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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살인의 과격함에서 차 한잔으로 밤새우는 느긋함까지 |
이슬람 생활문화 |
성선설에 기초한 이슬람인들의 생활은 관용적이고 느긋하다. 그러나 정조를 잃은 여자를 죽이는 ‘명예살인’이 허용되기도 한다. 부족 등 집단의 체면의식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과부를 구제하는 차원에서 일부다처제가 허용되기는 하지만 여자에 대한 차별대우가 심하지는 않다. |
오늘날 무슬림들의 일반적인 의식구조는 전통적인 유목사회의 유습(遺習)과 이슬람교의 종교적 규범, 그리고 현대화라는 복합적인 요인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서로 융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충돌하기도해 일종의 아노미(anomie, 사회도덕적 무질서) 현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슬람은 그 특유의 성법(聖法, 샤리아)을 통해 여러 사회문화적 요인들을 조화시켜 나가려고 시도한다. 따라서 이슬람에 바탕한 전통의식이 아직 그 어느 문명권보다도 끈끈하다 말할 수 있다.
무슬림들의 의식구조에서 근본은 유일신 알라에 대한 믿음과 복종이다. 이러한 근본으로부터 출발하여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 즉 인생관이 수립된다. 무슬림들의 인생관은 한마디로 성선설(性善說)에서 오는 적극적인 인생관이다. 인간에게는 애당초 원죄가 있다고 보는 기독교는 성악설(性惡說)일 수밖에 없고, 불교는 인간의 속성을 두카, 즉 고행으로 보기 때문에 고행설(苦行說)을 주장한다.
이에 비해 이슬람은 알라의 창조에 의해 착한 속성을 가지고 출현한 인간이기에 삶을 낙천적으로, 적극적으로 영위하라고 격려한다. 교조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는 “인간은 순수 결백하게 태어난다” “오래 살고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이 최상의 인간이다”라고 삶을 찬미하고, 오래 살아야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으니 “죽음을 원하지 말라. 범죄자도 죽음을 원하지 말라”고 무모한 죽음을 경고한다.
이렇게 현세에서의 생을 오래 즐길 것을 권장하며 죄나 과오를 자진 회개하고, 알라의 용서를 빌며 헛되이 죽지 말라는 것이 이슬람 인생관의 요체다. 그런데 오늘 이슬람세계, 특히 팔레스타인에서는 가끔 ‘자살테러’가 발생한다. 이에 대해 이슬람 법학자들 사이에도 이견이 분분하다. 문제는 명분이다. 이러한 자살행위에 지하드(聖戰)란 명분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알라가 마련해준 땅에서 쫓겨났으니, 그 땅을 되찾기 위해 죽음을 택한 것은 무모한 죽음이 아니라 성스러운 죽음이라는 변이다.
다음으로 무슬림들은 중용의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이슬람교의 중용사상과 중도관(中道觀)의 영향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러한 의식구조는 우선 유연하고 중용적인 정명관(定命觀)에서 나타나고 있다. 행한 것만큼 얻는다는 인과율(因果律)에 따른 정명관으로서 자유의지와 정명을 조화시킨 융통성 있는 정명관이다.
이러한 면에서는 인과응보를 법으로 삼는 불교나 자유의지(人爲)와 정명을 동시에 믿는 유교와는 상통하는 점이 있다. 이에 비하면 기독교는 구제예정설로 더욱 숙명적이고, 도가(道家)는 철저히 숙명론이며, 묵가(墨家)는 비명설(非命說)로 숙명을 거부한다.
무슬림들의 중용적인 의식구조는 관용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관용성은 그들의 종교의무 수행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매해 한 달씩 근행하는 금식월(라마단)에 병이 있으면 금식하지 않아도 무방하고,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면 종교적으로 금기시하는 돼지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것 등이다.
여행경비와 건강이 허락 안되면 5대 종교의무의 하나인 성지순례를 그만두어도 배교(背敎) 행위는 아니다. 이러한 관용성은 인간은 원래 착한 존재이기 때문에 실수나 범죄, 불의 같은 것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회개만 하면 용서받을 수 있으며, 종교는 결코 고행이 아니라는 성선설과 종교적 이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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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슬람인 골탕 먹이는 ‘IBM’ 문화
무슬림들의 중용적인 의식구조는 그들만의 여유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랍 속담에 “빨리 하는 것은 사탄이나 하는 짓이고, 천천히 하는 것이라야 알라가 기뻐한다”는 말이 있다. 자칫 굼뜨고 게으름을 변명하는 것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 말 뒤에 그들은 “천천히 하는 것이 빠를 수도 있다”는 말을 잊지 않고 덧붙인다.
요즈음 무슬림들의 ‘IBM’에 골탕먹은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I’는 ‘인샬라’ ‘B’는 ‘부크라’ ‘M’는 ‘마알라이쉬’라는 아랍어 단어들의 첫 자 모음이다. ‘인샬라’는 ‘알라가 원한다면’ ‘부크라’는 ‘내일’ ‘마알라이쉬’는 ‘괜찮아, 무얼 그러느냐’라는 뜻이다. 이 세 글자의 합성(合成)은 그야말로 멋진 3박자 화음이다.
어떤 고객이 한 주일 후에 제품을 인수하기로 계약서를 쓰고 도장까지 찍고는 아랍인 화주(貨主)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거듭 강조하니, 화주는 “인샬라”라고 대답한다. 낯선 고객은 굳은 서약인 줄 알고 안심한다. 고객이 약속한 날짜에 갔는데 제품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하기에 화를 내니 화주는 태연하게 “부크라”라고 응수한다. 다음날 지켜줄 것을 믿고 다시 찾아갔더니 또 마련되지 않았다고 한다. 홧김에 심하게 추궁하니 화주는 여전히 별일 없는 듯 덤덤하게 “마알라이쉬”라고 능청을 부린다. 알고 보니 이것이 그들의 ‘IBM’ 관행이다.
