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대조 필무공 비문- 1987년 10대손 인수 지음
2024.11.33 진주강씨 선영에서
필무공 비문 -한글 위주로 다시 씀. 2024.11.5.
공의 휘(휘)는 필무(弼武)요 자는 여해(汝諧)로 서기 1636년 병자에 태어나시어 임술년에 돌아가시니
향년47세요 묘는 상북면 석남산 둔덕 동북방 이곳에 위치하고, 배(配) 조비(祖妣-할머니)는 밀양박씨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 계립(繼立)의 여식이며 1635년 을해에 나시어 임술에 운명하시니 향년48세로
묘는 쌍분이다. 공의 선고(先考-아버지)는 선무랑 찰방공 계현(察訪公 啓賢)이며 조고(祖考-할아버지)는
통덕랑공 이인(通德郞公 里仁))이시다. 찰방공은 23세때인 서기1624년 갑자년에 선비(先妣-어머니)
제주 고씨(高氏)를 모시고 수백 수십년 오문(吾門-우리 문중)의 누대(累代-여러 세대)세거지(世居地)인
작약봉 서남하 향산 마을로 오시게 되었는데 그해 배(配) 조비(祖妣-할머니) 기계 유씨(杞溪 俞氏) 사이
에서 장자 익무(翊武)를 낳으시고 그 다음으로 필무(弼武) 상무(相武) 이렇게 삼형제분을 두셨으며, 학문
에 십여 년간 면려(勉勵)하시다가 공을 낳으시던 갑자년에 금정도찰방(金井道 察訪) 벼슬에 나아가시어
임기를 만료함에 그곳 백성이 송덕비를 세워 추모했다. 공은 성품이 온후질박하셨고 선고의 위엄과
덕행을 본받아 항상 서책을 가까이 하여 수신제가(修身齊家)에 힘쓰시고 이웃에 대하여는 이타심과
자애(慈愛-인자함과 사랑)의 마음으로 생활하셨으며 농사에도 힘써 가계를 풍유케 하셨다. 아드님으로
성우(聖遇) 성기(聖耆) 두 분을 두셨으니 성우 조고묘는 수피산(禾皮山)이며 성기 조고묘는 삼동 충곡산
(忠谷山)이라, 공이 돌아가신지 삼백수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일자 각문 없음을 후손은 불민히
(不愍히-부끄럽게) 여겨 오던 중 이제 정묘년(1987년) 봄계절을 맞이하여 조촐한 비를 세움에 송구한
심정으로 분향재배 드립니다.
서기1987년 정묘 2월
10대손 인수(仁秀) 근찬(謹撰-삼가 글 짓다)
8대손 경회(庚會) 근서(謹書-삼가 글 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