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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밤 11시에 대한항공을 타고 출발 8시간 반만에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 도착했습니다.
스리랑카는 우리 시간보다 3시간 반이 느립니다.
1분 후 도착을 알리는 비행기의 화면에는 한국은 아침 7시 49분 스리랑카는 새벽 4시 19분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선재들 모두 비몽사몽입니다. 그나마 직항편이라 조금 고생을 덜 한듯하지만 밤비행기는 역시 피곤이 더한 듯합니다.
그래도 공항에 착륙하자마자 선재들의 눈이 똘망똘망해 집니다.
이제부터 진짜 여행이 시작되니 모두들 기대가 크기 때문이겠지요? ㅎㅎ
각자에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스리랑카가 어떤 모습으로 보여질지 그리고 느껴질지 저 또한 궁금합니다.
입국장에서 처음 우리를 맞은것은 아래 사진의 부처님상입니다.
전 국민의 70%가 불교인 스리랑카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불상인 셈입니다.
이 불상을 초전법륜 또는 설법인상이라고 부르는데 인도 샤르나트의 부처님 첫설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불상입니다.
미리 한국에서 비자를 받아 온 덕에 따로 비자를 받는 번거로움없이 입국절차를 밟을 수 있었습니다.
아유보완!! 입국 절차를 밟으며, 선재들은 스리랑카 인사말을 처음 써보게 되었습니다.
스뚜띠!라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말입니다. ㅎㅎ
나오자마자 첫번째 한 일은 환전과 스리랑카 유심을 사서 스리랑카 전화번호를 개통하는 일이었습니다.
함께한 18명의 선재들 중에서 9명의 선재들이 스리랑카의 전화번호를 개통했습니다.
1달 사용에 데이터 용량 9G, 기본 통화까지 스리랑카 돈 1,300루피입니다. 우리돈으로 치면 10,400원. 만원이 조금 넘는 돈입니다.
현지 유심을 개통하지 않고 로밍을 할 경우 통신사마다 조금 다르지만
거는데 보통 1분에 3천원이 넘고, 받는데도 2천원 정도가 되니
와이파이가 아니라도 1달간 9G 자유롭게 사용하니 유심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생각하니 많이 저렴합니다.
선재들이 개통한 통신회사 Dlalog는 우리의 SK텔레콤과 같은 규모의 스리랑카에서 가장 큰 통신회사라고 합니다.
환전과 유심개통으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마중나온 차편으로 콜롬보의 숙소로 이동 중입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40여분 걸리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이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연히 바로 숙소로 가면 되겠다 싶었는데, 이 곳 시간으론 이른 아침 새벽이라 바로 체크인을 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체크인 시간까지 어쩔 수 없이 아침도 함께 먹고, 콜롬보 단체 관광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기로 한 곳은 콜롬보를 대표하는 사원인 강가라마 사원과 국립박물관입니다.
강가라마사원은 스리랑카불교가 440년의 오랜 식민시대를 지내면서 쇠퇴된 불교의 맥이 겨우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150여년 전 불교재건운동의 본찰로 삼아 세워진 사원입니다.
스리랑카인들에게는 남다른 의미의 중요한 사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는 대법당과 세계 각국의 귀중한 불교 문화재들을 모아 전시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이 절의 스님이 선재들과 함께 사원 곳곳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이 스님이 아니였으면, 많이 복잡한 이 사원 곳곳을 보기가 매우 어려웠을겁니다.
간간히 설명이 없었다면 휙 둘러 보고 나왔을 전시물들과 사리 그리고 법당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모셔왔다는 머리카락사리도 처음 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선재들도 신기해 합니다.
강가라마사원 대법당의 부처님입니다. 스리랑카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낸 불상입니다.
선재들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축원도 해 주셨습니다.
중국의 도교사원과 불교사원에서만 흔히 보는 재복과 호법의 신으로 모시는 관운장도 경내에 있습니다.
스리랑카에서는 낮선 풍경이지만 전세계의 풍경을 모아놓은 사원이라 이색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한 선재님이 전시된 힌두교 신상인 나타라자(춤추는 시바)상을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인도와 가까워 일찍부터 불교와 힌두교를 함께 받아들인 스리랑카에서는 불교사원에서도 힌두교와 관련된 상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바상은 모시는 신상이라기 보다 전시의 목적인 힌두신상으로 보입니다.
대법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스리랑카의 부처님상과 중국의 사자상이 함께 있습니다.
이 사원에는 이렇듯 서로 다른 문화들이 혼재하며 어울려 있는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흰색건물 입구가 부처님 머리카락사리와 세계각국의 불교 관련 유물과 사리들이 모셔진 건물입니다.
