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자녀가 사는 삶의 실천 원리*
<유백선목사/에베소서 5: 8-14 >
한 소년이 글을 못배운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늘 불평하다가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어요.
소매치기를 배워서 물건을 훔치다가 붙잡혀서 소년원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감옥에 가둔 사회를 저주했습니다.
한 교도관이 이 소년을 쭈~욱 지켜보다가
어느 날 참새 한 마리를 선물로 주면서 말했답니다.
“너가 이 새끼 참새를 어른 참새로 키우면 널 석방해 주겠다.”
그 말에 소년이 교도관에게 말했어요.
“지금 나하고 약속한 거 꼭 지켜야 돼요?”
소년은 감옥에서 하루라도 빨리 나가고 싶어서 흔쾌하게 승낙하고 새끼 참새를 키우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감옥 안에 있는 다른 동료들이 참새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참새를 지키고, 때로 먹이도 줘야 하고...
날마다 정성스럽게 새끼 참새를 키웠습니다.
참새가 조금 자라자 자꾸 감옥의 창살 틈으로 빠져 나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자 소년은 참새가 날아가지 못하게 실로 다리를 묶어 놓았습니다.
참새는 다리에 묶인 실을 끊으려고 애를 씁니다.
소년이 참새에게 먹이를 주고 달래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마침내 지친 소년이 교도관에게 말합니다.
“이제 참새를 풀어 줘야겠어요.
나는 참새를 더 키우고 싶은 데 참새는 내 마음을 몰라 주는 거 같아요.”
그러자 교도관이 웃으면서
“그게 바로 네 어머니의 마음일게다.
다 자라지 않는 너의 마음을 붙잡고 싶었지만 너는 틈만나면 줄을 끊고 도망치려고 발버둥치고,
결국에는 네 마음대로 살다가 지금 네가 여기에 있는 거란다.”
그러자 소년이 당황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교도관이 이어서 말합니다.
“네 어머니는 널 여전히 사랑하고 계신다. 네가 참새 새끼를 생각하는 것보다 수 백 배로 말이다.
어머니는 너를 위해서, 글을 배우신 거 같더라.
너를 석방해 달라고 간청하는 탄원서를 손수 쓰셨더구나.”
여러분!
아무리 많이 배워도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식이 부모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뿐입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여기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얼마나 됩니까?
지금 내가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이 뭐죠?
내가 지닌 것을 소중히 여긴 사람은 현재의 삶에 충실합니다.
현재에 충실한 사람은 지금 감사하며 삽니다. 지금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지금 행복한 사람은 현재의 시간을 잘 활용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을 감사하십니까?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을 행복하다고 생각하세요?
그렇습니다. 지금 여기서 어떤 마음을 갖느냐?
그 마음의 상태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합니다.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워렌 버핏이 이런 말을 했답니다.
“다른 사람을 먼저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나를 사랑하면 성공한 삶입니다.
이것이 내 신념입니다.” 워렌 버핏 회장 곁에서 3년째 언론 담당 비서로 보좌하고 있는 임효진(한인여성)씨에게
“버핏에게 투자 기법을 배웠느냐?” 하고 물었더니,
그녀가 이렇게 대답했대요.
“워렌 버핏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걸 보여 주는 인생 교과서죠. 저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그걸 배웠어요. 그는 나에게 유머 감각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었고,
삶의 긍정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그걸 삶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인생을 사는 삶의 원리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그리스도인이 빛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8절을 보세요.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삶과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삶이 얼마나 다른 것인가?
아주 극명하게 대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이전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예수를 믿기 전에 인생은 어두움이다.” 하고 평가합니다.
여기서 “어두움”이란 헬라어로 “스코토스(skotos)”인데,
우리말로는 “빛이 없는 곳, 그늘, 불투명함, 볼 수 없는 시력,
하나님의 일들과 인간의 의무를 존중하지 않는 무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이전의 삶을 왜 어두움이라고 했을까요?
예수를 믿기 이전의 삶이 왜 어두움일까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심령 속에는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빛이 없으면 심령이 어둠 속에 있습니다.
심령이 어둠 속에 있으면 삶의 원리가 매우 불투명합니다.
삶의 원리가 불투명한 사람은 인간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그걸 알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눈을 가졌지만 하나님의 일들을 볼 수 없는 시각을 가진 겁니다.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학교가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하고 있습니까?
인간의 목적을 위한 교육을 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대학 진학과 취업을 위한 도구인에 초점을 맞춰서 경영하고 있는 걸까요?