전지전능한 알라가 함께하고 소털 같은 세월이 있는데 무얼 그리 설치냐는 여유작작함과 자신감, 그리고 조급한 세태에 대한 그들 나름의 대응일 수도 있다. 정녕 ‘인샬라’(盡人事待天命)는 그들만의 전유물인 성 싶다.
이러한 관용적인 여유를 누리는 무슬림들이지만 표현에서는 상당히 외향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무슬림들은 대체로 내용과 형식, 실(實)과 명(名), 분(分)과 격(格)에서 형식과 명, 격에 치우치는 이른바 외부표출 지향적인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다. 때로는 이것이 어떤 표리부동한 2중적 의식구조로 비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체면의식이 남달리 강하다. 명예(샤라프)와 품위(카라마), 자존심을 중시한다.
서아시아 무슬림 국가들, 특히 유목사회 전통이 많이 남아있는 보수적인 국가들에서는 아직까지 듣기에도 끔직한 이른바 ‘명예살인’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정조(이르드)를 여성의 최고 명예로 자부하는 이슬람 사회에서 여자의 부정이 가문의 명예를 더렵혔다고 하여 가족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매년 500여 건씩이나 발생한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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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00건의 명예살인
아무래도 전근대적인 미개한 짓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요르단을 비롯한 일부 아랍 나라들에서는 ‘반(反)명예살인’ 운동이 지금 막 일어나고 있다. 여아의 할례(割禮)마저도 이 명예를 지키기 위한 당위로 장려한다. 남자에게 자식이 많은 것은 정력이 강하다는 상징으로서, 그 또한 명예로운 일로 남들로부터 부러움을 산다.
이러한 체면의식은 유목사회의 전통의식 가운데서 가장 강한 의식구조의 하나로 역기능보다 순기능에 무게를 두고 있다. 유목사회의 집단적 체면의식인 ‘샤아비야(친족애착정신)’는 유목사회를 지탱해 나가는 하나의 원동력으로 기능해왔다. 14세기 아랍의 가장 위대한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이븐 칼둔(1332~1406)은 이 샤아비야는 “인간사회의 기본적인 유대이며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부족 성원 개개인은 부족을 위해 살고 죽음을 가리지 않는 희생정신으로 부족을 지켜내는 것을 지상의 영예로 생각한다. 이러한 친족애착정신은 오늘날까지도 베드윈(사막의 유목민)들 속에 그 잔영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무슬림들의 외향적인 의식구조는 표현중시 현상에서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과의 교제에서 흔히 느끼지만, 그들은 내내 ‘많음’과 ‘좋음’을 강조하는 데 인색하지 않는다. 손님을 접대할 때 접대물을 될수록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둔다든가, 구차함을 극력 피하려 한다든가, 태연스럽게 자기자랑을 늘어놓는다든가 하는 과시의욕(誇示意慾)은 일종의 자아도취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의식은 부유층일수록 더 강하다.
흔히들 무슬림들의 언행을 놓고 ‘다언요설(多言饒舌)’, 즉 말이 많고 수다스럽다고들 한다. 그것도 어지간히 높은 목소리로 말이다. 그들은 한잔의 농차(濃茶)를 앞에 놓고 이야기(싸흐르, 夜話)로 하룻밤을 지새우기 일쑤다. 아마 이 세상에 ‘천일야화(千日夜話)’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랍-무슬림들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다양한 몸짓(제스처)은 또 얼마나 안성맞춤인가. 긍정하면 머리를 조금 끄덕이면서 두 눈을 깜박거리고, 부정하면 입술을 내밀거나 두 눈썹을 치떠올리고, 감사나 사양할 때는 오른손 바닥을 왼가슴에 대고 머리를 약간 숙이고, 의기투합하면 서로 손바닥을 마주친다. 부를 때는 손과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는데, 손가락 하나를 위로 올려 부르는 것은 공격적인 의미이니 주의해야 한다. 눈짓, 손짓, 얼굴표정, 전신동작 등 모든 것이 다 동원된다. 이를테면 비언어적 의사 소통인데, 웬만한 것은 다 통한다. 실로 표현의식이 강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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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공동 창조설
이슬람의 생활문화에서 늘 주목을 끄는 것은 여성들의 삶이다. 여성을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남성에 대한 ‘타자(他者, other)’로, 그리고 ‘불완전하고 우연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여성관이 지난 시기 여러 문명권을 지배해왔다. 당초 여성을 ‘악마의 통로’로 저주해 온 기독교문화나, 순종을 여성의 미덕으로 추구해온 유교문화나, ‘여신불성불(女身不成佛)’로 여성을 도외시해온 불교문화를 막론하고 이른바 제도종교(institutionalized religions)가 샤머니즘과 같은 확산종교(diffused religions)보다도 더 심한 여성차별제도를 고수해 왔다는 것이 종래 학계의 중론이다. 그래서 역사는 여성차별의 역사라고까지 말하는 것이다.
