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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9: 1. 유대 지경에 이르심
제 19 장 : 부자와 천국
1. 이혼에 대하여 가르치시다 ( 19: 1-12. 막 10: 1-12 )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2 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7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마 19: 1. 유대 지경에 이르심 -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에서 떠나 요단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
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 떠나 요단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셨다.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죽으실 일이 가까웠고 그의 갈릴리 사역은 끝나가고 있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유대 지방, 특히 예루살렘에서의 사역이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마태복음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다섯 설교의 다섯 종결 문구(ending formula)중의 네 번째 것으로 앞장(18장)의 설교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문구이다.
이로써 공생애의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셨던 갈릴리 사역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이때는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으로 죽으시기 한 달 전으로서 대략 A. D. 29년 2-3월경의 일로 추정된다. 본서에 언급된 다섯 종결 문구는 본문 이외에 7: 28. 11: 1. 13: 53. 26: 1에 나오고 있다.
2] 갈릴리를 떠나
3차에 걸친 갈릴리 사역을 마치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의 수난 주간을 맞이하실 때까지 사마리아를 경유하지 않고 유다와 베레아를 순회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전도하신 기사이다.
19-20장은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 입성까지의 기사로, 보통 '베레아 전도'라고 불린다. 이 전도사역은 갈릴리에서의 출발(1절)로 시작되어 베다니에서 마리아의 기름부음(26: 6 ff. 막 14: 3)으로 끝난다.
이 기간에도 예수는 민중들로부터 기대와 환호를 받았으며, 유대 교권주의자(敎權主義者)들로부터는 질시(疾視)와 모함과 배척을 받으셨다.
드디어 예수께서는 그 공생애의 대부분을 보내신 갈릴리 지방을 뒤로하고 예루살렘으로 수난의 길에 오르셨다. 본문의 '유대 지경'은 요단 동편의 베뢰아 지방을 가리키는 것으로 갈릴리에서 유대로 가는 통행로로 유대인에게 많이 이용되었다.
(1) 사명을 다하시고 갈릴리를 떠나셨다.
갈릴리는 예수님 선교 사역의 주 무대였다. 그곳에는 선교의 전진기지인 가버나움이 있었으며,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대부분을 여기에서 보내셨다.
그러나 이제는 이 모든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셨다. 이제는 이 모든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셨다. 그것은 그의 마지막 작별이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다시 갈릴리에 오신 것은 부활하신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 마 16: 7 -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성스런 종들은 그들의 사명을 마칠 때까지 그들이 사역해야 할 장소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계 11 : 7 증언을 마칠 때에 -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 아마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그 두 증인과 싸워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이다.
‘무저갱’은 깊은 구덩이를 가리킨다. 짐승으로 표현된 이 자는 짐승같이 사납고 난폭하며 이성과 도덕성이 없는 인물을 나타낼 것이다. 그것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예언된 ‘불법의 사람’ 곧 ‘죄의 사람’으로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전제적(專制的), 독재적 통치자와 같은 인물로 보인다.
적그리스도의 영은 초대교회로부터 활동해왔다. 역사상 로마제국과 로마 천주교회는 적그리스도의 영에 이끌려 활동하였다. 그들은 많은 참된 성도들을 핍박하였고 또 죽였다. 그러나 마지막 날들에 적그리스도라고 불릴 특별한 인물이 나타날 것이며 그가 나타나면 그 두 증인과 싸워 이길 것이고 그들을 죽일 것이다.
7-1) 시기 -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① 마지막 복음의 증언를 다한 때이다
'마칠'에 해당하는 헬라어 '텔레소신'(*)은 부정 과거 시상으로 두 증인이 소기의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거나 증언하기를 마쳤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두 증인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계속적으로 그들을 해하려고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을 성취하기까지 해칠 수 없었음을 암시한다. 즉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어야 사탄도 일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증언를 마칠 때에'란 예수님이 3년 반의 공생애를 모두 마치시고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 19: 30)고 하심과 같이 두 증인이 1260일 동안 예언(豫言)을 하고(계 11: 3) 그 증거를 마칠 때를 말한다. 증언를 마쳤다는 것은 두 증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증거(證據)들을 받아 소화를 시킨 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 요 15: 15 -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 요 20: 17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② 짐승에게 죽임을 당한다.
순교를 당한다.
* 계 1: 9 –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 계 6: 9-11 –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③ 소돔과 애굽 같은 곳에 쓰러진다.
