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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지역인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부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500마일(800km) 길을 말한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야곱이 복음을 전하러 갔던 길이고 그래서 그 길의 끝인 산티아고 대성당에는 야곱의 무덤이 있다.
첫번째 시도서 무리하다 골절상 이젠 깨달았어, 내 걸음만큼 걷자
9세기 초 야곱의 유해가 발견된 이후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무수한 순례자들이 이 길을 걸었다. 그러나 지금은 순례자들 뿐 아니라 도보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전세계에서 모여드는 곳이다. 하루에 400명이 넘는 사람이 이 길 위에 선다.
막막한 인생에 돌파구를 찾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을 잊기 위해, 돈 들이지 않고 자연을 즐기기 위해, 그냥 그 길이 너무 좋아서…. 다들 나름의 목적을 안고 이 길을 걷는다. 신발끈을 묶어가며 걷고 또 걷고 10일, 20일, 30일 자연을 벗삼아 그렇게 걸으면서 이들은 마음의 평화를 얻고 어떠한 역경도 헤쳐나갈 수 있는 인생의 튼튼한 버팀목과 나침반을 선물로 안고 돌아온다.
한인 부부가 최근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다녀왔다. 그것도 70대 노부부 최진환(71), 최경자(76)씨가 45일 동안 이 길을 걸었다. 3월27일 비행기를 타고 떠나 지난달 22일 돌아왔다. 한인으론 처음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남가주 한인 중 누가 그곳을 다녀왔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걷는 동안 무척이나 행복했고 마음도 편안했어요. 날개없는 천사인 사람도 만나고 자연과 하나가 되기도 하고 어떻게 사는게 사람 값어치를 하는 건지 반성도 하고. 이 나이에 죽지 않고 아프지도 않고 이렇게 좋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에 너무도 감사했어요. 만나는 사람 누구든 붙잡고 권하고 싶어요. 꼭 다녀오라고.” 이번 여행은 부인 최경자씨에겐 두번째 도전이었다. 지난해 4월 첫 도전에선 빗길에 지팡이를 잘못 짚어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져 7일만에 걷기를 포기해야 했다.
“도보여행가 김남희씨가 쓴 산티아고 여행기를 하룻밤에 다 읽고 흥분해서 짐 챙겨 일주일만에 떠났어요. 외국이라 말 안통하고 길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앞서가는 독일인 부부를 놓칠까 죽어라고 따라 걸었지요. 느리면 느린대로 빠르면 빠른대로 제 페이스 대로만 걸으면 문제가 없는데. 다리가 부러진 줄도 모르고 일어나 10km를 더 걸었으니….” 최씨는 일주일 동안 동네 병원과 숙소를 오가며 꼼짝 못하고 누워 있다 비행기에 실려 돌아왔다. 그때 숙소에 머물던 순례자 의사가 3명 있었는데 모두들 자기일 처럼 보살펴주고 그들 크레딧카드로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까지 걸어줬다고.
돌아와 꼬박 1년간 깁스를 해야했다. 나이 때문에 뼈가 잘 안붙어 4번이나 깁스를 갈아가며 고생한 끝에 지난 2월말 완치 판정을 받았다. 곧 다시 짐을 쌌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한번 가본 길 이젠 겁도 안났다. 때마침 치과의사일을 접은 남편 최진환씨도 동행을 자처했다.
부부는 오전 7시면 길을 나섰다. 순례자의 상징인 지팡이를 짚고 어깨엔 침낭과 여벌 옷 두 벌, 비옷, 양말, 속옷, 세면도구, 손전등을 챙겨 넣은 배낭를 멨다.
아름다운 숲길을 지나고 예쁜 시골 마을도 지나고 풀을 뜯는 양떼도 만났다. 고딕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부르고스 대성당도 지나고 유칼립투스와 전나무가 우거진 황토 흙길도 밟았다. 어떤 날은 장대비를 맞으며 돌길을 지나 산도 넘어야 했다.
길을 걷는 동안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또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따뜻한 눈빛을 보냈고 어여쁜 광장과 교회가 있는 아주 오래된 마을들에선 수백년을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보고 들었다.
