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 많다. 103장이다. 로딩과 스크롤의 고통에 대해 미리 사과드린다.
토지초등학교 연곡분교장. 이것이 연곡분교의 정식 이름이다.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서리에 위치하고 있다. 본교인 토지초등학교는 1925년에 토지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몇 개의 분교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1990년에 외곡분교장을,1996년에 송정분교장을 통폐합했다. 1997년 3월 1일, 토지동초등학교가 연곡분교로 격하되어 편입되었다. 처음에는 분교 수준이 아닌 정상적인 초등학교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느 분교보다 좀 큰 편이다. 2000년대로 들어와서는 위기를 맞이한다. 20명 이하의 분교는 폐교하고 본교와 통폐합을 해야했다. 우여곡절 끝에 위기를 넘겼다. 이제는 주민들 중 등교시키는 학부모의 60% 이상이 폐교를 원하지 않는다면 학생 수가 폐교를 결정하는 잣대는 아니라고 한다. 다행이다.
2010년 4월 15일 목요일. 이른 아침에 연곡분교를 찾았다. 계곡을 따라 남산마을에서부터 도로공사 중이다. 그래서 학교는 공사판에 포위된 형국이다. 진입로와 주변은 자재와 울불퉁한 도로 등으로 산만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학교는 명확한 경계선을 긋고 있었다. 줄벚과 벚나무, 주변의 산벚나무는 학교를 백색성역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곳의 벚꽃은 섬진강변보다 일주일은 늦게 핀다. 벚꽃이 피면 연곡분교를 스케치하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다. 일주일 전에 연곡분교를 찾았었다. 학교와 아이들 촬영, 수업 참관에 대해서 허락을 구해야 했다. 인원이 적어도 학교다. 학교가 존중받아야 할 가장 큰 권리는 수업권이다. 그것을 침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무엇보다 학교와 아이들을 풍경의 일부분으로 전달해 버리는 꼴사나운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를 온전하게 아이들과 선생님, 학교를 느끼고 기록하고 싶었다. 2학년 김찬서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찬서 부모님의 동의도 구해야했다. 찬서의 담임 선생님은 작년 1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던 한상모 선생님. 우리는 이미 서로 구면이다. 질문은 하지 않고 스케치만 하겠다고 말씀드렸고 그렇게 진행했다. 허락을 얻고 교실의 아이들을 잠시 둘러 보았다. 아이들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목요일은 토지면 본교에서 통합수업을 하는 날이다. 따라서 목요일 아침 연곡분교 방문은 순전히 학교의 벚꽃을 촬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막상 금요일 아침에 모든 상황을 기록하는 것은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결정적인 사진은 아침에 건지게 될 것이다. 목요일 아침은 추웠다. 지난 밤 아랫 마을의 굵은 비는 이곳에서는 눈이었던 모양이다. 가까운 산기슭엔 햇볕 사이로 이른 신록과 지난 밤 눈이 빛나고 있었다.
학교 주변을 좀 둘러보자. 목요일 아침 촬영의 목적이 그러하기도 했고.
수요일 오후에 손님들과 우발적으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 나는 꽃의 상황 때문에 잠시 당황했었다. 생각보다 전반적인 만개가 하루 이틀 정도 빨랐고 추위 때문에 꽃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줄벚은 절정을 넘긴 모양이었다.
그러나 목요일 아침의 꽃들은 하루 전 오후의 꽃 보다 황홀한 상태였다. 아래로 몇 장 내려둔다.
4월 16일 금요일 아침.
4월 16일 금요일 아침.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맞는 것인지, 날 받아 둔 처녀도 아닌데 연곡분교로 향하는 몸과 마음이 살짝 두근거렸다. 8시 조금 넘었고 아이들의 등교를 기다린다. 1층 복도와 교실을 둘러보았다. 유치부 방 앞의 모습이다. 오늘 유치부 아이들은 오전에는 없다. 구례읍으로 견학을 갔다고 한다. 이 복도 사진이 마음에 남는다.
교정의 벚꽃은 만개했다. 금요일 아침도 목요일과 같이 쌀쌀한 기온이어서 햇볕은 더 빛났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기다린다.
