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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백두대간과 함께 이어가는 곤천산 황학산 호초당산 이어가기
덕고교-x882.6-곤천산(1.030.5)-x1.012.5-x1.093.7-황학산(△1.111.4)-1.044.5(형제봉)-바람재-x961.9-x1.032.1(여정봉)-△984.9(삼성산)-x962.8-우두령 분기점-x884.3-호초당산(△893.4)-다리골-주공버스정류장(903번 도로)
도상거리 : 19.5km
소재지 : 충북 영동군 매곡면 상촌면 경북 김천시 대항면 구성면
도엽명 : 영동
대가람 직지사를 품고 있는 백두대간 황학산(△1111.4)에서 북동쪽 추풍령 쪽의 백두대간 능선말고 북서쪽으로 분기한 능선은 곤천산을 일으키고 어촌천과 궁촌천을 가르며 추강으로 합수하는 곳으로 능선을 이어간다
또한 바람재를 지나 남진하던 대간의 능선이 서쪽 우두령으로 흘러가기 전 남동쪽으로 분기한 능선은 호초당산에서 남-남동으로 흐르며 선안재를 지나고 삼악산(490)을 지나며 김천시 구성면 양지뜸마을 인근에서 하원천과 감천이 만나는 곳에서 그 맥을 다하는 능선이 있다
산행이 시작되는 덕우리 인근의 능선은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어 들머리 코스를 다른 곳으로 잡아도 되겠지만 군부대 철망을 따라 올라도 된다
군부대 철망이 끝나도 지능선으로 흐릿한 족적이 있고 주능선에서 곤천산으로 이어지는 족적도 있지만 아주 좋은 상태는 아니나 잡목의 저항은 없다
곤천산에서 황학산까지 뚜렷한 족적이고 이후 우두령 분기점까지는 백두대간의 고속도로(?)를 지나가니 설명이 필요 없다
우두령 직전 분기봉에서 호초당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족적이 있지만 다닌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흐릿하다
초반부터 곤천산 정상까지 거의 오름이 이어지는 상태고 곤천산에서 내려선 후 황학산 정상까지 오름이고 이후 바람재를 지나 여정봉까지 오름이나 이후 우두령 분기점까지는 완만하고 편안하다
전체적으로 굴곡이 제법 있다고 볼 수 있다
903번 도로에서 김천행 버스는 하루 3차례 있지만 시간이 맞아야 하겠고 지나가는 차량도 드무니 보이는 차량이 있다면 히치하이킹을 시도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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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기▷
2019년 4월 28일 (일) 대단히 흐림
홀로산행
주중에 봄비가 이틀 동안 내리더니 주말 날씨 일기예보도 시원찮아서 버리는 날 도시 인근의 버리는(?) 코스 산행을 갈까 하다가 그냥 진행하기로 한다
매 주 산행을 가는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매 주 장거리 산행하는 것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못해요」
서울역 05시15분 KTX를 이용하기 위해서 04시 쯤 집을 나서서 걸어서 큰 도로가 있는 곳으로 나오고 첫 버스로 서울역 도착에 여유롭게 열차에 탑승하니 보통 부지런하지 않으면 이런 산행 할 수도 없고 이런 것들이 오래 전부터 생활화되어 있다
06시10분 대전역 도착해서 무궁화호 플랫홈으로 이동해서 06시25분 대전역 출발 열차로 갈아타고 07시07분 황간역에 하차하니 하늘은 잔뜩 찌푸려있어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다
웬만한 역에는 열차도착시간에 맞춰 택시들이 대기하고 있지만 황간역에서 내려 기다리는 택시를 본 적 없다
큰 길로 내려서서 편의점이 있으면 컵라면이라도 먹고 가려했지만 있기는 했지만 멀리 떨어진 편의점 이동하기 전 도착한 택시로 들머리로 생각한 덕우리로 향한다
택시기사의 말로는「거기 부대가 있는 곳 아닌가!!!」확실하게 이야기 하지 않으니 달려가 보니 부대 정문 앞이고 반대쪽으로 다시 가보니 거기도 부대 후문 쪽이니 지도만 보고 금을 그어놓은 내가 생각한 능선의 초입은 온통 부대가 차지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도 뭣해서 지도를 보며 후문 인근에서 본래 그어놓은 능선에서 분기한 지능선으로 오르기로 생각하기를「까짓 부대야 저 능선 너머 정도면 끝나겠지」
▽ 황간역은 2011년 4월 지장단맥을 종주한 이후 8년 만이다
▽ 전신주 저 위가 부대 후문이니 좌측의 지능선으로 오르기로 한다
