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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의 특징과 역사에 대해
인간의 가장 원대한 꿈을 실현케 해준 이동의 혁명, 자동차의 역사는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와 칼 벤츠(Karl Benz)로부터 시작되었다. 특히‘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Das best oder nicht)’는 다임러의 창업정신은 벤츠를 럭셔리카, 안전의 대명사, 그리고 세계적인 명차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다임러 벤츠는 수많은 명차를 내놓으며 고급차 메이커로 입지를 다지는 한편 크럼플 존 개발, 에어백과 ABS의 실용화 등 '안전의 대명사'로도 명성을 쌓았다. 90년대 들어 소형차 A클래스를 내놓으며 고급차 위주의 전략에서 세계시장을 향한 전략으로 체질을 개선한 벤츠는 1998년 미국 크라이슬러와 합병해 110여 년 역사 이래 가장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회사연혁
벤츠의 역사는 자동차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1886년 1월 29일 칼 벤츠가 특허 등록(가솔린 엔진)을 하고 같은 해 다임러도 ‘말없는 마차’라는 이름의 모터로 달리는 틀을 굴리면서 자동차의 역사, 즉 벤츠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1890년 다임러자동차회사를 세운 다임러는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Das Beste, oder nicht)’는 창업정신을 기초로 자동차의 개량에 나섰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엔지니어 마이바하는 최초로 4기통 4스트로크 엔진을 만들었다. 이 엔진의 무게는 153kg, 최고출력은 5ps/620rpm으로 보트에도 탑재되었다. 1896년에는 2기통과 4기통자리 피닉스 엔진을 내놓았다.
칼 벤츠는 1833년 만하임에 벤츠사를 세우고 1885년 세 바퀴 휘발유 자동차를 만들었다. 이후 1886년 1월에는 3륜 모터카로 특허를 따냈다. 벤츠 1호차는 984cc 엔진으로 최고출력 0.7ps/400rpm에 시속 15km를 기록했다(현재 뮌헨 과학박물관에 전시). 벤츠는 1호차를 낸 뒤 곧바로 자동차 판매를 시작했다. 처음 벤츠는 주로 주문 생산을 해왔다. 그러다가 더블 피봇 스티어링이 장착된 4바퀴 자동차 빅토리아(Victoria)를 내놓으면서부터 사업성을 띠게 되는데, 이 차는 1기통 2,915cc 5마력의 엔진으로 시속 35km를 냈으며 앞바퀴가 여러 각도로 돌 수 있는 킹핀(Kig pin)을 개발, 부착함으로써 고속으로 회전을 할 때의 안전도를 높였다. 벤츠 최초의 사륜차인 빅토리아는 영국 시장에 판매되었는데 벤츠가 세계시장에 내놓은 첫 모델인 셈이었다. 빅토리아의 주문이 쇄도하자 양산 체제에 돌입하게 되고 일년 뒤 시속 21km를 낼 수 있는 벨로(Velo)를 양산하게 된다.
한편 다임러도 같은 해 엔진에서 바퀴까지 쇠로 된 체인으로 구동을 연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벨트를 사용하는데 성공하고, 오토가 개발한 엔진을 소형ㆍ경량화하여 대량 생산을 준비하게 된다. 또한 1896년 10월 1일 다임러는 칸슈타트 공장에서 세계 최초의 트럭을 만들어냈다. 2기통 4마력 엔진에 1,500kg의 적재능력을 가진 차였다. 1897년에는 4인승 오픈 모델인 피닉스(Phonix)를 발표했는데, 처음으로 엔진을 앞쪽에 배치시킨 차였다. 이처럼 두 사람의 자동차 제작에 대한 경쟁으로 인해 이때 벌써 독일의 차들은 근대적인 의미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20세기 들어 후손들이 경영하던 다임러사는 벤츠사와 자동차시장과 자동차경주에서 맞부딪치면서 라이벌이 되었다.
그러나 벤츠는 1901년 다임러가 만든 메르세데스의 인기에 밀리게 되었다. 이 차는 당시 다임러의 오스트리아 판매대리인이었던 에밀 옐리네크의 딸 메르세데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녀의 인생은 평범했으나 스페인어로 우아함을 뜻하는 이 이름은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옐리네크는 자동차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독일의 다임러사를 알게 되고 다임러를 만나 그의 차를 여러대 사게 되었다. 1898년에 엘리네크는 다임러 피닉스를 주문하였고, 1년 뒤 그는 메르세데스라는 이름을 사용해 첫 번째 니스 경기에 참가했다.