제도종교로서의 이슬람도 과연 그러할까. 조건부로 허용된 ‘일부다처제’가 미개시대의 그것과 동일시되고, 보호의 차원에서 관행이 된 여성들의 남성 외면이나 ‘히자브(hijab, 얼굴가리개)’ 관습이 후궁(後宮)들을 환관(宦官)이 감시하면서 별거시키기 위해 만든 동로마시대의 ‘하렘제도(harem system, 후궁격리제도)’와 일맥상통한 것으로 오도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근간에는 아프가니스탄의 무지막지한 텔레반 정권의 비이슬람적 여성차별시책을 보고 마치 그것이 ‘이슬람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슬람은 단순히 권리와 의무에서의 남녀간 평등이란 보편개념을 초월하여 인격적 차원에서 여성과 남성을 동격시한다. 우선, 이슬람은 남녀의 공동 창조를 믿는다. 물론 이브(일명 하와)가 아담에서 창조되었다는 창세기의 전언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담의 ‘남아도는 뼈’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인간 창조에서 불가결한 2대 요소의 하나로 당당하게 창조된 것이며, 창조된 후에는 공동으로 인간을 번식시켜 왔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브가 아담을 유혹하여 신의(神意)를 배반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유혹을 받아 죄를 공범했다고 본다. 오히려 아담쪽에 죄가 더 많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일단 그들이 회개한 이상 알라(하느님)는 동격체로서 함께 용서하고 구제를 베풀었다.
바로 이 때문에 이슬람에서는 동격체로 창조된 여성을 결코 ‘악마의 통로’나 ‘하수구 위에 지어진 전당’ ‘하느님의 형상인 남성을 파괴한’ 원죄인(原罪人)으로 단죄하거나 혐오하지 않으며, 남성을 여성의 ‘머리’로 둔갑시키거나 여성은 ‘남성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설파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남녀로 하여금 서로가 보호자요 관리자요 협력자임을 자임케 한다. 경전 ‘꾸르안’은 이러한 동격체적인 상부상조의 관계를 “여성은 남성의 옷(리바스)이고, 남성은 여성의 옷”이란 간결한 말로 표현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숙명적인 상관성으로 인해 남녀는 공동으로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동으로 사회와 가정을 꾸려나가야 할 의무를 함께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남녀가 보호자, 협력자란 입장에서 서로의 결합, 즉 결혼으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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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값 ‘마흐르’는 신부가 소유
이슬람에서 결혼은 사회적 의무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 의무이기도 하다. 결혼은 남녀 당사자와 알라간의 엄숙한 약속으로서 그 의의로 말하면 개인이 수행하는 종교적 의무의 절반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리하여 결혼을 신성시하고 의무로 여겨 적극 권장하지, 패륜으로 기피하거나 죄악시하지 않는다. 이에 결혼부정관이나 혐오관, 독신주의, 그리고 남존여비와 부창부수(夫唱婦隨), 삼종지도(三從之道)와 칠거지악(七去之惡) 같은 여성 기피나 비하의 윤리도덕은 이슬람사회의 혼인제도나 부부관계에서는 양립할 수 없다.
초기 기독교는 결혼을 부정하고 독신주의를 권장했다. 바울은 음행(淫行)이 성행하니 할 수 없이 남녀가 결합하기는 하는데, 최선책은 약혼녀마저도 결혼하지 않는 것(고린도전서 7장38절)이라고 하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부부간의 쾌락은 ‘용서 가능한 죄’이며 여성의 영혼은 소중하나 그 육체는 ‘적으로 증오해야 한다’고 설교했다. 다행히 루터 같은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결혼이 긍정시되고 성서적 의도가 복원되어 ‘독신주의’가 부정됐다.
다음으로, 이슬람은 권리의 부여와 행사에서 여성을 동격시한다. 이슬람에서는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알라에게 복종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남성과 동등한 종교적 권리를 향유하게 된다. 여성은 신앙과 그로부터 오는 보상을 남성과 똑같이 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 남녀는 알라 앞에서 동등한 인격체로서 신앙에 충실하기만 하면 성차(性差) 없이 필히 응보(應報)가 있게 마련이다.
혼인문제에서도 여성은 자기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여성은 남자의 청혼을 거절할 수 있으며, 남자로부터의 마흐르(mahr, 신부값)는 전적으로 신부가 소유한다. 비록 의무가 되어 있지만, 신부의 소신에 따라 마흐르를 사양할 수도 있다. 마흐르란 남녀간의 합법적 결합의 상징으로서 남자가 약혼녀에게 지불하는 신부값(bride-price)이다. 이것은 결혼시 신부가 지참하는 지참금과는 다르다.
마흐르는 “여인들에게 마흐르를 선물로 줄지어다”(4-4)라는 경전의 계시에 따라 의무가 되었다. 마흐르뿐만 아니라, 부인의 모든 사유재산에 대하여 남편은 간여할 권리가 없다. 결혼 후 부인이 남편이 성을 따르는 취성(取姓) 관행도 없다. 이혼문제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지만 남편이 가족 부양 등 소정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아내가 주도적으로 이혼을 제기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혼인문제에서 무슬림 여성들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다른 전통사회의 그것에 비해 월등하다고 말해도 좋다.
여성의 동격성과 자립성을 확보하는 데서 재산권과 상속권의 보장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슬람법에 의해 여성은 자신의 사유재산에 대해 절대적인 권리를 행사한다. 성년이 된 여성은 부친이나 형제, 남편, 자식, 그리고 그 누구와의 상의 없이 재산을 자의로 처리할 권리를 갖고 있다. 재산의 취득 기회도 남성과 동등한 바, 상속이나 증여, 본인의 노력에 의해 재산을 임의로 취득·축적할 수 있다. 이러한 권리는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공인·보장된 여성 본연의 권리로서 결코 타인(예컨대 남편)과의 어떤 계약에 의해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 초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곧 요지부동의 법규로 굳어져서 실천해온 이러한 무슬림 여성의 권리 행사는 근세까지 여성을 ‘행위무능자(行爲無能者)’로 규정하여 아내의 재산권을 일절 인정하지 않았던 서구의 여성상과는 분명하게 대조적이다. 프랑스혁명은 자유·평등·박애라는 인권선언(1789)을 했지만, 남녀의 성적 평등에는 지극히 인색했다.
