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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남 유학연구회 원문보기 글쓴이: 군자목(장세완)
❏ 유학상식 - 祭禮의 節次와 祝文(忌祭祀와 墓祀를 中心으로)
김 창 진(본 회 회장)
1. 祭禮의 意義
古禮에 의하면 帝王은 하늘에 제사지내고, 諸侯는 山川에 제사지내며 士大夫는 祖上에 제사지낸다고 했듯이 우리민족은 하늘을 공경하여 祭天儀式을 거행해 왔으며 農耕에 종사한 뒤로는 雨順風調와 豊年을 기원하는 祭祀儀式이 성행하게 되었다.
즉 扶餘의 迎鼓, 高句麗의 東盟, 濊의 舞天 등이 모두 제천의식인 동시에 農事와 관련이 있었다. 국가의 형태가 완비된 뒤로는 社稷과 宗廟, 圓丘 方澤 등의 국가경영과 관련된 제례가 갖추어 진 이후, 家庭의 祭禮가 규격화되어 私家에서는 家廟가 있어『家禮』에 따라 각 姓氏의 宗派와 門中마다 조상의 제사를 정성껏 받들어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存在하게하고 길러준 살아있는 부모에게는 報本之禮에 따라 孝道를 돌아가신 조상에게는 살아계신 부모 못지않게 事死 如事生하듯이 극진한 精誠과 恭敬을 다하여 祭祀를 지내야 인간의 道理를 다 한다는 후련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러므로 祭禮는 조상에 대한 愛情과 追慕의 정이 發露된 것이다.
인간은 죽어도 靈魂은 不滅한다는 원시적인 思考때문에 제례가 起源되었고 죽은 조상과 살아있는 자손과는 항상 지속적으로 相互作用 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자손들은 조상의 德을 기리고 恩惠와 가르침을 잊지 않는 것이 자손으로서의 道理를 다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상의 神靈에 대해 畏敬心을 가질 뿐 아니라 조상을 追慕하고 자손의 繁榮을 祈願하며 형제자매 뿐 아니라 친족간의 和睦을 圖謀하기위하여 祭禮儀式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 주로 기술할 忌祭祀는 돌아가신 날(忌日)새벽 丑時(새벽1~3시)에 지내는 것으로 古來로부터 행해왔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서는 자손들이 대부분 핵가족화 되어 遠距離에 거주하다보니 편의상 돌아가시기 전날 日沒 이후 적당한 시간에 제사를 지내고 다음 날은 일상생활로 돌아가게 되었다. 만약에 고인이 潤月에 돌아가셨다 하드라도 윤월에는 다만 즉 飮酒 歌舞나 弔問을 하지 않고 謹愼하고 操身하는 마음을 갖고서 제사 지내지 않고 本月에 제사지내야 한다.
다음으로 墓祀는 墓祭라고도하며 매년 春秋로 9월 초순에 伐草한 후 가을 秋收가 마무리 될 무렵 陰曆 10월 上旬에 산소(墓所)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
묘사를 지내기 직전에 묘소를 잘 지켜준 山神에게 간단히 山神祭를 먼저 별도로 치르기도 한다. 묘사는 기제사와 절차는 거의 같으나 添酌하고 闔門하는 것이 없고, 대신 墓앞에서 잠간동안 俯伏을 한다. 雨天 時에는 부득이 齋舍에 設壇하여 묘제를 지낼 수 도 있다.
2. 祭禮의 變遷
高麗史에 의하면 恭讓王은 6품관 이상의 벼슬아치는 모두 3대조(曾祖考)까지 奉祀를 할 수 있도록 許容햇 다.
조선조 經國大典과 國朝五禮儀에는 3품관 이상은 4대인 高祖父까지, 6품관 이상은 3대인 曾祖父까지, 7품 관 이하의 선비들은 2대인 祖父母까지 봉사를 허용했으나 庶民들은 父母만 제사지낼 수 있었다.