교문 앞에 차가 섰다. 세 명의 아이들이 내렸다. 나는 멀리서도 누군지 알 수 있다. 김찬우, 하은, 찬서 남매들이다. 교문은 덩그라니 세 명의 아이들을 맞이했다. 벚꽃 잎은 삼백만 개 정도 되었지만 단지 세 아이가 그 속을 걸어 오고 있을 뿐이었다. 여유로웠고 일상적이었고 충만한 여백이었다.
김찬서. 이제 2학년이 되었다. 카메라를 보고 좀 뜨아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점점 길 밖으로 물러서면서 주춤주춤 걸어왔다.
아이들의 등교를 보고 교무실로 들어와서 선생님들과 함께 차를 마셨다. 곧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 교무실 책상 위에는 책이 가득하다. 신청한 책이 도착하면 도서목록을 작성해야 한다. 분교에서 따로 작은 도서관을 구비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물어보았다. 잠시 이런저런 구상을 해 보았다. 연곡분교는 작년과 다른 상황이다. 2010년 신입생은 없었다. 졸업생이 한 명이었으니 전교생은 2009년 보다 한 명이 줄어 든 10명이다. 정식교사로 수업에 참여하시는 선생님은 두 분이다. 2학년과 4학년을 맡고 계신 한상모 선생님, 5학년과 6학년을 맡고 계신 황두연 선생님. 대학생 같은 분위기의 앳된 젊은이가 보여 '누구?'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니 인사를 시켜주셨다. 하도 신선해 보인 탓에 나이를 물어보고 말았다.
"황 샘은 실례지만 나이가?" "스물넷입니다." "군대는?" "아직..." "하~ 딱 내 절반이네. 아, 미안합니다. 하도 젊어 보여서 그만..."
2학년 1명, 3학년 2명, 5학년 4명, 6학년 3명 모두 10명의 학생들이다. 그리고 학교의 제반 업무를 도와주시는 이 선생님, 유치부 진 선생님, 이 식구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조리사 홍 선생님, 그리고 유치부 보조 선생님이자 일본어 선생님, 영어회화를 담당하는 Matthew 선생님, 바이얼린 선생님, 컴퓨터 선생님이 연곡분교를 이루고 있다.
금요일 오전 동안 나는 이 교실에서 근무할 것이다. 이 교실은 2009년 보다 인원이 2명 더 늘었다.
* 2009년 10월 28일 같은 교실에서.
위 한 장의 사진이 내가 스스로 연곡분교에 좀 더 다가서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2학년과 4학년 합반교실이다. 2010년 연교분교에는 언제나처럼 1학년과 3학년 교실은 준비되어 있지만 그 공간에 앉을 주인공들은 없다. 2010년, 이 교실은 인원이 증가했지만 그것은 다른 한 교실이 텅 비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두 개 학년이 없어 선생님도 두 분으로 줄었다. 한 선생님이 두 개 학년의 합반수업은 가능하다. 2009년에는 세 분의 선생님이 계셨다.
느낌이 다르다. 2009년 11월로부터 불과 5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이들은 자랐다. 유림이는 발랄한 아인데 카메라 앞에서는 온순해진다. 의식을 한다.
하은이는 오히려 작년 보다 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듯 하다. 작년이나 금년이나 하은이는 집중력이 높아 보인다. 주변 상황을 별로 게의치 않는다. 연곡분교에는 간혹 스틸이건 움직이는 그림이건 카메라 든 사람들이 찾는다. 외진 곳에 있어 오히려 그런 만남이 많다보니 어쩌면 그 모든 상황에 반응하는 일도 귀찮을 것이다.
찬서는 몸도 자랐고 정신도 자란 듯 하다. 2009년에는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거나 외면했다. 나에게 말을 거는 경우도 없었다. 많이 밝아졌다. 아니 어쩌면 찬서의 본 모습을 향해 진행 중인 것이다. '어! 누구더라...' 라는 반응부터가 의외였고 5개월 만에 자기표현이 활발해졌다.
