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가는 천연기념물 후박
▶후박하면 살아서 극락 가는 길
산 속 깊은 곳에 토굴을 짓고 혼자 수행 전진해온 노 스님이 먼 마을로 겨울양식을 구하러 탁발托鉢에 나섰다. 날이 저물어 무명 촌로의 집에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노승은 주인 부자지간의 대화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이른다 “윗마을에 사는 박 첨지가 어젯밤에 죽었다는데 지옥에 갔는지 극락으로 갔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예” 노 스님은 참으로 알 수 없었다. 자기는 일생을 참선 수행을 하며 살아왔지만 죽은 사람이 지옥을 가는지 극락으로 가는지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인데 한 촌부가 어떻게 저런 거침없는 말을 하는지 놀랍기만 했다.
그러한데 얼마후 그 아들이 돌아와 자기 아버지께 “극락으로 갔습니다”하고 아뢰니 “그랬을 거야” 하는 것이다. 노 스님은 더욱 기가 막혔다. 이 노인과 저 젊은이가 죽은 자가 극락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는 신통력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궁금증 속에 날이 밝았다. 이번에는 주인노인이 또 아들을 불러 “이웃마을 김 진사도 죽었다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이웃마을을 다녀온 아들이 아버지께 “김 진사는 지옥으로 갔습니다”아뢰었고 “그럼 그렇지”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궁금증을 참지 못한 노 스님은 주인을 찾아가 물어보게 된다. “노 처사님! 죽은 사람이 지옥을 가는지 극락을 가는지 어떻게 알 수가 있으시오” 주인은 미소지으며 “죽은 사람 마을에 가면 금방 알 수가 있지요”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윗마을 박 첨지는 살아 생전에 심성이 후덕하고 양심이 고우며 동리의 굳은 일은 도맡아 했으니 온 동리 사람들이 모여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극락왕생을 빌고 또 빌었으니 필경 극락에 갔을 것이며 이웃마을 김 진사는 평소 얼마나 인정머리 없이 모질고 독하였던지 김 진사가 죽자 동리사람들이 모여 수군대기를 ‘그 많은 재산 두고 아까워 어찌 죽었을고. 귀신은 지금까지 뭘 먹고 살았노. 저승사자 어긋 만나 오래도 살았지’이렇게 악담을 퍼부으니 지옥밖에 더 갈 데가 어디 있겠소”
결코 웃고 넘길 이야기는 아니다. ‘민심이 천심’이라 했듯이 민심이 곧 하늘의 심판이요 염라대왕의 판결문이며 업경대다. 그래서 옛 선인들께서 “이름 석자를 남기고자 딱딱한 돌을 파지 마라. 오가는 길손들의 입이 곧 비문이니라”한 것도 같은 뜻이다.
새해가 시작된다는 동지도 몇 일 남지 않았다. 한해는 저물어가는데 거리의 가로등 불빛은 동짓달 삭풍에 차갑고 오가는 행인들의 가슴은 세파에 시달려 구세군의 자선냄비마저 비정하게 비어있다. 후박厚朴. 조금은 후하고 야박하지 않게 살아서 극락행 예약을 미리 해두시기를. 후박의 향기는 천리를 간단다.
▶희귀조 흑비둘기 먹이로 유명
후박厚朴나무는 녹나무과 속하는 상록활엽수로 높이 20m, 지름 1m에 이르기까지 자라는 큰키나무 상록수다. 잎은 어긋나게 달리지만 가지 끝에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 손바닥만한 크기의 잎들은 타원형이며 두텁고 잎맥이 뚜렷하다. 윤기로 반질거리는 잎 표면은 짙푸르고 잎 뒷면은 회색빛 녹색이다. 잎 가장자리는 밋밋하며 톱니가 없다.
꽃은 새잎이 나올 때 잎겨드랑이에서 함께 나와 원뿔고깔 같은 꽃차례에 암술 1개, 수술 12개, 꽃잎과 꽃받침 구분 없이 6장의 황록색의 귀여운 꽃이 가득 모여 핀다. 봄·여름 5∼6월 꽃이 피었다 진 다음 붉은 빛 꽃자루에 둥근 열매가 달리는데 한해가 지나가고 다음해 여름철이 되어 녹두빛 열매가 점차로 보랏빛으로 변해가면서 다시 검게 물들어 흑진주처럼 아름답게 익는다. 열매지름 1.5㎝.
