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행복-글밭에 그림바다
법무사를 한답시고 산지사방으로 쫓아다니다 보니, 산천경개(山川景槪) 풍경에 세상사까지, 참 많은 구경꺼리와 마주친다.
자유로를 따라 파주를 가다보면 한강의 풍경이 시원하고, 동부간선도로를 따라 의정부를 가다보면 왼쪽으로는 도봉산 풍경이 오른쪽으로는 수락산 풍경이 위풍당당하고, 강변북로를 따라 남양주를 가다보면 한강변의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풍경이 또 한 풍경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복작거리는 도심의 풍경도 한 풍경이고, 그 풍경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한 풍경이다.
이런 풍경도 있다.
책 풍경이다.
서울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 대표법무사로서 내가 주로 다니는 곳은, 법원이고 등기소이고 구청이고 은행이고 그렇다.
법원은 가압류 가처분 등 각종 민사신청사건이 있어서이고, 등기소는 부동산 등기이전사건이 있어서인고, 구청은 취득세 등록세 등 의뢰인의 세금을 대신 내주기 위해서이고, 은행은 부동산 담보대출과 관련된 일이 있어서이다.
그 모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이어서, 때로는 꽤나 많은 시간을 대기해야 할 때가 있다.
그렇게 대기하는 사람들을 위한답시고, 그 모두 읽을 만한 책들을 꽂아놓은 서가를 비치해놓고 있다.
나는 그 서가를 무심히 넘기지 않는다.
과연 어떤 책들을 꽂아놓고 있을까 싶어서, 유심히 살펴본다.
2015년 7월 23일 목요일인 바로 어제의 일이다.
취득세 고지를 받을 일이 있어, 오후 2시쯤에 서울 중구청 세무과를 찾았다.
잠깐 기다리는 시간이 있기에, 그 세무과에 비치된 서가를 챙겨봤다.
이 책 저 책 해서, 책이 가득 꽂힌 그 서가에서 특별히 내 눈에 띄는 책 무더기가 있었다.
‘글밭에 그림바다’라고 해서 중구청에서 자체 발행한 책이었다.
‘제 21회 중구 어린이 글짓기 그림그리기’와 ‘제 19회 여성백일장’의 수상작들을 모아놓은 책이라고 했다.
수북하게 쌓아놓은 것으로 봐서, 누구나 가져가도 좋다는 뜻이겠다 싶어서, 그 책 한 권을 챙겼다.
「이 책이 단순한 작품집이 아니라 가족 사랑의 소중함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책 안에 담긴 모두의 꿈과 희망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더욱 활기차고 행복한 중구, 풍격 있고 살고 싶은 중구를 만들어 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중구청장의 발간의 끝대목이 그랬다.
그리고 책을 계속 펼쳐, 그 책에 담긴 글들을 챙겨 읽었다.
초등학교 어린 학생들의 글이었지만, 하나같이 내 가슴에 쏙쏙 감동으로 담겨드는 글들이었다.
그 중, 다섯 편을 골라봤다.
먼저 대상을 받은 리라초등학교 1학년 김시현 학생이 쓴 ‘우리 가족의 두 손’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우리 집에서 제일 바쁜 손은 할머니의 두 손입니다.
우리 할머니는 화요일마나 노인학교에서 할머니보다 나이가 많은 다른 할머니들을 씻겨드리고 맛있는 요리도 해드리고 청소도 해드리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할머니도 할머니라 힘드신데 왜 다른 할머니들을 도와주셔요?”
“할머니는 엄마,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효도를 많이 못했단다. 그래서 다른 할머니들을 우리 엄마, 아빠처럼 생각하고 효도하려는 거야.”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엄마, 아빠도 계시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신데....’
갑자기 할머니께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할머니를 위해 해드릴 수 있는 게 뭘까?’
“할머니, 제가 샐러드와 주먹밥 만들어드릴까요?”
“아이구, 우리 공주가 할머니 맛있는 거 해주려나 보구나?”
할머니는 다시 활짝 웃으셨습니다.
나는 엄마와 함께 할머니가 드실 과일 샐러드와 주먹밥을 만들었습니다.
나와 엄마의 두 손도 할머니의 손처럼 바빠졌습니다. 우리 가족의 두 손이 바빠지자, “하하, 호호”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시현이와 함께 살아요. 저도 항상 학교생활 열심히 하고, 할머니께 효도 많이많이 하겠습니다.
우리 가족은 항상 행복할 것입니다.
우리에겐 각자 열심히 하는 두 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우리 집에서 할머니처럼 가장 바쁜 두 손의 주인이 되겠습니다.
할머니 사랑해요!//
다음은 금상을 받은 리라초등학교 2학년 박상현 학생이 쓴 ‘우리 할머니’라는 제목의 글이다.
우리 할머니는 나를 많이 사랑해 주신다. 나를 보면 항상 웃어 주시고, 나를 꼬옥 안아 주신다. 할머니가 안아 주시면 포근하고 따뜻해서 기분이 좋다.
할머니 냄새가 참 좋다.
우리 할머니는 ‘성경책 읽기 대장’이다. 내가 책을 보거나 숙제를 할 때 내 옆에서 항상 성경책을 읽으신다. 그 두꺼운 책을 계속 읽으신다. 노랑, 빨강 여러 색이 칠해져 잇다. 그 중에 어떤 것은 읽어 주시는데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할머니는 재미있으신가 보다.