07시38분 어촌천의 덕고교를 막 건넌 지점 인근에는 농가가 한 채 있고 남쪽 저 위 부대 철망과 부대 후문이 있는 곳 해발 약210m에서 좌측(남동) 밭을 지나 절개지를 지능선 절개지를 올라서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남동쪽 숲으로 들어서면 길은 없고 빼곡한 잡목사이로 그저 능선의 날 등만 놓치지 않으며 이리저리 빠지며 오르는데 잘한 선택인지 잠시 후회도 하며 약405m의 해명교 쪽 능선 분기봉을 올라서면 부대도 끝나겠지! 하는 생각으로 올라간다
한 이틀 전국적으로 내린 비로 축축한 숲을 산행시작 24분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서는 잡목 숲에는 나무가 자라난 폐 무덤이 있는데 해발 약375m 지점이고 잠시 더 올라서니「육군」말뚝과 함께 부대 철망이 나타나면서 철망 옆으로 나무나 풀이 깨끗하게 베어져 있으니 처음부터 철말 옆으로 오를걸 그랬다 싶다
철망을 만나고 2분을 더 오르면 약405m의 분기점이지만 우측으로 부대 철망을 끼고 다시 내려서는데 지도를 보니 옥륵촌 안부까지 내려야 겠다
약405m의 정점에서 철망을 끼고 5분여 내려서다보니 철망 안에 초소가 있는 지점 바깥 쪽 사면에는 宜人 延安 金氏 思慶 명찰의 잘 가꾸어진 무덤이고 또 금방 成均生員 豊山洪公 宜人 海平 尹氏 쌍무덤이다
전면을 보면 옥륵촌 안부로 내려서서 다시 올라갈 능선으로 여전히 부대 철망이 보이니 부대는 잠시 지나면 되겠지! 는 안이한 생각이었고 그 좌측(남동)으로 황학산 정상직전 x1093.7m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x990m 능선이 바로 인근 윗옥륵촌 까지 이어진 것이 보인다
▽ 초반 잡목의 능선을 치고 오르니
▽ 육군 말뚝과 철망이 나타나며서 정리된 철망 옆으로 오른다
▽ 철망의 좌측사면으로 풍산 홍씨 무덤들이 자주 보이고
▽ 옥륵촌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갈 철망이 보이고 좌측 저 편은 황학산 정상 일대서 좌측으로 분기한 능선이다
얼핏 좌측 강진리 벌판 저 편으로 백두대간의 괘방령 쪽도 보이니 무려 22년 전 백두대간 종주 때 이곳을 지나갔던 기억도 어렴풋이 떠오르며 골자기까지 다 내려왔나! 싶지만 철망은 능선의 날 등으로 바로 어이지는 것이 아니라 좌측 지능선으로 빙 돌아 내려서니 걷는 길이 훨씬 길고 빙 돌아 내려서는 사면에는 通德郎 豊山洪公 配 恭人 大丘徐氏 문패의 무덤이다
08시23분 산행시작 45분후 좌측아래 옥륵촌 농가가 보이는 지계곡 안부로 내려서니 대충 고도가 320m 정도고 여전히 철망을 끼고 오름이다
지도를 보면 가파르게 표고차 270m 정도를 줄이며 오르면 본래 금을 그어 놓았던 곤천산 북쪽 주능선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기온이 올라가면서 땀을 쏟으며 고도를 줄여간다
안부에서 16분 정도 올라서니 철망이 우측사면과 계곡으로 사라지는 곳 철망 안에는 초소가 있고 해발 약460m 지점이다
철망을 뒤로하고 절개지를 오르며 돌아보면 강진리 들판 저 편 x589.9봉 뒤로 백두대간 가성산(729.9)과 x589.9 좌측 뒤로 눌의산(△744.4)도 보인다
눌의산 좌측 북쪽 멀리 솟은 산은 백두대간 맷돌봉 인근에서 분기한 지장단맥의 학무산(681.6)과 바로 좌측 지장산(△772.4)인데 2011년 4월 3일 빗속에 기양지맥과 연계하며 걸었던 곳이라 기억이 생생하다
잠시 지체하다가 숲으로 들어서서 잠시 오르고 내려서면 능선의 좌우사면으로 흐릿한 족적이고 올라서는 능선으로도 족적이 보이며 산행한 사람들의 흔적이 보인다
뚜렷하던 능선의 날 등은 막판 넓대직한 사면으로 바뀌며 잠시 가파르게 오르고
▽ 좌측 저 멀리 괘방령 쪽이 보이고
▽ 옥륵촌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저 위로 올라가야 한다
▽ 다시 오르며 지나온 능선을 돌아보고
▽ x589.9봉 과 우측 뒤로 백두대간 가성산(729.9)이다
▽ 부대 철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돌아본 눌의산과 그 우측 난함산에 좌측 멀리 학무산 지장산이다
▽ 금방 사면을 가르는 길이 보이고 꾸준히 올라선다
08시57분 부대철망과 작별한지 15분후 주능선으로 올라서니 해발 약590m 지점이고 이제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오름이 이어지며 잠시 더 오른 약615m 지점 평탄한 곳이라 아침식사를 하지 않은 상태라 빵 한조각과 막걸리 한잔에 휴식을 하는데 땀이 식으니 추위를 느낄 정도라 7분 만에 일어서서 09시09분 출발하며 오름 시작이다
오름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우측(서)을 보면 각호지맥의 6~700m대 능선이 육중하고 출발 4분후 약640m의 우측능선 분기점에는 문패 없는 무덤이다
