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가을 스웨덴 남부의 휴양도시 말뫼(Malmo)를 찾았을 때만 해도 이곳은 북유럽의 전형적 시골마을이었습니다. 자그마한 공항에 내려 입국 수속을 하는데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제 국적이 '사우스 코리아'인지 '노오스 코리아'인지 재차 확인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미 한국의 배낭여행객이 유럽 곳곳을 떼지어 여행 다닐 무렵이었지만 이 스웨덴의 시골 마을에서 저는 아직도 낯선 동양의 이방인이었습니다.
당시 '오즈의 마법사'에서나 볼 법한 말뫼의 그림 같은 하늘에다 끝없이 펼쳐져 있던 초원에 감탄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처음 방문한 사람은 그림 같은 경치에 감탄하곤 하지만 고위도에 자리잡은 북유럽은 겨울엔 오후 2시에 해가 지고 여름이면 밤 10시가 되도록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어 가족이 우울증에 시달리고는 한다는 말을 한 주재원에게 듣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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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펜하겐과 말뫼를 잇는 오레순드 대교 |
ⓒ 오마이뉴스 민경진 | 지지난 주 덴마크 하이테크ㆍ미디어연구소인 '이노베이션 랩'에서 주관한 포럼('Customer Made')에 참석해 '오마이뉴스 사례발표'를 했습니다. 8년 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상전벽해란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달라져 있었습니다. 말뫼와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을 잇는 자동차-철도 겸용 오레순드 대교가 지난 2000년 완공되면서 스웨덴과 유럽대륙의 북단인 덴마크가 육로로 연결된 것입니다.
코펜하겐 공항을 출발해 해저터널을 지난 뒤 거대한 사장교를 건너 장장 16Km에 달하는 바다 위의 여정을 마치면 스웨덴의 휴양도시 말뫼에 다다릅니다. 이 다리로 인해 코펜하겐과 말뫼는 기차와 자동차로 20분이면 왕래가 가능한 하나의 생활권으로 통합되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코펜하겐 공항이었습니다. 출국 게이트를 나서자마자 바로 연결되는 기차역에서 셔틀기차를 승차하면 곧 말뫼를 거쳐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까지 육로로 직행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자 자그마한 시골공항에 불과한 말뫼는 지역주민들에게조차 찬밥 신세가 되고 대신 유럽과 세계 곳곳을 잇는 직항로가 있는 코펜하겐 공항으로 스웨덴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코펜하겐 공항 밖에는 스웨덴 번호판을 부착한 자동차들이 무수히 정차해 있었습니다.
지난 2000년 완공 이후 오레순드 대교를 왕래한 인원은 총 5천만 명을 육박한다고 합니다. 스칸디나비아와 유럽 대륙을 잇는 허브로서 위상을 확고히 굳힌 덴마크는 경제적으로도 생기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코펜하겐 공항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유럽과 세계 유수 다국적 기업들의 연구소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고 덴마크는 유럽의 혁신기지로서 입지를 다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경제적 활력 덕택인지 출산율이 줄어 걱정인 다른 유럽국가와는 달리 덴마크는 최근 오히려 출산율이 올라 부부당 2.1명을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휴일을 맞은 코펜하겐 거리에서는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아빠와 엄마들을 셀 수도 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덴마크처럼 작은 나라가 어떻게 이런 거창한 토목공사를 벌일 수 있었는지 현지인에게 물었더니 덴마크 사람들은 다리를 짓는데 뭔가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호기롭게 맞장구를 칩니다.
실제로 여러 개의 큰 섬과 육지로 구성된 덴마크는 국토 곳곳이 운하와 만으로 둘러 싸여 있어 다리가 필수적입니다. 덴마크는 오레순드 대교 외에도 바다와 강으로 단절된 국토 곳곳을 잇는 장대교를 수도 없이 건설해 국토횡단 시간을 3시간 남짓으로 크게 줄였다고 합니다.
혹시 유럽에 가시게 된다면 다리 왕국 덴마크를 꼭 한 번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짙푸른 바다 위를 아득하게 가로지르는 장쾌한 다리들을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