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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화엄 만다라 [현대불교신문 제915호 2012-11-21일자 16/17면]
초기불교경전 번역 원력 세운 세 선우 각묵·대림 스님 ‘발원’ 뒤 황경환 씨 후원
초기불전연구원(원장 대림)이〈맛지마 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하며 4부 니까야를 완역했다. 대림 스님은 팔리어의 로마어 표기판을 바탕으로 5년 동안 번역에 매달렸다. 전체 3100개 이상의 방대한 주석도 달았다. 책을 낸 초기불전연구원은 원장인 대림 스님과 함께 각묵 스님이 2002년 만든 연구단체. 초기불전연구원은 총 50권에 달하는 팔리어 삼장 전편을 한글로 완역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있다. 이러한 대작불사 뒤에는 황경환 진양유조선 회장이란 후원자가 있다. 각묵 스님과 대림 스님, 또 황경환 회장을 11월 7일 조계사에서 만났다. 현대불교신문 글=노덕현 기자 noduc@hyunbul.com 사진=박재완 기자 wanihollo@hyunbul.com
조계사 앞마당에서 각묵 스님(왼쪽)과 대림 스님(가운데)이 황경환 회장(오른쪽)과 함께 걸으며 그동안의 소회를 털어놨다. 세 선우는“불교는 현재 세계적으로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때문에 부처님의 친절한 가르침인 초기불교경전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기불교 경전을 번역하는 작업은 전불교적인 차원에서 진행해야 가능한 일들입니다. 개인 차원에선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이 지금 두 스님의 초인적인 노력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11월 초 한파가 몰아친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만난 황경환 회장(56·진양유조선 회장, BBS울산방송 사장)은 두 스님의 노고에 대한 찬사로 말문을 열었다. 황경환 회장은 각묵 스님과 대림 스님이 등장하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후원자다.
각묵 스님과 대림 스님은 1980~90년대 인도 푸나대학교에서 초기불교경전을 공부하며 만났다. 초기불교경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원력을 세우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한국불교에선 건물불사를 위한 불사 후원은 넘쳐났지만 경전 번역에 대한 후원은 관심조차 없었다. 이 때 이들의 후원을 자청한 이가 황경환 회장이었다.
불교 미래, 초기불교에 있음 확신 황 회장은 수십 년 동안 부산경남지역에서 내로라하는 선지식들을 찾아다니면서 불법을 공부했지만 “불교가 무엇인지 도대체 감도 잡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황 회장은 1987년 미국 군수업체인 휴즈사에서 근무하던 인공지능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에드워드 김 박사를 만나 초기불교 공부에 눈을 뜬다. “한국불교연구원에서 일하던 당시 김 박사의 불교 강연을 듣고 개인적으로 그를 찾아갔습니다. 대화를 나누던 중 그가 과학과 불교의 관계를 빨리경전 등 초기경전 일화로 풀어주는데 정말 쏙쏙 알아듣겠더군요.”
황 회장은 김 박사의 초기불교경전 풀이를 듣고 ‘아,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런 것이었구나’하고 무릎을 쳤다. 김 박사는 황 회장에게 불교는 합리적, 이성적 종교이며 특히 초기불교에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과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안다’입니다. 그냥 아는 것이 아닌 실험적 증명을 통한 ‘앎’입니다. 초기불교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스스로 실험해 보며 깨달아 가게 합니다. 그러기에 초기불교는 과학적입니다.”
황 회장은 그날로 초기불교에 매진했다. 한마디로 반은 미친 사람이 됐다. 초기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인도와 동남아를 방문하기도 수차례 인연의 끈은 미얀마에서 이어진다.
각묵 스님 스트레스로 뇌수술 대림 스님 이질로 죽을 고비 두 스님, 초기불전 연구원 세워 황경환 회장 지속적인 후원
“2001년 미얀마 쉐우민 명상센터에서 위빠사나를 공부할 때입니다. 그때 인터뷰를 하는데 저는 몰랐지만 제 옆에 함께 있던 분이 대림 스님이셨어요.”