부드럽게 살짝 내려선 후 다시 오름인데 금방이라도 비가 뿌릴 것 같이 컴컴하고 갑자기 좌측사면에서 푸~푸 거리는 소리와 함께 멧돼지가 인기척에 달아나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오르면 능선은 거의 완만하게 이어지고
09시28분 올라선 약700m의 북서쪽 돈대교 방향의 지능선 분기봉에서 내려서는데 이제까지 남쪽에서 남동쪽이며 살짝 내려선 곳에서 1분정도 올라서면 세 줄기의 가지로 올라간 소나무가 눈길을 끌고 곧 軍삼각점이다
바위가 잠시 보이고 아주 편안한 오름이 이어지다가 막판 빼곡한 진달래 가지들 사이로 올라서니 군 삼각점에서 16분후 약800m의 북동쪽 계곡 쪽 지능선 분기봉인데 고도가 높아서인지 이 일대부터 나뭇잎이 거의 보이지 않는 裸木들이니 아직도 여기는 초봄 정도의 그림이다
잠시 고만하다가 다시 오름인데 능선의 좌우사면은 상당히 가파름이고 잔 바위들을 밟으며 잠시 오르니 서쪽 능선이 분기하는데 그 능선으로 △376.8이다
▽ 주능선에서 약640m의 우측능선 분기점에는 문패 없는 무덤이고
▽ 우측 멀리 각호지맥 삼봉산 정도를 당겨보고 이어지는 각호지맥 능선
▽ 북서쪽 돈대교 능선 분기점을 지나 살짝 올라선 곳의 눈길을 끄는 소나무와 잠시 후 군 삼각점
▽ 서쪽 △376.8m 능선 분기봉
완만하게 오름은 이어지며 바위들도 보이는데 억센 진달래 가지들이 배낭을 잡아 당긴다
오름은 이어지며 짧은 암릉도 지나며 △376.8m 능선 분기점에서 15분후 펑퍼짐한 x882.6m고 나뭇가지 사이로 저 위로 곤천산과 그 좌측 황학산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서쪽 상촌면 유곡리 밤앙골로 능선이 분기하는 이곳에서 몇 걸음 내려서고 바위 턱을 올라서면 한동안 완만한 능선이다
x882.6m에서 4분후 오름이 시작되기 전 막걸리 한잔에 땀을 닦으며 8분간 휴식 후 10시17분 출발이고 잎사귀 하나 없는 나목들 사이로 부드러운 오름이 이어지는데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은 박무가 밀려오면서 곤천산 정상부를 가려버린다
꾸준한 오름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표고차 50m 정도 가파르게 오르니 곤천산 정상 아래는 함몰지를 지나 올라서니
10시46분 좁은 공터에 진달래들의 곤천산 정상에는 대구의 산꾼께서 달아둔 정상표시가 쓰러져 있다
북동쪽 비라도 몰고올 것 같은 박무로 가린 황학산 정상부 일부가 보이고 그 우측 바람재를 지난 x1032.1m와 더 우측으로 우두령을 지난 백두대간의 x1194.8m 쪽이 육중하게 보이며 잠시 지체 후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 내려서고
곤천산은 충청북도 영동군의 매곡면 강진리와 상촌면 궁촌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한국지명총람」에는 곤천산(坤天山)'과 함께 곤천산의 이 명칭으로 근천산'이 기록되어 있으며 산에 곤천사(坤天寺)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근천산은 곤천산의 '곤'이 변한 것으로 보인다
▽ x882.6m
▽ 저 위로 곤천산과 좌측 황학산 일대가 보인다
▽ 박무 속으로 x990m 능선이 보이면서 곤천산으로 오른다
▽ 곤천산 정상
▽ 황학산은 박무에 가렸고 그 우측 형제봉이다
▽ 바람재와 여정봉이 보이고 우측은 우두령 너머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초반의 봉우리다
잠시 내려서는 곳 바위들도 보이고 길은 이전보다 더 뚜렷한 것이 아마도 궁촌리 제작거리 △554.6m 능선 쪽에서 이어지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4분여 내려선 안부에는 표고 움막 같은 모형의 나무시설은 軍시설인지! 약초꾼들의 움막으로 쓰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동쪽에서 남동쪽의 오름이 3~4분여 이어지니 x1.012.5m고 전면 x1093.7m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x990m 능선이 보이는데 부대 철망을 따를 때 계속 보였던 능선이다
금방 내려서고 오르기 전 5분간 숨을 고르고 다시 오름은 바위들이 어우러진 까칠한 능선이고 남서쪽 저 멀리 우두령 이후 높은 백두대간의 능선에 그 우측으로 육중한 산들은 민주지산 각호산들이고 각호지맥의 삼봉산 일대는 흐린 하늘에 보이지도 않는다
오름은 우측 새막골 분기점을 지나고 오르다가 잠시 내려선 곳에는 다시 아까 같은 나무시설이고 다시 오름은 꾸준하게 이어진다
능선은 금방 비라도 뿌릴 것 같지만 우측 저 아래 궁촌리 지통마마을 점마마을 쪽을 보면 햇빛이 비추고 있으니 고도가 높아서 그런가!
