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주주총회 은퇴하는 리자청(李嘉誠, 리카싱) 청쿵(長江)그룹 회장
아흔에도 식지 않는 학구열, 역발상 투자
전 세계 32만명 거느린 '리장청 제국' 건설
엄격한 자녀교육…존경받는 기업인으로
레이쥔(雷軍) 샤오미 회장이 지난 3일 홍콩에서 리자청(李嘉誠,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과 만나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레이쥔 웨이보]
"오늘 오전 리자청 선생님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그에게 샤오미(小米)를 소개하고, 최근 신제품으로 출시한 샤오미 믹스 2S와 샤오미 6X도 보여드렸다. 소중한 시간을 빌어 중미 무역분쟁 등에 대한 리 선생의 견해도 여쭤봤다."
레이쥔(雷軍) 샤오미 회장이 지난 3일 리장청 청쿵그룹 회장과의 만남에 감격해 하며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 올린 글이다. 글과 함께 올린 사진엔 호기심 가득한 아이마냥 샤오미 신제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리 회장의 사진도 함께 올라왔다.
홍콩 증시 상장을 앞두고 몸이 열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바쁘다는 레이 회장이 직접 리자청 회장을 찾아간 건 그만큼 리 회장이 홍콩 경제 ‘큰손’이자 홍콩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91세 노장인 리 회장은 앞서 예고한대로 5월 연례 주주총회에서 공식 은퇴하고 장남 빅터 리(李澤鉅)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긴다.
홍콩 최대 갑부인 리 회장은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해 ‘재물신’ 또는 ‘슈퍼맨’으로 불린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올 1월 발표한 홍콩 부호순위에서 그는 총 자산 360억 달러로 20년째 1위를 차지했다.
실제로 오늘날 홍콩은 '리자청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청쿵그룹 손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다. 홍콩 사람들은 왓슨 드럭스토어와 파큰숍에서 화장품과 일상용품을 구매하고, 하버플라자에서 쇼핑한다. 전력은 물론 전화•인터넷 모두 리장청 소유 회사가 소유한 회사에서 공급받는다. "홍콩인들이 1달러를 쓰면 이 중에서 5센트는 리자청 회장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하지만 한국처럼 그를 두고 대기업 횡포나 갑질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리 회장은 지난 46년간 매년 5,000홍콩 달러만 받으며 일했다. 중화권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그를 손꼽는 이유다.
◆중학교 중퇴, 차 심부름꾼에서 20년째 홍콩 최대 갑부로
리자청 하면 자수성가한 화교 출신 홍콩 갑부로 잘 알려져 있다. 1928년 7월 광둥(廣東)성 차오저우(潮州)에서 태어난 그는 1939년 일제가 중국을 침략했을 당시 11살 어린 나이에 가족들과 홍콩으로 건너갔다. 1943년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서 15세도 안된 앳된 청년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하는 가장이 됐다.
기술공, 시계외판원, 차 심부름꾼 등으로 전전하던 중 플라스틱 공장에 취직한 그는 근면성실한 자세로 18살에 매니저, 20세에 총경리로 승진했다.
그러다가 1950년 22세 되던 해 그는 수중에 있던 단돈 5만 홍콩 달러로 직접 플라스틱 공장을 차렸다. 이것이 오늘날 청쿵그룹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청쿵플라스틱 공장이다. 청쿵은 창장(長江, 장강)의 홍콩발음이다. ‘창장강은 작은 시냇물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만 리까지 도도히 흐를 수 있다’는 뜻의 한시에서 유래한 것으로, 리 회장은 그때부터 원대한 포부를 품고 있었다.
그는 1971년 회사 이름을 청쿵부동산으로 바꾸고, 1972년 청쿵실업이라는 이름으로 홍콩증시 제1호 기업으로 상장한다.