한국에 돌아온 황 회장 앞으로는 대림 스님이 번역한 책 한권이 전달된다.〈 염수경〉이다. 〈염수경〉을 읽고 대림 스님을 만난 황 회장은 이후 각묵 스님과 대림 스님의 초기불교경전 번역에 대한 원력을 느끼고 후원을 결심한다.
죽음 앞에서 새로운 원력을 세우다 “한국 수행자들은 과정을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수행과정에서 일어나는 번뇌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늘 고민했어요. 그 해결책을 초기불교불전에서 찾았습니다.”
봉녕사 강원 대교반 시절 매일 1000배를 하며 ‘일생 중노릇을 바르게 할 수 있도록 선지식을 만나게 해달라’는 발원을 한 대림 스님. 대림 스님은 강원 졸업당시 향후 계획으로 역경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후 초기 승단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란 기대로 티베트를 찾았다가‘ 남방(南方)’에서 공부하는 게 좋다는 선배와 도반들의 권유로 인도로 발길을 옮겼다. 인도에서 각묵 스님을 만난 대림 스님은 각묵 스님의 ‘초기경전을 공부해 보라’는 조언을 듣고 초기불교 공부에 빠져든다.
“인도에서 곧바로 대학에 가지 않았어요. 출가해 세속에서 공부한다는 일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각묵 스님의 추천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선지식이죠.” 대림 스님은 한 달 동안 절만 하며 진학여부를 고민을 했다. 대림 스님은 “내가 스님이란 아상(我相)을 갖고 ‘마을 선생님’에게서 공부를 못하면 다른 곳에 가서도 공부를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아만(我慢)’을 버리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스님은 뿌나대에서 10여년 간 산스크리트 문법 공부에 치중했다.
대림 스님은 “수행과 생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매순간 즐거운 마음이 들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매 순간 번뇌가 일어날 때 상황에 맞는 대처를 초기불교에서는 상세히 일러줍니다. 초기경전에서의 부처님 말씀은 불자들을 이끄는 친절한 선생님입니다.”
대림 스님은 공부하면서 건강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미얀마에서는 이질에 걸려 죽음 직전까지 갔다. ‘내 삶을 미얀마에서 정리하는 구나’라고 생각한 순간 기적같이 다시 건강을 회복했다.
“그 때 이후의 삶은 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더욱 역경에 매진하겠다는 원을 세우게 됐습니다.”
대림 스님은 귀국 직후 각묵 스님과 함게 초기불전연구원을 설립해 빨리어 삼장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은 10년 동안 진행됐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번역한 니까야와 초기불교 해설서
선수행서 못 얻은 목마름, 초기불교서 풀어 “부처님 생존 당시 가르침을 정확히 이해할 때, 한국 불교도 바른 길로 활발하게 갈 수 있는 것이지요.” 초기불전연구원을 대림 스님과 함께 만든 후 경전번역과 강연 등에 나서고 있는 각묵 스님은 1979년 화엄사로 출가해 7년 내리 선방에서 화두를 든 수좌 출신이다.
각묵 스님은 “출가 후 간화선 수행을 계속했는데도 해답을 찾지 못해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스님은 그때 대학시절 접한 법정 스님 번역의〈숫따니파타〉같은 초기불교 책들을 다시 접하며 초기불교경전 번역의 뜻을 세우게 됐다. 스님은 항상 걸망에 법정 스님의 〈숫타니파타〉를 넣고 다니면서 수십 차례 읽었다.
1989년부터 뿌나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 공부를 시작으로 10년 간 유학한 스님은 인도에서 고대 인도 성전인 ‘베다’를 전공하는 등 박사과정을 마쳤다. 스님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나무 아래 경전을 올리고 번역에 서원을 세운다.
