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국개론은 서민이 서민을 까는 논리라는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개론의 개새끼는 서민이면서 반 서민적 정책에 찬성표를 던지는 사람을 말하는거다. 엘리트인데도 서민을 위한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은 국개론자에게 어떻게 보일까? 미국 중국의 친한파를 보는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전체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까지 깔 수 있다는 위험이 없지는 않으나, 그건 말 그대로 위험성에 불과하다. 예를들어, 4대강 등 정책이 국가를 위한 정책인가? 논란이 분분한 부분이다. 면밀히 생각한 뒤 전체를 위해 찍는 것인가? 혹은 국가를 위한다는 애국심에 살피지도 않고 찍는가? 국개론의 개새끼는 후자를 칭하는 것이다.
일반 서민이 정치에 대해 자세히 알면서도 한나라당을 찍는 비율보다, 프로파간다에 휘둘려 찍는 비율이 더 많을 것이다.
물론 국개론이 주장하는 것이 전적으로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심사숙고 없는 투표와 그렇지 않은 정성어린 한 표가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불합리함은 많은 사상가들에 의해 민주주의를 까는 중요한 기재로 쓰여 왔다. 실제 정치에 관심이 없는 대다수의 국민은 공약 같은 것은 확인하지 않고 그저 외모가 어떻다, 인상이 어떻다, 그냥 이름 제일 많이 들어 본 사람이라서 찍는다 등의 이유로 한 표를 행사한다. 국개론은 이러한 '심사숙고 없는 투표'의 폐해를 어느 정도 설명해 주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감세 정책을 통해 얻는 혜택이 적은 "Poor White" 계층이 공화당을 더 지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즉, 그들에게 있어 실질적인 도움보다는 이미지나 이념공세로 인해 투표하는 경우가 많으며, 결국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과로 나타남에도 반성하지 않는다. 이는 필연적으로 정치 지형의 왜곡을 가져오고, 나아가 정책적인 왜곡을 가져온다. 투표를 하지 않아서 얻는 불이익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오히려 투표를 했는데도 불합리를 가져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정치 불신을 일으키고, 이는 다시 독재로 연결될 우려가 높다. 즉, 투표로 독재자를 뽑는 최악의 가능성이 잠재된 것이다. 바로 그 점에서 낮은 유권자의 수준에 대한 비판은 분명 경청할 가치가 있다. 국개론이 설사 그 언사가 과격하더라도 아주 배격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지난 10년간의 급격한 세계 신자유화 물결에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었고, 이 과정에서 한국은 안그래도 심했지만, 적자생존, 약육강식이 강화되었다. 즉 정글의 법칙이 뿌리박힌 것이다. 여기서 저학력 저소득층인 약자들은 자신들의 몰락이 역사의 흐름이라기보다는 정부가 무능해서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러한 계층에게 원초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부자되세요' 공약은 그야말로 시효적절한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공약대로 부자가 됐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주요 공약중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은 4대강으로 탈바꿈한 대운하 뿐이며 반값 등록금 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가지지 못한 계층은 속고 산다는 주장이 실제 연구 결과와 어느 정도 일치함을 알 수 있다....라기엔 반대되는 연구 결과 역시 많다. 특히 속류적인 형태의 국개론은 오히려 연구 결과가 빈약한 편이다.
다만 나치가 합법적인 선거로 당선되었다고 이것을 국개론의 근거로 삼는 것은 매우 잘못된 사실이다. 나치가 집권할 시기의 독일이 바이마르 공화국을 기반으로한 민주국가임은 사실이지만 바이마르 공화국의 성립은 세계 1차대전의 영향으로 독일제국이 붕괴뒴으로써 성립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1919년에 성립되서 나치정권 수립으로 해체될때가 1933년, 애초에 시민권을가진 모든 독일 국민들은 황제의 아래서 태어나 황제의 통치를 받던 사람들로서 민주주의가 가진 장점이나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느꼈을 가능성이 적다고 봐야한다.
수백년을 황제의 아래서 통치받던 사람들이 바이마르공화국 10년정도만에 민주적인 소양을 가진 민주시민으로 바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독일국민들이 나치를 선택한 것은 국개론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황제의 지배를 받아온 독일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한다.
단, 이 부분에서 다소 이론의 여지가 있는데, 1919년 이전의 독일에 민주적 선거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의 독일이 황제의 통치를 받는 제국이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입헌군주국의 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선거를 통한 의회와 지방자치정부를 갖추고 있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황제가 무조건적인 권력으로 통치하는 절대군주정 국가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난생 처음 민주적 선거절차를 겪어본 국민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독일에서 대의제에 의한 대표선출이 시작된 것은 19세기 중반으로, 통일 이전이다. 좀 억지스럽게 연결한다면 중세의 신성로마제국 황제도 선제후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것이고...(이걸 민주적인 선거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체를 현대적 민주정의 효시 중 하나로 보는 것은, 단순히 헌법구조가 현대 헌법의 모범이라서가 아니라, 전반적인 운영 자체가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며, 이러한 운영은 19세기 이후의 경험 축적에 의한 것이다.
또한 프란츠 폰 파펜의 무리한 연립내각 형성 시도 또한 히틀러가 총리, 더 나아가서는 총통이 되도록 유도하였으니 어찌보면 선거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실제로『히틀러의 30일』과 같은 책에서는 당시 의사결정 과정이 얼마나 시민들에게 책임지지 않은 채 사리사욕에 눈이 먼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집중되어 있었으며, 이들의 탐욕으로 인하여 히틀러에게 권력이 돌아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게다가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법 엘리트는 철저히 극우적 성향의 판사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좌파에 대한 유죄선고 확률이 우파에 대한 선고 확률보다 9배나 높았을 정도의 행태를 보였으며, 이는 정당한 민주적 경쟁을 차단하였다.
이와 더불어 히틀러와 파시즘을 정신나간 것으로 손쉽게 치부해버릴 수 있는 현대의 관점을 투사하여 당시의 시민들의 판단력을 무시하는 것도 좋은 접근 방식은 아니다. 당시 민주주의를 도입한 자유주의자들은 자유주의적 헌법만 잘 짜놓으면 체제가 잘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였기에, 대공황 등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에 매우 무기력하였으며 따라서 파시즘은 충분히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대안으로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승만의 민주주의와 국공내전 직후의 마오쩌둥이라는 선택지가 주어진 셈이었는데 과연 당시 유럽의 시민들과 독일 국민들을 단순한 멍청이들로 취급하는게 온당한지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이러한 요인들을 간과한채 마치 오늘날과 같이 왜곡 없는 경쟁과 선거를 통해 나치가 집권한 것으로 생각하고, 유권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근거로 활용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 면에서나, 정치학적 분석 면에서나 문제가 있다.
첫댓글 슬프고 슬프도다, 할말을 잃게만드는 현실의 벽이여,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는지 한심한 국민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