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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멕시코(15일), 중국(21일), 일본(10일)을 배낭여행하였습니다.
그 중..... 멕시코 배낭여행기를 올립니다. 좀 길어서 읽기 지루하실텐데......
멕시코 배낭여행기 < 2010년 2월 >
<치첸잇사의 쿠쿨칸 대피라미드>
※ 여행 준비
2월 6일, 대망의 멕시코 여행이 구체화 되었다. 멕시코 후아레스(Juares)시 출신인 Texas Tec 암전문의(專門醫) 닥터 코버스의 조언을 듣기로 약속을 하고 찾아갔는데 예상외의 친절과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자세한 안내를 해 주어 무척 고마웠고 또 나의 단독 배낭여행을 무척 부러워한다.
당초 계획은 엘 파소(El Paso)에서 멕시코 후아레스시(Juares)로 입국하여 치와와(Chihuahua)에서 기차로 여행할 계획이었는데 국경부근의 치안이 불안하다고 적극 만류한다. 가급적 기차는 타지 말것, 별 5개인 아도(ADO)버스가 가장 안전하며, 지하철, 택시,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은 가급적 피하라는 등 나보다 훨씬 더 걱정이 많다. 할 수 없이 그 충고를 받아들여 계획을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북부 국경지대와 산악지역은 포기하고 비행기로 멕시코시티로 가서 거기서부터 칸쿤(Cancun)까지 여행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군의관으로 우리나라에서 5년간 근무했고, 한국인 부인과 장성한 아들 셋을 둔 50대 중반의 닥터 코버스는 한국어는 못했지만 한국을 매우 좋아한다며 내 여행일정을 꼼꼼히 체크하고 멕시코 여행안내 책자(Frommer's Mexico 2005)까지 준다. 이번 내 여행을 위하여 방문을 허락하고 귀한 시간과 따뜻한 조언, 또 차와 과일까지 대접해 주어 무척 고마웠다. 여행 후 작은 선물로 감사를 표시하였지만 이 지면을 통하여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여행안내 책자는 여행 내내 들고 다니며 큰 도움이 되었는데 단지 5년 전에 출판 된 책이라 조금 문제가 되었다. 안내 책자는 가급적 최신 것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2010년 2월 6일 바야흐로 출발길에 올랐다.
<1> 멕시코의 자연 환경과 고난의 역사
멕시코는 북쪽으로 리오그란데 강을 경계로 미국과 약 2000km의 국경선을 맞대고 있고 남쪽으로는 벨리즈, 과테말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약 1250km에 달하는 가늘고 긴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를 비롯하여 서쪽으로는 태평양과 면하여 있고 동쪽으로는 반원형의 멕시코 만과 캄페체만, 그리고 쿠바 쪽으로 튀어나온 유카탄 반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중북부 지방은 거대한 고원 산악지형, 북서 지방은 반사막 건조지대, 남쪽으로는 열대 우림 등으로 구분되며, 고도차에 따라 다양한 식생을 보여 열대 저지의 광활한 선인장지대와 밀림지역, 온대고원, 침엽수림, 만년설의 고산지대 등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총 면적은 197만㎢로 우리나라 남한 면적의 약 20배, 인구 1억1천만, 공용어는 스페인어이지만 약 200여종의 언어가 통용되고 있음, 화폐는 페소(Peso: 1$=12.9 peso), I인당 GNP 10.000불 정도, 인종은 인디오 30%, 메스티소 60%, 백인 9%와 1%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1521년 스페인의 코르테즈(Cortez)에 정복당하여 숱한 고난을 감수해야하는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끈질긴 독립투쟁으로 스페인 식민통치 300년 만인 1821에 독립을 쟁취한다.
BC 1500에 나타나는 올멕(OlMec)족으로부터 시작하는 멕시코의 고대 문명은 동남부 지역의 마야(Maya-BC 500), 멕시코시티 북부의 떼오띠와칸(Teotihuacan), 와하카(Oaxaca)지역의 자포텍(Zapotec), 그 후에 나타나는 뚤라(Tula)지역의 똘텍(Toltec), 13세기 멕시코시티에 나타나는 아즈텍(Aztec) 그 밖에도 군소 문명으로 호치칼코(Xochicalco), 따라스코(Tarasco), 또또낙(Totonac), 믹스텍(Mixtec) 등 수많은 문명들이 성쇠를 거듭한다.
여행을 하면서 이러한 다양한 문명들이 나타난 것은 광대한 국토에다 워낙 험준한 산악지형과 불모의 사막 등이 가로 막고 있어 상호 교류가 어려웠던 것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짐작되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이후 1823년 공화제를 시작으로 1845년 미국과의 국경전쟁에서 패배로 광대한 뉴멕시코, 애리조나 일부를 빼앗기고 텍사스는 강제 매각형식으로 미국에 양도할 수밖에 없는 등 역사의 흥망성쇠가 특히 극심하였던 나라로 생각되며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간 혼란의 혁명기(멕시코 혁명)를 거쳐 오늘의 멕시코가 탄생하게 된다.
<2> 거대한 도시 멕시코시티와 인근의 유적들
해발 22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수도 멕시코시티는 인구가 2300만 여명으로 엄청나게 큰 대도시이며, 넘쳐나는 자동차와 사람들로 활기차고 혼잡하였다. 또한 스페인 식민시대의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역사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세계에서 러시아의 크렘린 광장 다음으로 크다는 멕시코시티 중심부 소깔로 광장은 아즈텍 시대, 호수 한가운데에 둘레 10km의 장방형 인공섬을 만들고 난공불락의 아즈텍 수도로 건설하였던 테노치티틀란(Tenochititlan)의 중심부였다. 테노치티틀란이란 마야어로「선인장의 땅」이란 뜻인데「독수리가 선인장 위에 앉아있는 땅에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부족의 전설에 따라 세워진 도시라고 한다. 현재 멕시코의 휘장도‘선인장 위에 독수리가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 이후 호수의 물이 마르고, 또 지반도 4~5m 내려앉아 당시의 흔적은 없지만 소깔로는 당시 대 피라미드와 왕궁이 있던 자리에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이 들어섰고, 멕시코 역사를 그린 수많은 벽화로 유명한 왕궁(Palacio Nacional), 멕시코 혁명당시 혁명군에게 무상으로 식사를 제공하였다는 초호화 마헤스틱 호텔(Hotel Majestic)이 에워싸고 있으며 엄청난 유물이 발견된 대 신전터와 전시관(Templo mayor & Museo del Templo mayor)이 바로 옆에 있다.
