두고 예배를 갱신하기보다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이 모일 수 있는 프로그램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는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우선순위가 너무도 잘못 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둘째로, 현대 교회의 예배는 온 힘을 다해서 드려지고 있는 가 하는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이다.
자신의 온 삶을 드리기를 원하는 자들, 그리고 드리는 자들의 예배를 하나님은 받으신다. 한국 교회의 예배 갱신은 하나님의 바램을 너무나도 많이
외면한다. 주일 예배가 1부, 2부 혹은 그 이상의 예배로 나뉘어진다. 나뉘어지는 이유가 예배당이 좁아서 한번에 모두 예배할 수 없을 때 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사람들이 빨리 예배를 드리고 나서 나머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 차원에서 예배 시간을
나뉘어 드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현대 한국 교회의 예배 갱신 운동은 하나님 중심보다는 사람 중심의 차원에서 그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예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예배란 하나님께 절하고, 엎드리고, 그 분을 경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분이 원하시는 대로 드려야 한다. 우리가 원하고
우리가 편한 예배와 그 갱신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으로 드려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자를 찾으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한국 교회의 예배 갱신 운동이 우리가 이렇게 예배드리기를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대신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의 방향으로 갱신되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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