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칼럼] 이 나라에 ‘영부인 의전’이 필요한가
김혜경·김건희씨 맹탕 사과… 대선 이긴다고 덮일까
당선자 스스로 책임 물어야 공정성 인정받을 것
제왕적 대통령제 쇄신은 자신에 엄격한 자세에서 출발
사과 기자회견하는 김건희(왼쪽) 윤석열 후보자 부인과 김혜경 이재명 후보자 부인./국회사진기자단
15년 전 덴마크 여왕이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여왕 만난 소회를 남겼다. “북유럽은 핀란드 빼고는 다 왕국인데 신기하게 왕 제도가 있는 나라가 민주주의가 아주 발달했다.” 방한에 앞서 덴마크로 여왕을 인터뷰하러 갔다. 지구상에서 가장 앞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주제를 유지하는 역설이 궁금해 덴마크 시민과 공무원들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로열패밀리가 덴마크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 되니까 유지한다. 제 역할을 못하면 언제든 국민투표를 거쳐 군주제를 폐지할 수 있는 권한이 국민한테 있다.”
재위 70년 동안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품격 높은 리더십으로 영연방의 구심점 역할을 해 존경받았다. 여왕 사후에 비호감의 로열패밀리를 존속시켜야 하는지를 두고 벌써 왕실 폐지론까지 나온다. 세습직 권력도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물의 빚고 ‘세금 밥값’ 못하면 쫓겨날 각오를 해야 한다. 하물며 선출직 권력에게는 그 배우자라고 당연하게 부여되는 지위와 권한은 없다.
여야 대선 후보의 배우자 비리까지 보태져 비호감 대선전이 갈수록 가관이다. 문제가 먼저 불거진 김건희씨의 경우 무속 논란, 7시간 녹취록에서 드러난 현실 인식도 가볍게 넘길 사안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석사·박사 학위 논문 표절 의혹, 경력 허위 기재와 부풀리기가 여러 건 드러나면서 신뢰를 심각하게 상실했다. “돋보이려 한 욕심” “그것도 죄라면 죄”라고 사과했지만 여당 측 지지자들은 조국·정경심 부부와 그 딸을 탈탈 턴 잣대를 김건희씨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며 맹공을 가한다. 주가 조작 연루 의혹 등의 불씨도 꺼지질 않는다.
추문에 발목 잡혀 김건희씨가 칩거하는 동안 김혜경씨는 미나리 다듬고 굴떡국 끓여주는 ‘살림 퍼포먼스’를 하면서 대선판을 누볐다. 몇 년 전 ‘밥을 지어요’라는 요리책까지 내고 집밥 챙기는 현모양처 이미지를 내세워왔다. 한데 자기 집 냉장고 정리는 7급 공무원 ‘머슴’한테 맡기고, ‘소고기, 초밥 10인분, 닭백숙, 복어, 월남쌀국수’ 등 메뉴도 다양하게 ‘법카 바꿔치기 결제’로 공무원 심부름 시켜 배달받았다고 시중든 공무원이 폭로했다. 국민 세금을 개인 살림에 보탰으니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공직자 아내로는 심히 부적절한 처신이다.
그럼에도 두 여성의 팬카페는 수만의 열혈 지지자들로 성황이다. “국모 김혜경” “원더건희”를 외치며 엄호한다. ‘양자택일’의 선거판에 거두절미하고 우리 편이 이겨야 하는 절박감 때문일 것이다. 승부가 정해지고 나면 국민의 시선은 대통령 당선자와 그 배우자에게로 쏠리게 된다. 낙선 후보 지지자들은 당선자 배우자의 비리를 아킬레스건으로 여기고 맹공을 퍼부으며 리더십을 흔들려 들 것이다.
김건희씨는 7시간 녹취록에서 “권력이란 게 잡으면 수사기관이 알아서 입건하고 수사한다”고 했다. 만약 그런 식의 호언장담이 차기 정부에서도 진짜가 된다면 새 대통령의 리더십은 출발부터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다. 자기 배우자 문제는 의혹투성이인 채로 어물쩍 넘어가고 상대방 배우자만 엄정 수사받게 만드는 순간 ‘내로남불’과 선택적 정의로 얼룩졌던 문재인 정권의 암울한 시즌2가 도래할 것이다.
두 후보 배우자 논란을 계기로 퍼스트레이디를 어떻게 바라보고 처우해야 할 지 다시 생각할 때가 됐다. 육영수 여사로 상징되는 ‘영부인 리더십’이 우리 정치사에 작동하지 않은 지 오래다. 그런 영부인을 요구하는 시대도 아니다. 남편 따라 해외 나가 공작새처럼 옷 갈아입고 외국 정상 부인과 사진 찍는다고 ‘퍼스트레이디 외교’ ‘국위 선양’ 운운하는 것도 구시대적이다.