1900년 다임러 모토렌은 휠 베이스를 넓히고 무게중심을 낮추었으며, 또한 엔진 힘을 높인 새 모델은 내놓자 옐리네크는 36대의 차를 주문하면서 두 가지 조건을 걸었다. 하나는 그가 오스트리아, 헝가리, 프랑스, 미국의 독점 대리점영업권을 갖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차에 그의 딸 이름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다임러는 옐리네크의 조건에 자못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런데 메르세데스는 나오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다임러사는 모든 차에 메르세데스라는 이름을 붙였고, 1902년에는 상표로 사용하게 되었다. 1902년 다임러가 내놓은 메르세데스 심플렉스도 인기를 모았다. 심플렉스는 기능과 스타일에서 앞선 차였다. 4기통 4,319cc 40마력 엔진을 얹어 시속 75km의 놀라운 속도를 냈다. 처음으로 공기가 들어간 타이어도 장착했다. 벤츠는 메르세데스 심플렉스에 대항해 파지할을 내놓았다. 파지할은 4기통 2천413cc 18마력 엔진으로 최고시속 60km를 기록했다.
두 메이커의 경쟁은 선박과 항공기에까지 이어지면서 20세기 전반을 장식했다. 두 메이커의 차 만들기는 각각 특징이 있었다. 레이스에 관심을 가졌던 다임러는 스피드에 역점을 두었고 벤츠는 기술과 안전에 주목했다.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다임러와 벤츠는 독일 자동차를 세계적인 상품으로 끌어올렸다. 자동차는 물론이려니와 배, 비행기 등의 엔진 제작에서까지 경합을 벌이던 벤츠와 다임러사도 1차 대전후의 경제 불황으로 1924년 두 라이벌 회사는 자동차 산업의 사수를 위한 합작이 아닌 협조를 하다 2년 후 한 회사로 합치게 된다.
하지만 금세기 최고라는 문명의 이기 자동차를 발명한 다임러와 벤츠는 평생 한번도 얼굴을 맞대지 않고 각자 자기 사업을 하다가 세상을 떴고, 두 회사는 1926년 다임러-벤츠라는 이름으로 합병하게 되었다. 경영은 칼 벤츠가 맡았고, 이후 다임러 벤츠의 모든 상품에는 메르세데스 벤츠라는 이름이 붙었고, 상표는 1916년부터 다임러가 써온 ‘세 꼭지별’로 결정되었다. 메르체데스- 벤츠라는 이름을 처음 쓴 차는 슈투트가르트와 만하임이었다. 독일을 넘어 전 세계를 대표하던 두 회사 월계수와 삼각별이 합하여 월계수 속의 삼각별과 메르세데스-벤츠(MB)란 이름으로 재 탄생한 것이다. 스피드에 역점을 두던 다임러의 기술과 안전에 주력하던 벤츠의 기술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계기였다. 다임러와 마이바하, 그리고 벤츠에 포르쉐 박사까지 가세한 다임러-벤츠 회사는 이후 세계 최초를 마크한 여러 가지 신기록을 계속 세워나갔다. 세계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는 물론 자동차 경주에서의 잇따른 우승, 트럭ㆍ택시ㆍ디젤차ㆍ쿠페의 개발 등에서 세계의 선두에 섰다. 엔진, 서스펜션, 차체의 개량에서도 다임러 벤츠는 항상 한 걸음 앞섰다.
이와 같이 20년대 후반 역사적인 합병을 일으키며 메르세데스-벤츠는 영광의 30년대로 접어들며 세계 최고의 성능, 품질과 권위의 상징이 된다. 월계수와 삼각별이 합쳐진 마크가 가는 곳에는 항상 속도와 안전, 신뢰와 성능을 겨루는데서 언제나 최고이며 동시에 가격면에서도 첫 번째가 되어 대중차란 인상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오늘에도 고급차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있다. 합병 후 다임러벤츠는 1928년 고성능차 메르세데스 SSK를 만들었고, 1929년에는 고급형 뉘르부르크가 나왔다. 뉘르부르크는 13일 동안 2만km를 계속 달리는 동안 단 한번도 고장나지 않아 뛰어난 내구성을 입증했다.1935년에는 세계 최초의 디젤 승용차 260D를 개발, 생산에 들어갔다.
