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들은 사단 마귀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동안 많은 어려움과 시련과 한계들을 경험하곤 하며, 진정 믿음의 백성들이라도, 앞에 서 있는 목회자들이나 항존직분자들이라도 늘 은혜가 충만하거나 승리하는 신앙이기는 힘들고, 오히려 인간적 고충들이나 세상적 버거움들을 종종 경험하곤 하는데..
특히 아래 본문에서처럼 바벨론 땅의 포로에서 돌아와 여러 모양의 어려운 여건들 속에서 다른 무엇보다 우선으로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짓는 일은 더욱 그러한 것이고, 사실 모든 하나님의 일들이 크고 작은 십자가 일 수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살아 있는 믿음의 몸부림들마다 십자가가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실상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오늘날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자리와 모든 영역들에 있어서도 하나하나, 순간순간마다 결코 다르지 않으며 모두 다 마찬가지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들에서도, 그 어떠한 일들에 있어서도, 그 누구라 하더라도, 특별히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에 있어서, 게다가 여러 모양의 하나님의 일들, 실상 믿음으로 하는 모든 일들에 있어서야 말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진정 하늘의 힘과 은혜가 함께 하면,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면 능히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부족함이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차고 넘치게 되며, 뜻밖의 예비와 역전들도 있는 것이고, 실상 생각지도 못한 일들, 상상도 못한 일들도 실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참 많은 경우들에 있어 우리의 삶의 자리들, 사역의 현장들에 있어서 정말 힘들고 문제인 것은 따지고 보면 어떤 상황들이나 어려움들 그 자체라기보다는 실상은 깨어 있지 못한 불신앙,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 아닌 신앙, 무엇보다 직접적인,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 성령님의 힘을 잊어 버렸을 뿐 아니라 기뻐 역사하시기에 합당하지 않은 나 자신이 가장 우선적인 원인이요, 이유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성령님의 존재와 실제에 대해 많은 성도들이 아주 쉽게 망각하거나 이상할 정도로 소흘히 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은데 이러한 현실은 사실 신앙 세계에 있어서 가장 큰 미련이요 애석함이며, 삶의 자리와 모든 실상에 있어서의 가장 큰 실수이자 계산도 다 못할 손해가 아닐 수 없는 것으로 무엇보다 성령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에 있어 제 삼 위격으로 우리의 믿음에 있어서, 또한 삶의 자리와 실제들에 있어서 가장 직접적이고 실질적이며 현실적이고 경험적인 하늘의 힘이 되는 위치와 역할이신데 그로 인한 권능과 역사들의 크기와 정도, 모양과 분량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약속과 섭리들, 또한 시간과 계획과 통치들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전지전능하심 만큼인 것이자 모든 시공을 뛰어 넘는 만큼인 것이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고 우리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결하고 뒤바꾸며 초월하는 만큼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성령님을 모르고 의지하지 못하며 도움을 입지 못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심히 불쌍한 자들인 것이며, 그 사명을 감당하거나 승리하는 신앙이 되기 힘든 것일 뿐만 아니라 실상은 아예 살아 있는 믿음으로 사는 것 자체가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러한 성령님께서는 오늘 본문 스가랴 선지자의 시대, 곧 바벨론 땅에서 포로되었다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때에도 함께 하시며 하늘의 실제적인 힘들이 되신 것일 뿐 아니라 아예 이 스가랴서가 기록될 수 있었던 직접적, 경험적인 힘 자체부터가 성령님이신 것인데 사실상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자체가 그 존재와 개념 상 그 어떠한 시대와 나라들, 시간과 공간들에 있어서도 잠시도 나눠지시거나 떨어지실 수 없는 분이기에, 곧 신약 시대나 오늘날의 우리들, 이 시대 뿐 아니라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구약의 모든 시대에 있어서도 단 한 순간이라도 분리되시거나 별개이시거나 부재하실 수 없는 존재이신 것이고, 심지어는 창세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온갖 창조가 실제가 되고 현실이 되게 하신 모든 일들에 있어서야 말로 성령님께서 직접적 역할을 하셨고, 창세전에도 당연히 함께 하신 분이 아니실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무엇보다 구주 예수님의 모든 구원의 일들과 하나님 나라 사역의 현장들에서 함께 하시면서 예수님 구원의 일들이 모두에게 보여 지고 경험되어 질 수 있게 하신 직접적, 실제적 힘이시자 역할이셨고, 더 나아가 2000년 교회사에서의 모든 역사들에 있어서도, 또한 오늘날 이 시간 우리들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함께 하시면서 온갖 하늘의 힘과 은혜와 응답들 등에 있어 직접적으로 역사하시고 실제로 경험이 될 수 있게 하시는 분인 것이며, 심지어는 세상 끝 날에도 말씀대로 신령한 몸으로 부활케 되고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을 