朝鮮 中期의 禮學者인 沙溪 金長生의 家禮輯覽에 의하면 400년 전의 朱子의『家禮」에 따라 高祖父인 4 대까지 奉祀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 이후 1894년 甲午更張으로 身分制度가 撤覇된 후 孝道하는 데에는 身分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風潮가 일어나 누구든지 高祖父까지 생전에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보아 高祖父까지 奉祀를 하게 되었다.
1969년에 정부에서 家政儀禮準則을 制定하면서 조부모 까지만 제사지내도록 勸獎하고 있지만 生前에 사랑받은 記憶이 생생한 증조부 까지도 제사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에서 전파되어 들어온 外來宗敎(基督敎)와 佛敎에서는 절대적인 존재라고 믿는 하느님과 석가모니 이외에 우리 인간을 存在 하게한 祖上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偶像崇拜라고 恥部하고 있지만 과연 그들은 그 절대적 存在가 그들을 믿는 자인 基督敎信者와 佛者에게 피부에 와 닫는 어떤 물질적 恩惠를 주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종교는 필자가 생각하기엔 信仰으로 그들 敎理가 인간의 심리를 파고들어 심적 慰安과 報償을 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祖上崇拜인 祭祀는 道德倫理가 무너지고 敬老思想이 頹廢하여 탈선 왕따 폭력 등의 청소년 문제가 심각한 社會問題로 대두되는 現實에서 조상을 섬기는 孝思想의 重要性과 祭禮의 必要性이 더욱더 要求된다고 생각된다.
3. 祭禮의 形式과 節次
개인의 가까운 형제자매만이 모여서 지내는 忌祭祀와 墓祀는 국가가 宗廟에 지내는 大祭나 地方鄕校나 不遷位를 모신 書院에서 지내는 春秋享祀와는 달리 節次와 方式이 간단하다고 말 할 수 있다.
즉 大祭나 享祀에서 제사를 치루기 위해서 사전에 儒林代表나 후손인 宗孫과 宗中어르신들이 사전에 함께 모여 祭禮에 따라 祭禮儀式을 執行할 任務를 賦與하는 執事分定을 하여 5執事 즉 初獻官 亞獻官 終獻官 祝官 執禮에게는 望權 望記(委囑狀)을 보내 許諾을 받는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한 宗中이나 個人의 기제사일 경우 위와 같은 절차 없이 그 집안의 宗孫이나 主祭者(長子나 맏孫子)가 初獻官이 되고 그 부인인 宗婦나 子婦가 亞獻官으로 獻爵하고 終獻官은 그 외 叔父나 동생이 될 수 있다.
齋戒와 盛服 : 齋戒라 함은 忌日 하루 전인 入祭日 부터는 主祭者 主婦 參祀者 모두는 몸을 깨끗이 하고 飮酒 歌舞를 삼가 하며 남의 喪事에도 가지 않아 즉 흐트러진 행동을 삼가며 操身하는 마음으로 제사준비에 임한다.
盛服이라 함은 祭服 즉 두루막이나 道袍를 한복위에 겹처 입고 冠 즉 갓이나 頭巾을 쓰고 제사에 임함을 말한다.
祭羞와 陳設 : 陳設이라 함은 祭祀床에 차릴 음식인 祭羞는 匙楪(시접) 盞盤(잔반) 飯(반) 羹(갱) 麵(면) 魚(어) 肉(육) 餠(병) 炙(적) 湯(탕) 脯(포) 醢(해) 蔬菜(소채) 醬(장) 酒(주) 醯(혜) 果(과) 등을 진설하는 방법은 姓氏나 지방 門中에 따라 약간씩 다르나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일반적으로 祭羞를 차린다.
즉 祭需를 祭床위에 차리는 陳設方法은 考,妣 兩位를 合設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제상 맨 앞줄 남쪽에 과일을 紅東白西(홍동백서)가 되게 棗栗梨柿(조율이시) 순으로 차리고, 다음 줄에 생선과 포는 서쪽에 육류와 젓갈은 동쪽에 漁東肉西(어동육서) 左脯右醢(좌포우해) 방향으로 놓고 東豆西尾(두동미서) 背腹되게 차린다.