그 밖에도 17~8세기에 지어진 바로크, 클래식, 세미클래식 건물들이 도심 전체를 메우고 있으며 골목마다 수많은 가게와 노점상들, 가난한 원색 인디오 복장의 사람들로 붐비고 있어 복잡하고 활기가 넘쳐 보였다.
멕시코시티는 워낙 넓어서 구분하기 곤란하지만 도심을 중심으로 보면 소깔로 중심의 다운타운, 대통령궁과 각종 위락시설이 잘 갖추어진 뽈랑코(Polanco)․차풀떼펙(Chapul tepec)지역, 아름다운 앙헬(Angel)탑으로 유명한 소나로사(Zona rosa)지역이 인접해 있다.
멕시코시티는 워낙 많은 관광명소(성당, 박물관, 유적유물 등)가 있어 모두 둘러보기는 어렵고 계획을 잘 세워 관광일정을 짤 필요가 있다.
- 시티투어(City Tour)
출발하기 전 인터넷으로 36달러에 예약한 5시간짜리 시티투어는 내가 있는 호텔이 도심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다시 36불을 더 내야한다고 한다. 울며 겨자먹기로 결국 72불을 내고 투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면 별 필요도 없는 것을....
작은 미니버스에 코스타리카인 중년부부, 나카라과인 가족 3명, 페루인 가족 4명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10명이 탔는데, 가이드는 자신을 피카소라 불러 달라는 52세의 유쾌한 멕시코인이었다. 모두 스페인어가 모국어인데 나만 유일하게 영어로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스페인어(에스파뇰)와 영어로 동시에 설명을 하느라 고역을 치르는 듯 했다. 또 연신 내 이름을 부르는데 발음이 이상하여 내 성당 본명인‘아우구스띠노’로 불러 달랬더니 다른 이들도 친근감을 느끼는 듯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 졌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소깔로 광장의 대성당(Catedral Metro politana). 1567년에 짓기 시작하여 1788년에야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는 대성당은 바로크양식, 클래식, 네오클래식 건축양식이 총 망라된 대건축물인데 5개의 본당과 14개의 부속 교회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축물이다.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심혈을 기울였다는 건물은 우선 그 웅장한 규모에서부터 다양한 조각들로 가득 채워진 외관은 물론 내부의 그림이나 장식들까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넋을 빼앗기게 한다. 성당입구 바닥에는 아즈텍 神殿을 허물고 지었던 흔적을 볼 수 있도록 투명한 플라스틱을 몇 군데 설치하였는데 신전의 기초부분은 물론, 당시에 묻힌 해골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성당 내부 한가운데에는 첨탑 꼭대기에서부터 긴 줄을 내려뜨린 황금빛 振子가 바닥에 닿을 듯 드리워져 있는데 지반 침하와 화산, 지진으로 인한 건물의 기울어지는 정도를 알 수 있도록 진자 끝의 움직임을 기록한 것이 1500년대부터 기록되어있었는데 한쪽 방향으로 기울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기이한 현상이 기록되어 있었다. 또 이곳에는 무수한 예술품 외에도 검은 십자고상(十字苦像)이 모셔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광장의 다른 한쪽 면에는 웅장한 대 왕궁(Palacio Nacional)이 들어서 있는데 이 건물은 스페인 침공 후인 1563년 정복자 코르테즈의 관저로 처음 건축되었다고 한다. 1659년 이후 2차례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재건축 되었는데 1821년 독립이후 오늘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엄청난 길이의 거대한 이 건물은 4층 정도로 높지는 않지만 수많은 방과 아름다운 석조 계단, 넓은 안뜰이 있으며 특히 멕시코 독립투쟁 당시 이곳 발코니에서 히달고(Hidalgo) 신부님이 소깔로 광장에 모인 민중들에게 민중봉기를 촉구하는 연설을 한 것으로 유명하단다.
2층 3층에는 19세기 최고의 멕시코 화가였다는 디에고 리베라(Diego Livera)의 벽화로 유명한데 멕시코 신화시대부터 멕시코 혁명까지 수십 개의 거대한 벽화로 벽면이 채워져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현재는 군사학교로 일부가 사용되고 있어 군인들이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고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들어갈 때 철저한 몸수색을 받아야 한다. 소깔로 광장의 다른 한쪽 면(대성당 건너편)은 정부 청사가, 부근에는 아름답고 고색창연한 건축물들로 가득 들어있다.
대성당의 바로 옆쪽에는 건물을 지으려고 터를 고르다 발견하였다는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Tenochititlan)의 주 신전(Templo Mayor) 이었던 대 피라미드 터가 발견되었는데 정복자 코르테즈에 의하여 철저히 파괴되었고 피라미드에 사용 되었던 석조물들은 해체되어 성당과 건물들을 건축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현장은 현재 지표면 약간 아래쪽에 발굴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옆 건물에는 이곳의 출토 유물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있다.
핑크빛 건물들과 망고 가로수가 아름다운 소나로사(Zona Rosa :Pink Zone)는 수많은 가게와 식당들, 또 역사적 상징물들이 많아 쇼핑과 먹거리의 명소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지역이다. 또 이곳은 몇 군데의 한국 식당이 있어 한국 교민들과 관광객들이 꼭 찾는 장소라고 한다. 내가 점심을 먹었던「민속촌(한글간판)」은 가장 음식이 맛깔스럽다는데 이곳에서 만났던 전남 광주가 고향이라는 40대의 한국교포는 멕시코 여행에서 주의할 점들을 귀가 아프게 들려준다. 내가 택시기사한테 사기(바가지요금과 가짜 거스름돈)를 당했다고 얘기했더니 이곳에서는 범행 대상으로 여행객이 표적이라며 택시조심, 전철조심, 밤길조심, 거스름돈 조심, 날치기 조심.... 등 한이 없다.
특히 택시는 종류가 다양한데 꼭 문 옆에 기사의 사진이 붙어있고 허가번호가 붙어있는 택시가 안전하고 양심적이며 나머지 택시들은 언제 기사가 강도로 변할지 모르고, 바가지요금은 기본이라고 한다.