선생님으로부터 미리 말씀이 있었을 것이다. 교실로 조용히 들어섰지만 아이들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나 역시 조용히 걸음을 옮기면서 교실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다. 바로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도 좀 그렇지 않은가. 아이들의 글씨는 칠판의 선생님 글씨 표정을 닮는 경우가 많다. '오니까다' ㅎ.
수업은 1, 2교시로 묶어서 진행을 했다. 9시부터 10시 20분까지 진행을 한다고 했다. 오늘 첫 수업은 그리기다. 교실의 상황 자체가 긴장감이 흐를 수 없다. 아이들은 앉아서, 일어서서, 걸어다니면서 수업을 했다. 그것은 산만하기 보다는 자연스러워 보였다. 스무 명 정도의 아이들이 앉거나 서거나 걸어다니는 교실은 산만해 보일 것이다. 이 교실이 만약 붙박이 가구처럼 정좌하고 앉아 있는 세 명의 아이와 열변을 토하는 한 분의 선생님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참 어색할 것이다.
한 선생님이 확인성 질문을 한다.
선생님 / 멀리 있어서 작게 그린거야? 유림 / 아뇨, 그냥 제 맘대로 그린거예요. 선생님 / 하~ 참... 여튼 그게 맞게 그린거야. 유림 / 몰라요.
수업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일찍 미션을 끝을 낸 아이는 선생님을 닥달한다.
유림 / 서서 놀께요. 그만 할께요. 선생님 / 유림이가 놀면 하은이랑 찬서도 놀고 싶잖아. 유림아 열무에 물 좀 주지? 찬서 / (스케치북을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강남콩 썩었어. 찬서 / 선생님, 우주는 어떤 색으로 해야할까요, 우주는요? 하은 / (눈은 스케치북에 고정한 채)남색. 선생님 / 쉬었다가 화장실 갔다와서 50분에 시작하자. 읽기책 준비하고, 도깨비 이야기는 했죠? 동물마을부터 하자. 50분에 하자. 유림 / 아뇨, 지금 할꺼예요. 선생님 / 하은아 68쪽이야.
2교시가 시작되었다. 모니터로 수업 내용을 출력한다. 노래는 자막과 사진과 함께 등장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 처음 만나도 몇 등이냐고 물어본다."
유림 / 사진은 필요없어요. 노랫말만 들으면 되죠. 하은 / 어~ 가수가 쩐다. 선생님 / 제목이 뭐였죠? 여러분은 집에 가면 안맞죠? 여러분은 걱정이 있어요 없어요? 유림&하은 / (높게)없어요! 찬서 / (낮게)나도 없어요.
선생님 / 어른들은 걱정이 뭘까? 아이들 / 공부, 술 먹는 거, 아이들 공부한 거, 짜증난 거, 커피 마시는 거. 아빠가 걱정이다. 맨날 술 먹고 담배 피고...
다른 노래가 나온다. 꽃들에 대한 동시에 곡을 붙였다.
선생님 / 자, 아는 꽃들이 많지요? 유림 / 없어요 없어욧! 선생님 / 유림이는 무조건 없어요? 유림 / 귀찮아요 귀찮아요! 벚꽃이 안보이는데요. 하은 / 안경 압수 당했을 때는 벚꽃이 매화꽃으로 보였어요. 선생님 / 하여튼 여러분들이 아는 꽃을 만날 수 있을 꺼예요. 유림 / 아뇨, 난 안만날꺼예요. 선생님 / 아는 꽃도 나왔죠 유림 / 아뇨, 다 몰라요. 선생님 있잖아요, 오늘이요 오늘 오늘~ 걷기 하잖아요. 근데 몇 명 가요? 선생님 / 전부 다 가야지. 자, 며느리밥풀꽃은 왜 그렇게 부를까요? 하은 / 며느리가 만든 밥풀처럼 생겨서요. 선생님 / 찬서도 읽기책 꺼내야지. 자, 의견을 이야기할 때는 까닭이 있어야지요. 까닭이 없는 의견은? 아이들 / 떼 쓰는거요!
