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기행
— 용마산 언덕에서 내려다 본 마산항과 무학산의 파노라마
세계에서 가장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는 한국이라고 생각한다.
내 자신 한국어를 엄마의 말로 듣고 자라난 한국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비록 한국말을 전혀 못알아 듣는다 하더라도 눈을 감고 라디오 방송을
들어 보면 우리나라 여자들의 목소리는 아름답다. 우리말 자체가
크게 거친 발음이 없으니 대개 부드럽고, 센억양이 없으니 소름돋게
간드러지지도 않는다. 어쩌다 허스키한 목소리는 섹시하기도 하다.
너무 섹시하거나 그런 척 일부러 혀 꼬부려 발음하고 행동하여
좀 징그러운 여자 아나운서들도 간혹 있긴 하지만. 아무튼 억양 심한
중국과 동남아 그리고 앵글로색슨이나 라틴 여자들의 히스테릭한
따발총 고음에 비하면 천상의 음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중에서도 경북 안동 여자의 약간 서울 억양섞인 사투리에
폭 빠졌었다. 그녀의 예쁜 목소리를 들을 때는 마치 발그스레한
안동 사과를 콕 씹을 때 탁 터지는 새콤함이 느껴졌다.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의 낭만적으로 이야기하셔서,경북 여자들이
모두 로맨틱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자신 낭만적인 인간이 못되었을 뿐 아니라
사랑은 결코 새콤함이 아니었다.이후, 내 귀에 경남 마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게 되었다. 마산 사투리는 그녀에게 안기고 싶은
것이랄까. 약간 더 저음이고 약간 더 자신감이 있는 억양이었다.
굳세지만 드세지는 않은 연상의 여인의 목소리. 사실 원래 교육의
도시였던 마산사람들은 프라이드가 높았고 마산 여자들은 더그랬다.
왜냐하면 언젠가 배는 항구를 떠날 수밖에 없음을 여자는 이미 알고
있기에. 심수봉의 노래 처럼.마산은 내게 그런 도시이다.
— 노래비
이처럼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가 또있을까.아일란드에 오 대니 보이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고향의 봄"이 있다. But when ye come, and
all the flowers are dying...마산과 옆 통영은 문학과 음악의 항구이다.
광주나 진주처럼 전통의 예향이 아니라, 과거를 빼앗겨 버려야했던
사람들의 한, 어쩔 수 없이 미래의 시간으로 밀려나오는 바람에,
잃어버려야 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 이웃을 버리고 떠나서
이웃보다도 더 먼저 근대화와 산업화에 들어왔다는 한편의 우쭐함과
또 한편의 죄스러움이 거리 곳곳에 배어 있다.
마치 논두렁 길을 밀어버리고 새로 낸 신작로처럼.그러나 아스팔트는
아직 깔려있지 않았고 돌부리 삐져나와 덜커덩거리는 황량한 길에는
포플러 가로수가 잡초처럼서있던 1960년대의 풍경. 공장으로 떠나려고
버스에 올라타려는 아들에게 삶은 달걀 두 개를 쥐어주는 노모의 눈물.
월급 모아 아낀 돈으로 명절 선물 두 점 마련하고 애인 얼굴 다시 볼거나
가슴 설레며 돌이는 버스에서 내렸건만, 순이는 남의집 살이하러
서울로 떠난지 오래였다.나는 시골 상남에서 마산 도시로 들어가는
1960년대의 신작로를 기억한다.십수 년 세월이 흘르는 동안 상남이라는
농촌은 거대한 창원 공단 속으로 사라졌다. 황금빛 벼 물결치던 땅에는
비행기와 대포와 탱크와 미사일을 만드는 공장들이 들어섰다. 포플러
가로수 신작로 위 덜컹거리며 상남에서 마산으로 떠나던 작은 모험들도
잊혀졌다. 반대의 방향, 넓고 매끄러운 고속도로를 따라 마산 사람들은
피곤한 출근버스를 타고 매일 아침 창원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산은 내게서 잊혀졌다. 마산의 여자도 그 여자의 사투리도.
