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일 (일)
새벽 4시, 같은 방 룸메 재무님 핸드폰과 내꺼 알람이 동시에 울린다.
어제 저녁, 테이크 아웃한 마파두부에 소주 한 잔을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눈이 일찍 떠진다.^^ 5시부터 물품 보관이 가능하고, 6시 정각에 대회 출발이라고 하니 조금 여유는 있지만, 처음 참가하는 대회라 조금 더 서두른다. 눈 뜨자마자 아침 식사부터. 사실 한국에서는 풀코스 아침을 늘 인절미로 대신하곤 했는데, 해외 대회라 아침식사가 난감하다. 햄버거로 할까 하다가 혹시 몰라 출발전 금요일 오후에 구입한 인절미 2팩을 넣어 왔는데, 상태가 괜찮다. 재무님은 찰밥을 가져왔는데, 역시 먹을 만하다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늘 하던 복장에 핸드폰과 단체 사진 찍을 때 쓸 클럽 현수막을 어제 받은 노란 가방에 넣고 일행들과 대회장으로...
대회장으로 가는 길에, 비슷한 복장을 한 많은 이들이 눈에 띈다.
20대 젊은 주자들과 여성주자들의 비율이 한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듯하다. 가끔 클럽티를 맞춰 입은 선수들도 보이고, 중국 본토나 홍콩에서 건너온듯한 팀들도 보인다. 중국에선 마라톤이 "중산층이 즐기는 운동"이라는 인식으로 한참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젊은 주자들이 많다는 건 무척 부러운 부분이다. 어제 만난 현지 친구도 오늘 미니 코스를 뛴단다.약속한 장소에서 만나 사진 한장 찍고 각자 코스로. 이따 저녁 먹을 무렵 호텔에서 만나기로 했다.
대회장 입구
오늘 클럽에선 회장님, 재무님 그리고 내가 풀코스를, 대원형, 화영씨, 은영씨가 하프 코스를 뛰기로 했다.
대회직전 단체샷 (나중에 단체로 가게 되면 또 쓸려고, 일부러 현수막을 크게 만들었더니 너무 크다...^^ )
물품을 맡기는 곳은 어제 배번을 받았던 그 장소.
하프와 미니, 풀 코스가 보관소 들어가는 입구부터 잘 구분되어 있어, 기다리지 않고 바로 맡길 수 있었다. 하지만, 화장실 줄은 한국이나 마카오나 똑같이 길구나.ㅎㅎ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마침 호텔에서 조금 늦게 출발한 대원형이 딱 지나간다.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선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하프와 풀코스 출발을 같은 곳으로 안내해 경기장 안까지 같이 들어갔다. 마침 대원형이 들고 뛸 생각이였는지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서, 입구에서 기념 사진 한장. ^^
풀/하프 안내 표지를 따라 경기장에 들어서니 400미터 트랙에 사람이 가득하다.
반대편 트랙에는 수천명의 5.5km 코스 주자들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풀/하프가 먼저 출발하고, 그 후 미니코스가 출발하는 듯. 흥미로운 건 처음 접수할 때 나이별로 그룹이 나누어져 있어, 그 그룹대로 출발하는 줄 알았더니 그냥 경기장에 들어오는 순서대로, 기록대 상관없이 풀, 하프 모두 섞여 출발하는 거 같다.(물론 초청선수와 엘리트들은 맨 앞쪽으로 우선 배정) 일본 대회처럼 도착한 순서대로 출발 라인에 일단 한번 서면, 사람들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엄격하게 통제하는데 여긴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
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경기장을 빠져 나가면 분명 병목 현상이 생길텐데... 그럼 이럴땐 무조건 앞쪽에서 출발해야 그나마 원하는 기록을 노려볼 수 있을텐데, 주변을 보니 앞으로 나가려는 그런 분위기는 또 아니다. ^^;; 아무리 관광차 왔지만 3시간 30~40분대는 맞추고 싶은데.. 앞으로 끼어들어야 하나... 머리가 복잡하다.