1930년대 벤츠는 세계 각국의 군주나 원수가 즐겨 탄 그로서와 가장 아름답고 호화로운 유선형 스포츠카 MB500K등을 내놓았다. 1936년에는 세계 최초의 디젤차인 260D는 1940년까지 2천대가 만들어졌다. 다임러 벤츠는 50년대 들어 전쟁이 끝나자 민수용 자동차 생산을 재개하면서 서독 내에 있는 많은 부품회사를 인수해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58년에는 아우토 우니온, 63년에는 포르쉐 디젤 공장을 인수하기도 했다. 또한 자동차 경기에 활발하게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기술력을 진척시켰다. 1954년 벤츠는 불후의 명작으로 기록되고 있는 300SL을 내놓았다. 경주용차를 스트리트 버전으로 바꾼 300SL은 걸윙 도어를 가진 멋진 스타일에 6기통 2,996cc 215마력 엔진을 얹었고, 최고속도는 250km를 자랑했다. 300SL은 54년부터 63년까지 3천258대가 생산되었고, 300SL과 뒤이어 나온 190SL은 현재 SL시리즈의 기원이 되었다.
1960년대로 들어서면서 벤츠는 오늘날 벤츠의 상징이 된 라디에이터 그릴과 가로로 세워진 헤드라이트를 쓰기 시작했고 70년대는 엔진 배기량에 따른 숫자로 모델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82년에는 소형차 190시리즈를 내놓아 더욱 다양한 모델을 갖추게 되었다.
벤츠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모터 스포츠와 안전이다. 벤츠는 초창기부터 속도경쟁에 뛰어들어 우승을 휩쓸었지만, 1955년 르망 레이스에서 경기 도중 불의의 사고를 겪은 뒤 다음해부터 모터스포츠에 불참하기로 했다. 벤츠가 모터스포츠에 다시 뛰어든 것은 98년부터다. 현재 F1, CART, DTM 등에 참가하고 있는 벤츠는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메이커답게 2년만에 세계적인 자동차 경기에서 정상의 자리를 다시 찾게 되었다. 또, 일찍부터(1930년대 중반) 승객의 안전을 연구하는 전담부서를 만들어 안전장비 개발에도 앞서 나갔다. 1930년대 말 강화측면보호대와 안전도어잠금장치를 개발했고 1951년에는 충돌사고 때 엔진이 밑으로 밀려나 승객의 부상을 막는 안전차체를 개발해 특허를 땄다. 1953년에는 충격을 흡수하는 크럼플 존을 개발했고 안전벨트 역시 1959년 벤츠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1959년에는 세계 최초로 충돌 테스트를 실시했다. 대표적인 안전장비인 ABS와 에어백 역시 벤츠가 최초로 실용화시켰다. 이밖에 미끄러운 노면에서 바퀴가 헛도는 것을 막아주는 ASD와 이를 개선해 선보인 ETS(Electric Traction System), 95년 뉴 E클래스에 선보인 안전벨트 조임조절장치도 벤츠의 기술력을 말해주는 안전장치들이다.
벤츠가 고급화 전략을 구사한 것은 60년대 중반부터다. ‘찬(Zhan)’사장의 지휘 아래 승용차 사업을 고급차로 특화할 것을 계획하고 생산 수준을 수요보다 낮게 설정해 벤츠차의 희소성과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전략을 썼던 것이다. 오늘날 벤츠의 상징이 된 라디에이터 그릴과 가로로 세워진 헤드라이트를 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65년에는 아우토 우니온을 폴크스바겐에 매각한 것도 이러한 고급화 전략의 일환이었다. 동시에 상용차 사업에서는 Krupp 그룹의 상용차 부문과 라인슈탈 등의 매수를 통해 유럽 최대의 상용차 메이커가 되었고, 유럽시장을 중심으로 수출을 확대했다. 또한 1965년 Krupp그룹 상용차부문과 Rheinstahl-Hanomag을 매수하며 유럽 최대 상용메이커로 부상하고, 70년대 이래 중남미와 중동, 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세계 각지에 상용차 생산거점을 설치해 나갔고, 80년대에는 인도네시아, 북미, 이집트에도 진출하는 등 상용차사업을 계속 확대해 모두 11개국에서 10만대의 생산규모를 보유하게 되었다.