특히 1979년에는 리자청 이름 석 자를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 경영난에 빠진 영국계 항만기업인 허치슨 왐포아 지분 20% 이상을 HSBC로부터 인수하면서다. 전 세계 언론들은 식민지 화교 출신 기업인이 사상 최초로 영국계 자본 기업을 인수했다고 대서특필했다. 리 회장은 1980년대 홍콩 10대 재벌에 이름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리자청이 46년간 이끈 청쿵그룹은 오늘날 홍콩은 물론 전 세계 50여개 국가 및 지역에서 부동산•항구•통신•호텔•소매유통•에너지•인프라 등 곳곳에 투자하고 있다. 거느린 직원 수만 32만명에 달한다.
◆역발상 투자의 원천•••끊임없는 학구열
홍콩 최고부호 리자청(李嘉誠,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 [사진=EPA연합뉴스]
남다른 생각, 역발상은 오늘날 그가 있게 한 원동력이다. 그는 1960년대 홍콩 부동산 위기로 집값이 폭락해 남들이 부동산에서 발을 뺄 때 오히려 저가로 부동산을 대거 매수했다. 이것은 향후 리자청이 홍콩에 ‘리자청 상업제국’을 건설하는 밑받침이 됐다. 1970년대 홍콩 경제 성장과 함께 부동산 가격이 올랐고 그는 돈방석에 앉았다.
중국 개혁개방 속에서 그는 중국 본토 부동산 시장의 기회를 보고 거침없이 진출해 막대한 수익을 남겼다. 2000년대부터는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을 공략해 헐값에 자산을 사들였다. 특히 리 회장은 영국의 텔레콤, 부동산, 에너지 산업 등에 약 500억 달러(55조 원) 규모의 투자를 했다. 그가 ‘영국을 사들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는 IT 하이테크 투자에도 선경지명 투자를 단행했다. 리 회장 산하 벤처캐피털 업체 호라이즌벤처스는 딥마인드 창립초기부터 주요 투자자였다. 구글이 2014년 딥마인드를 인수할 때 지분을 넘기며 그는 수 배에 이르는 차익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전화서비스 스카이프(2005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2007년), 음성인식 기술업체 시리(2009년), 캐나다 전자책 회사 코보(2009년), 음악스트리밍업체 스포티파이(2009년), 인공지능 스타트업 어펙티바(2012년) 등 유망한 IT기업에 초기투자를 해서 커다란 수익을 남겼다.
3D 프린팅을 이용한 자동차 생산, AI, 빅데이터, 하이테크 푸드 등과 관련한 스타트업 투자에도 관심을 보였다. 연말연초 전 세계적으로 '비트코인' 투자 열풍이 불기 4년 전인 2014년 이미 비트코인에 1억 홍콩 달러를 투자한 그다.
아흔 살 노령에도 불구하고 기술 분야에 대한 사업 통찰력이 뛰어난 건 남다른 학구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리 회장 스스로도 곧잘 성공비결은 근면성실과 학구열이라고 말할정도다. 리 회장은 수십년간 매일 아침 7시 30분 선생님을 초빙해 개인과외를 받고, 잠들기 전엔 30분씩 새 책을 읽는 습관을 유지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리자청(李嘉誠, 리카싱) 청쿵실업 회장(오른쪽)이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 창업자 데미스 허사비스 CEO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리장청 기금회 웨이보]
그는 지난해 인공지능(AI)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딥마인드 창업자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와 공동창업자인 무스타파 슐레이만으로부터 직접 AI 수업도 받았다. 아흔 살 고령임에도 마치 고등학생처럼 열심히 메모하며 질문을 거듭하며 지적 호기심을 보였던 그의 모습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중국 온라인에는 아흔의 나이에도 새 지식을 탐구하는 리 회장의 학구열을 기업인들이 본받아야 한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 맥도날드 알바생 출신 재벌 2세•••엄격한 자녀교육
그는 자녀교육에 대해서도 엄격하다. 그에겐 아들 둘이 있다. 그는 아들이 어렸을 적부터 기사 딸린 자가용 대신 전차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통학하도록 훈육했다. 자립심을 키우고 서민 생활을 알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아들 둘을 모두 미국에 유학 보냈을 때도 최소 생활비만 송금했다. 홍콩 재벌 아들 둘은 미국 명문 스탠포드 대학에 다니면서도 방학기간엔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재벌 2세라면 가지고 있을 법한 슈퍼카 하나 없이 자전거로 기숙사와 학교, 맥도날드 매장을 오갔다.