출발시간인 6시가 다 되어가는데, 개회사도 없고, 스트레칭 시간도 없고... 간간이 중국어로 여성 사회자 목소리만이 들릴 뿐... 조금 출발이 늦어지려나 하는데, 갑자기 저 멀리 앞에서 카운트 다운 하는 소리가 들린다. ㅎㅎ 이 동넨 개회식 자체가 없나 보다. ㅋㅋ 사람이 많으니 출발선까지 가는 것도 한참이 걸린다. 거의 걸어서 출발선 통과. 그리고 조금 뛰는가 싶더니 운동장 밖으로 나가는 출입구 바로 앞에서 다시 멈춤. 첫 1km 통과하는데 6분 40초가 찍힌다. ㅋㅋ
대회 코스도 (마카오 구석구석 동네 한 바퀴^^)
초반 속도 내기 어려울 거란 얘기를 작년 이 대회를 다녀온 마라톤 세상 이영애 대표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근데, 생각보다 너무 막힌다. 풀, 하프 합쳐서 6천명이 한 덩어리로 출발했으니, 왕복 4차선 도로도 좁다. 더욱이 4분~6분 페이스 주자들이 다 섞여 있어서 도무지 원하는 속도로 달릴 수가 없다. 3키로 지점까지 5분 30초 페이스로 갔나... 마카오 반도로 건너가는 첫번째 다리를 들어서자 이제야 개인 간격이 조금씩 넓어진다. 정면으로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금빛 리스보아 호텔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다리 후반부 600~700m 오르막을 올라 시내로 접어드니 페이스가 이제서야 4분 후반대로 맞춰진다.
4km 지점, 멀리 보이는 금빛 건물이 그랜드 리스보아 호텔
시내로 접어들면, 마카오 반도 남쪽에 자리잡은 남반호수(Nam Van Lake)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 관음상이 있는 동쪽 끝으로. 페이스 맞추는 것에만 신경 쓰다보니, 금방 7km 지점이다. 급수는 대략 2.5km 마다 하는 것 같고, 물과 과일맛 나는 이온 음료가 준비되어 있다. 보급은 바나나와 초콜렛 과자. 아직 그리 더워지지 않아서인지 물은 그리 땡기지 않는데, 배가 고프다는 느낌이 많다. 아무래도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이 너무 부실해서 그런듯.^^;; 9키로 지점이였나? 맞은 편에서 날렵하게 생긴 주자 3~4명을 뒤에 붙이고 열심히 달려오는 재무님과 처음으로 조우한다. 자세히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엘리트 5~6명을 빼면 대략 20위권. 화이팅!!!
9km 지점 해상(海上) 관음상
9.5km 지점에서 첫번째 반환. 이번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번지 점프가 있다는 마카오 타워로...
기록 목표로 달리는 주자들에게는 최악의 코스이지만, 펀런 주자들에겐 정말 좋은 코스. 마카오 유명 관광지를 모두 누빌 수 있도록 잡아 놨다. 사실 마카오 타워도 이번 여행 코스에 잡아 놨었는데, 시간도 촉박하고 남산 타워랑 비슷하다길래 패스. 옆을 지난 것만으로 만족.^^
마카오 타워 옆 사이방 호수(Sai Van Lake)
사이방 호수를 다 돌았다 싶었더니 갑자기 주로가 아스팔트에서 작은 돌들을 이어붙인 타일식(?)으로 바뀐다.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아마 사원 앞을 바로 지난다. 여기도 유명한 관광 코스중 하나인데, 달리면서 봤으니 이걸로 충분.ㅎㅎ 이제 15키로 지점부터 사이방 대교를 오르는 고가가 시작된다. 바다 위로 난 다리들은 아래로 큰 배들이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경사가 길고 심하다. 부주산 같은 경사길이 딱 1km 이어진다. 속도가 다시 5분 30초 페이스로.
사이방 대교(Sai Van Bridge) 오르막과 내리막
내리막길에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조금 속도를 내본다. 주로는 이제 다시 처음 출발했던 타이파 쪽으로. 스타디움 앞을 지나 남쪽 깊숙히 내려와 반환. 이 코스를 2회전하면 골인이다.^^;; 대략 19키로 지점에서 골인점으로 향하는 하프 주자들과 나뉘는데, 어찌나 부럽던지... 배번 가리고 그냥 따라 들어가면 세상 편할 텐데... 하프 지점을 대략 1시간 50분 경에 통과. 초반과 오르막에서 시간을 너무 까먹었다. 330은 어려울 듯하고, 이제 340을 목표로... 그런데...
오전 8시를 지나면서 기온이 올라가고, 구름이 걷히면서 군데군데 햇볕까지 내려쬔다. 마침 길가 전광판에 온도와 습도가 나오는데, "기온 22도, 습도 88%". 습도 때문인지 기온에 비해 더 덥게 느껴진다. 높은 빌딩 숲 사이로 살짝살짝 비추는 햇볕이 몸에 스치기라도 하면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22K 막 지난 지점이였나, 두번째 반환을 하고 나오는 재무님을 다시 보는데..