심판받고 멸망 받을 죄악의 도성을 말한다.
④ 사흘 반 동안 쓰러져 죽는다.
인간성과 죄악성이 완전히 죽는 역사다.
* 고전 15: 51-54 –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 사 43: 2 -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 사 1: 25-26 – 25 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26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
* 사 25: 6-8 – 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7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⑤ 생기를 받아 일어선다.
흙으로 지은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심 같이 일어선다.
* 창 2: 7 -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마지막 때에 역사하던 종들이 순교하여 삼일 반 동안 쓰러졌으나 택한 종들이 생기를 받아 일어난다.
* 계 11: 11 -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 겔 37: 9-10 –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 사 26: 19 -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를 내놓으리로다.
7-2) 두 증인의 순교 -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7년 대 환난'이라는 말은 다니엘서 9장을 해석할 때 나오는 용어다. 박윤선 박사도 주석에 이 부분을 계속 7년 대 환난 전반부와 후반부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이 증거를 마칠 때는 언제일까? 그것은 대 환난 전반부다. 환난의 전반부가 끝날 때. 그러니까 대 환난이 시작되면 이때는 엄청난 변화와 더불어 역사가 마감하는 기간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이 두 증인이 앞에서 본대로 모세적 권세와 엘리야적 권세를 받지 아니하면 이 대 환난 때를 이길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두 증인을 통하여 마지막 증거를 마치셨다. 이 말은 사명을 잘 감당하게 했다는 의미다.
예를 들자면 루터가 거대한 교황청과 맞대응하여 싸웠다. 칼뱅이나 위클리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까지 이분들은 몇 번이나 고난과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감당할 때까지 지켜주셨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칼뱅은 제네바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칼뱅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보면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2000년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쓰신 인물들은 모두가 예수님의 제자들과 버금가는 고통을 당했다.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쫓겨나기도 하고 어떤 형태로든지 고난을 많이 겪었다. 칼뱅도 승승장구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일곱 가지 병에 걸려 있어서 '걸어 다니는 병원'이라고 했다.
몸을 잘 거스르지 못할 정도로 아팠고, 제네바에서는 자기를 추종했던 사람에 의해서 의회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물론 나중에 다시 복권은 됐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역경 속에서도 이들에게 주신 사명을 다 감당하게 했다.
마지막 때도 하나님의 종들(두 증인)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종(마 24: 45)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바로 그 종을 말한다. 따라서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는 '양식을 나눠주는 역할을 다 마칠 때에'라고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니다.
두 증인은 그러면 누구에게 순교당할까? 바로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인데, 이것은 박윤선 목사님을 포함한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적그리스도로 말했다. '적그리스도가 무저갱에서 왔다'는 말은 지옥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 적그리스도는 지옥으로 이끌어 갈 종교계의 거두이다.
그러면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짐승은 교황으로 보아야 한다. 혹시라도 교황이 지금 참회했다고 하는데 여기에 미혹되면 안 된다. 요즈음 신문마다 교황이 참회했다 하고, 세계적인 찬사를 동원하여 교황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교황이 참회한 것은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로 보아야 한다.
첫째는 자신은 진실하겠지만 하나님이 받지 않는 회개를 말한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리스도를 파괴하며 우리의 진리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면서 역사적으로 회개한다는 것은 지나친 모순이다. 회개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우리가 바로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며,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면서 자기 잘못을 회개하는 것이지 지나간 다른 사람의 잘못을 회개하는 것이 아니다.
교황의 이러한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교황의 회개는 한마디로 하나님이 받지 않는 회개, 하나님과 무관한 회개다.
두 번째는 회개의 목적이다. 교황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바로 종교 통합이다. 이 말이 제일 중요하다. 교황이 회개함으로 이제는 종교 간 화합의 길이 열렸다고 신문에 나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가톨릭은 십자군을 파송해서 회교도들을 무수히 죽였다. 그리고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 유럽의 십자군을 파송해서 다른 종교를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개신교도들도 무참히 죽였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종교계에 지난 역사를 사죄하고 회개한다고 한다. 이제는 종교 간의 막혔던 담이 허물어져 버렸다. 결국은 교황권이 주도하는 종교다원주의, 세계 종교 통합주의를 만들기 위한 사탄의 음모다.
