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영화를 안본 이들 중에 이 평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다 읽지 말고 나가주길 바란다. 이러한
류의 영화들은 가능한 한 알지 않는 것이 좋으니까. 만약 영화를 볼지 말지를 망설이고 있다면 나
는 볼 것을 추천한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땐 다소의 실망감을 느꼈지만 두번째 보았을 땐 온
몸에 감도는 전율을 느꼈다. 만약 주위의 평가가 엇갈려 헷갈리고 있다면 직접 보고 평가하길 바란
다. 최근 반지의 제왕을 비롯한 극소수의 영화를 제외하곤 볼 영화가 없는 상황에서 직접 자신의
판단에 의지하여 영화를 평하여 보는 것도 좋다. 설령 영화에 만족을 못하더라도 이 젊은 장난꾸
러기 천재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영화를 접한다는 사실 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주의할 것은 많은 정보를 얻지 말 것과 사운드 시설이 좋은 극장을 택하라는 점, 영화 내에
멋대로 상상하여 떠들지 말라는 점이다. 너무 영화의 끝에 집착하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전체를
받아들이려 노력하자.
이제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은 나가도록 하자.
아까도 말했듯이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땐 실망감이 다분히 있었다. 너무 기대를 한 탓도 있겠고
영화의 결말 부분이 예전의 식스 센스와 유사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알레한드로 아메
나바르의 팬인 나는 뭔가를 놓친 것만 같은 기분에 이 영화를 다시 한 번 보기로 결심했다. 유주
얼 서스펙트나 식스 센스 등의 반전 영화가 그러하듯 두번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마지막으로 도
달하는 과정 중간 중간에 감독이 심어놓은 증거물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영화
를 다시 보게 된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최초의 영화 <떼씨스>에서
충격 아닌 충격을 먹은 나로선 그가 단순히 마지막 반전을 위한 준비된 영화를 찍었을 거란 생각
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번째 관람 때 초점을 맞춘 것이 마지막 반전을 위한 영화 중
간 중간의 증거물과 그의 공포를 조장하는 방식, 그리고 사운드, 마지막으로 반전 이외에 그가
하고 있는 이야기였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는 감독 외에 각본과 음악에도 신경을 쓰고 자신이 직접 맡기도 하는 그런
감독이다. 이번 디 아더스 역시 자신이 음악을 맡았는데 빛과 그림자, 소리라는 매개체로 공포를
나타낸 그의 방식에 유용하게 쓰였다. (그는 스페인 영화 마리포사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빛과 어둠이라는 단순 명료한 대조적 상태는 시각에 의존하는 우리 인간에겐 공포로 다가올 수
있었다. 거기에 소리까지 더해져 보다 완벽한 정보를 얻게 되지만 소리로는 인식되지만 시각적
으로 인식되지 않는 방식을 택해 공포감을 조성한다. (그러기에 이 영화는 사운드 시설이 잘 구
비된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
이러한 방식은 그의 장난기로도 이어진다. 그림자 속의 턱을 보고 누군가 있다고 느끼고 겁을
덜컥 내지만 결국 그림이었고 누군가의 손은 커다란 인형, 어둠 속에서 누군가 달려나와 커튼
을 젖히는 장면 등.. 그를 악동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아메나바르는 이 외에 영화 속에 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것은 보수적이고 완강한 것에 대한
비판. 영화의 배경이 세계 2차 대전 당시의 영국 한 귀족 저택이란 점, 아이들에게 종교적 진리
를 가르치고 강요하는 모습 등에서 구세대의 보수적인 성향과 지독한 종교병을 비판한다. 그가
스페인 인이라는 점(스페인은 지독한 카톨릭 국가다)과 영국을 배경으로 한 점(영국은 보수적
이고 강력한 청교도 국가)이 영화 내에 이러한 경향을 띠게 했다. 그 예로 니콜 키드먼이 논리
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맞부딪혀 오는 아이에게 억지 논리와 종교적 사고로 모든 일을 자기
중심으로 풀어가는 모습이나 아이들을 폐쇄적이고 어두운 집안에만 두게 하는 점(이것은 공포
적 상황을 만들 좋은 설정이기도 하다), 이곳에만 있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며 행복한 거라고 말하는 보수적 성향까지.. 모두 과거의 모습에 염증을 느낀 것 같다.
