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디찬 눈바람에 손과 발이 꽁꽁 얼어 있다가, 뜨끈한 물곰탕 한 그릇을 들이켜면 이내 온몸이 사르르 녹아내리곤 한다.
우리나라 물고기 종류가 1천200종이 넘는데, 그 중에서도 예전에는 사람들이 전혀 먹지 않았던 물고기 중 하나가
바로 미거지(사진)라고 할 수 있다.
한때 동해에서 명태가 많이 잡히던 시절에, 명태와 같이 그물에 잡히면 쓸모없다고 하여 다시 바다에 버렸는데,
덩치가 크다보니 버릴 때 나는 소리가 '텀벙'한다고 해서 물텀벙이라고 불리고, 쓸모없는 생선의 하나로 취급됐다.
동해에만 서식하는 특산종 미거지는 서해와 남해에 사는 꼼치와 함께 꼼치과에 속하는 어류이다. 비늘이 없어,
피부가 부드러우며, 흐물거리는 체형에 배지느러미는 흡반으로 변형됐다. 미거지는 최대 91㎝에 이르는 대형 종으로
산란기는 10~12월이고, 수심 100~500m에 주로 서식한다.
미거지와 외형 또는 이름이 비슷해 혼용돼 불리는 어류에는 곰치, 물곰, 물메기, 꼼치가 있다. 먼저 곰치는 열대 바다의
산호초에서 주로 서식하고 뱀처럼 길고 이빨이 날카로운 어류이고, 물곰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어류로 미거지와
비슷하게 생긴 어류를 통칭해서 부르는 방언이다.
물메기는 동해에 서식하며 크기가 다소 작고 등, 뒷, 꼬리지느러미가 하나로 이어진 것이 특징이고,
꼼치는 수심 50~80m의 니질 성분이 강한 해역에 서식하고 겨울철에 남해 진해만 등에 몰려와 산란하는 종이다.
최근 겨울에 제철을 맞이한 미거지는 한 마리에 10만 원을 호가한다. 특히 최근에는 80㎝ 짜리가 23만 원에 거래될 정도로
고가 생선이 됐으니, 물고기 인생사도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래서인지 물고기 이름이 '미거지입니다'라고 하면 이리
비싼 고기가 무슨 '거지'냐고 그래서 덩치에 맞는 '물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특히 암컷은 황갈색을 띄는 반면,
수컷은 검은 보라색을 띄고 있어 '흑곰'이라고 불리고 있다.
미거지의 표면에 돌기가 있어 살살 문질러서 없애고 나서, 껍질부터 살까지 버리는 것 없이 다 넣고, 여기에 묵은 김치와 무,
콩나물을 넣어 끓여 만든 요리가 물곰탕(곰칫국)이다. 이때 허물거리는 살이 잘 풀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요리의 기술이고,
먹을 때도 호로록 마시며 떠먹는 재미가 있다. 또한 살짝 말려서 찜을 해 먹기도 한다.
꼼치과 물고기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 함량이 높으며 각종 비타민, 필수 아미노산 등 몸에 좋은 영양분이 풍부하고
칼슘, 철분 등이 많아서 요즘처럼 추운 계절에 안성맞춤인 계절 수산물로, 해장에도 좋다.
손명호
국립수산과학원 해양수산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