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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에도 어김없이 간송미술관에서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전시중이다.
간송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진기한 문화유산의 서화작품들 중 이번에는 국보로 지정된 '혜원전신첩30작품'중의 일부도 전시해서 보여주겠다하니 누구에게나 그 기대감은 알만하다 하겠다.
혜원 신윤복은 tv드라마나 영화'미인도'로도 더 잘 알려진 풍속화의 대가가 아니던가.
더구나 그 이름도 익숙한 단원 김홍도, 김득신, 겸재 정선, 이정 등등, 궁중화원화가들의 작품들이 대거 전시된다하니 자못 기대가 크다.
전시 주제는 "풍속,인물화대전"이다.
당시의 시대상으로 보아 우리그림들이 중국의 영향을 받으며 중국화풍을 따르고 있을 때, 과감히 우리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발전된 조선 중기 진경시대의 대표적인 풍속화,인물화가 전시되고 있으므로 줄곧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거긴 언제나 긴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해년마다 봄, 가을 딱 두번, 그것도 길지도 않은 보름동안 전시하는 가을전시가 이제 내일(15일부터30일)이면
끝난다.
나는 지난주, 갑자기 날씨도 추워지고 빗방울도 부슬거리며 떨어지는 월요일 아침 9시에 집을 나섰다.
이런 날이면 아마도 줄을 서진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일부러 보통의 전시장들이 쉬는 월요일을 택해서...
성북동에 있는 간송을 찾았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나만 하는게 아니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집에서 몇시부터 나온걸까?를 의심하게하는 긴 줄이 벌써 성북동 파출소앞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하염없이 기다리기를 두어시간 쯤 했을때 미술관이 보이는 골목길로 접어섰다.
간송미술관 팻말만 보여도 이젠 반가울 지경에 이른다.
미술관안으로 들어서니 고목나무 울창한 가을의 정원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 숲의 향기가 기다림에 지치려는 온몸을 감싸준다.
이 간송미술관의 숲은 언제나 길게 줄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데 부족함이 없으며 더구나 무료관람
이기에 불친절한 모든 것들을 충분히 덮어주고도 남는 넉넉함도 안겨준다.
드디어 전시장 앞 입구다.
산뜻한 미술관이 아닌 고태가 덕지덕지 낀듯한 어두컴컴한 실내로 들어가면 헤원 신윤복을 만나고 단원 김홍도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레임이 가득하다.
과연 일층,이층의 넓지않은 전시장안은 사람들로 빽빽한 병풍을 이루어 제대로 감상한다는 건 무리인듯 하다.
더구나 전시장 중앙에 있는 전시대의 그림들은 조명도 없이 오로지 자연 채광만으로 보는 서화들인데 그걸 보려는 사람들이 이미 촘촘히 둘러서서 모두들 펼쳐진 서화첩의 그림을 보기위해 고개를 숙여 거의 유리막에 코를 박을 정도로 붙어서는 꼼짝도 않는 바람에 그 안은 이미 사람들로 빛이 차단되어서 거의 어두워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더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이 좋은 그림들을 스쳐가며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모두 있는지
한 작품 앞에서 멈추기를 너무 오랫동안 하는 바람에 솔직이 인간적인 불편함과 거기에 따르는 온갖 부자연스러움은
이루 말로도 다 할 수 없을 지경으로 괴로웠다.
이런 때 문득, 차라리 유료관람으로 해서 좀더 쾌적하게 관람할 수는 없는걸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기도 했다. 일층 이층의 모든 전시작품을 보는데 두시간여.....불편한 가운데 마치고 나니 온몸에 기운이 빠진다.
떠밀려가며 보는 그림이라니.... 여기 올 때마다 번번이 느끼게 되는건 차라리 도록으로 자세히 보는게 났겠다는 생각이다.
약 100점이 전시 된 그림 중 혜원 신윤복의 화첩(국보)중에 일부를 도록에서 발췌하여 소개해 본다.
다음 그림은
1. 월야밀회(月夜密會-달밤에 몰래 만나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밤, 골목길 후미진 담아래서 남녀가 어우러져 깊은 정을 나누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간송에서 볼 때 옆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를 이들은 아마도 삼각관계일 것이라고 했는데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남자의 차림새로 보아 관아의 장교로 보이는데 지휘봉을 들었다. 필시 만나는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 겨우 시간을 낸것으로 보이고,여인은 이미 남의 아내가 된 옛 애인은 아닌지....더구나 옆에서 안타깝게 이들을 지키고 있는 또 한명의 여인은 아마도 이들의 밀회를 성사시켜준 것으로 보이며 곧 헤어져야만 하는 이들의 아쉬운 정이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2.쌍검대무(雙劍對舞-쌍검들고 마주보며 춤추다)
양반들 앞에서 검무를 추는 기생 두명이 청,홍의 치마를 날리며 춤추는 모습을 역동적이고도 사실적으로 표현한
아주 빼어나 그림으로 보였다. 이렇게 실제로 움직이는 순간을 넘치는 율동감으로 사차원의 느낌이 나도록 표현할 수 있었던 혜원의 실력이 놀라운 작품이다.