자신은 멕시코에서 20년을 살았지만 절대로 대중교통은 이용하지 않을 뿐더러 밤길도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고마웠던 것은 100페소(만원)짜리 내 순두부찌개 식사비를 대신 지불해 주었고 향후의 여행일정을 살펴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는데 멕시코인 일행과 함께 서둘러 먼저 식당을 나가는 바람에 이름도 물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식사를 마치고 1시간정도 소나로사 지역을 걸어 다녔는데 엄청나게 높은 현대식 건물도 많고 건국의 아버지라는 후아레스 대통령, 히달고 신부, 잉카 마지막 황제 몬테수마(Monte zuma) 등 역사적 인물들의 동상과 거리 이름들이 곳곳에서 눈에 띤다. 레포르마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로터리 한가운데 멕시코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웠다는 유명한 앙헬탑(Angel Tower)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굉장히 높은 오벨리스크 꼭대기에 황금빛 날개를 편 천사를 얹은 이 탑의 아랫부분은 멕시코 독립투사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실물크기로 설치했는데 안쪽에는 좁기는 하지만 공간이 있어 들어갈 수도 있다. 다른 이름으로 독립기념탑(Monumento a las Heroes de la Independencia)이라고도 하는데 멀리서 보면 무척 인상적이다.
현 멕시코의 대통령 궁, 각국의 대사관들이 밀집해 있는 차풀떼펙(Chapultepec) 지역은 멕시코시티 최대의 공원지역으로 각종 박물관, 놀이터, 산책로, 동물원 등이 들어서있어 휴식공간을 겸하고 있다.
또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인류학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도 여기 있는데 멕시코의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와 유물들을 살필 수 있는 박물관이다.
내가 멕시코시티에서 4일간 머물었던 호텔(Casa de la Condesa)이 지하철역 센트로 메디코(Centro Medico)역 부근이기도 했고, 서너번 택시를 탔다가 바가지를 쓴 경험이 있어 사람들의 경고를 무릅쓰고 주로 지하철(Metro)을 많이 이용하였다. 9개의 노선이 그물처럼 얽혀있는 멕시코시티의 지하철은 항상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잡상인들이 득실거리는 등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이다. 맹인이나 장애인들의 구걸이 끊일 새가 없고 한번은 상처투성이의 윗몸을 벗은 채 바닥에다 천을 깔고 메고 온 유리조각 자루를 쏟아놓은 다음 그 위에 맨몸으로 뒹굴고 난 후 구걸을 해서 몹시 놀란 적도 있다.
지하철 요금은 일률적으로 들어갈 때 2페소(200원 정도)짜리 표를 사서 내고 들어가면 언제, 어디서나 그냥 나오면 되니 무척 싼데 항상 카메라는 가슴에 안고 어깨에 멘 여권과 지갑이 든 가방은 옆구리에 꼭 낀 채 항상 등 뒤를 경계해야 했다. 그리고 환승로(換乘路)도 미로 같아서 몇 번을 헤맸는지 모른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내가 만난 멕시코 인들은 모두 친절하고 상냥하였으며 길을 물으면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호텔에서 식사를 하면 보통 80~120 페소 정도인데 길거리나 시장 구석에서 골라 주문하면 2~30페소 정도로 특유의 멕시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 나는 주로 길거리 음식을 먹었다. 조금 냄새가 이상하긴 했지만 옥수수 가루로 반죽을 해서 찐 것을 옥수수껍질에 싸서 찜통에 넣고 파는‘타마리스’와 뜨거운 우유나 시원한 과일음료수를 곁들이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된다. 시티투어가 오후 4시에야 끝나 배가 고프다고 불평을 했더니 멕시코에서는 보통 오후 4시경에 점심을 먹는다고 한다.
인류학박물관(유료) 관람을 포함한 시티투어 가격이 36달러면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72불이나 지불하여 조금 억울한 생각도 들었지만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그런대로 만족할 만 하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 성모발현 과달루페 성당
(Basilica de Nuestra Senora de Guadalupe)
다운타운에서 미니버스로 1시간 정도 북쪽으로 가면 시경계선 부근에「과달루페의 성모」로 유명한 과달루페 성당이 있는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고 한다.
1531년 12월 9일, 미사를 보러가던 인디오「후안 디에고」는 테페약 언덕에서 푸른 망토를 걸친 성모님을 만난다. 성모님은「나는 너희들의 슬픔과 비탄의 소리를 듣고 위로하러 왔다. 너는 주교에게 가서 이곳에 성당을 짓도록 전하여라...」
디에고는 주교관으로 달려가 이 말을 전하지만 스페인 주교「후안 데 수마라」는 증거를 가지고 올 것을 명한다. 다시 테페약 언덕으로 간 디에고는 성모님을 만나 그 말을 전했고 성모님은 처음 만났던 언덕위에 가서 피어있는 장미꽃을 주워오라고 한다. 바위투성이의 산일뿐더러 겨울철로 장미가 피는 계절이 아니었지만 언덕위에는 장미꽃이 만발하여 있었다. 꽃을 주워 내려오자 성모님은 디에고가 펼쳐놓은 틸마(멕시코인들의 겉옷)위에 가지런히 장미를 놓아주며 가는 도중에 절대로 펼쳐보지 말라고 한다.
디에고가 주교님 앞에 가서 틸마를 펼치자 멕시코에서는 자라지 않는 주교의 고향인 스페인 카스티야산 장미 꽃송이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꽃을 쌌던 디에고의 틸마에 성모님의 모습이 새겨져 나타나는 기적이 일어난다. 틸마에 새겨진 성모님은 1m 45cm의 키에 피부색은 인디오처럼 거무스름한 황갈색이고 머리카락은 검은색이며 머리에서 발아래까지 길게 내려온 청록색 밝은 망토를 입은 모습이었다.
1754년 교황 베네딕토 14세는‘과달루페의 성모(Our Lady of Guadalupe 혹은 Virg in of Guadalupe)’를 북아메리카 수호성인으로, 1910년 교황 비오 10세는 라틴아메리카의 수호성인으로, 1935년 교황 비오 11세는 필리핀의 수호성인으로, 1946년 교황 비오 12세는 아메리카 대륙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고 1966년 교황 바오로 6세는 성모화를 모시는 대성당에 황금장미를 수여하였다.
1979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최초로 과달루페 성당을 방문하였으며 또 1992년에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 과달루페 성모 敬堂을 지어 축성하였다. 2002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2백만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후안 디에고의 시성식(諡聖式)을 거행하고 로마 전례력에 기재하도록 하였다.
멕시코인들의「과달루페 성모」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신앙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며 전국 어디를 가나 성당마다 과달루페 성모님을 모시고 있고 성당이름도 과달루페를 딴 성당이 수도 없이 많다. 내가 방문했을 때도 신도들이 굉장히 먼 성당 정문 바깥부터 성모님을 모신 제단까지 묵주기도를 바치며 무릎걸음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스페인이 멕시코 식민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을「과달루페 성모」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이후 멕시코 독립운동은 물론, 멕시코혁명 때에도 성모님이 새겨진 휘장을 높이 받들고 성모님이 새겨진 모자를 쓰고 독립투쟁과 혁명에 나서서 민중의 커다란 힘과 구심점이 되었다니 재미있다.