엔진 배기량에 따른 숫자로 모델명을 붙이기 시작한 것은 70년대부터지만, 실질적으로 승용차부문에서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다. 82년 컴팩트가 190시리즈, 85년에는 중형차 W124(300시리즈) 발매로 중소형 고급차 시장 진입에 성공 하였다. 1985년 종합전기메이커 AEG, 우주항공메이커 Dornier,엔진메이커 MTU를 인수 하였으며, 1989년 다임러 벤츠를 주식회사화하고 자동차부문은 메르세데스 벤츠 AG로 하였다.
하지만 이같은 고급차 전략만으로 세계시장에서 버티기는 힘들었다. 벤츠는 90년대 들어 시련을 맞게 되었다. 물론 80년대 이후 사업 영역의 확장, 그리고 채산성이 맞지 않는 부문에 대한 합리화를 위한 비용의 소모가 가장 컸다. 92년 승용차 판매부문에서 BMW에 추월 당하고, 93년에는 여러 가지 악재에 묶여 77년이래 16년만에 적자를 기록하는 부진을 보였다. 93년에는 인건비 상승과 매출부진, 적자 투성이의 포거사 인수 등으로 벤츠사상 최고액수인 11억8천만마르크의 손실을 입었다. 이에 자극 받은 벤츠는 96년 6월까지 6억 마르크의 증자, 합리화와 적극적인 설비투자를 통해 리스트럭처링을 추진하였다. 특히 자동차부문에 있어서 그동안의 고급승용차와 상용차 메이커에서 탈피, 체질 개선을 시도했다. 그래서 90년대부터는 고급차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소형승용차, RV 등으로 생산 범위를 확대, 풀 라인업을 갖추는 전략으로 변모했다. 또한 전체 생산비율의 2%에 불과했던 해외생산을 크게 늘려 97년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SUV M클래스를 내놓고 프랑스에서는 스와치와 공동으로 스마트카 생산에 들어갔다. 현재 벤츠는 멕시코와 인도, 남아공에서도 조립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1991년 신형 S클래스를 선보였으며 1993년에는 C 클래스를 그리고 199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신형 E 클래스를 내놓았다. C클래스는 1982년 데뷔한 소형차190시리즈의 후계 모델로 현대적인 감각의 디자인과 안전 장비, 그리고 가격 경쟁으로 큰 인기를 모으며,벤츠의 경영위기를 헤쳐낸 모델이다. 벤츠는 93년 C클래스를 발표한 뒤 1년만에 흑자로 돌아서게 되었다. 95년 위르겐 슈램프 회장이 취임한 후 생산합리화와 비용절감에도 힘써 97년에는 611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 순익증가율을 5.8%로 높였다. 소형 모델의 개발은 계속 이어져 1997년 제네바 오토살롱에서 A클래스를 선보이게 되었다. A클래스는 소형차의 새로운 트렌드를 창출하는 모델로 벤츠의 기술로 탄생되었다. A클래스 외에 살롱의 편안함을 지닌 오프로더 M클래스를 데뷔 시켰다. 벤츠는 최고급 승용차의 명성에 안전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틈새 시장으로의 방향 전환을 모색 하면서 모델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으며,대형 고급차에서 콤팩트한 소형차까지 벤츠의 이미지를 완성해 나가고 있다.
벤츠의 변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창립 72주년이 되던해인 1998년 5월 7일에 미국 크라이슬러와 1999년 1월 합병한다고 발표해 세계 자동차업계를 뒤흔들었다. 신회사는 "다임러 크라이슬러"라고 불리는 3년간의 이행기간을 거쳐 완전 통합된다. 벤츠는 합병을 통해 97년 말 결산기준으로 자본금 802억 달러, 종업원 41만2천 명, 매출 1천310억 달러 규모의 세계 제3위 자동차 메이커로 재탄생했다. 생산능력은 연간 380만 대로 GM, 포드, 도요다, 폴크스바겐에 이어 세계 5위다. 이로써 벤츠는 1926년 칼 벤츠와 고틀리프 다임러가 손을 잡은 이래 가장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현재 벤츠는 메르체데스 벤츠의 이름으로 소형차 A클래스와 C, E, S클래스로 이어지는 중ㆍ대형 세단, SL, CLK 등 스포츠카, RV M클래스, 4WD G바겐을 생산하고 다임러그룹에서 미니밴인 V클래스와 중대형 트럭, 버스 등을 만들고 있다. 새로 탄생한 다임러-크라이슬러는 1만 달러대의 값싼 모델부터 13만 달러에 이르는 최고급까지 넓은 가격대의 모든 차종을 갖추고 있다. 고급차 메이커에서 세계 3위의 거대 자동차기업으로 부상한 벤츠의 변신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