또 할머니는 ‘기도 대장’이시다. 나만 보면 기도해 주신다. 특히 내가 시험을 보거나 대회에 나가면 두 손을 꼬옥 잡고 기도해 주신다. 가끔은 지루해서 몸을 꾸물꾸물 움직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꼭 잡고 하신다. 이건 비밀인데 내가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갔는데 볼일을 봇 보니까 할머니께서 기도해 주셔서 신기하게도 볼일을 봤다. 진짜 신기하다!
우리 할머니께서 잘 부르시는 노래는
‘이 세상에 상현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이다. 그 노래를 불러 주시면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다. 할머니는 항상 내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끔 형 편을 들어 주셔서
“할머니! 나빠!”라고 하면,
“할머니는 상현이 좋아!”
하신다. 할머니는 내가 나쁘다고 해도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요즘에 내가 제일 사랑하는 할머니께서 자주 편찮으셔서 걱정이 된다.
이제부터는 내가 할머니께 노래 불러드려야지!
“이 세상에 할머니 없으면 무슨 재미로....”
나는 우리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
“할머니, 사랑해요!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그리고 은상을 받은 글들이다.
먼저 충무초등학교 4학년 김태연 학생이 쓴 ‘가을이 나를’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가을이 나를 반겨주네.
황금벌판의 고개 숙인
벼들이 춤을 추고
허수아비가 손 흔들며
가을을 부르네.
가을이 나를 보게 하네.
빨간 단풍잎
노오란 은행잎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
보고 또 봐도 보고 싶네.
가을이 나를 배부르게 하네.
토실토실 알밤.
나무에 매달린 탐스런 감
맛있는 것들이 여기저기 익어가네.
가을이 나를 기쁘게 하네.
단풍이 물들고 벼가 익어가듯
내 마음이 커지네.//
다음은 덕수초등학교 1학년 전현정 학생이 쓴 ‘껌딱지’라는 제목의 글이다.
“예쁜 이 눈을 봐서 안아 주세요~”
저의 별명은 껌딱지예요.
엄마에게 하도 많이 안아 달라고 해서 껌딱지가 되었어요.
엄마는 안아 달라고 하면 항상 꼬옥 안아 주신답니다.
좋아하는 만큼 꼭 껴안기 시합을 할 때도 두 팔로 꼭 껴안아주어서 기분이 좋아요.
기분이 나빠도, 수영하고 힘들어도, 친구들과 싸워서 속상할 때도 엄마가 안아주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나요.
저는 이런 엄마가 너~무 좋아요.
‘엄마! 나를 많이 사랑해 주셔서 고마워요. 엄마가 할머니가 되면 제가 엄마의 껌딱지가 되어 줄게요. 사랑해요.’//
마지막으로 리라초등학교 3학년 강혜림 학생이 쓴 ‘행복한 우리 집’이라는 글이다.
“혜림아, 오늘도 잘했어.” 내가 스케이트를 타고 나서 엄마가 내 등을 토닥거리시며 하시는 말씀이다. 난 오늘도 선생님께 혼나서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엄마의 이 말을 듣고는 기분이 점점 나아진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엄마는 저녁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을 차려주신다. .그것을 보며 난 “우와! 엄마. 식탁에 내가 좋아하는 반찬만 모였다! 엄마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는 했고, 엄마께서는 “응, 알았어. 수고했으니깐, 많이 먹어.”라고 답하셨다.
시계를 보니, 벌써 아빠가 오실 시간이다. 난 밥 먹는 것을 멈추고, 현관문을 열어놓고, 아빠를 기다린다. 어! 아빠가 오셨다. 아빠!! 내가 아빠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빠는 언제나 내 편이고, 내가 기분이 안 좋을 때, “혜림아,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억지로 할 필요 없어.”라고 말씀하신다. 또 “혜림아, 기운 내. 아빠가 재미있게 해 줄게.”라고 말씀하시며 나를 업어주신다.
그때면 난 아빠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다. 또 아빠는 성실하고 모든 일에 충실한 편이셔서 내가 좋아한다. 이런 우리 아빠도 슬프실 때가 있다.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정말 슬퍼 보이셨고, 난 그 모습을 보며 그동안 친할아버지께 잘해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웠다.
또, ‘저 모습이 4~50년 후에 내 모습이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원래의 우리 아빠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빠는 항상 나에게 신경 써 주시고, 어떨 땐 우리의 작은 쉼터가 되어주시기도 한다. 우리집이 행복한 까닭은 우리 가족이 서로 협동하고, 서로를 생각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언제나 우리를 위해 희생 해 주시는 엄마 아빠 사랑해요.♡♡♡//
그 글들에 담긴 어린 학생들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었고, 그 어린 학생들에는 할아버지이고 할머니인 나와 내 아내의 모습을 자화상처럼 그려볼 수 있었다.
특히 ‘껌딱지’라는 글을 읽는 내내, 내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동에서 구멍가게를 하던 김창현 내 친구의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내 얼굴에 미소풍경이 그려지기도 했다.
가슴이 참 따뜻해지는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