"형님, 안될 것 같아요...;;; "
그 말이 뭘 의미하는지 대략 짐작이 간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한게, 그 때부터 페이스가 한없이 처지기 시작하더니, 남쪽의 반환점을 돌아 다시 왔던 길을 거슬러 가는데, 속도가 이제 5분 40초까지 떨어진다. 갈증도 갈증이지만, 왜 이리 배가 고픈지... ㅎㅎ 28키로 지점이였나... 다시 스타디움 앞. 오늘 이 동네만 벌써 세번째 달린다.ㅋㅋ 한 번 더 갔다 와야 골인. 죽을 상을 하고 달리는데 갑자기 카메라 기자분들 여럿이 내 앞으로 똭~. 아, 내가 외국 선수라 사진도 막 찍어주는구나... 하나도 안 힘든 얼굴로 "V"를 딱 했는데....
작은 키의 다부진 여자부 1위 선수가 날 제치고 결승점으로 들어간다...^^;;
난 이제 막 28키로 지났는데...아놔...정말 또 따라 들어가고 싶다.ㅠㅜ 그러나 현실은 이 땡볕에 14키로나 더 가야... 술과 안주가 흐르는 결승점으로... 이젠 기록은 아무 의미없고 어떻게든 완주증이라도 받아보자. 30키로 지점에서 급수하느라 멈췄는데, 다시 달려지지 않는다. 정말 오래간만(?)에 주로에서 걸어본다.ㅋㅋ
딱, 이 지점. 이후 절반은 걸었던 것 같다. 그늘 한 점 없는 땡볕.
34키로 지점이였나, 마지막 반환을 하고 나오는 재무님과 세 번째 마주쳤는데, 걷고 있는 모습을 딱 들켰다. ㅋㅋ
왜 이리 힘들까나... 두바퀴째 돌고 나오니 아까 재무님과 마주쳤던 그 자리에서 이번엔 회장님과 조우. 둘 다 걷다가 만나서 서로 민망 ㅋㅋ 어색하게 화이팅 ㅎㅎ 5키로 남겨 놓고 시계를 보니, 3시간 30 분 지남. 6분 페이스면 Sub-4 인데 그게 안된다.ㅠㅜ 경기장을 한 바퀴를 돌아 골인점 통과하는데 전광판을 보니 4시간 9분이 넘어간다. (나중에 개인 기록을 보니 4시간 9분 33초. 이번 대회는 기록을 건타임으로 측정하는 듯) 해외 풀로는 2번째, 통산 14번째 완주.
훨씬 일찍 도착했을 재무님이 고맙게도 피니쉬라인에 나와 사진을 찍어준다.
대원성과 화영씨, 은영씨도 완주 잘 하고 들어왔단다. 재무님이랑 기념사진 한장 찍고 메달이랑 기념품(싱글렛 과 타올)을 받아 물품 보관소로. 혹시 막걸리(ㅋㅋ 아님 맥주라도) 주나 봤더니 주로에서 봤던 똑같은 초콜렛과 바나나만 달랑. 역시 밥, 술 인심은 한국이 최고여~^^
다른 사진 같은 느낌 - 1 (웃는게 웃는게 아녀~^^;;)
다른 사진 같은 느낌 - 2 (감출 수 없는 민망함들, 이유는 전광판에 ㅋㅋ)
그래도 기념 사진은 한 장 ^^
두 번째 하프 완주를 해외에서... 김화영 선수!
마카오에서 생애 첫 하프 완주~ 김은영 선수!
대회장을 나와 맡겨둔 물품을 찾고, 오래 기다린 재무님은 먼저 호텔로 보내고 회장님 사진 찍으러 경기장으로 다시 들어갈려는데 경비 요원들이 막는다. 한 번 나가면 다시 못들어 간단다. 아놔...^^;; 할수 없이 호텔로 복귀. '목포'라고 적힌 소금기 가득한 싱글렛 하나 걸치고 일요일 타이파 중심가를 활보하니 사람들이 힐긋힐긋 쳐다본다 ㅋ.
이것도 추억이라 셀피 한장 ㅎㅎ
호텔 야외 수영장에서 숸하게 수영 한판 할려고 했는데, 12월 1일부터 '겨울철'이라 운영을 안 한다네.. ^^;; 개운하게 씻고 나니 회장님도 복귀 하셨단다. 시간은 이제 겨우 11시 30분을 막 지나고... 지금부턴 뭐??? 파뤼~ 타임~!!!
맛있는 술과 안주가 기다리는 식당으로~
* 나중에 전체 기록을 보는데, 놀랍게도 전체 4위가 북한 리강범 선수. 케냐 선수들 사이에서 선전!
*깜짝 퀴즈: 한국 대회엔 있는데, 마카오 대회엔 없는.. 세 가지는? (그 중 두 가지는 위에 힌트가... 맨 먼저 맞추시는 분껜 술 한 잔~^^)
첫댓글 밥 술 찍사
후기 잘 읽었네..대단해..
완주메달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