앞줄에 늘어앉은 각 악공들의 뒷모습도 그들이 어떤 악기를 연주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만치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과연 천재화원 임을 느끼게 한다.
버선발의 움직임하며 움직임에 따른 옷자락의 휘날리는 모습,어깨너머로 칼을 쥔 손동작 등,춤추는 동작을 표현한 것이 너무 압권이어서 개인적으로 보고 또 본 그림이다.
3.계변가화(溪邊佳話-시냇가의 아름다운 이야기)
빨래터의 모습인데 사냥나왔던 한량이 활과 화살을 손에 쥔채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보는 것은 젖가슴을 드러낸채 머리를 막 감은후 가채를 널어두고 머리손질하는 여인을 못박힌듯 서서 쳐다본다.
이 여인 조금도 부끄럼이 없고 오히려 보란듯 눈웃음까지 흘리고, 뒤돌아서 빨래하는 여인의 신경은 온통 지나가지않고 서있는 남정네에 마음이 쓰이고, 더 재미난건 부끄러움 같은것은 이미 사라진 나이,빨래를 펼쳐 널고 있는
늙은 여인은 웃옷을 훌렁 벗어던진 채 젊은여인들을 바라보는 시새움에 찬 아니꼬운 눈초리가 웃음을 자아내는 매우 재미난 해학적인 그림이다.
4. 단오풍정(端午風情-단오날의 운치있는 정경)
단오날 여인들이 머리감고 그네뛰는 장면을 그렸지만 흔히 사람들은 이 그림이 심리학에서는 관음증의 대표적 그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름아닌 저바위 건너틈에서 이들의 반쯤 벗은 몸을 훔쳐보는 동자승을 그려놓은 때문이지만 그림으로 보자면 훌륭한 사선구도에 청 홍의 색깔 포인트가 구도상 절묘하고 생동감이 넘치며 아래쪽의 씻고있는 여인들의 동작 하나하나는 가히 영화장면처럼 사실적이다.
당시 여인들의 가채머리의 풍성함이 어떠했는지도 알수 있을만치 푸른치마 여인의 머리는 대단히 풍성하고 하녀가 머리에 이고 오는 옷보따리도 이제 곧 물가의 웃옷 입지않은 여인들이 갈아입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화가의 따스한 마음도 전해지는 걸작이 아닐 수 없다.
5. 연소답청(年少踏靑-젊은이들의 봄 나들이)
이 그림은 조선시대 진경산수화가 한창 무르익을 시기는 사대부들의 호화로움이 극을 이룰 때가 아니었는지 하는 시대를 읽게 하는 그림이어서 흥미롭다.
우선 이들의 차림새는 예사롭지가 않고 봄날 양반가의 자제들은 이처럼 기생들을 대동하고 야유회를 떠나는등 그들의 호사스런 생활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풍속화다.
보라색과 옥색으로 누빈 저고리에 향낭을 차고 주머니도 여러개를 긴띠에 메어 찬걸 보면 권세있는 집안 자제들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맨앞의 청년은 호기가 넘쳤는지 자기갓을 맨뒤에 따라오는 마부의 초립과 바꾸어 쓰기까지하는 작태를 보이고 황송하고 계면쩍은 마부는 채찍만 든채 갓도 쓰지 못하고 채찍만 든채 엉거주춤 따라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두루마기의 앞두 폭을 뒤로 잡아매어 뒷폭만 펄럭이며 걸을때마다 나풀거리게 하는 것이 그 당시 젊은이들의 유행이 아니었나 생각도 든다.
6.이부탐춘(이婦耽春-과부가 봄빛을 즐기다.)
양반댁 후원에서 흰옷 입은 과부와 몸종으로 보이는 처녀가 봄날 바람 쏘이러 후원에 나왔다가 때마침 짝짓기 하는
개 두마리를 흥미롭게 보는 장면이다.
당시의 법도로 양반댁 여인은 남편이 죽어도 개가를 할 수 없는 때였고 문밖 외출도 쉽지 않은 때라 말 못할 괴로움도 많았을 텐데 하필 이런 개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담장안에서 갇혀 지내야했던 과부의 모습은 이집 후원의 잎파리 없어진 나무처럼 된것은 아닌지...
담장밖의 울창한 나무와 담안에 있는 잎이 과감히 생략된 나무를 그려서 혜원은 당시 과부들의 처지를 절묘한 표현으로 나타낸 압도하는 그림이다.
옆의 처녀는 당황스러운지 과부의 옷자락을 힘껏 움켜쥐고
그래도 호기심에찬 눈으로 지켜보는 광경이 미소를 짓게한다.
7.미인도(美人圖)
드디어 미인도다. 조선시대 여인 초상화의 백미로 꼽히는 그림.
당시 서울 상류사회의 풍류를 주도하던 세련된 여인의 모습이다.
