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체험이라더니 슬쩍 유료전환… ‘다크 패턴’의 덫
“경차 좋지요, 좋은데 데이트할 때는 좀….” “가족여행 다니려면 안전한 게 제일인데, 역시 큰 차가….” 자동차 딜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다가 당초 예산보다 훨씬 비싸고, 옵션이 잔뜩 붙은 차를 사는 일이 적지 않다. ‘경차 사러 갔다가 벤츠 계약하고 왔다’는 농담이 나오는 이유다. 요즘은 온라인쇼핑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마케팅 수법이 오프라인보다 더 교묘해졌다. 그중에도 소비자의 눈과 판단을 흐리는 사기적 상술을 ‘다크 패턴(dark pattern)’이라고 한다.
▷다크패턴은 쇼핑몰, 앱의 안내에 따라 클릭, 터치를 계속하다 보면 속아서 피해를 보거나, 비합리적 지출을 하게 만들어진 사용자인터페이스(UI)다. 영국의 UI 디자이너 해리 브링널이 원치 않는 행동을 하도록 소비자를 유도하는 온라인 마케팅 방식을 통칭해 2011년 다크 패턴이라고 이름 붙였다. 재작년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는 국내 100개 전자상거래 모바일앱 가운데 97%에서 다크 패턴이 발견됐다.
▷원하는 상품을 다른 곳보다 훨씬 싸게 파는 온라인 쇼핑몰을 발견하면 소비자는 혹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마음을 정하고 결제 정보를 입력하는 단계가 돼서야 ‘배송료, 세금, 봉사료 별도’ ‘특정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가격 할인’ 같은 중요한 정보가 나온다는 점이다. 그것도 화면 하단에 눈에 띄지 않는 작고 흐릿한 글씨로. ‘또 낚였다’는 생각이 나도 들인 손품이 아까워 그냥 결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비슷한 경험을 한 온라인 소비자의 비율이 71.4%다.
▷‘1개월 무료 체험’ 같은 조건으로 유혹해 앱을 깔게 하고, 이 기간이 지나면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유료로 전환해 자동 결제하게 만드는 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구독 서비스에 많은 수법이다. 통장 지출 내역을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쓰지 않는 서비스 이용료가 매달 빠져나가는 것도 모르고 지나간다. 물건을 사거나 회원에 가입하는 절차는 간편한데, 구매를 취소하거나 탈퇴하는 방법은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미궁 같은 앱도 많다.
▷공정위는 현행법으로 제재할 수 없는 6가지 다크 패턴 유형을 규제하기 위해 전자상거래법을 고치기로 했다. 다크 패턴은 일상에 바쁜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상품, 앱을 구매할 때 세세한 데까지 신경 쓰는 걸 귀찮아하는 심리적 허점을 노린다. 속았는데 속은 줄도 모르는 ‘호갱 소비자’가 주요 타깃이다.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에 한 번 더 따져보는 깐깐한 소비자가 많아지지 않으면 어둠 속에서 지갑을 노리는 다크 패턴을 뿌리 뽑을 수 없다.
박중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