우리는 진리를 바로 잡고 하나님 말씀을 정확하게 지키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을 내세워야 한다. 이러한 정통적인 신앙과 교리 안에서 회개했다면 얼마나 위대하고 귀한 일이겠는가? 이제 이 짐승이 등장하는 대 환난 때 두 증인이 순교를 당하는데 적그리스도는 이 부분을 온화적으로 본다.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잡고 이레의 절반에 역사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이때 적그리스도가 강력한 통치를 하게 될 것이다. 구약 이스라엘과 신약의 복음, 그리고 종말의 계시록을 보자. 지금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구약의 이스라엘 속에 오셨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시고 홍해 바다와 요단강을 건너게 하시고, 직접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상이 바뀌었다.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에게 전적 의지하고 생명까지도 버렸다. 왜냐하면 후손들도 자신의 조상들이 그것을 역사 속에서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0년 동안 그들이 경험했던 하나님에 대한 감격,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 때문에 결코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메시야가 올 것으로 믿고,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믿음으로 안식일을 철저히 지켰다. 이러한 감동과 확신 속에 역사적으로 처음 나타난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진리의 세계인 복음의 비밀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뢰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구원의 길이 이방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천년의 역사 속에서도 그들은 회개할 줄 몰랐다. 이방인들은 눈으로 보고 만지는 그 하나님의 감격과 실체를 체험하고 이제는 생명을 바쳐버렸다.
완전히 미쳐버린 것이다. 바울은 삼층 천을 보고, 말씀을 통하여 천국과 지옥과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더 분명하게 깨닫자 복음에 미쳐버렸다. 이 복음을 경험한 자들은 다 순교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재림인데 계시록에 기록된 이 말씀들이 종말에는 역사 속에 실현되어가고 있다.
이제 두 증인이 나타나고, 해 입은 여자가 나타나며,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면 결국 미쳐버릴 것이다. 성경에 기록(예언)된 것이 다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주님이 곧 재림하실 것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가까이 왔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계시록을 통하여 재림 이후에 새 하늘과 새 땅 세계를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주셨다.
구약의 율법을 통하여, 구약의 하나님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났다. 육적인 세계를 본 것이다. 그 이후에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적 진리의 세계를 봤다. 마지막 계시록을 통하여 새 하늘과 새 땅, 종말의 모든 세계를 확실하게 기록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 미쳐야 한다. 계시록에 있는 사실들이 성경 구절 하나 틀리지 않고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들이 순교했듯이 마지막에 계시록으로 무장한 재림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순교를 각오해야 한다. 신앙적으로도 우리는 완전히 보고, 만지며, 들을 수 있다. 계시록을 보면 아시아 일곱 교회가 나온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이렇게 일곱 교회가 일곱 시대를 상징하고 있다.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역사 속에서 성취되어 우리는 지금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를 살고 있다. 이것만도 미칠 노릇이다. 요한은 밧모 섬에 있으면서 천국을 보았고, 계시록을 기록하여 '장차 될 일'이라 했다. 요한이 본 것을 다 기록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시대와 연관 지어 볼 때, 계시록 6장부터 흰말이 나타나고,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전쟁과 기근이 있고, 지진이 잦아지며, 물 때문에 앞으로 세계가 난리로 들어간다고 그랬다. 이 모든 지진과 기근과 8장에 나오는 것, 9장에 거짓선지자들이 활동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 10장에서는 작은 책을 먹어버리라고 한다.
계속해서 11장에는 두 증인이 언급되고, 이런 식으로 앞으로 될 것들이 전부 열리고 있다. 우리도 마지막 종말에 될 이 사건들과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고 미쳐버려야 한다. 짐승을 적그리스도로 보는데 교황과 똑 같다. 13장의 짐승과 적그리스도는 똑 같다. 이제 이 시대를 옳게 분별할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짐승으로 더불어 일으키는 전쟁은 어떤 것일까?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그때 가면 어떤 형태가 나타날 것이다.짐승과의 전쟁- '짐승'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짐승'의 헬라어 '토 데리온'(*)에는 관사 '토'가 붙어 있어 수신자들이 적그리스도인 짐승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더불어 이 짐승이 13장과 17장에 언급된 짐승임을 암시한다. (Beckwith, Mounce, Johnson). '짐승'의 기원은 단 7장이다. 다니엘서에 의하면 제국을 상징하는 네 마리의 짐승 중에서 마지막 네 번째 짐승은 열 뿔을 가졌으며 그 중에서 더 큰 뿔 하나가 자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세상에 환난을 초래한다.
