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마다 고유의 전통의상이 있다. 우리나라의 한복과 일본의 기모노, 스코틀랜드의 킬트, 인도의 사리 등 각 나라의 전통 의상은 그 나라의 문화를 반영한다. 한복의 우수성이야 두 말 하면 잔소리이고, 다른 나라의 전통의상 중 필자가 가장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로 중국의 치파오이다. 영화 ‘홍등’에서의 공리와 ‘색계’의 탕웨이가 입은 치파오만 떠올려도 왜 매력적인 의상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워낙 광활한 대륙이어서 지역마다 옷차림이 약간 달랐는데, 특히 여성의 의복은 다양한 뜻을 내포했다. 기록에 의하면, 운남성의 이 족 여성들은 주로 넓은 치마를 입었는데, 집 안에서는 무릎이 보이는 짧은 치마를, 외출 시에는 치마 끝이 땅에 끌릴 정도로 긴 치마를 입었다. 이에 반해 웃옷은 가슴에 착 달라붙어 몸매의 라인이 드러냈다. 또한 이족 여성들은 외출 시에 남자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특이한 모자를 썼는데, 그것은 육각형 모양의 노란 실로 정교하게 짠 장식 고리가 달린 형태였다. 특히, 모자 중간에 붉은 실을 세 가닥씩 꼬아 모양을 내 남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운남성의 또 다른 부족인 푸랑 족 여성들은 기다란 천으로 젖가슴이 보일 듯 하게 꽉 동여매는 통치마를 입었는데, 시집 간 여성들은 그 위에 상의를 입어 상체를 가린 반면, 미혼 여성들은 치마만 입어 쇄골과 어깨라인을 그대로 노출한 채 외출하였다. 따라서 상의는 푸랑 족 여성들에게 미혼과 기혼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다. 또 하니 족 여성들은 머리를 세 가닥으로 땋았는지 두 가닥으로 땋았는지에 따라 혼인여부를 식별했다고 한다.
중국 여성의 전통의상은 파격적인 변형이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빠리 족과 나씨 족, 치안 족 여성들이 그 의복의 주인공이었다. 그녀들은 오른쪽 가슴이 보일 듯 말 듯 하게 구멍이 난 긴 ‘치파오’를 입고, 속에는 팬티를 입지 않은 채로 가랑이 부분이 터진 바지를 즐겨 입었다. 게다가 머리에는 여러 겹으로 만든 터번을 쓰고 다녔으며,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온통 튀는 소품으로 꾸몄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빠리 족과 나씨 족, 치안 족 여성들은 성생활에서도 매우 적극적이고 자유로웠던 것으로 생각된다.
섹시함을 돋보이게 하는 의상의 변형이 비단 중국 여인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의 기생들 역시 일반 여인네들과는 다른 복색을 갖추었다. 꽁꽁 싸매고 다니기 바빴던 일반 여인네들과 달리 기생들은 짧은 저고리와 속곳이 보일 정도로 치마를 들어 올려 입었다. 이런 모습은 신분의 격차를 막론하고 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는데, 이것은 현대의 남성들도 마찬가지이다.
1960년대 이후, 여성의 각선미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서 의복이 여성의 매력을 한껏 도드라지게 만든다는 사실을 남성들도 인정하게 되었고,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어깨를 드러내거나 배꼽을 드러내는 옷들이 유행하자 그 자극은 극대화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서 섹시미를 강조하는 속옷이 등장했고 다양한 디자인의 속옷은 남녀 간의 성생활에 새로운 활력소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의복을 통해 자신을 알리려 했던 중국의 여러 부족 여성들처럼 예부터 이성에게 어필하기 위한 노력은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노력들은 적극적인 사람에게 더 잘 이루어졌고, 그들은 얻고자 하는 것을 가질 수 있었다. 자신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을 꾸미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간다면 본인 또한 얻고자 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사랑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치파오는 왜 옆이 트였을까?
