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초심(首邱初心)이라... 여우도 죽을 때가 되면 머리를 자기가 살았던 굴(窟) 쪽으로 둔다고 했던가. 나도 하루가 다르게 늙어 가니까 문득문득 고향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대도시로 나왔으니 뭐 딱히 고향의 추억이랄 것도 없다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별 의미 없는 빛 바랜 삶의 편린(片鱗)이나마 그것들 하나하나가 내겐 눈시울을 데우는 사연이라 볼 수 있으리니...
어릴 때 누님이 몇 번인가 들려 주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군대에 입대한 큰 형님이 동생인 누님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가요 '꿈에 본 내 고향'의 가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노래 가사를 읽으면서 누님이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는 말씀이었는데, 나야 뭐 워낙 어렸을 때였으니 공감은 커녕 뭔 말씀이셔 하며 눈만 껌벅거렸을 뿐이었을 터이지만...
이 노래가 휴전 1년 뒤인 1954년에 LP판으로 나왔으니 북한 백정혈통 집단이 일으킨 전쟁으로 나라가 폐허가 된 절체절명의 상황인 그 시절 민초들의 삶이 어떠했으리란 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니, 사실 그때 지극히도 가난한 살림 때문에 가족들의 밥 숫가락 덜어낸다고 두 형님이 일찍 군대에 들어간 거란 건 나중에 들어 알았지만...
맘씨 고운 누님이 군대에서 보내온 오빠의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면서 펑펑 울었다는 노래 '꿈에 본 내 고향'은 가수 한정무님이 부르고 도미도레코드사에서 출시했다는데(자료들을 찾아봉게 일제시대에도 이 노래가 불렸지만 레코드로 발매된 게 이때였다는구만)...가수 자신이 이북에서 넘어왔다 보니 뭐 가사가 자신의 신세랑 아주 비슷해선지 노래를 들어보면 애절한 느낌이 더욱 간절한 듯하긴 하다. 가사를 옮겨 보며 느끼는 건 일찍 부모님 곁을 떠나온 나 역시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의 심정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 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narration≫
뜬구름아 물어보자 어머님의 문안을
달님아 비춰다오 인성이와 정숙이의 얼굴을
생시에 가지 못할 한 많은 운명이라면
꿈에라도 보내다오 어머니 무릎 앞에
아! 어느 때 바치려나 부모님께 효성을
고향을 떠나온 지 몇몇 해던가
타관 땅 돌고 돌아 헤매는 이 몸
내 부모 내 형제를 그 언제나 만나리
꿈에 본 내 고향을 차마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내가 열 세살 때 고향을 떠나왔으니, 비록 형님 댁에서 살았지만 물 설고 낯선 땅에서 외로울 때면 문득문득 어머니 생각에 혼자 숨어서 울었던 기억들이 아스라하다. 남자처럼 억척스런 삶을 살면서도 자식들을 온몸으로 사랑했던 어머니, 말씀은 별로 없었지만 언제나 우리들 곁을 든든하게 지켜 주셨던 아버지가 이 순간 너무 그립네.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사의 내용이 낯간지러운 데다 네레이션이 거의 이수일과 심순애식의 신파조여서 듣기가 심히 거북할 수도 있을 터...그런다고 고향 떠난 사람이 애타게 고향을 생각하고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는 마음까지야 웃어 넘길 수만은 없는 일. 누가 비웃고 손가락질 하든 우리들은 그런 삶을 살아왔고 그런 삶이 있어 오늘이 있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