* 단 7: 1-28 – 1 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다니엘이 그의 침상에서 꿈을 꾸며 머리 속으로 환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2 다니엘이 진술하여 이르되, 내가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보는 중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받았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더라. 5 또 보니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쪽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것에게 말하는 자들이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더라.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 7 내가 밤 환상 가운데에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매우 강하며 또 쇠로 된 큰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더라. 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첫 번째 뿔 중의 셋이 그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더라. 9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11 그 때에 내가 작은뿔이 말하는 큰 목소리로 말미암아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의 시체가 상한 바 되어 타오르는 불에 던져졌으며, 12 그 남은 짐승들은 그의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15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머리 속의 환상이 나를 번민하게 한지라. 16 내가 그 곁에 모셔 선 자들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말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려 주며 이르되, 17 그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 18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19 이에 내가 넷째 짐승에 관하여 확실히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더라. 그 이는 쇠요 그 발톱은 놋이니 먹고 부서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서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을 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그의 동류보다 커 보이더라. 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에게 이겼더니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 23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라서 온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서뜨릴 것이며 24 그 열 뿔은 그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6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이요 27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 28 그 말이 이에 그친지라. 나 다니엘은 중심에 번민하였으며 내 얼굴빛이 변하였으나 내가 이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느니라.
이러한 짐승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였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를 예표 하였으나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종말론적 적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 적그리스도가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다는 것은 그 근원이 사탄이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로부터 돌아서게 하며 멸망당하도록 하는 존재임을 시사한다(9: 1-11).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는 단 7: 21을 반영한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무자비한 전쟁을 일으켜서 수 많은 그리스도인을 죽이며 억압하고 핍박한다.
* 계 17: 8 -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 계 6: 9-11 –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란 하늘에서 떨어진 별로부터 나왔던 황충들을 말하며
* 계 9: 1-3 – 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2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 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황충(蝗蟲)은 메뚜기로 메뚜기는 거짓 방백들이다. 거짓 방백들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거짓 지도자들을 말한다.
아담 때는 에덴동산에 있었던 뱀들을 말하며, 노아 때는 네피림의 족속들을 말하고, 모세 때는 바로와 그 신하들을 말하며, 엘리야 때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말하고, 예수님 때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말하며, 오늘날에는 종교계의 모든 지도자들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용(짐승)이라고 하였다.
짐승은 헬라어로 '토 데리온'인데 계 12: 3, 계 13: 1-9, 계 17: 1-5에 나오는 붉은 용의 짐승을 말하며 용은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었다.
* 나 3: 17 - 네 방백은 메뚜기 같고, 너의 장수들은 큰 메뚜기 떼가 추운 날에는 울타리에 깃들였다가 해가 뜨면 날아감과 같으니, 그 있는 곳을 알 수 없도다.
* 계 12: 9 -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짐승은 다니엘 7장에서 바벨론 제국을 말하며, 네 마리의 짐승 중에서 마지막 넷째 짐승은 열 뿔을 가졌으며, 그 중에서 뿔 하나가 크게 자라더니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바벨론을 큰 환난에 던져 넣고 있는 짐승이다(단 7: 1-25).
짐승은 본래 지혜(智慧)를 가진 천사(天使)로 하나님이 쓰시던 자들이었는데, 교만하여 하나님을 떠나더니,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하나님과 비기려고 하는 자들이 되었다.
* 사 14: 12-14 –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 도다.
아담 때는 에덴동산에서 가장 간교한 짐승이 뱀이요, 예수님 때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뱀이다.
* 창 3: 1 -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 마 23: 33 –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두 증인의 때에는 거짓 지도자들이 일곱 머리 열 뿔을 가진 용이다(계 12: 9). 짐승이 무저갱(無底坑)으로부터 올라온다는 것은 그 근원(根源)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밑도 끝도 없는 거짓 진리와 거짓 영과 거짓 복음과 거짓 은사들을 가지고 출현한다는 것을 말한다(계 9: 1-11, 계 17: 8).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는 단 7: 21의 말씀처럼 짐승들이 하나님의 백성들과 전쟁을 일으킨다. 저희란 두 증인을 말하며 짐승과 두 증인 사이에 영적인 진리의 싸움을 하게 되고, 두 증인은 용을 이기지 못하고 패하여 3일 동안 시체가 되어 길거리에 버려진다.