나무시설의 안부에서 8분여 올라서니 미역줄들의 특징 없는 x1093.7m다
동쪽에서 남쪽으로 틀어 가는데 좌측(북) x990m 쪽에서 제대로 된 등산로가 있는지 등산로도 좋아지고 표지기들이 많이 붙어 있다
그러나 이어지는 능선에는 쓰러진 나무들과 억센 진달래 가지들과 강풍에 꺽어진 나무들이다
▽ 곤천산 정상에서 내려선 안부와 금방 올라서는 저 위가 x1.012.5m
▽ 흐린 하늘에 남서쪽으로 본 우두령 이후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 여정봉과 그 우측 아래 지통마 점마마을이고 높은 봉우리는 우두령 이후 백두대간
▽ 앞 봉우리가 올라갈 x1093.7m다
▽ 형제봉 바람재 여정봉 좌측 멀리 호초당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암릉을 지나고 내려선 후 오른다
▽ 올라선 x1093.7m 정상
x1093.7m에서 15분후 내려선 곳에는 납작 폐 무덤이고 다시 울툭불툭한 바위지대를 잠시 지나며 어느새 동쪽으로 변하고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면서 마지막 우측은 분지 같은 지형이다가 정상 직전 남쪽으로 틀면 나타나는 헬기장은 백두대간을 만나는 곳으로 괘방령5.4km↔형제봉0.7km의 이정표에 박무 속에서 산악회원들이 올라오는지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11시59분 올라선 황학산 정상에는「영동23 2013재설」새로 보는 삼각점인 것이 나의 백두대간 종주로 이곳을 오른 것이 22년 전이니 말이다
물론 그 이전에 명산 산행으로 황학산을 오르기도 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올라본 곳이다
사진을 찍는데 산악회원들이 올라오니 어수선해서 한 쪽에서 빵 한조각과 막걸리 한잔으로 휴식을 하는데 바람도 불고 땀이 식으며 추워지니 10분 정도 소요 후 12시09분 출발이다
황악산은 추풍령에서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중간에 있는 산으로 이 일대에서 가장 높다
산의 남쪽 기슭에는 신라 시대에 창건된 큰 사찰인 직지사(直指寺)가 있다
황학산의 지명 유래는 정확하지 않으며 조선시대 지리지와 고지도에는 황악산(黃嶽山)과 황악산(黃岳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황간)에는 황악산(黃嶽山)은 고을 남쪽 15리에 있다 또 경상도 금산군조(金山郡條)에 보인다"라고 기록되어 관련 지명이 처음 등장한다
「여지도서」(황간)에는 황악산(黃岳山)은 현 남쪽 30리에 있다 조령으로부터 와서 추풍과 괘방의 두 고개를 끼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황간)에는 황악산(黃岳山)으로「1872년지방지도」(황간)와 「조선지지자료」에는 황악산(黃嶽山)으로 각각 기록되어 있다
황학산 북쪽에는 황학천이 있으며 동쪽 기슭 경북 김천시 대항면에는 유명한 직지사가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황학산(黃鶴山)과 다른 이름인 황악산(黃嶽山)이 소개되어 있다
황학산이 처음 기록된 사료는「세종실록지리지」인데 본조 공정왕(恭靖王) 원년 기묘에 어태(御胎)를 현 서쪽 10리 되는 황악산(黃岳山)에 안치하고 지군사(知郡事)로 승격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에는 황학산을 황악산으로 불렀으며 1399년(정종1)에 이 산에 태를 묻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황악산은 군의 서쪽 15리에 있다
공정왕 때에 어태(御胎)를 산 동쪽 직지사(直旨寺)의 북쪽 봉우리에 안장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황악산이라는 이름은 험준하고 높은 봉우리라는 뜻에서 큰 산 악(岳) 자를 쓰고, 높은 산임에도 석산(石山)이 아닌 토산(土山)이어서 흙의 의미를 담은 황(黃) 자를 써서 붙여졌다고 한다
현재 쓰는 황학산은 과거에 학이 많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황학산 정상을 향하여