섹시함을 표현하기 위해, 자유로운 활동 위해 등 의견 분분
중국에 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식당이나 민속 거리에서 중국 전통복장 치파오(旗袍)를 입고 서 있는 여성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치파오는 허리 라인이 예쁘고 몸매를 살려 줌은 물론 약간은 섹시(?)해 보이기까지 해 많은 외국 여성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특히, 헐리우드 배우 니콜 키드만이 오리엔탈풍의 치파오를 즐겨 입으면서 서양인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아 졌으며 다양한 장르에서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인정 받고 있는 가수 샤데이가 콘서트에서 치파오를 입고 등장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치파오는 현재 중국 전통복장임은 물론 세계인이 즐겨 입는 옷으로 인정받고 있다.
치파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옆 트임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치파오에 옆 트임이 생긴 원인에 대해서는 보는 관점에 따라 약간씩 주장이 다르다.
한국과는 달리 성적으로 비교적 개방적인 중국에서는 여성의 아름다운 허리 라인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몸에 달라붙는 형태를 갖추고 있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활동하기가 불편해 어쩔 수 없이 옆 트임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 중 하나는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실용적인 것을 중시해 왔는데 옷을 만들 때도 지나친 장식을 피하고 최소한 천을 적게 쓰려다 보니 현재의 치파오처럼 몸에 달라 붙는 모습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옆 트임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약간 우스개 소리이긴 하지만 예전에 중국에서 여성의 지위가 낮았는데 남성들에게 ‘눈요기’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일부러 옆 트임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또 이런 주장도 있다. 중국의 전통 복장 치파오는 원래 만주족(滿州族) 부녀가 입던 옷이었다. 만주족은 기마 민족으로 치파오를 입고 자주 말을 타야 했는데 자연스레 옷을 찢기 시작했고 그것이 기원이 돼 옆 트임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치파오는 1920년대 초부터 한족 여성이 입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중국인들은 ‘치파오’라 부르기 시작했다.
중국의 여성 복장은 원래 직선식 재단제작을 채용해 가슴, 어깨, 허리, 엉덩이가 일직선으로 만들어져 여성의 아름다운 곡선을 드러내지 못했다. 치파오도 처음에는 중국 여성 복장의 이런 특징을 유지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양 문물의 영향으로 중국 여성들도 아름다운 곡선미를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디자인도 수십 번의 개조를 통해 여성들의 아름다운 몸매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 과정이 그렇게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이로인해 중국과 서양 문화의 충돌이 잦았던 것이다. 치파오가 처음 만들어 졌을 당시에는 왼쪽 옆 트임을 하지 않았다.
그 이후 치파오는 팔 소매를 올리는 동시에 천천히 왼쪽 양 옆을 트기 시작했다. 그 후 점점 더 높게 트게 됐으며 결국 무릎에서부터 나중에는 허벅지 높이까지 트게 됐다. 한때는 사람들의 반대로 다시 무릎 아래까지 트기도 했지만 여론의 압력이 감소되자 또다시 트임의 위치를 높이기 시작했다. 1933년 이후에는 허벅지까지 드러낸 치파오가 유행하기도 했다. 전통 치파오는 상하 일직선으로 재단을 제작하고 높은 카라를 유지했다.
1930년대 초 허리라인을 점점 살리면서 1934년 이후 여성의 아름다운 곡선 몸매가 완전히 드러나게 됐다. 높은 칼라도 점점 낮아졌으며 나중에는 카라마저 없어졌다. 현대적 감각을 살려 선과 미를 추구하자는 측과 전통을 유지하자는 양자의 충돌로 치파오는 점점 시대, 생활에 맞춰갔다. 원래의 밋밋한 디자인에서 벗어나 경제적이고 편리하며 아름답고 몸에 달라 붙게 변화됐다.
50년대부터 개혁개방 전까지 치파오는 사구(四舊: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습, 낡은 습관)로 오해 받기도 했다.
폐렴으로 85세의 나이에 별세한 전 중국 국가주석 류샤오치(劉少奇)의 부인 왕광메이(王光美)가 외국 순방시 치파오를 입어 문화대혁명 시기 큰 죄인이 되기도 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사상의 개방을 촉진했다. 단조롭던 검은색, 회색, 곤색도 오색영롱한 색으로 대체됐다.
소실된지 10년이 지난 후 치파오가 다시 미를 추구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치파오가 겪은 수난이대는 중국인들에게 있어 역사의 산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