두 번째 '저희를 죽일 터인즉'이라고 했다. 두 증인들이 순교한다. 열두 제자가 순교했던 모습 그대로다. 순교의 제물 없이 복음을 받을 수 없다. 참 신기한 것은 어느 민족이든지 복음이 들어갈 때 피를 얼마나 흘렸느냐 덜 흘렸느냐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순교의 피를 많이 흘린 민족은 기독교가 불꽃처럼 일어나고, 피를 흘리지 않고 기독교가 들어간 곳은 타락해 버렸다.
인도네시아의 한 지역은 기독교가 100%다. 그곳에 선교사가 가서 미개인들을 전도할 때, 이 선교사가 피를 흘리면서 온 몸 오장육부를 전부 찢어서 널어놓았다. 마을 사람들이 그 피를 보고 저주했다. 그런데 다른 선교사가 그 순교의 뒤를 이어받아 거기서 또 피를 흘렸는데,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이 되었다.
거기만 기독교가 100%에 이르도록 신앙이 활활 타올랐다. 고난이 닥치면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고난을 당했는가? 고난이 너무 아프니까 '주여! 벗어나게 하소서!' 기도하지만, 고난은 엄청난 축복이다. 저는 육적으로는 큰 고통과 어려움, 삶의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이 복음만 만나면 예수님의 피 묻은 복음만 만나면 확실하게 타오르는 것을 느낀다.
아무튼 두 증인은 짐승과 싸우다가 여기서 순교를 당한다. 열두 제자가 순교 당한 것과 똑같다. 사도행전 12장 1절에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이것 좀 보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라고 했다.
①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지옥을 상징하고 있다. 황충(오 개월 환난 - 계 9: 1-6.)재앙을 말한다.
* 시 71: 20 -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
② 짐승과의 전쟁
적그리스도와의 전쟁을 말한다.
* 마 24: 15 -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③ 저희를 죽인다.-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짐승이 두 증인과 싸움에서 이겨 그들을 죽이게 된다. 그러므로 두 증인은 모두 순교하게 된다.
* 행 12: 1-3 –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 단 7: 25 -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 행 20: 24 -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살후 2: 8-10 – 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 성은 영적으로 무엇일까? 계시록 17장 18절에 '또 네가 본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고 했다. 시체가 큰 성 길에 있다. 그러면 누구에게 죽는가? 적그리스도와 큰 성은 음녀라고 했다. 바로 음녀에게 죽게 된다. 음녀를 저는 가톨릭 교황권으로 본다. 음녀, 간음하는 교회, 타락하는 교회 이런 특성을 육적으로 갖추는 것은 가톨릭 밖에 없다.
이것은 아주 분명하다. 여러분들이 큰 진리를 보고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와 역사적인 사실을 보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아픔과 삶의 이런 모든 것들은 그냥 이길 수 있다. 두 증인이 짐승과 야합한 음녀에게 죽게 되는데, 이 큰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 한다. 소돔은 베드로후서 2장 6-7절을 보면 이것은 도덕적, 성적으로 타락한 간음을 말한다.
* 벧후 2: 6-8 –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소돔의 상징적인 의미는 간음이다. 그러므로 두 증인들이 죽은 음녀, 큰 바벨론 성은 간음하는 영적 비진리를 가진 소돔으로 비교 되고, 그 성을 애굽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노예로 괴롭히는 곳이다. 마지막 때 음녀는 애굽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참 교회들을 괴롭힌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예수를 반대하고 핍박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는 것이 바로 가톨릭이다. 이는 영적으로 간음한 여자다. 가톨릭은 모든 성도들을 다 죽여 버린다.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핍박했듯이 가톨릭(교황청)이 타락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교회들이 영적으로 말할 수 없는 사탄의 노예가 되었다.
바로 애굽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고 그랬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이 예수 진리를 다 깨뜨려 버렸다.
칼뱅이 왜 위대합니까? 칼뱅은 이러한 음녀가 계시록 17장의 가톨릭이라고 말했다. 제가 박윤선 목사님 주석을 쭉 보면서 거기서 깨달을 것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박윤선 목사님은 이 계시록 17장의 음녀를 교회로 안 보고 이 세상으로 보아서 한국교회가 배도하는 이것을 깨닫는데 아쉬움이 있다. 칼뱅이 보는 것이 맞다. 가톨릭이다. 어쩌면 그렇게도 정확하게 예언되어 있을까?