▽ 헬기장을 만나면서 백두대간에 들어선다
▽ 보이는 것 없는 황학산 정상
넓은 등산로를 따라 내려서지만 보이는 것이 없으니 이곳으로 온 것이 후회되기도 하고 정상에서 10분후 잠시 올라서고 잠시 내린 후 2분도 걸리지 않아 올라선 x1044.5m가 형제봉이다
직지사3.5 황학산0.6km↔바람재1.5km를 알리는 이곳에서 잠시 지체 후 내려서면 밧줄들이 매어져 있고 좌측 저 아래 직지사와 그 앞으로 대항면 벌판들이 살짝 보인다
중간에 살짝 한차례 오르내리고 올라선다
직지사는 고구려의 아도(阿道)가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현재 사적비(寺蹟碑)가 허물어져 확실한 것은 알 수 없고 418년(눌지왕2)에 묵호자(墨胡子)가 경북 구미시에 있는 도리사(桃李寺)와 함께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 후 645년(선덕여왕14)에 자장(慈藏)이 930년(경순왕4)에는 천묵(天默)이 중수하고 936년(태조19)에 능여(能如)가 고려 태조의 도움을 받아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거의타버려 1610년(광해군2)에 복구에 들어가 60여 년 후 작업을 끝맺었다
경내에는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319) 대웅전 앞 3층 석탑(보물606) 비로전 앞 3층 석탑(보물607) 대웅전 삼존불 탱화 3폭(보물670) 청풍료(淸風寮) 앞 3층 석탑(보물1186) 등의 문화재가 있다
형제봉에서 10분후 올라선 약1005m에는 의자와 국가지점번호가 있고 남동쪽 신선봉1.4km의 능선 분기점이자 갈림길인데 신선봉은 x927.9m로 보이고 이 능선은 903번 도로의 회실고개를 지나며 진밭산을 일으키며 살짝 북동진하면서 동구지산에서 동진하면서 방하치 갈비봉 덕대산을 지나며 여러 갈래의 능선을 분기시키는데 그 중 가장 긴 능선이 살태고개 고성산을 지나며 김천시가지 감천으로 그 맥을 다하는 부르기 좋게 덕대단맥의 능선이다
우측으로 살짝 틀어지면서 바람재까지 표고차 150m이상을 줄이며 뚝 떨어져 내려선다
계단들과 의자 국가지점번호들을 지나며 신선봉 분기봉에서 10분을 내려서니 억새들에 전면 올라갈 x961.9가 솟아있는 것이 보이는 바람재 다
▽ 정상에서 내려서며 바라본 형제봉과 올라선 형제봉 정상
▽ 우측아래 점마마을 골자기와 궁촌저수지를 당겨본다
▽ 좌측 저 아래 직지사를 당겨본다
▽ 형제봉에서 10분후 약1005m의 좌측 신선봉 분기점이자 갈림길
▽ 올라갈 x961.9m가 보이는 억새들의 바람재로 내려서고
지도를 보면 해발 약825m 정도의 바람재의 동쪽 아래로 바람재목장이 있고 서쪽 아래는 영동군 상촌면 궁촌리의 황학산 정상2.3km↔바람재정상0.7km에 의자와 바람재 표석이 있는 곳에서 막걸리 마시며 휴식하는데 잠시 후 내려선 산악회등산객들은 모 등산업체에서 제공한 표시를 들고 인증사진을 찍으면 포인트가 쌓인다며 사진을 찍고들 하는데 나는 처음 보는 모습이고 처음 아는 것이 매 산행이 홀로 아니면 두 세 사람이 다니는 산행에 내 스스로 지도에 금 긋고 다니는 산행이라 세상 정보는 거의 모르는 편이라 그렇다
바람재는 1.000m가 넘는 높은 봉우리 사이에 상대적으로 고도가 낮은 안부에 자리 잡고 있다
바람재 동쪽 사면에서는 하원천이 서쪽 사면에서는 궁촌천이 발원한다
바람재는 북쪽의 괘방령이나 남쪽의 우두령에 비해 높고 험준하여 현재 임도만 개설되어 있다
바람재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자료에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바람재는 지형조건으로 인해 풍속이 빠른 바람이 부는 곳이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15분간 머무르고 13시07분 바람재를 뒤로하고 오름에는 계단 시설들이다
표고차 90m정도를 줄이며 올라선 북쪽 지능선 분기점에는 의자들이고 시야가 터지면서 지나온 곤천산 황학산이 보이고 우측(북서) 궁천저수지 골자기 저 편으로 각호지맥의 능선이고 좌측(동)으로 덕대단맥의 진밭산(719)도 제법 육중하다 (2분 지체)
남서쪽에서 남쪽으로 틀어지면서 부드러운 오름 4분이니 의자의 x961.6m에서 살짝 내려서고 오른다