매년 수십만 명의 성지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이곳은 성모님이 발현하셨던 테페약 언덕위에 자그마하고 아름다운 성당이, 그 아래 넓은광장에는 1709년 다시 세워진 아름답고 웅장한 바로크식 성당건물(Old Basilica)이 있는데 지반침하로 붕괴의 위험이 있어 현재는 박물관과 공연장 등으로 사용되고 바로 옆에 조개껍질을 엎어놓은 형상의 엄청난 규모의 새 성당을 다시 지어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디에고의 틸마에 새겨진 聖母畵의 원본도 이곳에 모셔져 있다.
테페약 언덕을 오르는 아름다운 석조계단은 꽃과 장미로 뒤덮인 언덕과 어울려 환상적이었고 바로 옆 절벽 아래쪽으로는 디에고가 성모님을 만나는 모습의 조각이, 또 조금 떨어져 디에고가 주교님 앞에서 틸마를 펼쳐 보이는 모습이 동상으로 세워져 있다. 테페약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성당의 모습은 정말 그림 같이 아름다워서 가슴가득 감동을 주었다. 친지들에게 선물 할 묵주와 목걸이를 비롯한 성물들을 산 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 떼오띠와칸(Teotihuacan) 대 유적
센트로 메디코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여덟 정거장을 가서 라 라짜(La Raza)역에 내리면 기원전 유적인 떼오띠와칸으로 가는 아도(ADO)버스 정류장(Auto Buses del Norte)이 있다. 여기에서 시외버스로 2시간 30분, 48km 북쪽(버스비 34페소)에 있는 이 유적은 기원전 5세기에 시작하여 기원후 5세기까지 번성하였던 도시인데 언제, 어떻게 이런 유적만 남기고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는 수수께끼라고 한다. 떼오띠와칸이라는 이름도 후세에 붙인 이름인데 아즈텍인들의 마음의 고향으로「신들이 태어난 곳」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문명은 이후 똘텍(Toltec) 문명에서 아즈텍(Aztec) 문명으로 이어진다.
2월 9일, 뜨거운 햇살 속에 매표소 앞에 도착하니 길게 늘어선 선인장 길이 이채롭다. 입장료는 51페소인데 비디오카메라로 찍으면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입장료를 받는 건물과 연이어 작은 박물관이 있고 박물관을 나서면 곧바로 약 2.5km에 이르는 死者의 길(Avenue of Death)이 나타나는데 이 길 양쪽으로 엄청나게 많은 크고 작은 피라미드들과 신전들, 그리고 주거지역이 있다. 밀림 속에 묻혀있던 이 유적을 발굴하여 정비하였는데 死者의 길도 원래는 5km 정도였는데 현재 복원은 반 정도라고 한다.
이 길을 가로질러 건너면 상당히 넓은 광장이 나타나고 광장 가운데 꽤 큰 피라미드(Citadel)가 나타나는데 그 위로 올라가면 바로 뒤에는 숨어 있는 듯 훼손이 심한 케찰코아틀(Quetzalcoatl) 신전이 닿을 듯이 있다. 아름다운 조각과 위로 오르는 계단 입구는 뱀의 머리가 조각된 이 건축물은 고대 멕시코인들이 신성시 여기던 깃털 달린 뱀(Feathered Serpent)을 모시는 신전이다. 이 케찰코아틀 사원(피라미드)을 보호하려고 나중에 쌓은 듯 바로 앞에 있는 피라미드는 거의 온전한 모습이고 커서 멀리서 보면 뒤의 케찰코아틀 사원은 잘 보이지 않는데 위에 올라가 내려다보던지 돌아가야 보인다. 케찰코아틀 피라미드는 훼손이 심하여 수리 중이라 들어가거나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 놓아 아쉬웠다.
광장에서 나와 사자의 길을 따라가면 오른쪽으로 제일 높은 태양의 신전(Piramide de la Sol)이 나타나고, 멀리 길이 끝나는 곳에 달의 신전(Piramid de la Luna)이 보인다. 유적지 전체 면적이 상당히 넓어 달의 피라미드까지 가느라 상당히 힘이 들었는데「나비궁전(Palacio de Quetzalpaparotl)」,「재규어 궁전(Palacio de Jaguars)」등 셀 수도 없는 많은 궁전과 주거 공간 유적들이 흩어져 있다.
세계에서 3번째로 높다는 태양의 신전은 밑면의 넓이는 이집트 기자의 쿠푸왕 피라미드와 비슷한데 높이는 64m로 낮다고 하며 오르는 계단이 248개로 제법 땀을 흘려야 오를 수 있다. 달의 피라미드는 42.6m로 조금 낮은데 사람을 제물로 바쳤던 흔적이 많이 남아있어 ‘死者의 길’이란 이름은 이곳 달의 신전까지 오는 5km 정도의 길을 제물이 될 사람들이 길게 줄을 맞추어 오던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유적은 반나절 정도면 모두 아볼 수 있고 또 멕시코시티를 오가는 버스도 수시로 있어서 멕시코시티를 방문하는 사람은 쉽게 관광할 수 있겠다. 관광객 대부분이 백인들이었는데 대학생 나이또래의 젊은 한국인 커플과 일본인 한 쌍을 만나서 잠시 담소를 나누고 관광을 끝마쳤는데 더운데다 걷는 길이 제법 멀어서 다소 피곤하였다.
- 아름다운 銀鑛도시 따스코(Taxco)
멕시코시티 서남쪽 178km 지점에 있는 따스코는 해발 1500m의 계곡 속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로 식민시대 이전부터 은광이 발견되어 유명해진 도시이다. 특히 기후가 온화하고 풍광이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고 하여 다녀오기로 결정하였다.
한국식당에서 만났던 멕시코인에게 가는 방법을 물었는데 호텔에서 가는 패키지가 있어 1인당 2000페소(20만 원)라고 한다. 나는 그렇게 여행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지하철로 산 라자로(San Lazaro)역에 내리면 버스가 있다고 하여 아침 일찍 갔더니 따스코 가는 버스는 다른 노선의 끝인 따스께냐(Taxquena)역 앞에 있다고 한다. 이런 낭패가 있나...
서둘러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따스께냐역에 도착하여 10시에 출발하는 따스코행 고속버스표(140페소)를 살 수 있었다. 멕시코시티 남쪽, 만년설을 이고 있는 거대한 산을 넘어 2시간 30분여 달려서 따스코에 도착하였는데 골짜기에 오밀조밀 예쁜 집들이 들어선 작은 도시였다.
