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은 조금 생뚱맞은 지역, 울진이다.
어디서 어떻게 가도 교통이 불편한 오지 중의 오지인 지역으로 자연의 본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동네 자체가 간직한 매력이 너무나 많았기에 그 매력에 퐁당 빠져 헤어 나오지 못 했다.
보통 상황이라면 기억하기 싫은 상황이라도 굉장히 아련한 추억을 남긴 지역이다.
그래서 너무나 와보고 싶었고, 결국 다시 왔다.
딱히 반기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고 아무 말도 없지만 그냥 이를 보는 스스로는 너무 좋았다. 좋은데 이유가 있을까.
2013년 6월 이후 꼭 2년여 만에 다시 차를 몰고 왔다.
당시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2013년 상반기 내내 울진을 자주 찾았는데,
블로그를 자주 보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울진군청도 갔고 해안가도 거의 어지간한 곳은 다 갔다고 보면 될 정도로 자주 들락거렸다.
2년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 사이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인구 5만 명의 오지 지역인지라 크게 바뀔 이유가 딱히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어느 지역이 안 그렇겠냐만은 어떤 도시를 가도 분위기가 비슷비슷하다.
울진도 사실 그래서 읍내만 보면 딱히 이렇다 할 특징이나 매력은 없다.
다만 읍내 끄트머리에서 보이는 논과 산, 그리고 가로수로 쓰는 소나무가 조금 특별해 보이기는 한다.
''오랜만에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에서 조금 더 달려 밑으로 내려와서 본 울진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아파트와 딱 붙어있어 신기했던 버스터미널도 그대로였다.
이 동네 특유의 기와지붕 버스터미널도 여전했다. 저녁노을을 받아 참으로 붉기도 하다.
아무래도 군 소재 버스터미널이다 보니 딱히 큰 규모는 아니다.
버스정류장과 택시 승강장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데, 승객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택시를 탈 수 있어 이 점은 편하게 되어있다.
이웃 동네인 삼척과 동해도 대략 이런 구조였는데 그동안 크게 신경 쓴 부분이 아니라 여기만의 특징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로 들어오는 고속버스는 없다.
시내버스도 없다.
오직 시외버스만 드나든다.
그런데 이름은 '울진종합버스터미널'이다.
이름만 종합버스터미널이지 생긴 것도, 실제 행동도 소박하기 짝이 없다.
건물 안쪽도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지어진 지 30여 년쯤 지난 건물들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분위기를 좋아한다. 은은한 조명에 살짝 어둡고 차가운 실내를.
색감도 강하지 않아 눈이 아프지 않고 사람이 많지 않아 시끄럽지도 않다.
구조도 단순하여서 입구로 들어가면 모든 것이 다 나오니 헷갈릴 일도 없다.
그나마 약간 놀란 것은, 매점이 따로 칸막이 구분 없이 뻥 뚫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벽 대신 나무로 덧댄 기둥이 매점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는데 다소 신기했다.
건물 안에 자전거까지 주차되어 있는데 조금만 사람 많은 곳으로 가면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그리고 버스터미널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또 매점이다.
라면, 칼국수, 막국수, 만두, 비빔밥 등을 파는 전형적인 강원도식 메뉴다.
여기도 칸막이 같은 게 없어 주방의 모든 것이 다 보인다. 매우 개방적이다.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소박한 광경이 너무 좋다.
뜻을 알 수 없는 조선식 고사성어가 눈에 띈다. 모던한 느낌이 고전적인 느낌으로까지 바뀐다.
그러나 바로 옆 매표소의 유리벽은 보니 여기도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버스터미널이구나 싶다.
역시 사람이 많이 없는지 달랑 하나의 창구에서만 표를 팔고 있었다.
휴가철이나 명절에는 세 곳이 다 열려있으려나.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가도 유독 눈에 잘 안 띄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시간표였다.
시간표가 어디 있지? 찾다가 유리벽에 붙여진 것을 보고 알았다.
