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魂)과 백(魄)의 의미
자전을 찾아보면, 혼(魂)과 백(魄), 둘 다 넋이라고 풀이된 곳이 많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는 틀린 것이다.
우리말로 혼은 얼이며, 백은 넋이다.
얼은 밝은 정신으로서 양(+)적인 에너지이며
넋은 감정과 감각으로서 음(ㅡ)적인 에너지다.
더 상세히 말하자면 감각과 감정으로서의 경험적 산물을 이르는 것이다.
넋은 달리 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마음은 본질까지 아우르는 바,
구별하기 위하여 본질적인 마음은 성품이라 한다.
마음은 원래 거울과 같아 그 자체의 형상은 없으나
사람들이 대개 거울에 비친 상을 거울로 생각하는 것처럼 마음에 비친 상을 곧 마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쓰임새를 보자면
얼에는, 조상의 얼을 오늘에 되살려..
얼차려, 얼빠진 놈, 얼굴(얼이 깃든 굴).. 등이 있고
넋에는
넋두리, 넋을 기리다.. 등이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얼은 정신이며 넋은 감정(감각)이다.
그리하여 이 혼백은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은
몸이 구심점 역할을 하여 한 데 묶여 있으나
몸이 그 수명을 다하여 힘을 잃으면
혼과 백도 각각의 역할로 나뉜다.
이른바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는 것인데
왜 혼은 날아가고 백은 흩어진다고 표현한 것일까?
혼은 그 근거인 하늘로 올라가기에 난다는 표현을 쓰는 것인 바, 이는 혼(얼)의 성질이 그 밀도가 가벼워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며 백은 그 근거가 땅이기에 땅으로 흩어진다고 말하는데,
이는 백(넋)의 성질이 그 밀도가 혼보다 무겁기 때문이다.
넋의 에너지 중에서도 집착이 심하여 무거운 에너지는 땅에 쌓이고 비교적 가벼운 집착에서 근거한 에너지는 땅보다는 높은 대기권 정도에 쌓인다.
그런데 이 이치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뭔가?
넋은 감각과 감정의 경험체이므로
살아있을 때 느낀 모든 기억들과 연관이 있어,
주로 욕망, 집착 등을 대변하고 얼은 밝은 정신이기에
본연의 하늘 성품, 곧 본래 사람의 양심과 성품 또는 내적자아, 참자아 등을 대변한다.
모든 사람이 혼과 백을 다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다만 살아있을 때 어느 쪽이 주도권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올곧은 성격이 될 수도 있고
들쭉날쭉한 성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본연의 혼으로 하여금
백을 역할로 잘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곧 명상이며 마음공부라는 것이다.
짧게 그 요체를 말하자면,
숨쉬는 이는 넋이며 숨을 바라보는 이는 얼이니,
한결같이 숨을 바라보라는 명상의 가르침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달리 표현하자면
행위자에서 관찰자로서의 자각을 뜻하는 것이다.
성품공부라는 말은 없어도
마음공부라는 말은 흔히 쓰는데 그 이유는,
근본의 마음인 성품은 이미 온전한 자리에 누구나 있어 공부라는 표현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넋을 기린다..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흔히 무속에서 말하는 천도가 필요한 영적에너지는
모두 이 넋의 에너지를 말하는 것이며,제사상을 받는 조상들도 이와 같다.
여기에 살아있을 때의 인격이나 자신이 꿈꾸던 가상인격을 갖추어 나름의 정체성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귀신이라 흔히 칭하는 귀(鬼)다.
살아서 다 갈무리하지 못한 마음들이 죽고나면 귀(鬼) 또는 귀신이 되는 것인 바,각종의 영적 증상들은 바로 이 에너지체에서 비롯된다.
대기권 아래에는 이런 에너지들이 떠다니다가
유사한 주파수를 가진 사람들과 동조를 일으키기도 하기에 사람이 극단적 감정과 감각을
주인된 역할 없이 치우쳐 체험하다 보면
자기 마음이 아닌 것까지 감당해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감각과 감정은 제 역할을 다할 뿐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그 주인이 밝은 정신의 관할 하에 두지 않으면
중심을 잃고 유사한 에너지와 접속하여 소위 말하는 신들림 (빙의)증상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이러한 증상들은 밝은 정신인 혼을 강화함으로서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혼은 몸체가 되고,백은 쓰임새가 되어
삶을 삶답게, 연극을 연극을 연극답게 하려는
스스로의 선택임에도 이를 망각하고 얼이 빠져버리면
그야말로 주인 없는 빈 집이 되어 극단적인 감정과 욕망의 노예가 된다.
거듭 말하지만 감정과 감각은 아무런 죄가 없다.
중심을 잡지 못하는 주인의 몫이다.
우열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라 제 역할을 다하여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니 감정도 감각도 무시한 채 무미건조한 삶을 살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아울러 영(靈)은 혼이 본래의 자리를 찾았을 때의 형태로서 영혼이라 부르기도 한다.
혼과 백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서 그 중심은 중심대로 그 역할은 역할대로 제 몫을 다하도록 하는 데 늘 유념한다면 존재의 의의를 다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인즉 어찌 소홀히 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