제일 뒷줄에 考位 妣位 각각 메 즉 飯(반)을 서쪽에 국인 羹(갱)을 동쪽에 그 앞에 酌盤(술잔과 받침) 匙楪(수저놋그릇) 肉湯(탕)을 차려 진설을 완료하고 燭臺를 좌우에 세워 제상차림을 마친 후 제상 앞 중앙에 祭床보다 약간(7~8cm)낮은 香床위에 香爐와 香盒을 놓아 三上香 준비를 마친다.
紙榜과 出主 : 제사지낼 神位의 紙榜을 남좌여우 즉 考位를 좌측에 妣位를 우측에 쓴 지방을 지방함에 써 붙여 屛風 앞 交椅에 神主를 모셔놓는다.
出主라 함은 평소 龕室이나 祠堂에 모셔놓았던 位牌(신주의 이력을 적은 나무패)를 正寢이나 廳舍등 祭祀를 치를 장소로 옮긴다는 出主告由를 하고 屛風 앞 交椅로 모셔 나오는 것을 出主 또는 奉主就位라 한다. 口告를 하기도 하고 文書告를 하기도 한다. 신주가 없으면 紙榜을 써서 붙인다.
參神 : 主人[主祭者]와 참제자들 모두 함께 조상신을 뵙는 첫 인사로 두 번 절하여 참신 한다.
降神 : 주제자가 제상 앞 향로에 三上香을 피우고 재배한다. 그리고 주제자가 술잔에 斟酒하여 茅沙를 담은 그릇에 세 번 나누어 따르는 灌于茅沙上[酹酒]하고 再拜한다
- 神主를 모셨으면 參神을 먼저하고, 紙榜으로 행사를 할 경우는 降神을 먼저 한다.
初獻官의 祭禮 : 좌우 執事者가 啓飯蓋를 하여 揷匙正箸한 후 主人[主祭者:長子]이 考位와 妣位에 각각 獻 爵한다. 초헌관이 출장이나 병이 나면 대신 초헌관을 세운다. 이때의 축문은 그 사유와 관계와 대리자 이름을 명기 한다.
讀祝 : 祝官이 初獻官의 왼쪽에서 東向하고 꿇어앉아 讀祝한 뒤, 祭官들은 哭을 할 수도 있으며, 초헌관은 再拜하고 降復位한다. 축관은 원칙적으로 주재자보다 나이가 많은[항렬이 높고] 사람이 읽는다. 읽을 사람이 없으면 自讀을 한다.
亞獻官 : 반드시 주제자의 主婦가 하며, 獻爵하고 四拜한다. 여자가 四拜하는 이유는 옛날 여자는 머리에 盛裝을 하기 때문에 半拜라서 四拜를 한다.
終獻官 : 제사에 참사한 사람 중 親賓, 行列, 年齡등의 차례로 나가서 行事하며, 다만 奠爵하고 재배한다.
添爵 : 초헌관이 첨작하고 재배한다.(三年喪內에는 無祝 單獻이다.)
揷匙正箸[揷匙陞箸]: 숟가락을 밥그릇에 꼽고 젓가락을 바로 놓는다. 젓가락은 그 자리에서 바로 놓음.
闔門, 啓門[開門], 侑食[獻茶, 奉茶] : 神靈이 음식을 드실 동안 문을 闔門을 한 뒤 主人 以下 모두 俯伏하여 嚴肅한 마음으로 恩惠에 감사하고 子孫들의 繁榮을 祈願한다 문을 열고 축관이 문 앞에서 北向하여 세 번 헛기침을 하여 啓門한다. 撤羹하고 進茶한다[숭융을 갔다 놓음]. 祭官들은 모두 잠시 鞠躬하고 있다가 바로 선다. 수저를 내려놓고 밥그릇 뚜껑을 덮는다.