따로 시간표를 만들지 않고 바뀔 때마다 그때그때 매표소에서 프린트해서 붙이는 것 같다.
글씨도 작고 조명도 어두워서 이곳의 치명적인 단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용객들 대부분이 노안이 오신 분들일 거라 생각한다면, 가독성의 문제는 생각보다 매우 크지 않을까.
노선을 살펴본다면 역시나 서울행과 대구행이 대다수이나, 거기에 추가해서 같은 동해안 지역들을 연결하는 노선이 발달했다.
서울행은 위치상 대부분이 동서울행이나 영동고속도로(강릉) 경유, 중앙고속도로(영주) 경유로 나뉜다.
거리는 영주쪽이 약간 더 짧지만 길의 상태는 강릉방면이 좋아 여기로 버스가 더 자주 다닌다.
둘 모두 경유지가 많아서 소요시간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구행은 의외로 직행과 완행 모두 횟수가 많다. 자가용으로도 2시간 30분이 걸리는 먼 거리인데도 참 의외이다.
서울행과 마찬가지로 직행이라고 완전히 경유지가 없는 것이 아니니 확인을 잘 해야 한다.
그리고 완행 노선은 무척 많아 보여도 영덕-포항-경주방면이 약 30분, 삼척-동해-강릉방면은 40~60분 간격으로 생각보다 텀이 길다.
원래는 이보다 훨씬 많았으나 인구의 감소 + 자가용 운전자의 증가로 날이 갈수록 횟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그리고 부산, 울산, 태백, 강릉-속초 직행이 따로 있으나 경유지가 꼭 하나 이상씩 붙어있다.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한데 여기서는 어디로 가든 완전히 직통으로 가는 노선이 하나도 없다.
그만큼 울진에서의 자체 수요가 적다는 뜻이기도 하고, 근처 마을들의 시외버스 의존도가 높다는 뜻이기도 할테다.
동해안 동네들 대부분이 'ㅣ' 모양으로 마을이 주루룩 늘어서 어디를 가도 완행시외버스 하나로 퉁치면 끝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유독 시내/군내버스가 적은 편이고 작은 마을이라도 최소 면 소재지 정도만 되면 시외버스로 시/군 중심지를 안 거치고 목적지까지 가는 경우도 많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을 터미널 운영자들도 아는지 매표소 뿐만 아니라 승차장 출입구 옆에 따로 인쇄한 시간표를 붙였다.
여기가 모든 시간표가 하나로 몰려있고 칼라풀한 편인데, 글자가 들쭉날쭉해서 눈이 다소 피로하다.
올해 들어 생긴 중요한 포인트!!
포항역 가는 시외노선이 생겼다!
KTX를 원하는 손길이 여기에도 많았는지 포항역을 옮기자마자 칼같이 노선을 뚫었는데,
하루 4회 뿐인데다 포항역까지 가는 시간도 길어서 장사가 잘 될지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환승 시간 포함하면 서울까지 5시간인데 굳이 포항역까지 크게 돌아서 갈 필요가 전혀 없으니까.
충청권은 조금 유리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여기서 충청권을 가는 사람의 숫자가...
뒤죽박죽 시간표와 다르게 요금표는 굉장히 심플하다.
단순해서 알아보기 편한 요금 숫자는 이미 네 자릿수를 한물간지 오래되었다.
인건비, 유지비 등등 여러 문제를 생각하면 가격이 비싼 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아직 가슴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루가 다르게 적응 안 되는 숫자 쭉쭉 치고 올라간다.
조금 적응이 됐다 싶으면 다시 요금을 올려버리는 패턴이다.
가파르게 미끄럼틀 타는 국제 유가 생각하면 언젠가는 차 끌고 나오는게 더 저렴해지는 날이 올 것도 같다는 불안한 생각이 스친다.