한 작은 섬의 큰 저택이란 배경은 공포적 상황을 그릴 폐쇄적 공간인 동시에 보수라는 이름 하에
자신만의 영역에 울타리를 치고 외부와의 인연을 끊어버린 모습이기도 하다. 결국 니콜 키드먼
은 그 안전한 자신의 영역에서 한 번 나오지만 안개로 가려진 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허둥
댄다. 또한 남편이 떠나버린 것을 알고 뒤쫓으려 하지만 두려움에 집 밖까지 가지 못한채 대문만
붙잡고 눈물을 흘린다. 반면 아이들은 성서의 내용도 믿지 않으며 아버지를 찾기 위해 쉽사리
집을 떠날 결심을 한다. 이것은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마찰을 의미하며 니콜 키드먼과 딸 앤 과의
말싸움에서 구체화 된다. 그는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세대들의 모습에 한 마디 던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도중 도중에는 마지막을 위한 준비물들이 잘 섞여있다. 너무도 그럴듯 하여 그것이 마지막의
결론과 이어진다는 것을 알아채기 힘들지만 말이다. 하녀와 니콜 키드먼이 벽난로 앞에서 나누
는 이야기나 영화 맨 처음 니콜 키드먼이 비명을 지르는 모습, 앤의 이마에 키스하며 미안하다고
하는 말 등이 다 결말과 이어진다. 그리고 happened와 같은 단순하면서 많은 의미를 함축한 대
사를 통해 묘한 여운을 남기는데 아쉽게도 자막을 보는 우리로선 느끼기 힘든 맛인 것 같다.
(하지만 신경을 쓰면 몇마디 들리긴 한다.)
영화를 본 이들은 이 영화를 식스 센스와 비교한다. 식스 센스가 더 낫다느니 그 보다 더한 충격이
라느니 식스 센스의 아류작이 아니냐는 둥 여러 말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식스 센스와 비교하지
않길 바란다. 그것은 어느 쪽이 더 낫기 때문이 아닌 별개의 것으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일단 식스센스의 아류작이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 천재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가 이 시나리오를 준비한 것은 97년부터라는 점이다. 식스 센스는 99년 개봉했다. 그리고 이 영
화는 마지막 반전을 위한 영화도 아니고 도중 도중 그가 떼시스부터 사용해 오던 빛과 어둠의 공
포를 표현해 왔으며 반전 이외의 메시지도 담고 있기에 마지막 내용만을 가지고 두 영화를 비교
대상에 올린다는 것은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두번째 관람 때 온몸에 전율을 느끼긴 했지만 이 영화가 그의 영화 중 최고라고 평하고 싶지는
않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첫 작품인 <떼시스>가 가장 인상적이고 충격적이었으며 약간의 투박
함과 여러 모로 아쉬움이 남는 점이 더욱 애착을 갖게 한다. 하지만 디 아더스에서 그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비록 그가 하려는 이야기가 조금 약해서 철학적 메시지가 부족하다던지 나
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조금 껄끄러운 화면 방식, 조금은 구시대적 방식의 공포 등이 단점
으로 지적되긴 하지만 그 보다 많은 장점이 충분히 단점을 극복한다고 본다.
아직 세 편의 작품만 만들었기에 천재니 뭐니 판단을 내리기엔 성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지
세 편의 영화만으로 그런 소리가 나돌게까지 했다면 대단한 것이 아닐까.
이 31살의 감독의 팬이 되어버린 나는 벌써부터 그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다음 영화 때도 방
한을 해서 이번에 직접 보지 못한 한을 풀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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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천국
The Others.. 식스 센스와 비교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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