辭神, 焚祝, 飮福 : 主祭者 以下 모두 辭神 再拜하고 退酌한 다음 축관이 祭祀儀禮를 마쳣음을 알리는 禮畢 또는 利成이라 외친 후 神主를 櫝안에 뫼셔 闔櫝하여 祠堂에 다시 뫼신다.紙榜을 祝文과 함께 불테워 焚祝한 다음 撤床하고 祭羞를 함께 나누어 먹는 飮福을 한다.
紙 榜 : 본고에서 지방을 쓰는 일반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儒家 집안의 누구나 알고 계시리라 믿고 상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다만 제사를 모시는 主祭者가 長子나 長孫을 중심으로 顯考 顯祖考 顯曾祖考라 하며 4代祖를 일컫기를 顯高祖考 또는 顯玄祖考라 좌측에 먼저 쓰고 직함을 이어서 쓴다. 이러한 경우는 드물지만 제사지낼 대상자 神靈이 주제자인 부인의 남편인 경우 顯僻이라하고, 남편의 아내인 경우는 顯故室, 동생과 아들인 경우는 顯亡弟와 顯亡子라 쓰고 생시의 職銜名을 쓰고 마지막에 神位라 쓴다.
또한 妣位지방은 고위의 우측에 쓰며 呼稱은 남편 生時의 職銜에따라 현대사회에서는 長官 道知事를 했을 경우는 貞夫人 本官과 姓氏를 쓴다.
妣位의 남편이 郡守나 中小都市 市長을 역임했을 경우는 淑夫人,4~5급의 경우는 恭人,6~9급 公務員 이였을 경우는 端人,그외 일반인의 부인인 경우는 孺人이라쓰고 본관성씨를 쓰면 되지 않을까 싶다. 고인이 일반 기업이나 사회단체에서 직함을 가졌을 경우 공무원에 준하여 호칭을 붙혀 쓰면 되지 않을까 싶다.
4. 忌祭祀 祝文
기제사 祝文은 일반적으로 돌아가신 祖上의 初喪을 치른 후 만 2년 지난 大祥 이전까지 즉 三年喪內에는 忌祭祝의 讀祝과 亞獻 終獻酌도 하지않고 初獻爵인 單獻만 올릴 뿐이다.
忌祭祀 祝文 : 忌祭祀 때에 初獻官(主祭者 奉祀主人)이 初獻爵 하고난 뒤 이어서 祝官이 독축하는 축문의 예를 들어 어느 儒家 집안에서 奉祀主祭者의 職銜이 어느 龍宮鄕校 典敎이고 奉祀對象者 顯考가 書記官 醴泉郡守였을 경우 忌祭祝文은 아래 예와 같이 祝文을 쓰면 좋을 것이다.
維 西紀 二千十五年1)歲次 乙未 陰 六月 癸巳(양력 8월)朔 XX月干支 XX日干支 孝子2) 龍宮鄕校 典敎3) 甲童4) 敢昭告于5)
顯考6) 書記官7) 醴泉郡守8) 府君
顯妣9) 恭人10)=夫人 金海金氏11) 歲序遷易
顯考(妣)12) 諱日復臨13) 追遠感時14) 昊天罔極15) 謹以16) 淸酌庶羞 恭伸奠獻17) 尙
饗
* 忌祭사 축문이나 墓祀축문 모두 축문 첫 머리에 忌祭日을 나타내는 年 月 日뒤에 六十甲子의 干支를 붙여서 쓰나 제일 먼저 몇 년 인가를 표기하는 것은 큰 김해 대제나 향사 초파일 경우는 駕洛紀元 또는 佛紀 XX년 이라 표기하나 보통 維 檀君紀元이나 西曆紀元 XX년 歲次 혹은 維 歲次 그해 年干支를 제일 먼저 쓰고 이어서 忌祭日의 X月干支朔 X日干支 를 쓴다.(여기서 佛家집안이라도 忌祭祀를 절이 아닌 주제자 집에서 행할 경우)
* 여기서 孝子 혹은 孝孫이라 함은 맏아들 혹은 맏손자라는 의미이고, 작은아들 혹은 둘째손자 일 경우는 그냥 子 孫 이라고 만 쓰면 된다. 또한 남편제사일 경우 아내가 主祭者일 경우는 夫 누구누구 이름名을 쓴다.