선생님은 그렇게 좌우의 테이블을 오가며, 또는 아이들이 오가며 수업을 진행했다. 잠시 밖으로 나왔다. 아침보다 날씨는 많이 포근해졌다. 벚나무 아래에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오늘은 제법 많은 사진을 찍을 것이고 아마도 끝이 나면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될 것이다. 긴 하루가 될 것이니 쉬엄쉬엄하자.
선생님 / 축구 좋아해요? 찬서 / 아뇨. 선생님 / 좋아하는 스포츠는? 찬서 / 없어요. 선생님 / 김연아는? 찬서 / 춤 추는 것 보다는 택견이 좋아요. 선생님 / (겨우 교과서 내용으로 진입할 빌미를 잡았다)그럼 형이 택견 시합에 나갔다, 어떻게 응원할꺼야? 찬서 / 그냥 환호성요.
선생님 / 찬서, 삼삼칠 박수 몰라? 찬서 / 모르는데... 선생님 / 삼삼칠은 지난 번 운동회 때 응원할 때 했는데. 찬서 / 아주 쬐끔했죠. 선생님 / 그럼 찬서는 어떻게 응원했는데? 찬서 / 이겨라.
선생님은 찬서에게 동작과 함께 책에 나오는 삼삼칠 박수를 시연해 주었다.
선생님 / 이게 무슨 박수다? 찬서 / 삼삼칠박수요. 선생님 / 찬서 오늘 하나 배웠네. 자, (책을 보며)까치는 응원하는 걸 어디서 배웠을까요?
10시 30분. 중간놀이 전교생 건강걷기 시간이다. 열 명의 전교생과 두 분의 모든 선생님이 함께 걷기를 시작했다. 황 선생님이 맨 앞에 서고 한 선생님이 맨 뒤를 따른다. 오늘은 찍사가 진짜 맨 뒤를 따른다.
학교 아래로는 신촌마을까지 도로를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잠시 이 계곡의 가구 수와 도로 확장의 필요성에 관한 함수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불필요한 고민이다. 불가항력이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포장도로가 비포장도로 보다 문명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앞 선 일행이 멈추어 섰다. 누군가 뒤처진 것이다.
5학년 진우가 아침부터 배가 아프다고 했다. 한 선생님이 내려가서 진우의 상태를 살피고 천천히 함께 걸어온다.
비교적 맑은 날이었지만 역시 연무가 좀 있다. 산골마을에도 봄은 여지 없이 오는 것이라 모두들 일을 하러 나오셨다. 물 잡은 것 보니 이 마을 못자리가 될 모양이다. 다랭이 논일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피아골 계곡이라 부르는 이 계곡 주변으로 녹차밭이 많지만 역시 그렇게 안정적인 작물은 아니다.
거의 한 달 동안 수십 km 또는 몇만 평 단위로 무리진 흰꽃들을 주로 보다가 이렇게 길섶에 핀 꽃을 보면 30년 전에 헤어졌던 동생과 상봉한 듯 한 기분을 느낀다.
남산마을 위 계곡 초입이 오늘 건강걷기의 목적지다. 학교를 나선지 10분 정도 지났을 것이다.
계곡을 내려다보던 유림이가 짹짹거리는 소리를 내었고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나의 유년은 부산하고도 양정이란 동네가 시절일 것인데 신축 주택 위는 산이었고 웅덩이는 흔했고 우리 역시 이런 식으로 봄을 맞이하곤 했었다.
개구리 알과 이미 부화한 올챙이 몇 마리를 담았다. 유림이 표정이, '징그럽지만 잡고말겠어'란 의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잠시 계곡에서 10분 정도 머물렀다. 다시 내려가서 수업을 해야 한다. 오전 마지막 수업이 될 것이다. 이번에는 한 선생님이 앞장 서고 황 선생님이 진우와 함께 맨 뒤를 따랐다.
다시 유치부 교실 앞 복도. 아침으로부터 3시간 가까이 경과했고 빛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안녕.
3, 4교시가 시작되었다. 쓰기 시간이다.