강가라마 사원을 나와 국립박물관으로 이동 했습니다. 찬란한 싱할라왕조의 유물과 자연사 박물관이 함께 있습니다.
몇몇 선재들을 제외하고는 역시 박물관은 그리 흥미있는 곳은 아닌듯 합니다.
이번 여행에 함께한 유일한 자매입니다. ㅎㅎ 박물관을 둘러보고 국립박물관앞에 있는 반얀나무 앞에서 포즈를 취해 봅니다.
빽빽하게 뒤에 늘어선 숲같은 나무들은 여러 나무가 아니라 한나무입니다. 줄기가 뻗어가면서 아래로 뿌리가 자라고
다시 줄기가 되고 뿌리가 내려 한나무가 점점 퍼져 큰 숲을 이루게 되는 나무입니다.
인도 어느 식물원에는 이 반얀나무 한구루가 만든 거대한 숲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선재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버스입니다.
이번 스리랑카 20여일 일정을 함께 할 버스이기도 합니다.
콜롬보에서 묵은 호텔은 입구는 작아 보이지만 방들이 대부분 생각보다 크고 깨끗한 숙소였습니다.
더구나 콜롬보의 중심지에 있어 서울의 종로나 명동처럼 주변에 중요한 장소들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선재들이 만족해했습니다.
점심 때가 되어 숙소 건너편에 있는 태국음식점에 몇몇 선재들이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각자 주문후 나온 음식을 보고 모두 빵 터졌습니다. ㅋㅋ
주문할때는 각자 주문을 해서 잘 몰랐는데, 나온 음식이 하나같이 볶음밥!!이었기 때문입니다.
들어간 음식 재료가 조금 다를뿐! 더구나 밥량은 또 어찌나 많던지? ㅎㅎ 먹다 먹다 지쳐서 남은 밥을 싸오기 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대체적으로 맛은 있었다는 평이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번에 함께한 20대 이상호, 신은규 청년선재입니다. 콜롬보에서 한방을 쓰게 되었습니다.
첫날부터 은규선재는 얼굴에 숯팩을 해서 얼굴이 저 모양입니다. 저도 처음엔 깜짝놀랐습니다.
짐을 풀고 씻고 침대에 누워 있자니 답답해 학생선재들과 몇몇 청년선재들이 콜롬보포트 역 앞에 나가 보기로 했습니다.
갈때는 뚝뚝이를 타고 올 때는 걸어서 숙소에 돌아 왔습니다.
숙소에서도 그리 먼거리는 아니였지만 정확한 지리를 알 수 없어 뚝뚝이를 탔는데
올때는 걸어서도 올만한 거리에 있어서 걸어 온 것입니다.
아래 사진의 시계탑은 스리랑카의 도시간 거리를 재는 기준이되는 시계탑입니다.
이 시계탑을 0으로 삼아 거리를 재기 때문입니다.
포트역 앞 시장에서 만난 빵차입니다. 스리랑카의 빵사랑은 유럽의 나라들을 능가해 보입니다.
누구의 표현대로 세상에서 가장 많은 빵가게가 있는 나라 중 한 나라가 스리랑카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식빵처럼 생긴 이 차는 뚝뚝이를 개조해서 만든 듯 합니다.
콜롬보 포트역입니다. 우리의 서울역에 비견되는 스리랑카에서는 가장 큰 역입니다.
현재 역 부근은 항구와 상업지역으로 분류되는 페타지역과 연결되고 기차역 건너편에 버스터미널까지 있어
콜롬보의 가장 중요한 교통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서울역과 가까운 거리의 남대문 시장처럼 이 곳에도 포트역 가까운 곳에 큰 시장인 페타바자르가 있어
가장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부터 열가지가 신기한 모습 투성입니다. 인도를 함께 다녀 온 어느 선재는 말합니다.
"스리랑카는 좀 인도랑 비슷한듯하지만, 첫인상이 다른 느낌인데 여긴 복잡하고 릭샤도 많이 보이고 인도랑 많이 비슷한것 같아요."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시장을 찾아 가던 길에 만난 카톨릭성당입니다.
전 인구 70%의 불교인구를 가진 스리랑카에서 7%의 인구가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7.6%의 이슬람과 10%의 힌두교 인구보다는 적지만, 440년간의 서구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카톨릭을 포함한 기독교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와 함께 주요 종교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수님상도 서양과는 다른 동양적인 모습의 상입니다.
카톨릭성당의 종교적 예절 풍습도 불교나 힌두교 사원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성당안에 들어 갈 때도 다른 종교의 사원에 들어 갈때처럼 신발을 벗고 들어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들른 성당의 이름이 성 필립 네리스 성당인 모양입니다.