* 主祭者의 현 職級 職責을 쓰고 공인된 직함이 없으면 안 쓴다.
* 主祭者의 이름이다 만약 제사를 지내는 主祭者가 祭祀對象者의 아버지나 남편일 경우는 이 자리에 이름을 쓰지 않는다. 또한 奉祀主祭者가 여러 사유(病疾 遠行 有故)등으로 직접 제사지내지 못할 경우 대신 누구를 시키든지 부탁하여 제사를 받들도록 할 때는 遠行의 경우 出外未還 將事未得라쓰며 病疾인 경우는 衰耗不堪事 將事未得라 쓴 다음 손아래 사람께 시킬 경우는 使, 손위 사람께 부탁할 경우는 囑이라 쓰고 부탁하는 사람과의 關係 즉 동생 弟나 작은아버지 叔父라 쓰고 그의 이름 XX 만을 쓴다.
* 敢昭告于에서 奉祀對象者가 아내인 故室일 경우는 敢자을 쓰지 않고,아들인 경우에는 敢昭 두자를 쓰지않는다.
* 顯考는 돌아가신 아버지, 만약 奉祀對象者가 顯祖考는 할아버지, 顯曾祖考는 증조부, 顯高祖考는 고조부를 말하며, 이 대상자가 남편일 경우는 顯僻 아내일 경우는 故室 아들일 경우는 亡子라 쓰면 무난할 것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顯考……府君 한 줄은 表記하지 않는다. 반대로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顯妣……本官姓氏라 표기하지 않는다.
* 書記官은 奉祀對象者의 職級으로 사실대로 쓰고, 별다른 직급이 없으면 學生. 處士. 居士 등은 벼슬을 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아들일 경우는 秀才라 쓴다.
* 奉祀 對象者가 生時에 醴泉郡守와같이 局長級 이상의 職銜을 가졌음을 말한다.
* 顯妣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높여 말하는 것이고, 조모는 顯祖妣, 증조모는 顯曾祖妣, 고조모는 顯高祖妣라 표기하면 된다.
* 奉祀 對象者가 主祭者와의 關係를 9)와같이 쓴 다음 恭人혹은 夫人이라 함은 남편의 職銜에 따른 그 婦人의 本官姓氏 앞에 붙여 쓰는 呼稱으로 현대에 와서 남편이 생시에 長官이나 道知事를 역임했으면 貞夫人, 2~3급 공무원의 부인인 경우 淑夫人, 4~5급 공무원의 부인이면 恭人또는夫人, 6~9급이였을 경우는 端人이라쓰고 남편이 아무런 公職(공공기관이나 회사)을 가지지 않았을 경우는 즉 벼슬을 하지 않았던 남편의 부인인 경우는 孺人이라 쓰면 좋을 듯하다.(여기서 현대에 고위의 직책에 걸 맞는 妣位의 호칭을 즉 어부인 사모님 부인 여사 등으로 쓰는 것은 어색하다)
* 돌아가신 모친 祖母 등의 本官과 姓氏를 표시하는 것은 아버지 할아버지와는 달리 主祭者의 本官과 姓氏가 같지 않은 親母와 繼母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忌祭日에 제사지낼 奉祀 對象者의 關係를 말하며 돌아가신 아버지 외에 돌아가신 어머니 조부 조모 증조부 증조모등 누구든 忌日에 제사 지낼 분 한명의 主祭者와의 關係를 나타나게 기입한다.