스님은 인도 유학 시절부터 경전 번역에 매달리기 시작해 니까야 번역을 진행했다. 스님은 하루에 10시간 넘는 번역 작업을 반복하다 얻은 피로와 스트레스로 뇌수술을 받기도 했다. 몸과 마음이 지친 각묵 스님에게 그 때 만난 대림 스님은 훌륭한 도반이자 선지식이었다.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함께 할 수 없는’ 성격이라는 각묵 스님은 아는 이 한 명 없는 태국으로 건너가 골방에서 6개월 동안 3권의 번역을 해내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각묵 스님은 초기불교 경전을 공부하는 것은 불교의 뿌리를 배운다는 면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초기불교 관심에 보람 느껴 “최근 조계종 교육원의 스님 연수에서 초기 불교 강좌의 수강 신청자가 다른 과목의 4, 5배에 이르고 종단차원에서도 교과과정에 초기불교 강좌를 도입하는 등 중요성이 널리 알려져 보람을 느낍니다.” 각묵 스님과 대림 스님은 초기불교는 이미 한국불교의 일부가 됐다고 평하며 완역된 초기불전이 한국불교 발전의 주춧돌이 되기를 기원했다.
인도서 완역불사 원력 세워 술어DB화 노하우로 속도 빨라 초기 경전은 불교의 뿌리 팔리어삼장 50여권 완역 계획
각묵 스님은 “현재 세계적으로 불교는 르네상스라고 할 정도로 부흥기를 맞고 있다”며 “한국 불교가 중흥을 맞으려면 원전에 기초한 체계적인 한글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황경환 회장은 두 스님의 번역작업의 노하우를 공개하며 종단 차원의 지원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묵 스님은 수십년이 걸릴 번역작업을 두 스님이 가능한데는 번역과정에서 팔리어 술어집 만들어 데이터베이스화 한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두 스님은 사부 니까야 완역에 이어 논장의 주요 주석서와 팔리 고유명사 대사전 등을 출간하는 한편 향후 윤문팀을 구성해 지금까지 번역을 검토할 예정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불교는 르네상스라고 할 정도로 부흥기를 맞고 있어요. 반면 한국 불교는 다소 침체해 있는데 한국 불교가 중흥을 맞으려면 원전에 기초한 체계적인 한글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생명이 다 할 때 까지 오로지 초기불전에 대한 역경작업을 하겠다는 두 스님과 그들의 후원자 황경환 회장. 이들의 모습에서 과거 중국에 불교가 전래 되었을 때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번역했던 구마라집 스님의 모습이 비춰졌다. |
각묵 스님은 … 각묵 스님은 1979년 화엄사에서 도광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82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고 7년간 안거 수행한 후 인도로 유학해 뿌나대학 산스크리트어과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번역서로 〈금강경 역해〉, 〈아비담마 길라잡이〉, 〈네 가지 마음 챙기는 공부〉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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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스님은 … 대림 스님은 1983년 세등선원에서 수인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봉녕사 승가대학을 졸업해 인도 뿌나대학 산스크리트어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청정도론〉 주석서로 뿌나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번역서로 〈염수경〉 〈아비담마 길라잡이〉 〈들숨날숨에 마음 챙기는 공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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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환 회장은 … 황경환 회장은 국제P.T.P한국본부 총재와 울산시 불교신도회장, 법무부 불교분과 종교위원, (사)한국불교연구원 이사, 초기불전연구원 상임연구위원, 법무부 울산구치소 교정협의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동국대 경주캠퍼스 평생교육원 교수와 ㈜진양유조선 회장 등을 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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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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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여서 행복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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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고 감동적인 기사입니다.
거듭 감사와 공경의 예를 올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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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_()_()_
부처님의 가피이고 귀한 인연입니다.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들을 봬니 제 마음도 환해져요.
더 많은 불자님들이 초기불교와 만나고 세 분이 이룬 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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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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