▽ 바람재에서 오름이 이어지고
▽ 서쪽 멀리 삼봉산 일대 각호지맥을 당겨본다 날씨가 흐린게 아쉽다
▽ 형제봉과 중앙 황학산 맨 좌측으로 곤천산도 보인다
▽ x961.6m
▽ 동쪽 진밭산 동구지산과 큰 산은 덕대산이다
▽ 시설물이 있는 x832.1m 능선 분기봉 좌측 멀리 호초당산이 보인다
전면 올라설 시설물이 있는 x832.1m 능선 분기봉 좌측 저 편으로 멀리 가야할 호초당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올라서는 곳에는 백두대간 훼손지 복원사업 안내판도 보인다
x961.6m에서 5분후 올라선 곳은 x832.1m 분기봉 우측사면이고 ⟶우두령4200m를 알려주며 마루금이 우측(남서)으로 틀어지는 곳이다
잠시 좌측의 x832.1m 분기봉으로 올라서서 바라보고 되돌아 나와서 남서쪽으로 진행하면 평탄하다가 막판 5분 정도 올라서면 x1032.1m 봉은 여정봉 명찰을 달고 있다 (13시40분)
북서쪽 궁촌교 방향 x827.7m 능선을 분기시키는 지도에는 이름도 없는 분기봉인데 백두대간이 지나가면서 이런 이름을 얻은 모양이다
황학산3000m↔우두령4400m의 이곳에서 6분간 숨을 고르고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부드럽게 내려서다가 4분후 벼랑 위에 의자가 설치된 전망대에서 좌측(동) 아래 골자기 쪽으로 卍삼성암이 보이며 스피커로 들리는 불경소리고 그 너머 진밭산 동구지산 덕대산이 흐린 하늘에도 뚜렷하다
진행방향 △984.9에서 동쪽으로 분기한 △622.1m 능선과 그 뒤 M자의 호초당산과 그 우측 아주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육중한 산은 덕유산과 일대의 큰 산들이다
밧줄들이 매어진 능선을 잠시 내려선 후 3분도 걸리지 않아 올라선 곳은 미역줄들이 있는 약990m의 서쪽 x921.7 능선 분기봉이고 내려서는 곳 계단들이고 분기봉에서 7분후 내려서고 오르기 전 의자와 이정표고 잠시 후 오름인데 좌측 저 멀리 김천시가지가 조망된다
▽ 돌아본 신선봉
▽ 다시 돌아본 우측에서 좌측으로 형제봉 황학산 곤천산
▽ x832.1m 분기봉
▽ x1032.1m는 여정봉 명찰을 달고 있고
▽ 좌측아래 삼성암을 당겨본다
▽ 가야할 삼성산 명찰의 △984.9m 좌측 뒤 호초당산이다
▽ 남서쪽 아주 멀리 당겨본 산은 덕유산으로 달려가는 대덕산 삼도봉 일대다
▽ 전면 올라갈 약990m의 서쪽 x921.7 능선 분기봉을 보며 올라선 분기봉 정상
▽ 여정봉 등 지나온 능선에 중앙 나뭇가지 뒤가 형제봉 황학산
14시18분 의자들의 이정표를 지난 후 오름 시작 11분후 부드럽고 은근하게 올라선 △984.9m에는「영동314 1980복구」삼각점에 삼성산 이라는 명찰의 정상석 역시 백두대간이 대중화되면서 생긴 것이리라
22년 전 내가 지나갈 때는 이런 이름이 없었고 역시 지도에도 없기 때문이다
동쪽 손다리마을 방향으로 뚜렷한 능선을 분기시키는 이곳에서 남쪽으로 부드럽게 이어가는 능선에는 강풍에 부러지고 쓰러진 소나무들이 여기저기 방치되어 있어 피해서 진행한다
마른 미역줄들이 여기저기 많이 보이는 능선은 고만하다가 막판 잠시 올라서니 △984.9m에서 10분후 의자가 설치된 x962.8m봉이고 잠시 고만하다가 좌측으로 틀어 내려서는 계단 형태의 능선은 금방 다시 남쪽으로 틀어지며 다 내려선 후 고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백합나무 군락도 잠시 보이다가 잠시 내려선 곳에서 잠시 오르면 의자가 있고 바람재3600m↔우두령1200m의 약905m에서 막걸리 한잔에 7분간 휴식 후 14시49분 출발이다
1분 간격의 작은 오르내림의 고만한 능선은 출발 4분후 다시 살짝 오른 의자가 설치된 곳은 동쪽 삼거마을 능선 분기점이며 이제 우두령과 호초당산 능선 분기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2분도 되지 않아 뚜렷한 백두대간의 등산로는 능선의 날 등이 아닌 우측사면으로 이어지니 이곳에서 등산로를 버리고 그대로 능선의 날 등으로 진행하면 폐 무덤 흔적이 보이고 곧 살짝 오르면 구덩이가 파진 약870m의 백두대간은 서쪽 우두령으로 흐르는 호초당산 능선 분기점이다 (14시57분)
▽ △984.9m는 삼성산이다