시민은 ‘능동적 시민’과 ‘수동적 시민’으로 양분되고, 후자에 속하는 무재산의 여성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민법전(民法典)에도 아내의 재산권과 소송권이 완전히 배제되었다. 이런 것들이 바로 근세에 와서 유럽에서 여권운동이나 남녀평등권 운동이 일어나게 된 역사적 배경이다.
이슬람은 여성의 재산권과 더불어 상속권도 경전이나 성법(聖法)에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경전 ‘꾸르안’에는 “남자에게는 부모와 가까운 친척이 남긴 재산의 몫이 있으며, 여자에게도 부모와 가까운 친척이 남긴 재산의 몫이 있나니, 각자에게는 적건 많건 간에 규정된 몫이 차려지리라”(4-7)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밖에 4장 8~12절에는 상속인과 상속액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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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기, 생리기에는 종교 의무 면제
이슬람은 의무의 부여와 수행에서도 여성을 동격시한다. 5대 종교의무의 실천에서 여성의 생리적 특성을 고려해 극히 일부의 항목만이 조건부로 면제·순연될 뿐, 모든 종교적 의무가 남성과 똑같이 부여된다. 여성의 종교적 의무 수행에서 조건부으로 면제·순연되는 일로는 산욕기(産褥期, 약 40일간)나 수유기(授乳期), 생리기(生理期)가 금식월(라마단)과 겹칠 경우는 금식을 일시 중단하고 뒤로 미루었다가 결여기간만큼 보충해야 한다. 중단기간에 가능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 것(식사 제공 등)을 권장한다. 여성의 사회윤리적 의무도 남성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이슬람은 남녀가 모두 알라의 피조물로서 본질적으로 평등한 동격체이지만 서로의 생물물리적 및 사회문화적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과 책임이나 기능이 꼭 같을 수는, 즉 공평할 수는 없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법제나 관행상에서 남녀간에 구별이 있게 마련이며, 여성에게 특별한 배려나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믿는다. 요컨대 남녀가 경합적인 관계가 아니라, 보완적이고 공동체적인 관계에 있기는 하지만 서로간의 ‘평등’과 ‘공평’이 무조건 동일시될 수는 없으며 ‘타프리까(tafriqah)’ 즉 유별(有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별관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 이슬람의 여성상에 대한 많은 오해와 왜곡이 야기되고 있다. 경전 속의 관련 계시가 오해되는가 하면 상속액에서의 남녀간의 차이와 남편에 의한 아내의 부양이 남성우월주의와 남존여비로 비쳐지고, 마흐르(신부값)로 치러지는 혼인이 구래의 매매혼(賣買婚)으로 매도되며, 유별이 불평등이나 불공평과 등식화되기도 한다.
이슬람에서는 예배시 남녀를 구별한다. 집단예배를 비롯해 남녀가 함께 예배를 할 경우 여성들은 남성들의 뒤편에서 따로 근행한다. 외견상 이것은 남녀간의 차별로 보여질 수 있으나, 사실은 ‘남성은 시각과 후각에 약하고, 여성은 촉각과 청각에 약하다’는 남녀간의 본능적인 성차심리(性差心理)를 그대로 파악하고 예배를 잡념 없이 근엄하게 진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나온 일종의 지혜다. 착석부동(着席不動)이 아니라, 좌립(坐立)을 반복하는 예배동작에서 남녀가 육체적으로 접촉할 수도 있고 서로가 한눈을 팔 수도 있다는 성차심리로부터 오는 유별의식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슬람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공경(꾸누트)하고 따르며 남편의 명예를 지키는 것을 여성의 미덕으로 본다. 이의 반대급부로 남성은 ‘알라께서 대단히 유익한 존재로 되게 한’ 여성을 친절히 대하고 미워하지 말 것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경전에는 “여인들을 친절히 대하라. 만약 너희들이 그녀들을 미워한다면 그것은 알라께서 대단히 유익한 존재로 되게 하신 것을 미워하는 것과 같을지니라”(4-19)라고 씌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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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어머니의 발 밑에 있다”
그러나 아내가 이러한 미덕을 저버리고 남편을 공경하지 않으며 여성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먼저 충고를 하고, 안되면 집안에서 별거생활을 하다가 그것마저도 안되면 가볍게 상처가 나지 않을 정도로 때려준다. 만일 그래도 풀리지 않으면 양측의 친척 중에서 각각 한 명씩의 중재자를 내어 절충을 시도한다. 이것마저도 실패하면 그제야 이혼을 공식화한다. 이러한 수순은 경전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다. 여기에서 보다시피 남편에 대한 아내의 공경문제나 그를 에워싸고 발생한 분규의 해결책은 남녀 유별에서 오는 남성의 지위나 권리 행사이지 결코 가부장적인 남성일방주의는 아니다.
이슬람의 여성유별관은 여성에 대한 여러가지 특혜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슬람은 부모에 대한 효도(발르)를 알라의 지고한 명령으로 받아들이며 인간행위의 규범 중에서 의무사항(와지브)으로 규정하고 있다. ‘꾸르안’에는 “너희 주님은 명하셨느니라. 나 외에 아무도 경배하지 말고 부모에게 선행을 베풀고, 부모 중의 한 분이나 두 분 모두가 늙으시면 절대로 싫다거나 비난하는 말을 하지 말고 좋은 말만 할지어다”(17-23)라고 부모에 대한 효도를 명하고 있다.
