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부의 계절
임승환
허름한 창고문이 덜컹거린다
한여름에 가득했던 열기는
꽃 필 때 눈에 담아둔 풍경처럼 시들었다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았던 것들
한 번도 나의 것은 아니었다
먹구름이 몰려오면
눈길은 자꾸 문밖으로 향한다
올 사람이 없다는 걸 안다
함박눈이 펄펄 끓는 이마를 짚는다
입안은 갈라진 틈마다 소금꽃이다
함초라도 파종해야겠다 문이 열릴 때마다
문 앞에 통통한 놈들 서성이면
찬바람도 견딜 만하겠지
내 이름은 나를 아는 사람들이 다 가져갔지만
약봉지를 털어 넣고 물을 마시며
괜찮다고, 홀로 지키는 게 익숙하다고 다짐한다
폭설이 바다에 쏟아진다 꾹꾹 눌러 담았다가
염전에서 하얗게 건져내면 올해도
소금은 풍년이겠다 창고에 넣어두었다가
한여름에 나눠주고 싶은
냉기가 점점 익어간다
창고문이 활짝 열리기 전에
빗장을 걸어야겠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길
가는 길은 간신히 하나였다
계곡 위에 걸린 다리는
날 풀린 초봄이면 계곡 물소리가
텅 빈 길을 채운다 나비 몇 마리 앉았다 가고
산비둘기 가족 내려앉았다가
차 소리가 들리면 나무 위로 날아간다 산은
켜켜이 쌓인 정적이 푸르름을 키운다
구부러진 길 한복판에 돋아난 풀들이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다는 거다
산다는 것이 때로는 요행일 때가 있는데
넓어진 길에서는 바퀴 자국이 여러 줄, 밟힌 풀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되돌아 나오는 화물차 기사는 알고 있을까
길가의 풀들은 던질 수 있는 한 멀리
씨앗을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키가 큰 밤나무보다 멀리 보내고 싶어
무게를 줄이고 솜털 날개를 달아주었을 텐데
굽은 산길에 바람은 불어
길 한복판에 떨어뜨리고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눈을 감았을 것이다 높은 산은
멀리서 보면 빽빽한 숲이지만
막상 들어서면 이리로 저리로 오르는
길이 있다는 것을 산 꾼들은 알고 있다
자동차가 빠져나가는 길, 한복판에 돋아난 풀들이
손을 흔들며 병풍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