시장엔 없는것이 없는 듯 합니다. 불교의 나라답게 곳곳에서는 부처님 걸개 사진들을 파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과일도 풍부하고 ....
옷이며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 다 있습니다.
문경에서 온 황형식 청년선재가 여행에서 신을 슬리퍼가 하나 필요한 모양입니다.
이집 저집 다니면서 물어 온 수고로 500루피 달라던 슬리퍼를 250루피 주고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돈 2,000원 정도를 주고 신발을 하나 산 셈입니다.
옆에 있는 용현선재는 시장에서 콘센트 하나를 100루피 주고 샀습니다.
스리랑카에서는 전기 플러그가 3구로 되어 있어 우리나라 2구 플러그가 잘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돈 800원을 주고 사서 여행내내 아주 편하게 사용을 했습니다.
열대지역인 스리랑카에서는 우리에게는 흔한 사과와 배, 오렌지 등이 다른 과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쌉니다.
스리랑카에서는 대체적으로 우리가 먹는 긴바나나보다는 작은 바나나를 선호하는데 우리가 주로 먹는 바나나와 다른 것은
바나나에 쫄깃한 찰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바나나 한개가 싸게는 4, 5루피(우리돈 3,40원) 정도 하기도 하지만,
비싼곳은 두,세배가 넘는 곳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먹어 볼수없는 찰기있는 바나나가 벌써 그리워 집니다.
함께한 선재님들도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추와 라임은 모든 음식에 사용될만큼 사랑을 받는 식재료중 하나입니다.
스리랑카가 바다를 둘러 싸고 있는 섬나라라 그런지
유독 스리랑카에서는 인도와 달리 크고 작은 말린 생선들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눈에 보입니다.
열대과일의 상징이라 할만한 망고도 지천입니다. 크고 작은 망고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니캅을 입은 무슬림 여성이 시장을 보고 있습니다.
무슬림여성들의 옷은 이름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수건형태로 머리에 간편하게 두르면 히잡, 몸 전체를 가리고 얼굴만 내놓는 옷은 부르카, 이 여성처럼 얼굴도 가린채 눈만 내 놓은 옷은 니캅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선재들이 시장구경도하고 신발도사고 과일도 사고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사서 돌아 가는 길입니다.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호퍼입니다.
호퍼는 쌀가루로 만들어 먹는데 간단한 식사가 되기도 하고 간단한 간식이 되기도 하는 음식입니다.
1장에 보통 10루피정도합니다. 우리 돈 80원 정도이니 부담도 없는 가격입니다.
호퍼에 게란을 넣으면 에그호퍼라고 하고 보통 4, 50루피정도 합니다. 계란값이 포함되는거지요.
맛에서는 크게 향신료맛이나 향이 느껴지지 않아 선재들도 좋아하게된 스리랑카의 음식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열대 과일 중 하나인 람부탄입니다. 람부탄이 이 시기가 제철인지 스리랑카 곳곳에서 많이 만난 과일 중 하나입니다.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0, 25, 30개에 100루피 정도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냉동과일로 주로 수입되는데 신선한 람부탄을 먹어보고 좋아하게 된 선재들도 많았습니다.
스리랑카에서도 한류의 열풍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영화와 드라마에 관심이 높다고 합니다.
곳곳에서 만나는 DVD가게에서 만나는 한국의 영상물들이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듣기로는 스리랑카에서는 한국의 사극이 의외로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나라는 달라도 옛 문화의 정서들이 맞는 모양입니다.
숙소로 돌아 가던 길에 말을 탄 경찰관을 만났습니다.
함께한 선재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라며 더 신기하게 보았습니다.
페타상업지구의 건물들은 영국식민지 시절에 지은 옛 건물들이 많습니다. 보기에도 고풍스러움이 느껴집니다.
길을 걷다 보면 이 지역은 마치 스리랑카가 아닌 유럽의 어느 도시를 걷는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입니다.
상업의 중심지답게 높은 빌딩건물도 보입니다.
저 멀리 시계탑이 보입니다. 이 시계탑은 과거 이 페타지역의 중심이었던 곳입니다.
주변 곳곳이 옛 식민지 건물들로 둘러 쌓여있습니다. 시계탑을 보니 숙소가 있는 곳에 거의 다 온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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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법사님의 자세한 설명을 읽다보니 함께 여행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그대로 녹음을 하셔도 좋겠네요. ^^
고맙습니다. ㅎㅎ 칭찬이신거지요?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습니다. 전화 한번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