실제로 누릴 수 있게 하시는 직접적인, 경험적인 힘이시자 역할이 아니실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 사건 이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약속대로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님께서 불같이 임하시고 내주하시며 상상도 못할 하늘의 권능을 뜨겁게 나타내신 것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이 성령님께서는 신약의 시대를 위시해 오늘에 이르기까지와 그 전에 하나님께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등으로 계시하시고 안내하심으로 인해 오실 메시야를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었던 구약의 시대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그 역사하심들에 있어서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들, 특히 성령님의 실제와 충만과 방식들 등에 있어 얼마든지 차이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인데 분명한 것은 그러한 성령님의 존재와 임재와 역사들이 우리 인생들 가운데, 인류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우리들이 생각하는 그 이전부터, 실상은 창세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고, 오늘날 우리 믿음의 백성들에 있어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상상 이상의 하늘의 힘과 권능들이자 실제와 경험들, 생생함과 강렬함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인 것입니다..
특히 그와 함께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러한 성령님 자체가 말씀의 영이시기에 그러한 성령님의 온전하신 역사와 충만하심들에 있어서의 모든 전제는 구약 시대에서든 신약 시대에서든 결코 다를 수 없는 것으로 진정 모든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 같이 오실 메시야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처럼 오신 메시야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하며 하나님의 것이 되고,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 곧 본질적으로 말씀의 백성으로 거듭난 자들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인 것이며..
더 나아가 이 험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동안에서의 실제적 누림과 경험의 생생함과 강렬함들에 있어서의 모든 기준도 죄와 세속과 소견들 등의 불신앙의 사람들,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들이 아닌 말씀의 사람, 곧 말씀으로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믿음의 사람들인 것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과 은혜와 능력의 이치, 원리와 마찬가지로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모든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을 일차적으로, 직접적으로 얻어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며 읽고 들으며 실천하고 증거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무엇보다 우선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실상 그로 인해 이차적으로 갈수록 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해 짐과 함께 더욱 강인하고 견고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들, 곧 깊은 경건과 영성과 거룩의 백성들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와 함께 근원적으로는 말씀 그 자체이시자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이 삶의 자리와 온 지경에 더욱 더 강렬하고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오늘 바로 우리들도, 나부터도, 더 나아가 우리 모든 교회들도 인간적인 힘과 세상의 능이 아닌 하나님의 영으로 인한 하늘의 힘을 얻는 방법, 더 나아가 충만하고 불같이, 더욱 생생하고 강렬하게 누리는데 있어서의 방법은 결코 다르거나 멀리 있지 않은데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에 따라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일차적, 직접적, 우선적으로 덧입어 더 죄악들과 싸우며 더욱 말씀을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의 말씀의 몸부림과 결단들로 나아가고, 더 나아가 원론적으로는 생명 다하듯 하는 말씀의 열정과 뜨거움들이 클수록 그러한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모든 역사들에 있어서 더욱 좋고 풍성하며 충만하고 강렬하게 누리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어쨌든 분명한 것은 사실상 오늘날 우리 모든 하나님의 백성과 가정들, 교회들과 교계, 이 땅과 세대에 있어서의 성령님의 충만하신 역사와 부흥의 불길들에 있어서도 다른 그 무엇보다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과 결단들, 말씀 앞에서의 각성과 자복들이야 말로 그 무엇보다, 진정 생각 이상, 상상 이상으로 아주 직결되고 절실하며 긴급하고 절대적인 사안이자 과제인 것이고, 실상은 기도 제목 그 자체가 되어야 함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5월 23일(화)2/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