부모 중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우대와 효도는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무슬림들은 교조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에서 이러한 교범을 찾고 있다. 교조는 누구를 잘 보살펴야 하는가 하는 한 신자의 물음에 답하면서 “천국은 어머니의 발 밑에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래서 자식이 품고 있는 애정의 4분의 3은 어머니의 것이고 나머지 4분의 1은 아버지의 것이라는 경모(敬母)의 속담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렇듯 보살핌이 강조되는 이슬람에서 여성은 각종 혜택을 누리고 있다. 생리기간이나 출산 전후에는 종교의무를 면제받고 금요일 집단예배에는 임의의 참여권이 부여되며 마흐르는 아내의 전속물이다. 또한 가족 부양의 책임은 전적으로 남편의 몫이어서 여성이 가족 부양 때문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으며, 여자는 딸이면 아버지의, 누이동생이면 오빠의 부양을 받는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슬람의 여성유별관은 일반 여성학에서의 성차관(性差觀)과 개념은 비슷하지만 생물물리적 및 사회문화적 요인의 복합성을 좀더 강조하고 모성에게 각별한 특혜를 베푸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이슬람의 여성유별관은 남자를 우주 창조의 근원으로서 소위 고귀함과 활동성을 나타내는 하늘로 간주하고 여자는 비천함과 소극성, 순종성의 상징으로 땅에 비유하는 ‘주역(周易)’의 상하존비(上下尊卑)와 여필종부(女必從夫) 사상에서 발원하는 남녀 칠세 부동석식 유교의 남녀차별관과도 판연히 다르다.
이슬람은 여성들이 비록 남성과 동격체로서 존재하고 평등권을 행사하지만 여러가지 유별(有別)되는 점이 있어서 그들에게 특혜가 주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각방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에서의 여성 보호는 남성과 사회에 의한 보호와 부양, 그리고 여성으로 인해 발생 가능한 문란과 패륜으로부터의 사회 보호 등 몇가지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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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성 중시하는 일부다처제
이슬람은 여성의 육체적 연약성과 사회활동의 제약성, 그리고 여성에 대한 특별한 관심의 필요성에서 출발하여 여성에 대한 남성과 사회의 보호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일례가 이슬람의 여성상 하면 으레 회자인구(膾炙人口)되고 있는 일부다처제다.
일부다처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종 유행해온 일종의 혼인제도다. 일반적으로 일부다처의 발생 동인은 여자의 수가 남자의 수를 능가하거나, 한 명 이상의 여성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남성의 욕구, 그리고 많은 자손을 갖고자 하는 욕망 등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슬람사회에서 일부다처가 발생하게 된 것은 어느 동인에 해당하며, 제도로서 장기간 존속할 수 있게 하는 요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꾸르안’ 속에는 유일하게 일부다처의 허용을 시사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만일 너희가 고아들을 공평하게 대해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면 결혼을 할 것이니 너희가 마음에 드는 여인으로 둘, 셋 또는 넷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을 공평하게 대해 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면 한 여인이나 아니면 너희 오른손이 소유한 것(노비)을 취할 것이다. 그것이 너희가 부정을 범하지 아니할 최선의 길이다.”(4-3)
이 구절은 이슬람 초창기 두 번의 힘겨운 전투에서 수많은 남자 군사들이 사상(死傷)당한 후에 내려진 계시다. 이렇게 남자들이 당한 사상은 많은 과부들과 고아들을 배출하고 그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제 그들을 구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도는 한 남자가 여러 아내를 맞아들이는 것뿐이었다. 이것이 바로 초기 이슬람사회에서 일부다처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직접적 동인이다. 요컨대 여성들을 구제하고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이슬람의 일부다처제는 발생론적으로 보면 여성 보호를 포함한 사회연대라는 윤리적 요청에 부응하여 출현한 것이다. 이와 같이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출현한 제도지만, 그 제도를 확립하고 유지하는 데는 거의 종교적 신앙에 가까운 단서가 붙어 있다. 앞 경전 구절에서 보다시피 남편은 아내들을 편애 없이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이 공평성이 지켜지지 않을 때 이 제도는 성립 불가하며, 설령 결혼했어도 아내의 합법적인 이혼조건이 된다.
일부다처제를 지탱해주는 이러한 공평성의 주요한 내용으로는 아내들의 공동거주, 공정부양, 공평상속 등이 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성차심리를 가진 여인들에 대해 이러한 불편부당한 공평성이 지켜지겠는가 하는 것이 상식적인 의문으로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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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가리개는 일종의 관행
이에 대해 경전에는 아내들을 ‘공평하게 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그렇다고 하여 다른 아내들을 무시하고 한 아내만을 편애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과 더불어 한 남편이 여러 아내들을 부양해야 할 부담을 감안할 때, 일부다처제는 애초부터 일정한 조건에서만 허용되고 또 가능한 혼인제도로 결코 당위성이나 편재성을 띤 혼인제도는 아님을 알 수 있다.
바로 문제의 이러한 양면성 때문에 오늘에 와서 이 제도의 존속 여부를 놓고 의론이 일고 있으며, 이슬람 나라들은 법적으로 금지시키거나(튀니지, 터키 등), 그대로 존속시키거나(모로코, 이집트 등), 아니면 절충적 방법으로 재판소의 허락 등 조건부적으로 허용하는(시리아, 파키스탄 등) 등 제각기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시대의 발전에 따라 이 제도는 점차 유명무실화하고 있다.
이슬람은 혼인문제에서도 여성 보호에 세심하게 배려한다. 예컨대 남편이 지불하는 마흐르는 보통 결혼서약을 할 때 결정하고 지불하는데, 결혼하기 전에 파혼하게 되면 그 절반을 신부가 차지하며, 만일 약혼남자가 사망하면 마흐르는 물론, 남자의 상속권마저도 약혼녀가 취득하게 된다. 그리고 가정의 안정과 여성의 권익 보호를 위해 이혼을 ‘알라가 허용하는 일 중에서 가장 혐오하는 일’로 낙인하고 가급적이면 억제하며 이혼권은 아내에게도 부여된다.