정복자 코르테즈도 이 은광도시를 알고 있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고 1751년 프랑스인 광산업자 조셉 보르다(Joseph de la Borda)에 의하여 재개발되는데 그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준다. 그는 벌어들인 돈으로 1758년 당시 바로크양식의 최고 걸작품으로 칭송받는 세바스찬 성당(Santa Prisca y San Sebastian Church)을 건립하는데 내부 장식은 식민시대 최고의 예술가로 꼽히던 까브레라(Miguel Cabrera)에 맡겨서 오늘날 외관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내부 장식 또한 천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걸작품으로 채운다. 또 성당 앞 자그마한 광장(Zocalo) 한편에는 아들에게 지어주었다는 호텔 까사 보르다(Casa Borda)도 있는데 보수 중이었다.
따스코가 오늘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920년대 미국사람인 윌리엄 스프라틀링(William Spratling)이 이곳의 아름다운 경관과 온화한 날씨에 반하여 책을 쓸 목적으로 왔다가 이 지역 믹스텍 인디오들의 뛰어난 손재주를 발견하고 은세공 기술을 가르쳤다고 한다. 아름다운 인디오 문양의 은제품들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단번에 세인의 관심을 끌어들인다. 세바스찬 성당 뒤 쪽에 자그마한 스프라틀링 기념관(Museo de Taxco Guillermo Spratling)이 있는데 독특한 이곳 은세공의 걸작품들과 스프라틀링에 대한 소개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따스코는 자연석 작은 돌로 길바닥을 깐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 비탈길로 이루어진 작은 골목에는 흰색으로 벽을 칠한 낮고 예쁜 집들이 빼곡히 차 있고 2월인데도 집집마다 가지가지 꽃이 핀 화분들로 치장되어 있어 너무나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성당은 언덕 높은 곳의 작은 평지에 세워졌는데 아래쪽 시장 통에서 성당으로 오르는 가파른 골목길은 온통 은세공품 가게와 음식점 등 가게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어 미로 속에 갇힌 듯 방향도 잡기가 어려운데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비켜서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걸어 다녀도 충분한 거리지만 4페소(400원)에 작은 미니버스도 탈 수 있는데 좁고 꼬불거리는 골목길을 서커스하듯 사람들을 비집고 잘도 다닌다. 또 조그만 폭스바겐 택시도 수도 없이 많다.
이곳에서 파는 은세공품은 모두 도금이 아니고 진짜인데 가격을 흥정하는 재미도 있었고 가격은 꼭 무게를 달아서 파는데 무척 저렴한 편이라고 생각되었다. 며느리를 주려고 작은 목걸이를 샀는데 페넌트와 줄도 따로따로 무게를 달아서 가격을 매겼는데 아주 예쁜 목걸이가 140페소(만 4천원)였다.
저녁에 따스코 관광의 경비를 계산하여 보았더니 5~6가지 선물과 기념품 값, 점심 식사대를 모두 합쳐도 600페소가 채 안되었다. 호텔 패키지 2000페소는 좀 과하지 않은가... 돌이켜보면 따스코는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아주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3> 멕시코 남부의 대도시 와하카(Oaxaca)
- 인디오 전통이 살아있는 와하카
멕시코시티 남동 520km 지점에 있는 인구 80만의 와하카는 멕시코 전통이 잘 보존되어있는 도시로 인근의 몬테알반(Monte Alban), 미뜰라(Mitla), 야굴(Yagul), 낄라판(Guilapan) 등의 유적을 돌아볼 수 있는 거점(據點)도시이기도 한다.
와하카 행 버스도 따스께냐(Taxquena)에서 출발하기에 따스코에서 돌아오면서 미리 표를 구입했다가 아침 일찍 지하철로 따스께냐역에 도착하여 와하카 행 아도(ADO)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로 7시간정도 걸리고 요금은 270페소(2만 7천원)였다.
멕시코의 버스체계는 가장 고급인 별 5개의 아도(ADO)버스가 있는데 직행이고, 그 보다 70%정도 저렴한 일반버스와 정원 12명 정도의 작은 미니버스도 있는데 가격이 저렴한 대신 중간에 사람을 태우고 내리며, 난방시설도 없고 의자도 불편하다. ADO버스는 출발 20분 전에야 게이트를 여는데 공항에서 하듯 짐 검사는 물론 몸수색도 철저히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급 관광버스 수준으로 좌석도 안락하고 에어컨은 물론 영화도 보여준다. 나는 장거리 여행만 비싼 아도버스를 이용하였고, 2시간 이내의 가까운 거리는 모두 저렴한 버스를 이용하며 현지인들과 접촉의 기회를 넓히고자 노력하였다. 와하카에 도착한 날이 2월 12일 오후였는데 아침기온은 24도, 한낮 30도로 우리나라의 여름 날씨이며 다소 더운 느낌이다. 버스 종점이 도시 변두리인 듯 다운타운에 있는 와하카 성당까지 택시로 이동했는데 50페소가 나온다.
와하카 성당(Catedral de Oaxaca)은 1553년에 처음 건축되었는데 현재의 건물은 1773년에 완성되었다고 하며, 18세기 바로크 건축물의 표본으로 일컬어지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다. 꽤 넓은 성당 앞 광장은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혼잡하였는데 재미있는 것은 많은 인디오들의 길거리 좌판과 아울러 오색 풍선을 수십 개씩 들고 다니며 파는 행상인들이 무척 많아 이채로웠다. 또 성당 앞에는 상당히 규모가 큰 노천카페가 있어 사람들이 차와 식사를 하며 느긋하게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성당 부근의 아담한 호텔(La Rosas)에 짐을 풀었는데 1박에 480페소(40불 정도)이다. 저녁을 먹기 전에 루피노 박물관(Rufino Tamayo Museo de Arte Prehispanico de Mexico)을 보러갔다. 루피노 타마요가 20여 년간 수집하였다는 유물들은 스페인 침공이전,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하기 이전의 유물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마야 특유의 풍만한 여인상, 자포텍(Zapotec) 인디오 고유의 긴 코 등 눈길을 끄는 유물이 많다. 저녁식사는 성당 앞 노천카페에서 66페소짜리 생선요리를 시켰는데 양도 많고 맛이 있었다.
