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지? 안성에서의 여행이라니..ㅋㅋ
6년 째 내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곳.. -_-;
근데 이번 주말에.. 안성으로 진짜 여행을 다녀왔어..
전엔..안성 가면 학교랑 내리.. 기껏해야 안성 시내..아, 죽산도 다녀왔구나..
죽산이야 정말 아름다웠지만.. 어쨌든 내게 있어서 안성은..
뭐 그저 그런.. 절망스러운 기억으로 가득한.. 황량하기만 한 곳이었는데..
와우~.. 안성. 생각보다 되게 넓고 또 아름다운 곳이었어..
안성 시민들의 유원지(?!) 대림동산에 강(안성천?)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구..
너비가 넓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두 일단 물이라는 게 흐르는 걸 보면..
사람 마음이 좀 차분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잖아... :)
대림동산 안쪽으로 비포장된 오솔길..
풀벌레 소리.. 새소리.. 흙냄새.. 간간이 들려오는 염소 울음소리..
그 길 따라 주욱 주욱 들어가다 보니깐.. 진짜 시골 농가들..
간간히 폐가도 나오고.. 내가 좋아하는 흙집들도 즐비한데.. :)
비현실적으로 선명한.. 색종이 마냥 파란 하늘과..
고개숙이기 시작한 벼 이삭들의 깊은 연둣빛..
백일홍보다도 더욱 치열한 붉은 빛깔의 맨드라미가 어우러진..
자연이 연주하는 '가을'이라는 제목의 교향곡.
홍신자 선생님이나 김아라 선생님 같은 분들이..
왜 안성이라는 곳에 터를 잡았는지 팍팍! 이해가 되드라구..
나두 나중에 괜찮은 터 하나 잡고싶은 맘이 들 정도로.. 헤헤~
그러구.. 남사당패의 본거지였던 '청룡사'. 연극사 시간에 배운 적이 있는.
그게 안성에 있거덩. 거기두 갔었어.. 남사당패의 본거지...
날씨가 따뜻할 때엔.. 전국 이곳 저곳을 유랑하던 남사당패가..
추운 계절이 오면.. 그곳에서 기예를 연마하며 겨울을 났던 곳이지..
머릿속에 그려 보았던 것보다는.. 작은 규모..
대웅전은 공사중이라 밖에서 그저 기웃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약수물(?)은 수도꼭지에서 나오고 있고... ^^;
새로 지은.. 아직 단청도 그리지 않은 목조 기와 건물은 생뚱해보이기만 하고..ㅋㅋ
근데.. 무엇이 인상적이었냐면 말야.. 대웅전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매우 오래된.. 배배 꼬이고 쩍쩍 금도 가 있는 나무 기둥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꽤 오래된 듯 해 보이는.. 나무 현판 같은 거..
한자로 뭐라고 글자들이 가득 차 있긴 했지만.. 색깔도 너무 바래고..
어쩌다 잘 보이는 것은 무슨 글잔지 알 수가 없고.. 그래서 무엇인진 잘 모르겠드라.
학교 다닐 때.. 한문 시간에 조금만 땡땡이를 덜 쳤어도.. ^^;
그리고..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목조 건물.. 역시 무슨 용도였는진 잘 모르겠어..
뭐.. 절 안에 있는 건물들 중 하나였겠지.. ^^;
그 화려했던 단청마저 바래버린.. 제멋대로 금간 나무 기둥과..
삐죽빼죽.. 비대칭적인 선을 그리는 벽의 면들..
정직한 격자무늬의 문살.. 벌레 먹은 마룻바닥..
건물 아랫쪽에 시멘트로 마구잡이로 칠해놓은 게 좀 안타깝긴 했지만.. 어찌나 정겨운 느낌이 들던지... :)
아차! 해우소...!! 으아... 경악 그 자체..
절간 화장실에 가고싶어서.. 밖에 있던 공중 화장실 안 가구 일부러 글루 간 거였는데..
재래식인 거야 당연한 거지만..
문 없고 칸막이만 되어 있는 화장실에.. 벽에 뚫린 창문들..
앉은 자세에서 밖에 사람이 지나간다면 눈이라도 마주칠 법한.. 으아..
재래식 화장실 치고 깨끗한 편이긴 했지만.. 도무지 갈 마음이 안 나더군.. -_-;
서운산 중턱에 자리한 청룡사 바로 앞엔 아주 조그만 실개천이 흘러.
'서운산성'이라는 곳에 가볼까 해서.. 그 실개천을 따라 위로 위로 올라가는데......
이 구절 기억나지?
"산 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지경......"
이효석 단편 '메밀꽃 필 무렵'..
난 메밀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
메밀이 어떻게 생긴 건지두 몰랐었구.. 그런데.. 그곳..