이혼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이혼을 선언한 후 3개월간의 이른바 ‘잇다’, 즉 ‘대기기간’을 설정하고 재결합을 권유하며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도 한다. 이 기간에 재혼은 금지된다. 이러한 보호와 더불어 여성에 대한 남성과 사회의 부양을 의무로 하고 있다. 마흐르와 함께 부양(나파까)을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일차적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데, 만일 남편이 이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아내는 법적으로 부양청구권을 발동할 수 있으며 심지어 이것을 이유로 이혼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이슬람에서의 여성 보호는 사회 보호와 밀접한 상관성을 갖고 있다. 여성들의 히자브(차폐, 차단) 관행은 그 일단을 설명해주고 있다. ‘히자브’는 아랍어로 ‘차폐(가리개)’ ‘씌우개’ ‘차단(가로막기)’ 등의 뜻을 가진 단어로서 가리기 위해 착용하는 웃옷(表衣)이나 너울 등을 통칭한다. 여성의 생활관습으로서의 히자브는 여성을 보호하고, 또 여성의 노출로 인해 발생 가능한 사회적 문란과 비리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관행으로 해석한다.
사실 이러한 관행은 무슬림 여성들뿐만 아니라 동서고금 여러 나라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원래 히자브는 여성과 사회 보호의 차원에서 발단된 일종의 관행이지 결코 어떤 구속력을 가진 제도나 규정은 아니다. 그리하여 오늘 이슬람 나라들에서는 그 착용에 대해 폐지하거나 고수하거나, 자유에 맡기는 등 서로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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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과 검정색 선호
이슬람의 의식주문화는 전통과 종교적 규범에 의해 형성·유지되어 오는데, 그 두드러진 특징은 검소함이다. 복식은 기후에 적응된 검소한 차림으로서 겉옷은 대체로 헐렁한 통옷이다. 시류에 편승해 요즘은 좀 달라졌지만, 원래 비단옷을 입거나 금·은으로 장식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남성인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옷색은 순결과 깨끗함을 상징하는 흰색과 힘과 인내를 뜻하는 검정색을 선호한다. 식별도 용이한 검정색은 한때 흑의대식(黑衣大食), 즉 압바스조 이슬람제국의 상징색이기도 했다.
독특한 복식으로는 남자의 두건(쿠피야)과 여자의 히자브(얼굴가리개), 남녀의 겉통옷(질바브, 아바), 그리고 성지순례 때 걸치는 계의(戒衣 : 이흐람, 바느질을 하지 않은 흰 천 두 조각)를 들 수 있다. 남자들은 성년이 되기 바쁘게 수염을 기르는데, 이것은 교조 무함마드를 모방한 것으로서 존엄과 성년을 의미한다. 신발은 뒤축을 꺾어 신는 십시브(일명 쿳프)가 유행이다.
식생활에서는 카밥(고치구이)이나 통양구이 같은 구이음식이 특징이며 육식 위주다. 빵이 주식인데,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농경유물(7000~8000년 전)에서 밀가루를 빻은 흔적이 있는 절구 유물이 발견된 점으로 보아 빵의 역사는 셈족 아랍인들이 가장 오래 된 것 같다. 게나 새우 같이 비늘이 없는 해산물만을 먹으며, 자고로 아랍식 커피(원두커피)나 차문화가 발달했다. 생박하 잎을 띄운 홍차는 별미다. 각양각색의 단과류(할라와)는 꿀 이상으로 달다.
유의할 점은 금식물(禁食物)인데, 여기에는 돼지나 개고기, 동물의 피나 비이슬람식으로 잡은 고기 등이 속한다. 돼지고기는 지방이 많아 변질이 쉬우며, 그것은 곧 발병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이슬람 초기부터 금식하였는데, 그것이 종교적으로 금기(하람)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동물을 도살할 때는 반드시 ‘비스밀라(알라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하고 도살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잡은 고기는 이슬람 도살법에 어긋나므로 금기시된다.
식전 식후에는 알라께 감사한다는 뜻으로 ‘비스밀라!’를 꼭 한번 외우며, 식사는 반드시 오른손으로 한다. 이슬람문화는 오른손 문화다. 어차피 두 손 중에서 한 손은 궂은 일을 하게 마련인데, 이슬람에서는 그 역을 왼손이 담당한다. 식사를 한다든가 선물을 준다든가 안내를 한다든가 하는 좋은 일은 오른손으로 하고, 용변이나 신발을 닦고 코를 풀 때는 왼손을 쓴다. 화장실에는 왼발을 먼저 들여놓는다. 손톱은 오른손톱부터 먼저 깎고 칫솔질도 오른쪽부터 시작한다.
무슬림들의 전통가옥은 작은 문(2중창)에 4각형 구조다. 그들은 벽소파를 갖춘 응접실을 꾸미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 예배 전에 물로 세정(洗淨)을 하고 용변 후에도 휴지 대신 물로 닦아내야 하기 때문에 화장실에는 반드시 세정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실내외에서 성지 메카쪽을 향해 용변을 보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로 규탄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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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출생하면 경전 구절 들려줘
이슬람에는 평생 한번은 통과해야 할 통과의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출생의례다. 아기가 출생하면 첫 의식으로 아기의 오른쪽 귀에 대고 ‘아잔’, 즉 사원에서 예배시간을 알리면서 예배를 촉구하는 고사(告辭)를, 왼쪽 귀에 대고는 ‘이까마’, 즉 예배 전에 염송하는 경전구절을 읽어준다. 가장 신성한 알라의 소리를 전달한다는 의미에서 이때부터 아기는 무슬림이 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경전을 주머니에 넣어 메카쪽을 향해 걸어놓기도 한다.