다음날은 산토도밍고 성당(Iglesia de Santo Domingo)과 와하카 박물관(Museo Regional de Oaxaca)을 관람하려 아침 일찍 서둘렀다. 산토도밍고 성당(Iglesia de Santo Domin go)은 1550년 건축을 시작하여 100년 간 건축을 계속하였다는데 당시 최고의 예술가들이 건축에 참여하였다고 하며, 특히 천정화는 바로크 시대의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Baroque Vision of Heaven). 내가 도착한 아침 7시, 마침 미사가 있어 참여하여 성체를 모시며 여행의 안전을 기원하였다. 이 성당의 바로 옆에 와하카 박물관(Museo Regional de Oaxaca)이 있다. 이곳에는 자포텍 인디오의 유적지인 몬테 알반 7호 고분에서 다량으로 출토된 금은 보석류가 전시되고 있었는데 자포텍 인디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다음은 솔레다드 교회(Basilica de la Soledad)를 보러 갔는데 이곳은 와하카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로 와하카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성처녀(Virgin of Oaxaca)를 모시고 있다. 스페인어 솔레다드(Soledad)는 영어로 고독(Solitude)이라는 의미이므로「고독의 성녀」라는 뜻이겠다. 전설처럼 전해오는 이야기로 이곳에 모셔졌던 성처녀는 진주로 장식된 옷과 은과 보석으로 장식된 관을 쓰고 있었는데 통째로 도난당하였다고 한다. 얼마 후 언덕 밑 바위 위에 앉아있는 당나귀의 등에 실려 있는 상자에서 성처녀의 머리와 손이 발견되었는데 당나귀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고, 또 아무리 하여도 당나귀가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곧 이어 그 자리에 성처녀가 발현하고...
그 자리에 1689년 현재의 교회를 지었고 성처녀가 발현하였던 12월 18일에 대축제가 열리는데 와하카는 물론 이 지역 모든 주민이 참여하는 가장 큰 축제라고 한다. 북부지역이「과달루페 성모」라면 이곳은「솔레다드 성녀」라고 할 만큼 모든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다고 한다. 교회 안에는 화려한 옷을 입고 진주와 보석으로 장식한 관을 쓰고 있는 성녀를 모시고 있으며 아름다운 바로크 스타일의 외관과 현란한 천정화, 아기자기한 내부 장식이 눈길을 끈다.
몬테 알반(Monte Alban)은 자포텍(Zapotec) 인디오의 대 유적지로 미니버스를 타고 30분쯤 언덕 위로 올라가야 한다. 버스비 왕복 40페소, 유적 입장료 51페소. 가까운 거리지만 꼬불거리는 언덕길을 가파르게 올라가야 하는데 발아래로 와하카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와하카 계곡의 윗부분 평평한 곳에 조성된 이 유적은 기원전 800년 경 자포텍인들이 건설한 도시였다는데 예상보다 면적도 넓고 석조의 건물과 피라미드 유적들이 거대하였으며 후기에는 믹스텍(Mixtec)인들이 차지하여 잠시 거주하였다고도 한다. 매표소와 연이어 유물 전시관이 있는데 인디오 특유의 정교한 석조유물들과 그림이 새겨진 거대한 석판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매우 넓은 광장과 수십基의 피라미드, 왕궁, 지하궁전, 무희들의 궁전, 조각 궁전, 볼 경기장 등이 있고 주변에는 170여 기의 무덤들이 산재해 있다. 특히 7호 무덤에서는 수많은 금은 장신구들이 출토되어 와하카 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여기서 캐나다에서 온 세 할머니들을 만났는데 내가 63세 교육공무원 출신이라고 하자 자기들도 교육자 출신으로 은퇴 후 여행을 하고 있다며 한 할머니는 나와 동갑이라고 반가와 한다. 제기럴.... 내가 저렇게 늙었단 말인가???
몬테 알반에서 내려오니 점심때여서 서둘러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Chile de Carillia -콜라 1병 포함 26페소) 오후에는 38km 떨어져 있는 미뜰라(Mitla)를 다녀오기로 하였다. 미뜰라는「죽은 이들의 자리」라는 의미로 자포텍인들이 신성한 장례지로 조성한 곳인데 이후 믹스텍족의 영향도 받아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유적들이 많은 곳이며 수령 2000년의 뚤레(El Tule)나무로도 유명한 곳이다. 사람들에 물어 미뜰라로 가는 버스가 지나간다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
이곳의 버스 정류장은 그야말로 혼잡 그 자체이다. 한꺼번에 수십 대씩 버스가 밀려오면 길 가운데고 뭐고 겹겹으로 차들이 늘어서고, 버스 안내군(?)들은 소리소리 지르며 손님을 부른다. 거기에다 택시들은 도로 아무데서나 세우고는 손님을 태우고 내리니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울려대는 경적음 소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들이며....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차들을 정리하는 사람에게 물어도, 정류장 앞에서 과일을 파는 아주머니한테 물어도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곧 올 것이라고 하는데 한 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차들이 몰려 올 때마다 행여 놓칠세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내가 불쌍해 보였던지 과일 파는 아주머니는 과일하나를 깎아서 내민다. 시간을 재어보니 갔다가 돌아올 시간도 맞추기 어렵게 시간이 흘러버려서 결국 미뜰라 관광은 포기하고 대신 좀 가까운 야굴(Yagul)을 다녀올까도 생각했는데 혼잡한 버스를 탈 자신이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버스 정류장으로 와서 밤 9시에 출발하는 산크리스토발 행 아도버스표를 끊고는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이동거리 450km, 내일 아침 8시 30분 도착, 버스비 408페소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던 멕시코 청년의 말로 산크리스토발은 시골이라 길도 좋지 않아 15시간 이상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거리에 비하여 버스비도 비싼 모양이다. 마침 근처에 꽤 넓은 공원이 있어 음료수를 마시며 꿀 같은 휴식을 취하였다. 이곳 멕시코는 애정표현이 무척 자유로운 듯 고등학생 정도만 되면 어디서나 부둥켜안고 키스도 예사인데 특히 이곳 공원에서는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매우 진한 신체접촉까지 연출하여 즐거웠다.(^^)
<4> 마야의 숨결이 살아있는 산크리스토발(San Cristobal de Las Casas)
- 인디오의 영혼이 살아있는 도시
멕시코 남부, 과테말라와 국경을 대고 있는 치아파스(Chiapas)주, 인구 10만이 채 안되는 조그만 도시인 산크리스토발(San Cristobal)은 치아파스州 초대 주교였던 스페인 神父 「바르톨로메 데 라스 까사스(Bartolome de las Casas)」의 이름에서 도시이름이 연유하였다고 하며, 16세기 식민시대의 건물이 많이 남아있을 뿐더러 인디오 고유생활 풍습이 잘 보존되어있는 도시로 관광객의 발길을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해발 2100m의 고원 밀림지역 계곡에 외따로 떨어진 이 도시는 하얀 벽돌담, 붉은 타일의 지붕, 조약돌로 포장이 된 좁고 구불구불한 작은 골목길 등 매우 인상적인데 멕시코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아름다운 성당들이 있다.