유림 / 과학은 언제 해요? 선생님 / 과학은 수요일이지. 유림 / 오늘해요! 선생님 / 그러면 다른 과목이 섭섭해 하잖아. 뭔가 쓰고 싶을 때도 있잖아. 유림 / 저는 쓰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 / 유림이는 그래도 찬서는 꿈이 동시 작가야. 양말 빵구 났을 때 쓴 시도 있죠? 찬서 / (낮게)그건 비밀로 하기로 했는데... 선생님 / 음... 유림 / 저희는 만들고 싶어요. 선생님 / 참을 줄도 알아야지.
찬서는 요즘 이 연필에 필이 꽂힌 모양이다. 연필 잡는 자세를 교정시킨다고 한다.
"스스로 한다가 '자주自主'예요. 자주 먹는다, 자주 논다와는 다른 뜻이예요."
다시 진도를 나간다. 듣자하니 공공장소에 대한 개념을 심어 주는 과정인 듯 하다.
선생님 / 찬서야, 파출소가 어떤 곳이지? 찬서 / 뭔가 빌리는 곳.(찬서는 단답형이나 명확하게 표현하는 스타일이다) 선생님 / 음 -,.-; 그렇지. 그런 일도 하긴 하는데... 찬서는 한번도 파출소를 못봤죠. 찬서 / 네. 선생님 / 본교에 수업하러 가면 토지면에 지구대, 지구방위대가 아니라 지구대 봤지요? 호돌이 그림 있고. 그곳이 파출소예요. 찬서 / ㅎ 지구방위대. 선생님 / 유원지, 유원지 몰라요? 유원지는 공원하고 비슷한데, 순천 가봤지? 놀이기구가... 찬서 / 그냥 노는 거예요? 그건 다 누가 만든거예요? 선생님 / 자, 여럿이 있으니까 공공장소라고 하지요. 자기만 사용하는게 아녀.(갑작스런 선생님의 사투리) 유림이나 하은이가 떠들면 조용히하라고 그러지, 왜? 찬서 / 공공장소니까.
선생님 / 찬서, 마을회관은 알지요? 농평에 마을회관 있어요? 회관이 무슨 뜻이죠? 찬서 / 농평에는 없어요. 교회하고 폐교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많이 없어요. 선생님 / 지난 번 가정방문 때 선생님이 가 보니까 새로운 집이 많이 생겼더만. 인사도 하고 그래? 찬서 / 가끔씩만 그러죠. 선생님 / 친구는? 찬서 / 딱 한 명 뿐인데, 한 명 밖에 못구했어요. 다른 마을에서 와요. 유림 / 선생님 33쪽하고 34쪽 해요? 선생님 / 해야지. 찬서 보고 갈께. 유림 / 저희는요? 선생님 / 찬서는 어리잖아, 질투하는거야? 유림 / 질투 안하는데요. 선생님 / (찬서에게)유림이 누나가 안떠드니까 기분이 좋지? 찬서 / 그렇긴 그렇죠. 그런데 선생님 파마하면 절대 안돌아오죠? 유림&하은 / 푸는 약 있어.
선생님은 결국 유림이의 재촉에 예정에 없었던 만들기 수업을 잠시 해야했다.
12시 20분. 점심시간이다. 아침에 미리 나와 월인정원의 밥도 부탁드려 놓았다.
오늘의 메뉴는 수수밥, 동태매운탕, 오리훈제, 소라부추오이무침, 황도젤리다. 테이블마다 상추와 고추를 놓았다. 급식이 맛있다. 재료와 조리 자체가 그러했다. 이전에 아이 때문에 두어 번 배식 경험이 있는데 대도시의 급식하고는 확연히 달랐다. 소수의 장점이랄까. 스무 명 남짓한 밥상이다.
공간의 쾌적함은 음식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 작아서 가능한 일이고 작은 것을 살리는 일이 큰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점심을 잘 먹었다. 1시 30분까지는 쉬는 시간이다. 잠시 교정을 걸었다.
점심시간에 청소를 한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청소를 한다. 커피 한 잔 마시고 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유림이는 불만이다. 선생님이 같이 하지 않으니 청소가 힘든 것이다.