출생 이레만에는 작명(作名)하는 ‘아끼까’의식을 치른다. 축복받은 의미에서 그 보답으로 양을 잡아 구차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친척 부인들이 아기 보러 오는데, 올 때 액땜으로 소금을 뿌린다. 그녀들은 흉안(凶眼)의 시기가 두려워 아기가 예쁘다고 안한다. 이날 아기의 머리카락을 모두 깎아 그 무게만큼의 금이나 동등한 가치를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희사한다. 이름은 대체로 현자(賢者)의 이름을 따서 쓰는데, 남자인 경우 교조 무함마드의 이름이 가장 많다.
남아는 꼭 할례(割禮)를 하는데, 생후 일곱번째 날이나 7~12세 때 행하는 것이 관례다. 할례는 남성다움과 용감성의 상징이며, 이로써 공동체의 성원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할례는 축제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애는 돌아다니면서 어른들께 인사하고, 주위에서는 축하하고 격려해준다. 아직까지 수단이나 요르단, 그리고 사막의 부족들 속에 남아있는 여아의 할례 풍습은 음핵 절제로 혼전 성관계를 방지하고 순결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하나, 대부분의 이슬람 법학자들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이슬람에서 죽음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과정이며 영원한 삶에 이르는 교량이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장례는 비교적 간소하게 치른다. 시신은 염습(殮襲)을 하며 24시간 내에 매장한다. 관 없이 토장(土葬)하는데, 묘역은 대단히 검소하다. 첫 3일간 주로 경전 염송으로 추모의식을 가지며 40일간 유족들은 화려한 복식을 삼간다. 장례는 소속 사원에서 간단하게 치르고 나서 묘지로 향한다. 행렬 앞에 서너 마리의 낙타가 빵이나 물을 싣고 가서 무덤 근처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한다. 행렬이 지나가면 여인들은 특유의 입소리(자그라드)로 애도를 표시한다.
이슬람에는 3대 명절을 비롯해 몇 개의 종교명절이 있다. 지역마다 전통명절도 따로 있다. 3대 명절은 교조 무함마드의 탄생일(마우리둣 나비)과 개재절(開齋節, 이둘 피트르), 희생절(犧牲節, 이둘 아드하)이다. 탄생일은 이슬람력 3월12일(탄생년은 미상)인데, 이날은 주로 사원에 모여 무함마드의 공덕을 기리는 행사를 거행한다. 공교롭게도 그의 사망일도 바로 이날(632)이라고 한다. 개재절은 이슬람력 9월 한 달간 금식을 하고 나서 10월1일부터 3일간 쇠는데, 첫날에 무슬림들은 5대 종교의무의 하나인 종교부금(宗敎賦金, 자카트)을 납부한다.
희생절은 매해 성지순례가 끝나는 이슬람력 12월10일부터 시작하여 보통 3일간 쇤다. 희생물은 양이 가장 보편적이다. 본래 양은 한 사람당 한 마리, 낙타와 소는 7명당 한 마리씩 잡기로 되어 있으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고 대체로 집집마다 양 한 마리 정도 잡는다. 잡은 고기의 3분의 1은 본인이 쓰고, 3분의 1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머지 3분의 1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되어 있다.
이 3대 명절 외에 뜻있게 기리는 날로는 무함마드가 621년 7월27일 천사 가브리엘의 안내를 받아 날개 달린 천마(天馬, 바라끄)를 타고 메카의 금사(禁寺)를 떠나 예루살렘의 원사(遠寺)를 거쳐 승천했다가 여명 전에 돌아왔다고 하는 이른바 야행승천(夜行昇天, 사다리라는 뜻의 미르아즈)을 기념하는 승천절(昇天節)이 있다. 또 이슬람력 9월(금식월, 라마단) 27일 밤에 ‘꾸르안’의 계시가 처음으로 내려졌다고 하여 이날 밤을 ‘결정의 밤(라이라툴 까드르)’이라고 하여 기념한다. 온 밤 기도를 드리는데, 이 하룻밤의 기도는 평시 1000달의 기도보다 낫다고 한다.(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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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는 중요한 교제 수단
외향적인 의식구조를 가진 무슬림들의 교제문화는 상당히 발달했다. 우선 만나는 인사부터가 무척 화려하다. 원래 상극관계가 지배적인 유목사회에서 인사는 서로에게 적의가 없음을 표명하고 안전을 도모하려는 의도에서 행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슬람공동체가 결성되면서 상생을 실현하고 유대를 강화하려는 종교적 이념에서 인사는 하나의 중요한 교제수단으로 중시되면서 다양한 방법을 취하게 되었다.
경전에는 “그대가 인사를 받을 때 더 나은 말로 하거나, 아니면 그와 동등한 말로 답하라”(4-86)고 했으며, ‘하디스’에서는 “말하기 전에 인사부터 먼저 하라” “그 누구도 인사를 할 때까지 식사에 초대하지 말라”고 인사의 중요성과 방법까지 역설하고 있다.
인사방법에는 말이나 악수, 입맞춤, 포옹, 웃어른의 손에 입맞춤하는 것이 유행이다. 간혹 손을 가슴이나 입술, 이마에 가져다 대기도 하는데, 이것은 상대가 자신의 마음이나 말, 생각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친절의 표시다. 특히 장황하리만치 긴 인사말이 아주 인상적이다. 인사말 가운데는 알라와 결부된 말이 빠지지 않는다.
