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광주시 광산구 월계동 첨단대우 인근 대상공인중개업소. 109㎡형(이하 전용면적)이 1억3500만원에 급매물로 나와 있다.
그런데 이 아파트 같은 크기 전세는 최고 1억4500만원까지 거래된다. 같은 아파트의 같은 크기인데 전셋값이 매매가격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대상공인 이성국 사장은 “보통 이 지역 전셋값은 매매가격의 80~85% 정도인데 간혹 급하게 전세를 찾는 사람이 나타나면 매맷값 보다 비싸게 거래된다”고 말했다.
같은 단지의 같은 크기 아파트인데 전세가 매매 가격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세비율(매매값에서 전셋값이 차지하는 비율)이 70% 이상인 광주·대구·울산·경북·전남 등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광주 남구 봉선동 명지맨션 89㎡형은 7000만원 전후로 매매값이 형성돼 있는데 전셋값은 이보다 비싼 7100만원에도 거래된다.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동양아트맨션 76㎡형은 9800만원이면 살 수 있는데 전세는 1억200만원에도 거래된다. 매매가가 9500만원인 대구 달성군 화원읍 한샘타운 99㎡형의 전세는 이보다 비싼 9600만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이들 지역에서 전셋값이 매매 가격을 추월한 이유는 매매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최근 2~3년간 이들 지역의 매매와 전세는 동반 상승했다.
광주의 경우 지난 2009년9월부터 올해 10월까지 3년간 아파트 매매값은 35.6%나 뛰었다. 같은 시기 전셋값은 37.1% 올랐다. 대구나 울산 등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대구 아파트 매매값은 25.9%, 전셋값은 41.2% 올랐다. 울산 아파트도 이 기간 매매가격(35.5%)과 전셋값(41%)이 동반 급등했다.
그런데 올 들어 매매가격 상승세가 주춤해지기 시작했다. 반면 전세 가격은 수요가 계속 늘어나면서 오름세를 이어갔다. 단기간 매매가격이 크게 올라 집값이 다시 꺼질 것이라는 우려감이 확산되는 사이 전셋값은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면서 일부 단지에서 전세가가 매매가를 뛰어넘는 사례가 나타났다는 게 해당지역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집값 하락·세금 걱정없는 전세가 좋아”
광주 북구 문흥동 라인1차 아파트 79.33㎡형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아파트 전셋값은 최고 1억원인데 매매를 기다리는 매물 가운데 9700만원도 있다.
이 아파트는 2009년초 6000만원정도에 거래됐다. 같은 시기 전세는 5000만원 정도였다. 최근 2~3년간 지방 아파트 공급 부족에 따라 매매시세가 1억원 수준으로 뛰자 전셋값도 비슷한 비율로 상승해 올 초 9000만원까지 상승했다.
그런데 올 초부터 매맷값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반면 전세는 물량 부족으로 꾸준히 올랐다.
문흥동 증흥공인 이성규 사장은 “매매값이 단기간에 너무 올라 꼭지점이라는 인식이 많다”며 “집값 상승 기대를 접고 전세로만 수요가 몰리니 전세가 매매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집을 사면 재산세 등 원치 않는 세금 부담과 집값 하락에 대한 불안에 시달려야 하므로 젊은 주택 수요자들은 처음부터 매매에는 관심이 없다”며 “전세보증금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는 전세 선호현상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주택금융공사 산하 주택금융연구소 김덕례 연구위원은 “지방은 애초에 보증부 월세가 많고 전세가 희소해 전세비율이 높았다”며 “전셋값이 조금만 오르거나 매맷값이 조금만 떨어져도 매매와 전세 가격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구조여서 전세금이 매매가를 상회하는 사례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임차인 입장에서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집주인의 사정에 따라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경우 전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메리트 박미옥 경매본부장은 “지방에서 단기간 집값이 올라 집주인이 대출을 끼고 산 주택이 꽤 많았다”며 “지방에서도 깡통주택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런 현상은 중장기 관점에서 서울·수도권에도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팀장은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집주인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서 전세의 희소성은 계속 높아질 것”이라며 “서울·수도권에서도 전세 가격이 계속 뛰면서 매매가격을 바짝 추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료원:중앙일보 2012.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