"그래 그래 금방 갈께." "방과 후에 청소를 하지 않나요?" "끝나고는 갈 길들이 바쁘고 해서 점심 먹고 청소를 합니다."
유치부 꼬맹이 다섯 명은 점심시간 직전에 학교로 돌아왔다. 청소로부터 자유로운 아이들이다. 뒷마당이 놀이터다.
뒷마당이 소담하고 예쁘다. 큰운동장에서 놀기엔 쓸쓸하기도 하다. 이렇게 놀고 들어가서 또 놀 것이다.
찬서야, 불장난하면 밤에 거시기한다. 오랜 그 격언이 옳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점심시간은 끝이 났다. 아이들은 제 각각의 교실로 돌아갔다. 일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돌아가던 필름이 멈추고 to be continued 자막 없이 그냥 end 자막까지 야속하게 올라가 버리고, 관객들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것 같은 일 순간의 침묵이었다.
아이들을 바로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 잠시 벤치에 앉았다.
벚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대부분의 풍경을 사각형 속에서만 바라보았다. 나의 3차원은 프레임 속에 있을 뿐이었다. 이 시간이 온전히 내가 즐길 수 있는 2010년 마지막 벚꽃놀이가 될 것이다.
지난 한 달간 꽃이 아쉽다는 생각은 물론 하지 않았다. 이 순간 지는 꽃이 약간 아쉬웠다. 스스로 참 좋은 곳에 살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내가 그림을 전공한 것은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명감이 아니라 이런 교정에서 나른한 인생을 즐기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 또래의, 전형적인 허무주의에 빠진 고등학생이 품을 만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대략 30년 만에 나는 다시 선생님이고 싶었다.
2층으로 올라갔다. 2학년과 4학년의 정규수업시간은 끝이 났고 5교시는 talk time이다. Matthew 선생님이다. 원어민 교사다. 이런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의 생각이 궁금했다.
"John, 성이 뭐야?"
찬서는 이 수업시간에 존이다. 존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또는 답변을 해야한다는 부담이 전혀 없어 보였다. 수업은 자유분방하게 진행되었고 아이들은 대답이 아닌 소리를 질렀다. 수업처럼 보이지 않는데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영어로 대답하고 있었다.
옆 교실로 이동했다. 5학년과 6학년 합반이다. 음악시간이다. 손뼉을 치면서 박자를 맞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아이들은 뒤를 돌아보았고 이내 고개를 앞으로 향했다. 고학년들은 카메라를 의식한다.
창가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녀석 조차 평화로워 보였다.
1층 유치부로 이동했다. 조용했다. 노는 녀석들과 자는 녀석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이곳은 어쩌면 유치원도 학교도 아니다. 그냥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것이다. 유치부에서 6학년까지 어차피 하루 종일 이 공간에 머문다.
뒷마당에 인기척이 있다. 영어수업을 마친 찬서와 유림이 하은이가 놀고 있다. 아이들은 3시에 진행될 바이올린 수업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찬서는 확실히 작년과 다르다. 조용하지만 의사표현이 명확했고 어휘력이 정확하다.
아마도 앞으로도 나는 찬서를 간혹 보게 될 것이다.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어쩌면 나는 성급하게 찬서의 졸업식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어디로 결정하느냐에 따라 아이가 살 곳이 결정된다.
유림이. 점심시간에 유치부 선생님이 머리를 땋아 주셨다. 오늘 유림이게 들은 언어의 대부분은 '몰라요!'였지만 유림이는 쑥을 아는 모양이다.
오후 3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이들과 나 사이를 가로막았던 카메라로 인한 긴장감은 사라졌고 나 역시 편안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던 교정을 돌아보았다. 운동장은 오후 빛이 좋을 것이란 생각을 했고 미루어 두고 있었다.
나는 왜 연곡분교를 찾은 것일까?
"의견을 이야기할 때는 까닭이 있어야지요. 까닭이 없는 의견은?" "떼 쓰는거요!"