광장(Plaza la de Iglesia)과 붙어있는 1560년 건축의 산토도밍고 성당은 16세기 바로크 건축의 진수를 보여주는 건물로 유명하며 주변 광장과 골목길은 가지가지 인디오들의 전통 수공예품들 가두판매로 빼곡하고 그 틈을 비집고 다니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또 저녁에는 멋진 공연(노래)도 있어서 즐거웠다.
이곳에서 인디오 전통 자수기법으로 짠 아름다운 색깔의 커다란 마코앵무(Parrot) 벽걸이용 카펫을 샀는데 150페소 달라는 것을 85페소(8500원)에 샀다. 다운타운 부근을 걸어다니다 보니 언덕 위에 흰색으로 단장한 아름다운 성당이 보여 20여 분 걸어 올라갔는데 여기도 과달루페 성당(Catedral de Guadalupe)으로 과달루페 성모를 모시고 있었는데 성당 앞 계단에서 내려다보니 시내가 한 눈에 굽어보인다.
이곳에서 일본계 브라질 여성「자씨라(일본명 하루미-春美)」와 대만 처녀「밍후에(明慧)」를 만나 동양인 셋이 함께 다니며 관광을 하여 재미있었다.
브라질에서 토목공학(Civil Engineering)을 전공했고 일본에 5개의 사무실을 운영한다는 50대의 브라질 여성 자씨라는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이태리어, 영어, 일본어에 모두 능통하여 놀라웠는데 일 년 중 6개월은 일, 6개월은 여행을 한다고 한다. 며칠간 함께 여행하면서 능통한 스페인어 덕분에 편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산크리스토발 인근의 인디오 마을들은 각각 고유의 전통을 고수하며 사는데 이를테면 차물라(Chamula)족과 지나깐탄(Zinacan tan)족, 또 도예마을 아나테낭고(Amatenango), 자수마을 아구아까테낭고(Aguacatenango), 직물 전공의 떼네야파(Tenejapa)족, 산안드레스(San Andres)족, 마그델레나(Magdalena)족 등 고유의 전통은 물론 고유색깔과 복장, 고유 언어, 축제 등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다운타운에서 8km 정도 떨어진 지나깐탄족 마을을 방문하였는데 마침 일요일이라 성당 옆 광장에서는 미사가 끝난 후 시장이 열리고 있었고, 각종 괴물 가면을 쓴 어린이들이 몰려다니는 축제가 있어서 즐거웠다. 이곳 인디오들은 푸른 직물로 된 옷을 입고 있었고, 대부분 공용어인 스페인어를 못하고 마야어를 사용하였다. 또 이곳 인디오들은 사진 찍는 것을 몹시 꺼려서 허락 없이 사진을 찍다가는 큰 봉변을 당하는 수도 있다고 한다.
시장의 여인들 모습과 가면을 쓴 어린이들의 모습을 멀리서 찍었는데 마침 예쁜 전통 복장을 입은 마을 처녀들이 네 명 앉아 있기에 10페소(1000원)를 주기로 하고 사진 두 장을 찍을 수 있었다. 이 네 명중 한명만 스페인어가 가능하였다.
점심때가 되어 복잡한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다가 시커멓고 우럭처럼 생긴 꽤 큰 생선을 기름에 튀겨 파는 것이 먹음직스러워 보여 먹어 보았는데 먹을 만 했다. 생선 이름은 띨라피아(Tilapia)라고 하였고 야채를 곁들여 주는 튀김은 한 마리에 15페소. 숙박은 광장(Main Plaza) 부근의 아담하고 깨끗한 호텔 산토도밍고(Santo Domingo)에서 잤는데 방 한 개에 침대 3개로 1인당 100페소(10,000원)로 매우 싸다.
<5> 마야의 고대 유적지 팔렌케(Palenque)
- 멕시코 고고학의 중심지 팔렌케
산크리스토발에서 팔렌케까지는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지만 가는 길이 별로 좋지 않다. 가급적 싼 교통편을 이용하려고 이곳저곳을 알아보다가 일단 중간지점인 오코싱고(Ocosingo)까지 가기로 하였다. 2시간 거리, 12시에 오코싱코에 도착하여 잠깐 내려서 목을 축이고는 곧바로 떠났는데 2시간 30분 정도 걸려 도착한 팔렌케는 작고 소박한 도시였다. 오코싱고와 팔렌케 중간에 아구아 아줄(Agua Azul)이라는 꽤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데 폭포가 볼만하고 수영도 즐길 수 있다고 하였지만 유혹을 뿌리치고 곧바로 팔렌케로 향하였다.
팔렌케는 이제 막 도시 정비를 하는 모양인지 온통 길거리는 공사판으로 어수선하다. 작은 호텔을 정하고는 시내를 어슬렁거렸는데 거리는 사람과 건물 등에서 소박한 마야의 냄새가 물씬 난다. 시장을 돌다가 시장 한쪽 구석, 생선을 튀기는 기름 솥 옆에 앉아 다시한번 야채와 음료수를 곁들인 띨라피아(Tilapia) 생선튀김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유적지는 내일 가기로 하고 근처를 돌아보았는데 도시를 벗어나면 바로 밀림이라 도로에서 한 발짝만 들어가면 이름 모를 거목들이 빼곡히 들어서있고, 밭을 일군 곳에서는 옥수수가 꽃이 피고 수염이 나오고 있다. 또 팜트리(Palm tree)밭에서는 무성한 이파리 사이로 탐스런 열매가 덩어리져 열렸고, 낡은 트럭은 하나 가득 대추야자를 싣고 간다. 너무나 평화스럽고 이국적인 마야 시골마을의 풍경이다. 밀림을 지나다보니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데 특히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남미 앵무(Mocking Bird)의 지저귐도 들리고 아름다운 색깔의 마코앵무(Parrot)도 무리지어 날아간다.
팔렌케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던 유적으로 지각변동과 뒤덮인 정글의 나무들로 800여 년간 방치되어 있다가 20세기에 들어와 고고학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BC 300년경이라고 하는데 전성기를 이루었던 AD 600년에서 900년 사이에 이 지역을 통치하였던 마야족 파칼왕(King Pacal)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꽤 넓은 지역에는 수십 基의 신전, 왕궁, 피라미드들이 흩어져 있는데 특히 비문(碑文)의 신전(Templo de la Inscripciones)으로 알려진 피라미드의 내부가 발견되면서 전 세계 고고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되었다.