▽ 미역줄들의 능선을 따라 살짝 올라선 x962.8m
▽ 우두령 분기점을 향하는 능선은 고만하고 우두령 분기점 이전 마지막 의자
▽ 마지막 분기점으로 오르지 않는 우측사면의 대간 길을 버리고 올라선 호초당산 분기점
이곳에서 백두대간을 버리고 살짝 진행하다가 좌측으로 틀어 내리는 흐릿한 족적의 능선이 호초당산으로 향하는 것이니 이제까지 고속도로(?) 같은 백두대간의 길과는 작별하게 되고 오래된 우두령을 지나던 백두대간의 추억도 잠시 떠 올린다
우두령은「한국지명총람」에는 우두령 대신 산 지명인 우두산(牛頭山)'이 기록되어 있으며 지명유래에 대해 산의 모양이 소의 머리처럼 생겨 지어진 이름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우두령은 조선 후기의 지리지와 고지도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여지도서」(황간)의 황악산 세주(細註)에 우두령'이 기록되어 있다
이후「대동여지도」(황간)와「동여도」에 각각 우두령 과 우두산(牛頭山)이 기록되어 고개와 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황간)에도 표기자 변화 없이 우두령'이 기록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남동쪽의 내림에서 우측아래 나뭇가지 사이로 부항면과 구성면으로 이어지는 우두령을 넘은 901번 지방도로가 구불거리며 보이며 분기점에서 9분여 표고차 130m를 줄이며 내려선 펑퍼짐한 삼거골 안부에서 부드러운 오름이 7분여 이어지니 약785m의 좌측 삼거마을 쪽 능선 분기점은 펑퍼짐한 지형인데 그 쪽에서 중장비가 올라온 흔적에 넓은 공터를 닦아놓고 軍用인지! 국방색 큰 텐트가 설치되어 있다 (15시14분)
어지럽게 베어진 나뭇가지들을 밟으며 2분여 올라서면 우측 도로 쪽으로 능선이 분기하고 고만하다가 고도 줄임의 내림에서 전면 나뭇가지 사이로 호초당산이 가깝게 보인다
3분여 쳐 박히듯 가파르게 내려선 푹 패인 곳은 해발 약710m 정도고 다시 오름에는 멧돼지들이 갈아엎은 흔적들이 이어지고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우두령 이후 1100m대의 백두대간 육중한 능선과 남서쪽 멀리 보이는 능선의 봉이는 삼도봉(1177.1) 석기봉(1242) 정도가 되겠다
▽ 남동쪽으로 틀어 고도를 줄이며 내려서고
▽ 분기점에서 완전히 내려선 후 7분여 올라선 약785m의 좌측 삼거마을 쪽 능선 분기점
▽ 삼거마을 분기점에서 잠시 올라서는 분기점에서 좌측이 가야할 능선이다
▽ 우측아래 우두령을 지난 도로가 보이고 전면 올라갈 x884.3m가 보인다
▽ 쳐 박히듯 내려서고 내려선 약710m의 안부에서 오름이다
▽ 오름에는 멧돼지들의 흔적들이 이어지고 우측 멀리 삼도봉 쪽의 대간능선을 당겨보지만....
고도가 낮아져서인지! 裸木들에서 연두색 잎사귀들이 달린 나무들의 능선이고 꾸준한 오름이 푹 패어진 안부에서 25분후 특별할 것 없는 참나무들의 x884.3m 봉이고 전면 호초당산 정상이 보이며 4분여 내려서는데 낙엽이 장단지 까지 빠질 정도로 쌓여있다
고만하다가 마지막 좌측으로 살짝 틀어지면서 3분여 올라선 북동쪽 다리골 쪽 능선 분기점에서 배낭을 던져두고 정상을 다녀오기로 하는 것은 당초 정상에서 동쪽 선안재로 내려서려 했지만 시간 상 다리골로 하산해야 겠다
3분여 남동쪽으로 올라선 호초당산 정상에는 예쁜 정상표시에「영동315 1980재설」오래된 삼각점이고 납작 폐 무덤이고 빗방울이 살짝 떨어진다
사진만 찍고 분기점으로 돌아와서 5분 만에 남은 막걸리를 마시고 16시13분 북동쪽의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서 마지막 하산을 시도한다
호초당산은 옛날 범이 많이 살았고 범의 초당이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 하며 호초당산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나간 산줄기는 구성면 상거리와 용호리 사이의 고개인 선안재와 삼악산(三岳山)을 이룬다
호초당산 북쪽 비탈면과 동쪽 비탈면에서 발원한 하천은 하원천(下院川)을 이루어 감천(甘川)으로 흘러들고 서쪽 비탈면과 남쪽 비탈면에서 발원한 하천은 무릉천(武陵川)을 이루어 감천으로 흘러든다