서운산 중턱에.. 하얗게 무리지어 피어있는 꽃들을 본 순간!
바로 그 구절을 떠올리며.. 바로 이것이 메밀꽃이구나~ 하고 직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새하얀.. 꽃잎들..
차마.. 아름답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난 그저 감동할 수 밖에....
실개천을 따라 계속 올라가다 보니..
'은적암'의 방향을 나타내는 표지판이 보여..
어떤 곳일진 모르지만.. 애초의 목적지 '서운산성'보다는 이곳이 좀 더 땡기더라고.
아직 가본 적이 없는 전남 여수의 '은적사'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나는..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망설이지 않고 그 길로 방향을 바꾸었지.
길은 길이야..
길 위에 서 있는 이들에게 중요한 건 목적지가 아니야.
어느 길 위에.. 어떻게 걷고 있는지가 중요할 뿐.
울퉁불퉁.. 험한 산길은 아니지만.. 샌들을 신고 걷기엔 발가락이 조금 아프다...
내가 미쳤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생전 안 신던 샌들을 하필 그날 신고 갔는지.. -_-;
길 바닥엔 상수리, 도토리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다람쥐들만 신났겠다.
봉선화와 흡사한 꽃잎을 가진 붉은 자줏빛의 검물봉선이 무리지어 피어 있고..
내가 월남국수에 넣어 먹기 좋아하는 고소도 드문드문 보인다.. ^^*
숲은.. 향기롭고.. 아름답고.. 평온해서.. 위대하다..
나뭇가지 사이로 살며시 불어오는 솔바람이 더 없이 향긋하다..
그런데..
샌들 때문에 발은 점점 아파오기 시작하는데...
은적암이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끝이 보이질 않는다.. -_-;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얼마쯤 더 가야 할지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보이질 않는다..
실개천의 바위에 걸터 앉아 흐르는 개울에 발을 담근 채.. 생각에 잠긴다.
더 올라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은적암에 가서..그곳에 계신 스님한테 냉차 한 잔을 얻어 마시고 싶다.
발가락은 조금 아프지만.. 아직 체력이 다한 건 아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같이 올라간 친구가 땀을 비질비질 흘리면서.. 힘들어 죽을라고 한다.. -_-;;;
전날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 듯 해 보인다.. 쯧쯧~..
몹시 아쉬웠지만.. 우린 되돌아가기로 결정을 했다.
세상에나.. 나보다 산 더 못 타는 사람은.. 살다 살다 첨 봤다! -_-;
산에서 내려오니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약간 허기가 진다..
청룡사 입구에서 할머니가 파는 삶은 옥수수와 계란을 사먹었다.
인심 좋은 할머니가 마구 퍼주는 옥수수를 받아든 나는 몹시 흐뭇~
역시 '덤'이란 것은 참 기분 좋은 것. ^^
청룡사를 빠져나와.. 청룡호의 시원한 바람으로 땀을 식힌 후 엄마 목장으로 향한다.
안성엔 갖가지 농장들이 참 많기도 하다.
사슴, 소, 젖소, 타조... ,etc.
이미 어스름이 깔릴 무렵 농장에 도착해.. 제대로 둘러보진 못했지만..
꽤 높은 산 속에 위치한 그곳은 탁 트인 전망이 가슴 속까지 후련하다. 엄마 농장에서는..
예쁜 목조 건물에서 숙박을 할 수가 있고..
여러가지 예술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준비되어 있다.
도예, 금속 공예, 장승 깎기, 문학, 사진.. 등등..
갤러리도 있고.. 야외 수영장도 있고..
어두워서 보진 못했지만.. 진짜 동물들을 사육하는 농장도 있다고 한다.
아트 샵에 들러 예쁜 귀걸이와 핸드폰 줄, 키홀더 등을 구입했다.
안성 토박이인 친구한테 제비꽃 향기가 나는 비누를 선물받고..
나무 포크는 꽁꼬로 얻었다. ^^
7시 반인데 한 밤중마냥 어둡다.. 해가 많이 짧아졌다..
우리는 안성공설운동장 근처의 '할머니 두부집'에 가서..
두부 낙지 전골과 두부 김치로 저녁을 해결한다.
콩비지 찌개를 진짜(!) 먹고싶었는데..
저녁을 쏜다는 녀석이 제 맘대로 메뉴를 결정해 버린다. -_-+
하여간.. 그것도 맛나게 먹었다. ^^
학교 후문 쪽의 동인이라는 카페에서.. darjeeling tea를 마시며 보낸 마지막 시간..
그리고 나는 서울로....
안성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었던 즐거운 여행...
어디서 무얼 하건.. 어차피 삶은 여행에 다름 아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가는지가 중요한 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