소나무가 상록침엽수로 억세고 위엄있게 보이는 반면후박나무는 상록활엽수로 이름 그대로 너그럽고 후덕하게 보인다. 따뜻한 남쪽지방 제주도와 울릉도를 비롯하여 다도해 여러 섬과 해변가에 살고 있는 후박나무는 많은 가지를 쳐서 잎과 수형도 아름답고 웅장하며 나이가 들어가면 껍질이 작은 비늘이 되어 떨어지는 것도 신기하다.
상록수 후박나무가 해변가에서 우람하게 자라 겨울에도 늘푸른잎을 무성히 달고 차가운 해풍 막고 서 있는 모습도 의연하지만 바다 사람들에게는 여러모로 쓰여왔다.
이 나무의 목재는 단단하고 치밀하여 배를 만들고 나무껍질에 함유된 「타닌」을 이용하여 끓인 물로 어망을 염색하여 쓰면 방수작용이 있어 어망을 오래 쓸 수 있었다. 그리고 후박나무 수피를 곱게 가루 내어 물을 붓고 반죽하면 진득한 점성이 강하여 선향을 만드는 결합제로 쓰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귀한 새인 흑비둘기가 1936년 울릉도 사동 남쪽 바닷가 후박나무 숲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는데 그 후 흑비둘기와 더불어 후박나무를 천연기념물 제215호로 지정하여 함께 보호하고 있으며 후박나무숲에는 흑비둘기가 깃들고 후박나무 열매가 흑비둘기 먹이로 유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도군 조도면 매관리 곰솔과 서낭당 후박나무 군락을 제212호, 통영군 산양면 추도리의 후박나무를 제345호, 그 외 많은 후박나무들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헛배부른 소화불량에 특효
우리나라 내륙지방에서 일본 목련을 후박나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일본에서 목련을 그들 말로 「호오노기」라 하며 한문으로 고쳐 쓰면 후박厚朴이 된데서 오는 오해이며 이 땅의 후박과 일 목련은 엄연히 다른 수종이다. 중국에서도 목련의 일종을 중국 후박이라 하며 약으로 쓰는데 일 목련과 중국 후박은 상록수가 아닌 낙엽수다. 우리나라 한방에서는 후박厚朴나무껍질을 토후박土厚朴이라 하여 일 목련ㆍ중국 후박과 구별하고 있으며 후박나무 열매와 뿌리껍질도 함께 약으로 쓴다. 약재로는 후박나무 지상 3m 이상에서 채취한 껍질과 잔가지를 최상품으로 친다.
약성에서 맛은 맵고 쓰고 성질은 따뜻하며 비·위경에 작용한다. 행기行氣작용이 강하여 기를 잘 통하게 하고 비위를 덮여 줌으로 헛배가 부르고 더부룩하며 음식을 꺼리면서 설태가 두껍게 끼고 복부가 차서 일어나는 설사와 소화불량에 특효를 나타낸다. 그리고 조습燥濕과 소담평서消痰平瑞작용이 있음으로 담습을 없애고 가래를 삭이며 해수천식 기침을 가라앉힌다. 또한 소적하기消積下氣-몸 속에 쌓여 막힌 것을 삭이고 뭉친 기운을 내린다.
임상실험에서 비교적 강한 항균작용이 있어 적리균과 대장균 번식을 억제시키고 세균과 아메바성 이질에 효력을 나타내었으며 위궤양과 십이지장 경련의 예방과 치료, 혈압강하 효과도 있었다.
약효와 적용질환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 약효는 건위, 정장, 소화, 조습, 거담, 평서, 이뇨, 혈압강하, 운동신경마비들이며 적용질환은 복부 창만, 소화불량, 위장염, 위경련, 복통, 구토, 설사, 기관지염, 기관지천식, 숨찬 기침들이다. 한방에서는 주로 한습기체寒濕氣滯 즉 비위가 차고 습하며 기가 막혀 배가 불어나고 그득한 소화불량에 쓰이고 있다.
후박약제의 채취는 수시로 할 수 있으나 보통 껍질 벗기기 쉬운 여름철에 채취한다. 그러나 굳이 굵은 나무 껍질을 벗기지 말고 잔가지를 꺾어 모아 써도 약효는 같다. 하루 쓰는 양 5∼10g 물로 달여서 나누어 복용한다. 잎 넓은 왕후박나무 수피도 함께 쓰인다. 임산부에게는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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