사도들이 복음에 미쳐버렸듯이, 확신을 가지고 그랬듯이, 저는 마지막 계시록을 통하여 종말의 세계를 보고 주님의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고, 주님 재림의 영광을 본다. 이제 그렇게 될 것이며 하나하나 역사 속에 이루어지고 있고 앞으로 남은 것들이 다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때문에 누가 저를 죽인다고 할지라도 이 진리 안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이것을 바꾸라고 위협이 온다고 할지라도 생명을 빼앗긴다고 할지라도 순교함으로 이 진리를 지킬 것이다. 할렐루야!
두 증인이 짐승으로부터 죽고 난 후 그 시체가 어디에 있습니까? 죽는 곳이 음녀다. 그러니까 배교하는 혼합종교가 하나가 될 때 거기에서 순교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많이 보여주었다. 사도들이 유대인들의 박해 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당했으며, 종교개혁가들이 가톨릭 때문에 얼마나 많이 죽었는가?
(2)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당시 갈릴리는 매우 천한 동네였다. 그곳에는 천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며, 따라서 대부분이 매우 가난하였다.
가난한 동네가 항상 그렇듯이 세리와 창녀들이 많았으며 병자들이 많았다. 예수님께서는 어려서부터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셨으며 평생 몇 번 예루살렘을 방문한 외에는 거의 이곳을 떠나지 않으셨다.
이처럼 그의 낮아지시고 비천해지심은 결국 그의 메시지를 매우 설득력있게 함으로써 공생애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하였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무사히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날 수 있었던 것이 그의 겸손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3)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떠나셨다.
예수님의 사역은 가르치는 것, 병자를 고쳐 주시는 것으로 그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아직도 최종적으로 이루어야 할 사역이 남아있었는데 그것은 곧 예루살렘에서의 돌아가심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그가 갈릴리에서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셨다'는 짧은 한 마디는 말 만큼이나 간단하지 않다.
그것은 죽음을 향하여 한 걸음 내딛음을 의미하며 예수님의 고뇌에 찬 결단을 내포하고 있다. 언제든지 사명자들은 이러한 결단이 없고서는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
3] 요단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많다.
평행구절인 막 10: 1에서는 베레아인 것처럼 보인다.
* 막 10: 1 -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눅 9: 52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 땅을 통과하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눅 9: 52 -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따라서 학자들도 예수께서 갈릴리를 떠나
Ⓐ 요단 동편 베레아로 가셨다(Plummer, D. A. Carson, Carr).
Ⓑ 요단강 서편 사마리아를 지나 가셨다(Delitsche, Weiss)는 견해로 양분되어 있다.
대체로 베레아 방문설을 지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예수께서는 유월절 잔치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수 많은 유대인과 함께 베레아를 지나(유대인들은 '거룩치 않은 땅'으로 생각한 사마리아를 피하여 베레아로 통과하였다.) 예루살렘에로의 순례 여행을 하고 계셨을 것이다.
* 요 4: 9 –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문제는 요단강 동편이 베레아를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곳은 유대 땅이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 '건너편'이라는 표현인 '페란'(*)이 뒷 단어인 '유대'를 수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페란'과 '유대' 사이에 접속사 '그리고'(*, 카이)가 빠진 것으로 생각하여 '요단강 건너편과 유대에 이르시니'로, 각각 독립 구문으로써 이해하는 방법이다.
Ⓑ 유대 지경이라는 표현은 그 '구역'을 의미하는 코우스트(coast)가 아니라 '경계'를 뜻하는 보오더(border)로 이해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요단강 건너와 유대 지경(사실은 '경계')은 동격으로 베레아가 유대 지방이 아니라 그 경계임을 드러내는 정확한 보도가 될 것이다.
베레아란 이름의 뜻은 헬라어 문자대로 '건너편'(*, 페라이아)으로, '요단 저편'의 또 다른 이름이다. 베레아의 남쪽 경계가 헤롯의 요새인 마케루스(Machaerus)로 세례 요한이 처형된 곳이다.
* 마 14: 1-12 - 1 그 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 도다. 하더라. 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6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8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9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북쪽의 경계는 야르묵(Jarmouk) 강까지로 비교적 넓고 비옥한 지역이었으며 예수 당시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의 통치하에 있던 구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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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죽으실 일이 가까웠고 그의 갈릴리 사역은 끝나가고 있었다.
설교 감사합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죽으실 일이 가까웠고 그의 갈릴리 사역은 끝나가고 있었다.
(^~^)사랑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습니다. 오늘도 건강과 함께
좋은 사람들과 좋은 향기로 좋은 인연 이어가는 날 되시기 기원 합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죽으실 일이 가까웠고 그의 갈릴리 사역은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