건물 밖 승차장도 오래된 터미널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조금 더 깔끔하게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울진에 여러 번 오면서 무언가 깔끔하고 시원한 느낌을 받았는데, 버스터미널도 마찬가지다.
역시 지역의 얼굴 답다.
여기를 둘러 보고 저기를 둘러 보아도 2년 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정말 힘든 적도 많았지만 다시 되돌려 보면 그 때의 경험을 앞으로 다시 할 수 있을까 싶게도 참 특별했다.
여러 가지로 애증의 두 얼굴이 번갈아 떠올라 참 묘한 감정이 나를 괴롭히지만,
썩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이런 감정을 어느새 즐기기까지 한다. 변태같다.
경북이지만 강원도 분위기가 더 셌던 곳인데 버스를 보니 역시 꼭 닮아있다.
반반 섞여있다 하는데 거의 강원흥업 버스만이 눈에 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원래 50년 전까지는 강원도 땅이었다.
역사적으로도 대대손손 강원도였다 경북으로 넘어온 지역이 바로 울진이기에,
강원도 동해안에서 느껴지는 향기가 그대로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렇다해도 윗쪽 동네의 분위기와는 묘하게 사뭇 다르다.
강원도와 경상도를 섞어놓은 듯한 느낌이 있는데 여기 역시도 마찬가지다.
건물은 경상북도 터미널, 버스는 강원도 버스라고 표현하면 대충 맞으려나.
하여튼 표현하기 힘든 묘한 분위기가 분명히 묻어있다.
울진군 전체가 개발하기 힘든 입지이다 보니, 같은 산이라도 그 흔한 골프장 펜션은 커녕 등산로조차 찾기 힘들고,
같은 하천이라도 공원길은 커녕 자갈밭과 모래톱이 절벽 따라 절경을 이루는 풍경이 대부분이다.
원자력 발전소가 매우 옥의 티이기는 하지만, 그 위압적인 발전소마저도 바다와 만나 굉장히 묘한 분위기가 있다.
(자랑은 아니지만발전소 내부로 들어가봤기에 후기를 남길 수 있었다.)
읍내 남쪽, 울진천과 왕피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
관동8경으로 먼 옛날부터 관광객이 즐겨 찾았던 망양정의 내수면.
정말 평화롭지 않은가?
이름도 유명한 그 왕피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이다.
조금만 오염되도 떼죽음당하는 물고기들의 천국 왕피천의 시원한 계곡물이,
평지와 만나자마자 바다와 합류하는 곳이라 물이 매우 투명하다. 바다도 깨끗한 편이다.
... 말이 필요가 없다 ...
꼭 2년 전에 수없이 찾았던 울진의 해변가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곳 중 하나였다.
이 곳에서 그렇게 힘든 일을 했음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는데,
이번에는 물고기 잡는 어부들이 출동하셨다. 이 모래밭까지 친히 차를 끌고 온 것에 꽤나 놀랍다.
취미로 잡는 것인지, 이 걸로 먹고 사시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런 식으로 물고기 잡는 모습은 처음 본다.
하천과 바다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선명하게 선을 긋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철벽치는 모습이 다소 놀랍기도 하다.
파도 바로 왼쪽에서도 전혀 소금 맛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다.
서해안 가면 용산에서도 썰물 밀물이 있을 정도로 소금물이 깊게 밀고 들어오는데...
길이는 짧지만 하천의 기가 매우 세다.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 어느덧 노을이 더욱 선명히 물들었다.
구름에 가려 제대로 일몰을 담지는 못했지만 색감만으로도 너무나 멋있었다.
2년 전 그 날도 이랬는데...
2년의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던 것 같지만, 결국 되돌아보니 제자리였다.
그리고 도 2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스무살에 머무른 것 같지만 몸은 이미 더 먼 곳으로 흘러와 있었다.
되돌아 갈 수 없는 과거의 시간들을 돌려보는 울진은 너무나 아련하고 또 익숙하다.