그렇게 매일 20~30km를 걷고 오후 서너시쯤이면 순례자용 숙소인 알베르게에 들어섰다. 알베르게는 방, 부엌, 샤워시설을 갖춘 순례자용 숙소로 하루 숙박비는 3유로(약 4달러) 정도다. 그것도 대부분 도네이션 형태로 운영된다.
꼬박 1년간 깁스 생활
방을 배정받은 후에는 샤워를 하면서 입었던 옷을 빨아 빨래줄에 넌다. 이제부터 다음날 새벽까진 달콤한 휴식시간이다.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다가 어스름녁에 근처 장에 가서 먹거리를 사와 직접 저녁을 해먹는다. 부엌엔 순례자들을 위한 기본 양념과 취사도구가 구비돼 있다. 음식 만드는데 드는 돈도 3유로 정도면 족하다.
“우리는 주로 사먹었는데 전식, 메인, 후식을 갖춘 디너가 물과 포도주까지 포함해 비싸야 10유로(약 14달러) 밖에 안합니다. 길가에는 순례자용 수도가 있어서 언제든 물을 마실 수 있고 알베르게도 몇 km마다 있어서 잘 곳 없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순례자들을 위해 모든 편의시설을 다 갖춰놓은 셈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길이고,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이고, 비행기 값 빼고는 돈이 별로 안드니 가장 싸게 먹히는 외국여행이 될거예요.”
연 15만명 순례자의 길
순례자들은 오전 6시쯤 출발해 하루에 보통 25~35km를 걷는다. 빨리 걷는 사람은 40~50km도 걷는다. 대개 30일 내외가 걸린다. 한번 여행에 다 걷지 않아도 된다. 어떤 이는 매년 보름 정도 휴가를 내 2년에 걸쳐 걷기도 하고 6박7일 여정으로 걷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자전거로 8일만에 끝내는 사람도 있다. 가는 길엔 방향을 알리는 조개 문양이나 노란색 화살표가 있어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알베르게를 이용하려면 출발지인 생쟁피드포드 혹은 도중에 만나는 제법 규모 있는 도시의 산티아고 협회를 찾아가 순례자용 여권으로 통하는 증명서를 받아야 한다. 알베르게를 찾을 때마다 그곳에선 이 증명서에 도장을 찍어준다. 최씨의 증명서에는 알베르게 수십군데의 도장이 빼곡히 찍혀져 있었다.
“처음엔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는데 마침내 ‘산티아고 100km’임을 알리는 표지석 앞에 서니까 자신감이 생기고 살아있다는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되고 그랬지요. 좋은 사람 만나고 좋은 풍경 보고 좋은 음식 먹고…. 나도 걸었는데 누군들 못걸을까. 한인 커뮤니티에 이 길을 널리 알렸으면 좋겠어요.” 남편 최씨는 이번이 베낭 메고 두발로 걸어서 한 첫 장기여행이다. 배낭 메는 것도, 마냥 걷는 것도 익숙치 않아 처음엔 꽤나 고생했지만 이젠 한번 더 그 길을 걷고 싶단다.
“혼자라면 갈 생각조차 못했을텐테 아내가 다리가 부러져 돌아오는 바람에 이번에 같이 가게 됐으니 돌아보면 그것도 고마운 일이 됐지요.” 20년 전만해도 순례자가 연간 400명에 불과하던 산티아고 가는 길이 이젠 매해 15만명 가까이가 찾는 세계적인 명소가 된 건 파올로 코엘류의 ‘순례자’란 책을 통해서다. ‘순례자’는 베스트셀러 ‘연금술사’로 우리에게 알려진 스페인의 유명 작가 코엘류가 처음 쓴 책이다.
1986년 브라질 한 기업의 임원으로 일하던 그는 어느날 산티아고로 날아가 하루에 20km씩 꼬박 두 달 동안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었다. 이 길은 그의 인생을 바꿨고 이후로 그의 책을 읽고 이 길을 걸은 다른 많은 이의 인생도 바꿔 놓았다. 한국에서도 매해 이 길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으며 김남희씨를 비롯해 화가 남궁문씨 등 서너명이 책을 내면서 너무 유명한 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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