국제사회에서 아내 동반한 남성 권력자의 모습이 전부도 아니다. 여성 정치 지도자들이 대거 활약한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재임 16년 내내 그 옷이 그 옷 같은 차림으로 거의 배우자 없이 공식석상에 등장해 리더십과 외교력을 발휘했다. 여성 지도자의 남편과 견주어 볼 때 굳이 남성 지도자의 아내에게 더 많은 의전과 특권적 지위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
나라마다 예우도 다르다. 미국은 퍼스트레이디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지만 프랑스에서는 2017년 마크롱 대통령이 법적 지위를 추진했다가 여론의 거센 반발로 철회했다.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지만 반대론자들은 “왜 대통령 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부 예산을 지원해야 하느냐”고 반발했다. 퍼스트레이디 공식화를 없던 일로 한 뒤 프랑스 대통령궁은 대통령 부인의 역할을 담은 ‘투명성 헌장’을 발표했다.
윤석열 후보는 영부인 의전을 담당하는 청와대 제2 부속실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이재명 후보는 제2부속실 폐지 대신 투명 운영을 약속했다. 누가 되든 대통령 당선자는 배우자의 불거진 논란에 충분히 책임지게 하는 모습부터 보여야 할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쇄신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자신과 가족에게 가장 엄격한 모습을 보일 때 리더십의 정통성과 진정성도 인정받는다.
한없이 부끄러운 영부인 품위유지비
미국 영부인은 유지할 품위가 없어 한 벌의 옷도 세금으로 살 수 없는데 우리는 국민 세금으로 구입해 주어야 하는가?
얼마 전 보도에서 백악관 추수감사절 만찬 비용을 바이든 대통령 개인 비용으로 지불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한국에서는 청와대에서 쓰는 식비, 생활비 등은 국민 세금으로 처리하지만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공사 구분이 엄격해서 이러한 생활비 등은 사비(私費) 지출이 당연시 되고 있다. 심지어 치약, 칫솔, 비누, 휴지같은 생필품 구입비도 대통령 개인 비용으로 처리해야 하고, 세탁비, 사적으로 고용한 청소부 임금까지 사비로 처리해야 한다.(로라 부시 증언)
백악관 세금 지원 항목은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는데, 건물 유지 관리비와 공식 리셉션 및 공식 연회 비용인 경우에만 예산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이외의 경우에는 국민 세금을 쓸 수 없고 모든 비용은 대통령 개인 비용으로 충당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오바마 대통령 부인이 재임 시절 워싱턴DC에서 직접 장을 보는 모습이 여러 번 목격되기도 했다고 한다. 도지사 부인이 어떻게 직접 장을 보냐는 말까지 나오는 한국이란 나라에 사는 사람들 눈에는 대통령 영부인이나 독일 총리가 직접 장보러 다니는 미국이나 독일이 이상한 나라로 보일 것 같다.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가?
대통령 별장으로 휴가를 간 경우에도 식비와 각종 체류비용은 사비로 부담해야 한다.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에 직무상 필요한 인원이 아닌 대통령 가족이나 손님을 태우는 경우 일등석 가격에 해당하는 항공료를 별도로 내야 한다고 한다. 대통령 영부인이 혼자 전용기 끌고 인도에 관광 다녀오고, 대통령 딸 가족이 청와대에서 무상 거주하고, 대법원장 아들 가족이 관사에서 무상 거주하는 한국하고 비교하면 왜 미국이 선진국인지 실감나는 장면이다. 이렇게 공사 구분이 엄격하다 보니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대통령 일가는 퇴임 후 빚더미에 앉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여 퇴임 후 편히 쉬기는커녕 부지런히 자서전 쓰고 강연 다니며 돈벌어 빚 갚기 바쁜 것이 미국 대통령이라고 한다.
이런 미국에서 대통령 영부인의 옷값을 예산으로 지불하지 않을 것이란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실제 미셸 오바마의 비서관에 따르면 납세자의 세금으로 옷을 사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한다. 또한 디자이너들에게 옷을 빌리는 경우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미셸은 염가의 옷을 구하기 위해 항상 할인 품목 의상을 찾아 다녔고, 디자이너에게 기증을 받게 될 경우에도, 행사가 끝나면 영부인은 그 옷을 기증자의 이름을 따서 국가 아카이브 기관에 기부하여 보관하지 자기 옷으로 가져가지는 못한다고 한다.
납세자의 세금으로 한 벌의 옷도 살 수 없는 미국 영부인들을 보면서, 한국 영부인 김정숙의 옷값 시비가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김정숙 여사의 품위 유지비라는 그 말 자체가 부끄럽다. 미국 영부인은 유지할 품위가 없어 한 벌의 옷도 세금으로 살 수 없는데 한국 영부인은 얼마나 대단한 품위를 갖고 있길래 그걸 유지하는데 그 비싼 옷들과 구두와 핸드백을 국민 세금으로 구입해 주어야 하는가? 영부인 옷값이 무슨 대단한 국가 기밀이라고 특수활동비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비공개로 숨기고 있었더냐?
누구 말로는 청와대 들어가 구입한 옷이 200벌이 넘는다는 말도 있던데 하나같이 비싼 고가품이라고 들었다. 국민 세금으로 대통령 전용기를 관광버스처럼 이용하며 비행기에 갈아 입을 옷을 잔뜩 싣고 다녔다는 영부인의 의상, 액세서리, 구두 등 품위 유지를 위한 의전 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 3월9일 전에 국민이 알기를 바란다. 지난 5년간 영부인의 품위유지를 위해 세금을 바친 국민의 당연한 권리다.
[ 2022-02-11, 20: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