내 행동의 까닭은 무엇일까? 나이를 먹을 수록 행동은 까닭에 기반하지 않고 목적을 우선한다. 정해 놓은 결론을 향해 행동한다. 모든 행동이 그러하지는 않지만 많은 부분에서 그렇다. 나는 그런 듯 하다. '듯 하다'는 표현은 나를 위한 이기적인 배려일 것이다.
하여간에 나는 연곡분교에서 무엇인가를 보고자 했던 것이다. 순수함, 작은 것의 아름다움, 뭐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왜 그런 것을 보고자 했을까? 세상이 그러하지 못하다는 소리를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결국 세상을 욕하기 위해 세상의 변방을 찾는 것이다. 어른들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런 이야기를 통해 반성하는 척 하기 때문이다. 아홉 번의 의도적인 잘못을 한 번의 기도와 고해로 탕감할 수 있다는 종교라는 장치보다는 고약하지 않지만 반성의 수단으로 아이들을 택한 것 또한 결국 순수하지 못한 것이다.
아이들의 환경은 결국 어른이 결정한 것이다. 간혹 '네 스스로 결정해라' 라는 말을 제 자식에게 하곤 하지만 사실 아이들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의 구 할은 '내 부모'의 생각과 환경이 강제하고 있다. 대학에서, 그것도 미술대학에서 내가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정해진 그 답답한 프로그램으로 4년의 수업을 진행하고 졸업하는 놈에게 '네 자신의 언어를 가져라' 라는 개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16년의 정규교육 시간 동안 나는 단 한 순간도, 단 한 사람의 선생님도 마음에 담지 못했다. 나는 내 친구 모규홍 보다 공부를 못했지만 통신표에는 항상 내가 모규홍을 앞서 있었다. 그것은 불행이다. 간혹 만나는 인생의 결절점에서 찾아뵙고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다.
아이들은 결국 부모가 선택한 삶의 방식 속에서 아주 작은 선택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어른의 역할이 중요하다. 연곡분교의 아이들 역시 스스로 이런 환경을 택한 적은 없다. 이 작은 단위 안에서도 다양한 환경과 조건의 아이들이 공존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힘든 것은 공통적인 것이고 조손가정도 있고 다문화가정도 있다. 의지로 모든 난관을 타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은 문학이 아니라 주로 기술이었다. 기술은 연마하고 구사하고 전수하는 것이다.
인생을 착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공부는 초등학교 1학년 과정만으로 충분하다. 거짓말은 좋지 않고, 친구와는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는 등의 이야기와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두 개가 된다는 정도만 알아도 착하게 살아 갈 수 있지만 세상은 그것만 아는 놈에게 인간의 품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가장 먼저 교육받은 내용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지키기 힘든 것들이기도 하고 지킨다고 해도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육에서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교육을 받은 어른들이 심심찮게 TV에 나와서 거짓말을 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돌이킬 수 없는 세상이란 것은 너무 뻔한데 나는 이곳에서 '너희들은 아름답다'를 반복하는 것으로 아이들에게 힘을 줄 수 있을까.
오후 3시 바이올린 수업 시작 전에 아이들이 모두 모였다. 월인정원이 준비한 간식을 내어놓았다. 롤케이크와 쿠키를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간식으로 맛 볼 수 있는 양 정도를 준비했다. 대부분 우리가 사는 곳에서 난 것들로 만들었다. 좋은 먹을거리를 누려야 할 1순위는 아이들과 노인들이다. 아이들은 가능성이 있어 그러하고 노인들은 다시는 누릴 수 없어 그러하다.
"이거 내일도 줘요?" "유림아, 아저씨 내일 없다. -,.-"
바이올린 수업은 연곡분교의 특색 있는 수업 중 하나다. 전교생이 바이올린을 익힌다. 그것은 어쩌면 어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로망으로서의 시골분교 그림을 완성시킨다. 어쩌면 그것은 <내 마음의 풍금>스러운 영상을 떠 올릴 수 있는 적절한 아이템이지만 연곡분교엔 이병헌도 전도연도 없다.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이 수업을 힘들어한다. 어쩌면 바이올린 수업은 모든 수업을 통털어 가장 힘든 수업이다. 합주이기 때문이다. '내가 틀리면' 전체가 틀린 것이 된다. 그래서 익혀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쉽지 않다. 나는 몇몇 아이들에게 작년의 '너희들 모습이 얼마나 멋졌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금년에는 찬서도 바이올린을 익히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무늬만 바이올린이었는데 이제 찬서도 가을 학예발표회 무대에 올라야 한다. 끽끽끼이익~ 이번 가을에는 찬서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동영상 장비 준비해야겠다.