사회제도상으로 여염집 여인들은 외간 남자앞에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기에 이 미인도의 주인공은 아마도 풍류계의 기생이었을 것 이라고 추측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더구나 쪽빛 치마 밑으로 살짝 드러난 외씨 같은 버선발 하며 왼쪽 겨드랑이에서 흘러내린 주홍색의 허리끈, 그리고 일부러 매듭을 짓지 않은듯한 자주색 옷고름등은 남성들의 마음을 일렁이게하는 고혹적인 모습이다.
진자주빛 옷고름의 세련된 삼회장 저고리하며 노리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손과 풍성한 치마 또한 너무나도 세련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더구나 이여인의 속마음까지 읽을 수 있게 그려진 가녀린 눈매에 애절한 눈망울과 앵두같은 꼭다문 입술, 그리고 거기에 우유빛깔 피부하며 다소곳한 여성성의 자세는 이 그림을 보는 한국사람뿐만 아닌 이세상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한 여인을 혜원은 어찌 이렇게 사랑스럽게 잘 그려냈을까?....
루브르에서 모나리자 그림앞에 넘치는 인파로 그림은 못보고 사람들 뒷통수만 봤다는 식으로 여기 간송미술관에서도 이 미인도 앞의 사람들은 떠날줄을 몰랐던게 사실이다.
다음은 단원 김홍도의 8.호귀옹렵(豪貴옹獵-호탕한 귀인의 매사냥) 이다.
어느 겨울날 자기 휘하의 사람들을 이끌고 매사냥을 나온 귀인을 그린 단원의 풍속화다.
어쩌면 이 그림은 단원이 연풍현감으로 있을 때 사냥을 즐겼다는데 그런 자기 모습을 그린게 아닐까 추측하게 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연풍은 태백산 근처 작은 마을로 실제로 이 곳은 매사냥이 성행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당시 정조의 사랑을 듬뿍 받던 단원은 일자리없이 그림만 그리는게 안타까운 정조왕으로부터 그 곳의 현감자리를 얻게 된다. 그러나 단원은 사실 행정에는 너무 어두웠고 재미도 없는 일이라 고을의 살림살이보다는 그림을 그리거나 사냥을 즐기는데 시간을 소비하기 일수였다.
겨울에 사냥을 할 때는 자기가 다스리는 고을의 장병들을 징발하면서 그 인원수가 부족하면 부족한 수만큼 세금을 더 메기는 등의 터무니 없는 행동을 하기도하여 그 일로 결국 연풍현감 자리를 박탈당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던 물정을 모르는 어린애같은 인물이 단원이기도 했다.
9.마상청앵(馬上聽鶯-말위에서 꾀고리 소리를 듣다.)
단원 김홍도는 진경 풍속화의 대미를 장식한 화가로써 이 마상청앵도는 바로 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녹음 우거진 늦 봄 어느날, 젊은 선비가 말을 타고 봄나들이를 가다가 버드나무 위의 꾀꼬리소리에 넋을 뺏긴듯
나뭇가지에 앉은 꾀꼬리를 올려다 보는 그림이다.
사선의 일직선 구도 위로 배치된 그림이 천재화가 답다.
말을 끄는 아이와 주인공과 버드나무위의 꾀꼬리는 모두 일직선의 사선위에 놓여있다.
더구나 그들의 시선처리 또한 모두 사선의 나무위를 올려보도록 처리한 것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버드나무의 일부분만을 잘라내어 그려놓은 것 또한 절묘하기 그지없다.
역시 한시대의 대가의 작품은 이렇게 그 품격이 다르다.
김득신의 작품이나 정선의 그림, 그리고 글씨로 유명한 이광사의 그림, 이명욱의 '어초문답'같은 명작들도 있었지만 다음기회로 미룬다.
간송미술관의 관람후 나오는 길은 이렇게 인적도 드물다.
한 번 들어가서는 쉽게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정원 한켠으로 간송 전형필 선생의 모습이 동상으로 남아있다.
그는 일제시대에 암울한 시기를 살면서 일본인들의 손으로 넘어가는 우리의 서화작품, 골동품, 도자기등을 수집 했는데 어떤것들은 집 한 채 값을 아낌없이 주어가며 수집한 것도 여러개가 된다는데 평생을 우리것의 가치를 알고 수집한 우리의 역사적 큰 인물이었다.
장안의 만석꾼 아들이었던 그는 재산을 모두 우리 문화재 수집에만 사용했다. 하마트면 일본인들의 손에 있을 이런 보물들이 간송의 노력과 재산, 힘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기도 한것이라고 말 할 수있다.
간송에서 보유하고 있는 수많은 보물들을 오늘 우리들이 무료로 접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그의 투철한 국가의식과
우리것의 소중함, 그리고 우리민족을 사랑하는 그의 깊은 뜻의 발현 때문이다.
옛것의 존귀함을 아는 그의 혜안 덕분이다.
다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간송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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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의 문화적미개인......간송미술관처음들어봅니다 부끄부끄 금낭화님 덕분에 이제라도 알게되어 감사드리며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