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거주하는 미혼 여성들의 일과 연애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낸 책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정이현의 첫 장편소설『달콤한 나의 도시』. 이효석문학상과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아온 작가는 신문에 연재한 이 작품을 통해 등장인물과 문체, 내용, 형식 등 모든 면에서 '도발적이고 치밀하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5년 10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소설을 모아 엮었다.
이제 막 직장생활 7년차를 건너온 서른한 살의 '오은수'를 주인공으로 도시에 거주하는 미혼 여성들의 일과 연애, 친구와 가족, 그리고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내었다. 15년 우정을 자랑하는 단짝 은수와 유희, 재인의 각기 다른 직업관과 연애관, 결혼관이 솔직담백하게 펼쳐진다. 여기에 더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열정과 도전으로 맞서는 다정한 연하남 태오, 모든 면에서 반듯하지만 알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영수, 오랜 시간 소울메이트 같은 친구에서 이성으로 다가서는 유준 등 독특한 개성을 지닌 남자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은수와 유희, 재인은 모두 서른한 살이라는 짐을 지고 좌충우돌한다. 그들이 그런 혼란을 겪게 된 것은 두 가지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는 결혼이라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남은 수많은 세월을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남자의 경우 서른 살은 직장에서 2~3년차로 정신없이 바쁠 때다. 그러나 여자는 대부분 서른 살이면 5~6년차가 되면서 결혼과 직장 문제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결혼 적령기가 늦춰지면서 여자의 경우 결혼하는 평균 연령이 스물여덟으로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서른 살의 벽은 여전히 존재한다. 서른 살인데도 결혼을 안 했거나 결혼할 애인이 없으면 주위에서 가만히 두질 않는다. 오죽하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정상적 인생의 알리바이’를 마련하고자 결혼을 하겠는가. 꿋꿋이 사회와 주변의 위협(?)을 잘 넘겼더라도 서른다섯 살이 되면 또다시 심리적인 위축을 받게 된다.
직장 생활은 또 어떤가. 입사했을 때의 의욕과 패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일에 대한 회의가 찾아든다. 직장은 자아실현의 장이라는데 현실에서 직장은 돈을 대가로 나의 자아를 착취하는 곳이라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어릴 적부터 꿈꿔 온 일은 그냥 꿈이었다고 접고 싫든 좋든 나에게 주어진 일만 하면서 살 것인가, 아니면 실패할 위험을 무릅쓰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 것인가의 딜레마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나이 서른에 나를 찾을 것인가, 현실과 타협할 것인가의 문제로 고민을 하게 된다.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주인공들은 그 고민 끝에 각자 다른 길을 걸어간다. 백수였던 재인은 선본 지 한 달 만에 조건 좋은 의사와의 결혼이란 안정적인 제도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유희는 “더 늦으면 후회할 것 같아”라며 그녀의 꿈이었던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노래와 춤을 배우기 시작한다. 반면 직장 7년차인 은수는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일곱 살 연하의 태오라는 남자와 풋풋한 사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은수는 자신의 나이에 짓눌려 사랑에 푹 빠지지 못한다. 그러다 예기치 않게 직장을 그만둔 은수는 아무 감정도 안 생기지만 안정되어 보이는 영수란 남자와 어정쩡한 만남을 지속하다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세 여자의 성인식은 모두 힘겹고 녹록치가 않다. 그저 사회적인 안정을 바란 재인의 결혼은 이혼으로 막을 내리고, 뒤늦게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유희는 번번이 오디션에서 떨어진다. 결혼을 앞둔 은수는 영수의 어두운 과거를 알게 되고 결혼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들에게 서른한 살은 불완전하고 모순투성이인 삶 그 자체였다. 그들은 볼멘소리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왜 내 삶은 남들처럼 쉽지 않은 거죠?”라고.
재인이 사랑도 없이 한 달 만에 조건만 보고 결혼했으니 이혼으로 치달은 건 당연한 결과라 말하고, 유희에게는 서른 살이 넘어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나서면서 그런 현실에 부딪칠지 정말 예상하지 못했느냐 따지고, 은수에게는 순수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려 했으니 그 대가를 치르는 것뿐이라고 말할까? 아니다. 나는 감히 그들에게 그런 말을 할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내 주위에 있는 서른이 넘은 여자들은 대부분 재인이나 유희나 은수 중의 누군가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지독히 운이 없거나 팔자가 드세거나 야망으로 가득 차 있지 않더라도 많은 여자가 결혼을 안 한 채로, 직장에서 세월을 축내며 서른 살을 맞이한다. 그리고 불합리한 현실에 맞서 싸우기엔 현실의 벽은 너무나 공고하다. 유희를 보라. 남들은 늦었다고 하는 나이에 용감하게 사표를 쓰고 꿈을 찾아 나서지만 그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너무나 힘겹기만 하다. 그래서 재인과 은수는 원하는 것을 뒤로하고 현실과 비겁하게 타협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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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이현 :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했다. 단편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등단하여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2006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과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