좋은 일에 ‘함둘릴 라(알라께 찬미를)’, 여행의 안녕을 빌어서 “알라 마아카(알라께서 당신과 함께)’, 축하하는 자리에서 ‘알라 유바릭 카’(알라께서 당신을 축하하시기를), 병 문안 시에 ‘알라 유슈피 카(알라께서 당신을 치유해주시기를)’ 등 좋은 일에 대한 인사말은 꼭 알라와 연관시킨다. 알라에 대한 믿음이 투철한 사람들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인사에는 순서가 있다. 일상에서 장유유서(長幼有序) 개념이 우리와 못지않은 무슬림들은 꼭 어른에게 먼저 인사를 올린다. 말 탄 자가 걷는 자에게, 걷는 자가 앉은 자에게 먼저 인사를 한다. 남자가 먼저 여자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지만, 여자는 화답 안해도 무례가 아니다. 여자가 먼저 남자에게 인사를 하는 것은 결례로 삼가야 한다. 가장 보편적인 인사말은 언제 어디서나 하는 ‘앗쌀람 알라이 쿰’(평화가 당신에게, 대답은 ‘알라이쿰 쌀람’, 당신에게도 평화를. ‘안녕하십니까’에 해당), ‘아흘란 워 싸흘란’(한 집안 사람으로 여기고 편의를 제공하겠습니다. 대답은 같은 말을 반복. ‘열렬히 환영합니다’에 해당)이란 말이다.
무슬림들은 손님에 대한 환대를 미덕으로 생각하고 친절히 접대한다. 차린 음식은 많이 먹어주는 것이 환대에 대한 보답이고 주인에 대한 존경이라고 기뻐한다. 선물을 선호하는 편인데, 반드시 오른손으로 주고받아야 한다.
교제시 지켜야 할 예절로는 대화할 때는 상대와 1m 이내의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접대용 커피나 차는 즐겁게 소리내어 마심으로써 만족을 표해야 한다. 주인의 소유물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는 것이 좋다. 관심을 가지면 달라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윗사람 앞에서는 흡연을 삼가고, 대화시 발바닥을 상대방에게 향하는 것을 큰 모욕으로 여긴다는 데 유념해야 한다.
이슬람세계도 겉보기에는 이슬람 일색인 것 같지만 후미진 구석을 샅샅이 훑어보면 이슬람과는 어울리지 않는 토속신앙과 미신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 여전히 잠재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출현 초기부터 우상숭배를 ‘제1 공적(公敵)’으로 선포하고 그 타도에 여념이 없었던 이슬람도 흡사 우상숭배와도 같은 토속신앙만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가보다. 이것이 토속(민속)의 근기이고 저력일진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토속신앙도 종교의 한 형태인 동시에 생활문화의 한 구성요소라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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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토속신앙
이슬람의 신관(神觀) 중에는 비중은 작지만 무시 못할 진(精靈)신앙이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진신앙이 토속신앙으로서의 기능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슬람신앙과 토속신앙간의 융합으로도 볼 수 있다. 알라와 인간 사이의 중재자가 천사라면, 천사와 인간 사이의 중재자는 바로 진이다. 진은 불로 창조된 무형의 존재로서 선한 진(이슬람이 신봉하는)과 악한 진(악마, 사탄, 우두머리는 이블리스)이 있다. 진은 빛을 싫어하고 어둠을 좋아한다. 이러한 진 때문에 밤중에 쓰고 난 구정물을 땅 위에 버리지 않고 있다가 다음날 해가 뜬 뒤에 버린다.
땅에 머무르는 진이 물을 맞으면 화를 낸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낮에 물을 버리는 경우도 진에게 용서를 비는 말을 하거나 알라께 진을 쫓아달라고 청한다. 특히 월요일과 금요일 밤에 진을 경계한다. 월요일은 교조 무함마드가 탄생하고 사망한 날, 또 메카로부터 마디나에로의 성천(聖遷, 622년)이 있은 날로 진이 잔뜩 긴장하므로 진과의 충돌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금요일 밤은 휴일 밤으로 진은 긴장이 풀린 사람들을 해할 기회를 노리니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애가 어둠 속에서 땅에 넘어지면 엄마는 그곳에 물과 소금을 뿌린다. 진은 넘어지는 것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착각하기 쉬우니, 진과의 우정을 상징하는 소금과 순수와 적개심의 해소를 뜻하는 물을 뿌림으로써 공격의도가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또한 진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변소에 들어가거나 우물에 두레박을 내리거나 불을 붙일 때에는 진의 허락을 구하는 말을 한다. 아무튼 사탄으로서의 진은 인간을 늘 위협한다고 여긴다.
무슬림들의 초자연적 믿음에는 점복(占卜, 이쓰티카라)도 한몫하고 있다. 원래 ‘이쓰티카라’라는 말은 아랍어로 신으로부터 복 또는 올바른 길을 구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신(알라)이 인간에게 길흉을 점쳐주는 점술사로 변모하여 점복을 관장하게 된 셈이다. 경전 ‘꾸르안’의 개경장(開經章)과 알라의 유일성을 집중적으로 설파했다고 해서 경전 중 가장 중요한 장으로 인정받는 112장, “알라만이 우주의 비밀을 알고 계신다”는 내용의 6장59절을 3번 읽고나서 경전이 열린 채 떨어지게 하든지, 아니면 임의로 펼친다.
열린 우측 페이지의 일곱번째 행에서 답을 구한다. 점괘인 셈이다. 행의 단어들은 직접적으로 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긍정과 부정, 선과 악, 행운과 불행의 의미는 암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일부에서는 이 페이지에 나온 두 글자 ‘카우(kh)’와 ‘쉰(sh)’의 출현 횟수로 운을 점친다. 여기에서 ‘kh’는 ‘khair(복)’을, ‘sh는 ‘sharr(악)’을 각각 의미한다고 풀이한다.
다른 한 가지로 시기(猜忌)의 눈인 ‘흉안(凶眼)’ 미신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남의 성공이나 장점을 시기하고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이 악의 본산인 흉안이라고 믿는 터여서 아이가 병든 것은 바로 이 흉안의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부적을 외는 여자를 청해온다. 그녀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알라의 힘으로 흉안을 몰아내는 주문을 줄줄이 외워댄다. 이를테면 벽사진경(邪進慶)의 액땜이다. 우연을 바라는 일종의 미신행위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