* 諱日復臨이라 함은 奉祀 對象者의 돌아가신 날, 즉 忌日의 해 年이 바뀌어 다시 돌아 왔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 追遠感時라 함은 奉祀對象者를 그리워하고 追慕하는 마음이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생각난다는 뜻이고 傍系친족의 기제사에는 쓰지 않는다.
* 昊天罔極은 恩惠가 하늘같이 높고 넓어 끝을 모르겠다는 뜻으로 3대 이상 고조부 이상 먼 조상에게는 不勝永慕(흠모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다)라 쓰며, 故室 아내에게는 不勝悲念(슬픈 마음을 이길 수 없다)이라 쓰고,먼 傍系親族에게는 不勝感愴(가슴 아픔을 이길 수 없다)이라고 쓴다.
* 謹以라 함은 삼가드릴 때의 접두사 이나 봉사대상자가 아랫사람일 때는 玆以라 쓰면 된다.
* 淸酌庶羞 恭伸奠獻이라 함은 맑은 술과 몇몇 제사음식을 공경을 다해 받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祗薦歲事라고도 쓰며, 奉祀對象者가 자기 아내나 아랫 사람일 경우 伸仳奠儀라 쓰서 마음을 다해 상을 차렸다는 뜻으로 쓴다.
5. 墓祀 祝文과 山神祝
묘사축문은 아래와 같이 묘사 년 월 일과 주제자와 봉사 대상자가 누구인가를 기술하는 4째 줄 까지는 기제사 축문과 같고 단지 기제축문과는 달리 묘소인 무덤 앞에서 지내는 제사이므로 XX 之墓라 쓰고 다섯째 줄 만 그 내용을 다르게 아래와 같이 쓴다
維 西紀 二千十五年1)歲次 乙未 陰 六月 癸巳(양력 8월)朔 XX月干支 XX日干支 孝子2)龍宮鄕校 典敎3) 甲童4) 敢昭告于5)
顯考6) 書記官7) 醴泉郡守8) 府君
顯妣9) 恭人10)=夫人 金海金氏11) 之墓 氣序流易 玆値季秋18) 霜露旣降 瞻掃封瑩19) 不勝感慕 謹以 淸酌 庶羞 祗遷歲事 尙 饗
* 氣序流易 玆値季秋란 4계절의 순서가 바뀌어 늦가을 맞이하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묘제일 부득이 비가 내려 묘지에서 묘사를 모시지 못하고 齊室에서 墓祀를 모실 경우는 묘지가 있는 방향으로 祭羞를 차려 望祭를 치러야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이줄 4문귀를 바꾸어 歲序遷易 今次墓祭 雨順不調 謁奠望祭 汗顔悚懼 追遠感時 라 바꾸어 쓰면 좋을듯하다.
즉 세월이 흘러 해가 바뀌어 올해묘사는 비가내려 일기가 고르지 못하여 산소 멀리서 조상을 뵈오니 얼굴에 식은땀이 맺히도록 한없이 죄송하여 살아생전 옛 모습을 돌이켜보니 흠모하는 마음 한이 없음으로 공손히 맑은 술과 묘사음식을 차려 드리오니歆饗하시옵소서
* 霜露旣降 瞻掃封瑩이란 서리가 내려 이슬이 맺혀 떨어지니 산소 封墳을 벌초하고 바라본다는 뜻으로 조상을 欽慕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어 공손히 맑은 술과 묘사음식을 차려 드리오니 歆饗하시옵소서 라 하며 묘 제사를 지낸다.
* 山神 祝文
山神 祝文은 묘사축문 다섯째 줄 끝 …之墓 다음 줄에 惟時保佑 實賴神休20) 敢以酒饌 敬神奠獻 尙 饗 라 쓴다.
* 그 내용은 “항상 수시로 산소를 保護하여 지켜주신 山神의 아름다운 恩德에 감사하여” 감히 술과 음식으로 敬虔히 바치오니 歆饗하시옵소서 라는 뜻으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