무학산. 가랑비 내리는 날쯤 무학소주 한 병 들고 저 무학산
꼭대기에 올라가 마산 시내를 내려다 보고 싶다.
산 아래 달동네. 벽화마을은 통영이 더 예쁘다.
마을 공동변소. 예전엔 이런 풍경이 참 부끄러웠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때 사람들의 공동체 정신이랄까, 아옹다옹하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랄까, 동네스러움이 참 아름답게만 보여진다.
천국으로 이르는 좁은 계단.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하느님나라에 들기를 탐하지 말지어니.
문득, 버려진 곳에서 작은 텃밭을 일구며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벽화마을 꼬부랑길 아래 1960년대 어느 미술가나 음악가가
지었을 법한 양옥집과 잔디 마당. 도시를 내려다 보는 언덕 위의
저런 하얀 집을 갖기를 나는 얼마나 소망하였던가. 그러나 이곳도
곧 아파트의 침략자 군화 밑에 무참히 짓밟혀
사라지겠지. 마리사의 카사비앙카 처럼.
우리나라의 아파트 도시계획은 추악하고 혐오스럽기가 그지 없는데...
너무나 추악한 나머지 미와 추의 경계마저 상실된다. 저렇게 고운 사람들이
저렇게 못난 집을 저렇게 막 짓고 살 수 있다니! 독재자와 사이비를 여전히
구세주로 받드는 국민들의 집단자살적 마조히즘 만큼이나 자기파괴의
난개발은 대한민국의 불가사이이다. 혐오스러운 목욕탕 굴뚝들에 차라리
정이 간다. 한때 오만했던 것들이 이제 늙어갔기 때문일까. 아니면
곧 죽어야 할 것에 대한 사치한 동정이 조금은 남아있기 때문일까.
마산의 옛 번화가 창동
마산의 중심가에는 오래된 서점과 빵집이
여전히 버티고 있다. 학문당과 고려당.
젊은 시절 나의 소원은 미술관 구석 창가나 어느 거리의 벤취에 혼자 앉아
스케치 연습을 하고 있는 미술학도를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었다. 그녀는 예뻤고
그림에 몰두하고 있었기에 더 예뻤다. 앞으로 화가가 될 어떤 희망과 각오가 담긴
목탄 연필의 들릴까 말까 사각사각거리는 소리가 그녀를 에워싸고 있었기에
감히 누구도 그녀만의 고요를 깰 수는 없었으며 내 가슴의 두근거림은 더 그랬다.
그녀는 그림 속에 있었고 그녀는 그림이었다... 마산의 어느 미술관 앞에서
희미한 날들의 스케치를 본다.
예쁜 옷가게를 보면 슬퍼지는 까닭. 예쁜 옷 속에 자신을 담았을 때
더 예뻐질 것임을 아는 예쁜 여인이, 쇼윈도우 유리에 비춰진 모습에서
그 옷을 살 돈이 없음을 알고, — 아니야! 이 옷은 비싸기만 하지
별로 예쁘지 않아! 라 스스로 되뇌일 때, 가난과 또 욕심들이 가질 수있는
모든 애환이 여인의 눈빛에 담겨 쇼윈도우 유리에 반사되며 불빛과 함께
방울방울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옷을 사줄 수 없는 사내는 더 슬프겠지.
그녀가 괜찮아 난 이 옷 싫은데... 빈 말 하면서도 옷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훔쳐 보아야 하는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줄 아무 것도
갖지 못했다는 매일의 작은 절망 속에서 더 슬프겠지.
거의 사십여 년만에 이 거리를 다시 걸어보건만 그때의 여인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누군가를 닮았을 젊은 여인들에게서 오래전 그 누군가의
모습을 희미하게나마 떠올려 보려 슬그머니 하지만 부질없이 다시 뒤따라가
본다. 그래. 내가 떠났던 시간들은 모두 천국이었다고 생각해야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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