다시 그만큼의 시간을 보내고 오면 그 때는 어떤 느낌일지, 먼 훗날 또 한 번 발길을 내딛어보려 한다.
첫댓글 울진이 동해안 7호선 국도의 정중앙(?)에 있으니, 국도요금이 적용되어, 너무 비싸요. ㅠㅠ;;;
예전에 비해 국도도 최소 4차선 이상인지라, 신호등 및 일부 요소를 제외하고는 고속도로에 거의 비슷한데, 단지 '국도(지방도, 군도)' 라는 이유로 비싼다는 것은 이해가 잘 않되네요. 과거에는 2차선 꼬불꼬불 한 길에 격오지까지 운행하는 수고 및 오늘날의 자가용 증가로 인한 버스 운송 수요 감소 보상(지원비) 명목이 적용된다고, 생각됨에도 확실히 고속도로가 아무리 '고속'으로 이동하여, 시간 및 연비 절감의 효과가 있더라도 통행료도 무시못하는 요소 임에도 말이죠.
그러게나 말입니다. 철도의 경우 고속철도가 일반철도보다 월등히 비싼데 비해, 도로는 시설이 좋을수록 요금이 오히려 내려가는 경향이 있어 반대의 양상을 띄고 있죠. 그런데 낙후지역은 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곳이 많은데 요금까지 타지역보다 비싸니 피해를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통행료를 감안해도 더 적게 받을 정도로 일반 국도에서의 운행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인지, 말씀하신 것처럼 개량된 국도까지 2차선 구불길과 같은 취급을 하여야 하는지는 아주 오래 전부터 회의적이었습니다. 분명히 합리적인 조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Maximum 동일한 물가 하에서라면 국도 임율을 조금 낮추고 고속도로 임율을 조금 올려야 하려나요..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옛날에 폭우가 퍼붓는 늦여름 오후3시경 강릉에서 출발한 한일여객 인지 고속인지 그 버스를타고 부산 내려가면서 잠깐 정차했던곳이라서 별 기억이 없는데 사진과 설명의 글 보면서 그때의 추억을 회상 합니다
-----글 감사 합니다
좋은 추억이기를 바랍니다. ^^
동해고속도로가 향후 포항-삼척까지 연장(해운대-울산 동해-양양은 개통 삼척-동해 양양-속초는 공사중)되는데 그때 되면 요금 인하 및 소요시간이 단축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36번국도도 확장 공사중이고 동해선 철도도 공사중이니 이 모든 것이 완성 되면 울진까지 가는데 접근성은 나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얼마 전에 울진쪽 동해선 착공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빨리 고속도로도 뚫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군요. ㅎㅎ
제가 이 포스팅 이후에 가입해서 지금 보고 있는데
이 포스팅 이후에 동해IC-남삼척IC 동해고속도로 연장되어서 동해고속도로 경유 동서울행이 죽변 부구 호산 임원 정차하더라도 소요시간 좀 줄어들었고
봉화현동-울진 국도 중 일부 구간이 개량되었지만 삼근 광비는 계속 정차중이군요.
동해고속도로가 연장되었다는걸 님의 댓글로 알았습니다. 서울방면 갈 때 정말 편해졌겠네요. 삼척시내를 굳이 안 거쳐도 될테니까요. 봉화방향 역시 개량공사 끝나면 오지 느낌은 조금이나마 줄을 수 있을까요.
@Maximum 한편으로 금강송면-울진읍 36번 국도 개량까지 완료된다면 울진-서울은 시외버스든 자가용이든 36번 국도 경유가 동해고속도로 경유(남삼척IC)보다 더 경쟁력이 있게 될까요
@안동 불영계곡 구간은 자연보호와 수요 문제로 2차선 개량을 하는 것으로 압니다. 거리 상으로는 강릉보다 가깝다지만 극적인 소요시간 단축은 아마 어려울 것 같습니다.
@Maximum 그나마 교량 터널로 직선화하는 게 감지덕지라고 생각해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