이제 하루를 마감해야 한다. 잠을 자던 유치부 아이들도 일어나서 집으로 갈 채비를 마쳤다.
내일이면 꽃비를 내릴 벚꽃 아래로 은희가 엄마와 함께 집으로 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학교로 오는 발걸음 보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훨씬 가볍다. 역시 '해야 하는 일'은 '하고 싶은 일'보다 무겁긴 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고 어른들은 말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 말에 살짝 의문을 표했다. 어른들은 끝까지 해야 하는 일만 하고 하고 싶은 일은 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리고 모두 자신을 탓했다. 어린 시절에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지 못한 탓에 그리되었다고.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어른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일 것이다.
찬서가 날아간다.
"아저씨한테 인사해야지!" "안녕 가세요."
찬서 동생 찬이와 엄마가 마지막으로 학교를 나선다. 김찬우, 김하은, 김찬서, 김찬 없는 연곡분교는 쓸쓸할 것이다. 그녀는 네 명의 아이를 분교로 보내고 있다. 멀리서 시집왔다. 그녀의 이름은 다나까 유꼬.
겨우 오후 네 시를 넘어서고 있었지만 계곡의 해는 짧았다. 그리고 너희들의 생각이 어떠하건 나는 너희들이 부러웠다. 너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교의 주인이니까.
유치부 이현겸. 막내다. 현겸아, 그런 자세는 학부형 포스가 풍겨 -,.-.
유치부 김찬. 찬서네 막내다.
유치부 임은희. 카메라만 들이대면 이런 표정을 짓는다.
유치부 이가연. 가연이 사진 찍기 정말 힘들다. 쉴새 없이 움직이거나 잔다.
유치부 손예린. 새침데기.
2학년 김찬서. 찬서의 성장을 지켜보자. 장래 희망은 대통령. 찬서야 대통령 되어도 강은 냅둬라.
4학년 김하은. 요리사가 꿈이다. 찬서 누이다.
4학년 김유림.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한다.
5학년 김성환. 유림이 오빠다. 희망은 축구선수다.
5학년 김한솔. 장래 희망은 고민 중이란다. 한솔이는 점심 시간 이후 배가 아파 오후에 사진을 찍지 못했다. 2009년 사진이다.
5학년 한연호. 영화감독이 꿈이다. 그리고 어렵게 만났으니 물어봐야겠다. 메텔은 인간이니 기계니 외계인이니?
5학년 김진희. 리더 기질이 있다. 내년이면 동생들을 모두 챙길 것 같다.
6학년 한서효. 축구선수가 되고 싶단다. 진우와 단짝이냐니까 아니라고 하면서 계속 진우와 붙어 있다.
6학년 김진우. 의사가 꿈이란다. 의사가 너무 잘 생긴 것 아냐!
6학년 김찬우. 희망은 과학자다. 찬서의 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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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집니다.^^* 아~
와아~! 아름다운 자연과 어린이들 멋집니다. 아이들이 행복해 보입니다. 어린이 자신은 모를지도... 그러나 훗날 어른이 되면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고 미소짓게 되겠지요.
현장감 있는 사진 잘 봤습니다.
마음이 여유로와 지네요.
행복하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미소 많이 담아 갑니다..... 기분좋은일로 가득한 하루 되세요
아이의 꼬불꼬불꼬부랑글씨..........나는 ( 걱정이 없어서 ) 걱정이다........아이가 자라도 지금처럼 그런 세상 맞이할수있을까요.
아이들의 헤맑은 미소에 가슴한켠 따스해지는 그런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