심령에 생명의 빛이 없는 사람이 기업을 어떤 방식으로 경영할까요? ‘
어떻게 하면 이윤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까?’ 오직 이윤을 창출에 전념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
오직 경쟁에서 이기는 데 초점을 맞춰서 경영합니다.
미국 스텐퍼드 경영대학원 교수인 짐 콜린스가 이런 말을 했어요.
“개인이건 기업이건 항상 호시절만 있을 수 없다.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행복한 사람이다.
적어도 좋지 않는 현실을 바로 보는 시각을 갖는 것이 쉽지 않다.
위대한 기업의 리더들은 이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 주었다.”
그가 쓴 <행복한 기업들만 아는 비밀> 이란 글에 보면,
“문제를 풀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훌륭한 사람은 될 수 없다.
훌륭한 사람은 오로지 기회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니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기회에 초점을 맞춰라.
경쟁에 초점이 맞춰진 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은 한 두 개 기업뿐이다.
그러나 기회에 초점이 맞춰진 시장에서는 수많은 기업이 살아남는다.
미래를 봐야 한다. 경쟁의 늪에 빠지면 실패할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기회를 찾는 기업들은 경쟁자를 의식하는 대신에 장기적인 목표를 따라간다
. 미래는 경쟁자와 싸움에 몰두하는 대신에 어떻게 고객을 위해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
거기에 열정을 바친 기업에게 문을 활짝 열어준다.”
‘어떻게 저 사람을 이길까?’ 생각하면서 고민하지 말라.
‘어떻게 저 사람에게 봉사할까?’ 여기에 삶의 초점을 맞춰야 행복을 아는 기업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지 않습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형제간에 경쟁하지 마세요.
부부간에 경쟁하지 마십시오.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성도들간에 경쟁하지 말아야 합니다.
경쟁의 늪에 빠지면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탐욕의 유혹에 빠지고, 모함에 빠집니다.
그리스도인은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율법주의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오직 율법으로 이해하고 율법의 규격에 매여 있습니다.
율법에 구속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살지 못하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러 보내신 예수님과 경쟁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경쟁하다가 결국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기를 원하실까요?
빛의 자녀로서 빛의 열매를 맺기 원하십니다.
빛의 열매는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실천 원리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 삶의 실천 원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세 가지 삶의 실천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9절을 보세요.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여기서 “빛의 열매(칼포스 투 포토스/karpos tou photos)”는
곧 “성령의 열매(칼포스 투 프뉴마토스/karpos tou pneumatos)”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져야 할 삶의 원리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첫째는 모든 착함입니다.
여기서 “모든 착함”이란 헬라어로 “엔 파세 아가도쉬네(en pase agathosyne)”입니다.
우리말로는 “모든 덕행이나 선행, 양선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올바른 상태, 정직한 상태,
고결한 상태, 마음이 똑바른 상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상태, 친절함”을 말합니다.
마음이 올바른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착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좋은 상태, 거기서 친절함이 나옵니다.
다산 정약용은 “선(善), 착함”을 이렇게 설명했어요.
“마음이 어질고 착해서 독기가 없다. 독기가 없다는 것은 결기(結氣)가 없다는 말과 같다.
비록 마음이 들쭉날쭉하여 한결같지 않지만 원한을 품지 않고,
악행을 보복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마음의 착함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모든 착함으로 살라고 했을까요?
착함 속에서 생명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착하게 사는 길은 무겁습니다.
마치 아픈 십자가의 길과 같기 때문입니다. 모든 착함은 무거운 짐을 지고,
온갖 고통을 견디며 가야 하는 데, 성령님의 위로가 없이 감당할 힘이 없습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을 때 마음이 열리고, 선을 베푸는 마음이 생깁니다.
존 멕스웰(John Maxwell)은 말하기를
“당신이 좀더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득이 늘어나기를 기다리지 말고,
당신의 마음을 바꾸라.” 그랬어요. 지금 여러분이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소득이 증가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좀 더 베풀고 싶은 마음입니까?
윌리엄 린튼 3세가 1912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었습니다.
그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나서 일제의 침략과 3.1운동이 비폭력저항정신이었다고
미국 남부지역 평신도대회에서 증거했습니다.
한국이 6.25 전쟁으로 어수선하고 고통을 당할 때,
그가 전주에 남아서 성경학교를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대전에 신앙과 학문을 겸비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
한남대학교를 세웠어요. 최근에 그의 손자가 세계적인 생명공학(BT)기업 대표이사가 되어 한국에 왔습니다.