지금도 리 회장은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하루 저녁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16년 온 가족이 함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달랑 반찬 4개에 국 1개로 간소하게 식사하는 모습이 찍힌 2분짜리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리 회장은 과거 현지 언론 도시쾌보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엔 자녀와의 99% 시간을 사람 됨됨이를 가르쳤다면 지금은 3분의 1은 사업을 논의하고, 3분의 2는 여전히 사람 됨됨이를 가르친다"고 말한다.
회장직에서 물러난 후 향후 청쿵그룹 고문으로 남으며 리자청기금회 업무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리자청기금회를 스스로 '셋째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자선사업에 애착을 갖고 있다. 1980년 설립된 리자청기금회는 교육과 의료 자선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보유한 그룹 지분 3분의 2를 장남에게,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을 리자청기금회에 출연했을 정도다. 리자청기금회는 현재까지 홍콩과 중국 본토를 비롯해 전 세계 29개 국가 및 지역에서 약 200억 홍콩 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집계됐다.
◆ '리장청 제국' 진두지휘할 차기 후계자
리자청(李嘉誠,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과 차기 후계자인 장남 빅터 리.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리 회장의 아들 둘은 홍콩에서 '용형호제'로 불린다. 그만큼 능력이 출중하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리 회장의 후계자로 간택된 건 장남 빅터 리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빅터 리는 21세 되던 1985년 청쿵그룹 일반 사무직에서 시작해 집행이사, 부주석, 이사총경리 등을 역임하며 경영에 참여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벌인 투자사업도 성공적으로 이끌며 2003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에도 꼽혔다. 리 회장은 "지난 33년간 내 옆에서 일하는 걸 지켜봤다"며 장남이 그룹 경영을 잘 이끌어갈 거라는 데 충만한 자신감을 보였다.
사실 리 회장은 수 년전부터 그룹 승계를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 중화권 최고 재벌의 후계자 선정에 '잡음'이 없었던 이유다.
그의 차남 리처드 리(李澤楷)는 이미 2012년 자신이 보유한 그룹 경영권 지분 3분의 1을 형에게 넘겼다. 그는 일찌감치 그룹 가족경영에 일체 참여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사업에 몰두해 왔다. 역시 스탠포드대 컴퓨터 공학과 출신인 그는 25세때 홍콩 통신회사 덴쉰잉커(電訊盈科 PCCW)를 창업해 미국 AIG 자산운용 사업, 네덜란드 ING그룹 생명보험 업무를 잇달아 인수하는 등 남다른 비즈니스 감각을 선보여 홍콩에서 '리틀 수퍼맨'으로 불린다. 리자청 회장도 차남의 사업을 위한 자금만큼은 적극 지원하고 있다.
◆◆◆ 리장청 청쿵그룹 회장 말말말
"창업엔 지름길이 없다. 세상엔 벌기 쉬운 돈은 없기 때문이다."
"돈은 쓸 수 있지만 낭비해선 안 된다."
"사람을 고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업무능력, 둘째, 회사에 대한 열정, 셋째, 신뢰다. 만약 세 가지 모두 합격이라면 언젠가 기회가 됐을 때 그를 승진시켜라."
"근면성실하고, 지식을 탐구하고, 혁신하라. 스스로 검소하되, 남에겐 베풀고, 친구들과는 의리를 지켜라. 여기에 스스로 노력까지 더하면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다."
"20세 이전의 성공은 100%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다. 하지만 20~30세 성공은 90%는 노력이지만 10%의 운도 필요하다. 60세 이후의 성공은 운이 30~40%를 차지한다."
원문 출처: <아주경제> 배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