아무튼 다리골 합수점 까지 표고차 400m를 줄이며 가파르게 내려서야 하는 지능선에는 주민들이 다닌 흐릿한 흔적이 있다가 없다가를 반복하는 그런 능선이고 진달래들의 가지들이 무성하면서 배낭과 몸을 잡아 당긴다
▽ 올려다보고 올라선 x884.3m
▽ 호초당산을 향하여
▽ 호초당산 정상
▽ 호초당산에서 내려갈 다리골 능선 저 앞으로 덕대산이 보인다
▽ 다리골 능선은 억센 나뭇가지들이다
분기점에서 14분후 부지런히 내려서다가 표고차 약200m를 줄이며 약간 펑퍼짐한 해발 675m 지점에는 파묘 흔적이 보이고 잡목들이더니 한 2분후 집 채 만 한 바위를 지나고 가파른 참나무 능선을 계속 내려서는데 고도가 낮아져서인지 인근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온다
계곡이 가까워지면서 능선과 사면에는 쭉쭉 뻗은 낙엽송들이 보이고 폐 무덤들도 보이고 분기점 출발 29분후 내가 내려선 능선이 가른 양쪽 계곡이 합수하는 지점으로 내려선다 (16시42분)
우측 골자기 쪽에서 이어진 뚜렷한 길이 합수한 계곡의 우측사면으로 이어지니 편안하게 내려선다
4분후 우측 지계곡을 건너며 길은 점점 더 좋아지며 내려서더니 합수점에서 7분후 좌측 계곡 쪽에서 이어진 넓은 시멘트 농로를 만나서 편안하게 내려서는데 일대 호두나무들이 많은 것으로 보이니 과수나무 관리용의 농로인 모양이다
16시57분 903번 도로에서 갈라져서 삼거마을 손다리마을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만나서 곧 주공마을을 지나며 도로 쪽으로 바쁜 발걸음인 것이 김천서 예매된 마지막 18시30분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서 일단은 빨리 김천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 파묘 흔적을 지나면 곧 큰 바위를 지나 내려선다
▽ 계곡 합수점이 가까워지면 주변은 낙엽송들이다
▽ 합수점을 지나면 길이 뚜렷하다
▽ 다리골에는 호두나무들이 많다
▽ 삼거마을 갈림길으로 나서고
▽ 주례마을을 지나고 도로로 나선다
▽ 주공 버스정류장에서 산행 끝이나 한동안 도로를 따라 걷는다
주례리 주공마을 경로당을 지나 마을을 지나며 주례2교를 지나
17시07분 주공버스정류장에서 일단 산행을 멈추는데 주공마을에 대한 안내판도 서있다
주례리는 조선시대에는 김산군 대항면에 속한 화실(화곡)이었으며 1914년에 주공. 삼거와 통합하여 주례동이라 하였고 1971년에 화실(화극)을 주례1동으로 나누었다
자연마을로는 화실. 주공. 삼거리 등이 있는데 화실은 1700년 무렵 홍씨와 송씨가 이곳에 약초를 캐러 왔다가 정착하여 살았는데 마을 주위에 꽃이 만발하고 각종 열매가 많아서 화실. 화곡(華谷)이라 이름 지었다
주공은 1790년 곡부 공씨가 개척하였으며 공자님이 살던 시대인 주나라의 주 자를 따고 자기 성의 공 자를 따서 주공이라 이름 지어 불렀다
또 일설에는 이곳에 큰 산이 있어 두리. 주공. 주례라 불렀다고도 한다
삼거리는 구성면 마산리 영동군 상촌면 김천시 대항면으로 가는 세 갈래 길이 있는 곳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삼거리라 부르게 되었으며 줄여서 삼거라 부르기도 한다
정류장에서 버스 도착정보가 없고 이 한적한 903번 도로로는 양쪽 다 지나가는 차량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다
일단은 회실고개를 넘어서 북쪽 직지사 주차장으로 나서야 김천행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거리가 만만치 않으니 걸어가면서 뒤에서 오는 차량이 있으면 무조건 태워 달라 해야겠다며 화실고개 쪽으로 한참을 걸어가는데 뒤에서 차량소리가 들려오는데 승용차 두 대가 달려오면서 앞 차가 세워준다
인근 산골에서 고사리를 재취하고 가는 친구 두 사람의 아주머니가 세워주니 직지사 입구까지만 태워달라고 했더니 대항면 소재지 용복마을에 산다며 김천으로 들어가는 4번 국도상 용복마을 입구에서 세워주니 너무 고맙다
역시 버스 도착정보가 없어 k택시를 호출해서 김천터미널로 오니 바쁘게 식사할 시간까지 주어진다. -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