중국에 진출하는 전초기지로 한국에다 생명공학연구소를 물색하던 중에
할아버지가 세운 한남대학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남대학교가 성장해 있는 것을 보고,
그가 한남대학교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키우겠다고 하면서
500만 달러 지원을 약속했대요.
여러분! 착한 마음은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실까?’
늘 생각하고 실천하게 하는 힘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가져야 될 두 번째 삶의 원리가 무엇입니까? 의로움입니다.
여기서 “의로움”이란 헬라어로 “디카이오쉬네(dikaiosyne)”입니다.
우리말로는 “(성격이나 행위에 있어서) 공정함, (기독교인의) 칭의”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왜 의로움을 삶의 원리로 삼으라고 했습니까?
의로움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불순종의 영으로 유혹해서 불의한 자가 되게 했습니다.
불신의 영이 지배하는 사람은 인류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합니다.
불신앙의 영이 지배하는 사람은 사회의 공적인 행위를 하지 못하기 만듭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공정하고 공평하게 은혜를 베푸셨는데,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 세상이 왜 이렇게 타락하는가?’ 하고 늘 불신하게 만들죠.
하나님의 진리를 떠난 인간은 스스로 깨닫지 못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진리가 떠난 심령 속에 불의가 가득하기 때문에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피를 흘리는데 빠르게 달려갑니다.
옛 소련에서 한 장교가 신병들에게 무신론 교육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물었어요.
“자, 신병들... 저기 하늘을 봐라. 신(하나님)이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가?” 신병들이 일제히 대답합니다.
“안보입니다.” “그렇다. 신은 없다.” 그러자하나님을 믿는 한 신병이 벌떡 일어나서
손가락으로 장교의 머리를 가리키면서 물었대요.
“여러분! 장교님의 머리 속이 보입니까? 안보입니까?”
그러자 신병들이 일제히 대답했대요. “안보입니다.”
그러자 그 사병이 말했대요. “그렇습니다.
우리 장교님은 골이 빈 장교입니다.”
여러분! 지금 의의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살아 있기 때문에 불의가 결코 진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하신 그 은혜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불신자로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빛의 자녀가 되었던
C. S. 루이스(Lewis)가 말했어요.
“음악이든 순교이든 우리가 드리는 모든 제물들은 본질적으로 어린 아이의 선물처럼 쓸모없는 것들이다.
단지 선물을 한 그 목적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아버지(하나님)가 그 가치를 인정해 주신 것 뿐이다.”
우리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얼마나 쓸모가 있는 것일까요?
별로 쓸모가 없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그 마음, 그 목적 때문에 가치를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가져야 할 세 번째 삶의 원리가 무엇입니까?
진실함입니다. 여기서 “진실함”이란 헬라어로 “알레데이아(aletheia)”인데,
우리말로는 “진리, 진실성, 참됨”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진실함을 원하실까요?
진실함, 진리는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진리를 알라” 하고 말씀하셨는데,
왜 진리를 알라고 하신지 아세요? 진리는 변치 않는 가치입니다.
진리를 알 때, 진리가 자유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거품으로 가려진 것들을 벗깁니다. 거품은 속이 비었는데,
공기만 잔뜩 들어가서 둥굴게 부풀어 있는 방울을 말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올바로 알고, 진리 안에 살면 믿음에 거품이 생기지 않습니다.
진리는 마음의 생각을 감찰합니다. 진리는 심령을 공허하게 하지 않습니다.
요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버전이 나왔는데, 아십니까?
개미는 너무 일만하다가 디크스, 류버티즘에 걸려 고생고생 하며 살고 있대요.
베짱이는 노래 실력이 출중하여 앨범을 낸 후에 한류 열풍을 타고 대박을 터뜨린 스타가 되었답니다.
지금 여러분은 개미처럼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베짱이처럼 살기 원하세요?
어떤 스타가 되기 원하십니까?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이 설교하면서 말했대요.
“만약 내가 여러분에게 단 5초만 지옥을 보여 줄 수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진실한 사람에게 형통한 은혜를 주십니다.
정직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쁘게 응답하십니다.
진실한 자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십니다.(잠언 15:8, 시 84:11)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날마다 수많은 문제들과 부딪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들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무엇을 보고 살아야 할까요?
인생의 문제들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슨 목적을 가지고 계시는가?
삶의 목표를 보고 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목표는 인생의 성공이 아닙니다.
빛의 열매를 맺고 그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을 하나님의 진리에 맞추고 최대의 역량을 발휘할 때,
하나님은 빛의 자녀들의 시대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