1952년, 멕시코의 고고학자 알베르토 루스는 높이 23m인 이 피라미드에서 맨 위층으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완벽하게 숨겨진 가파른 비밀 통로를 발견하는데 그 길이는 총 25m로 지표면보다 2m나 아래인 셈이다. 그 끝나는 곳에 가로세로 4X9m, 높이 7m인 파칼왕의 현실(玄室)이 발견되었는데 비밀통로에 설치된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현실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고 한다.
바닥은 물론 사방 벽면과 천정까지 아름답고 정교한 조각들로 가득 찬 방에서 석관 속에 비취조각으로 만들어진 가면을 쓴 파칼왕의 미이라가 발견되었으며, 부장품으로 가로세로 3.8mX2.2m의 묘비명(墓碑銘)을 발견하였는데 고대 마야어로 쓰여진 620여 자의 글자를 판독할 수 있었고 내용은 왕가와 도시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또 석관의 뚜껑에는 흡사 우주복을 입고 정교하게 제작된 우주선으로 보이는 기구에 앉아서 조종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 그림이 있는데 그 해석을 둘러싸고 지금도 많은 논란이 있다고 한다.
이 완벽하게 보존된 파칼왕의 무덤은 이집트 왕가의 골짜기에서 발굴된 투탕카멘왕의 무덤 발굴과 비견(比肩)된다고 하며 투탕카멘의「황금마스크」가 트레이드마크라면 이곳 파칼왕은「비취마스크」가 트레이드마크로 기념품 가게는 물론 노점상까지 판매하고 있었다.
이 비석의 신전 외에도 가운데 4층 전망탑이 있는 왕궁터(El Palacio), 태양의 신전(Templo del Sol), 나뭇잎 십자가 신전(Templo de la Cruz Foliada), 십자가 신전(Templo de la Cruz), 재규어의 집(Casa del Jagua) 등이 있으며 특히 경기에서 이긴 팀 주장의 머리와 심장을 꺼내 신에게 바치고, 또 그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했다는 볼 경기장(Jurgo de Pelota / Ball Court)도 굉장히 크고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피라미드에서 발견되는 십자가(Cruz)는 마야인들에게‘생명의 나무’를 의미한다고 한다. 팔렌케 유적은 전체적으로 비교적 규모가 크고 잘 정비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다만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몬테알반(Monte Alban)에서부터 치첸잇사(Chichen itza)에 이르기까지 자포텍족, 마야족의 유적을 보면서 국내에서 보았던 영화『아포칼립토(Apocalypto)』가 이곳의 이야기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울창한 밀림, 벌거벗은 사람들, 두툼하고 긴 코, 밀림 속에 쌓고 있던 거대한 피라미드, 머리 자르는 의식 등이 바로 이곳의 옛 모습이겠다.
<6> 유카탄, 마야의 고향 메리다(Merida)와 치첸잇사(Chichen itza)
- 마야의 심장 메리다
메리다(Merida)는 멕시코시티로부터 1440km, 칸쿤(Cancun)까지 320km 떨어진 유카탄 반도의 끝부분에 있으며 안내책자에‘마야의 심장부로 가는 관문『 Gateway to the Maya Heartland』’라 소개되어 있는 도시로 인구는 75만 정도이다.
팔렌케(Palenque)에서 오후 4시 40분 출발하여 중간지점인 에스카르세고(Escarcego)까지 3시간이며 차비는 150페소였는데 시원한 망고주스로 목을 축이고 곧바로 메리다를 향하였고 이 또한 3시간정도, 150페소이다.
메리다 남쪽 80km 거리에 있는 우쉬말(Uxmal)은 독특한 건축양식인 푸크양식(Puuc Style)의 건축물이 있는 중요한 유적지인데 치첸잇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여 아쉽지만 다녀오는 것을 포기하고 치첸잇사 인근의 작은 마을 피스테(Piste)로 향하였다.
치첸잇사는 대체로 칸쿤이나 바야돌리드(Valladolid)에서 당일코스로 관광을 오기 때문에 부근에 있는 좋은 호텔에서 자려면 상당히 비싸다. 그래서 우리는 8km가량 떨어진 조그만 시골마을인 피스테(Piste)에서 1박에 100페소짜리 허름한 호텔을 구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운동 겸 걸어서 치첸잇사로 향하였는데 1시간 30분 정도 걸렸고 입장료는 1인당 116페소로 꽤 비싼 편이다. 입장권은 손목에 띠를 둘러주는데 관광하는 내내 차고 다녀야 했고 팔렌케에 비하여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다.
치첸잇사(Chichen itza)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마야 유적지로‘잇사의 우물입구(Chi:입구,chen:우물,itza:부족이름)’라는 뜻이라고 하며 실제로 당시의 우물(Cenote:스페인어)이 있다. 이곳 밀림지역은 지표면을 흐르는 강이나 시냇물이 거의 없고 지표면 7~8m 아래로 물이 흐른다. 물이 귀한 관계로 이런 우물이 있는 곳에 도시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치첸잇사는 상당히 넓은 지역에 유적이 흩어져 있어 꽤 큰 도시였음을 알 수 있었는데 한 가운데 쯤에 쿠쿨칸 피라미드(El Castillo/Pyramid of Kukulcan)가 우뚝 솟아있다. 사면을 따라 꼭대기까지 각각 91계단, 모두 합치면 364계단이고, 맨 위의 제단(Central Platform)까지 합치면 365계단으로 태양력 1년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전체 높이는 25m. 피라미드를 오르는 계단 입구에는 입을 벌린 커다란 뱀의 머리조각이 있는데 춘분과 추분 때면 그림자가 계단에 그림자를 드리워 뱀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형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마야인들은 이 뱀을 깃털달린 신성한 뱀「쿠쿨칸(Kukulcan)」으로, 아즈텍인들은 「케찰코아틀(Quezalcoatl)」이라 불렀고, 자신들을 구원하러 온다고 믿었다던가...
그 밖에도 4개의 볼경기장(Ball Court), 전사의 신전(Temple of the warriors), 해골의 신전(Temple of the Skulls), 재규어 시전(Temple of Jaguars), 신관의 무덤(Tomb of the high Priest), 사슴의 신전(Temple of the Deer), 조각(彫刻) 판넬의 신전(Temple of the Sculptured Panels), 달의 건축(Edifice of the Nuns), 독수리의 단(Platform of the Eagles) 등이 있었는데 이곳 또한 아쉽게도 내부를 공개하지 않는다.
나중 칸쿤의 쉬카렛(Xcaret)에서 실제로 경기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던 마야의 볼 경기는 상당히 높은 벽면에 설치된 둥근 구멍으로 공을 쳐서 통과시키는 경기로 손이나 발을 사용하면 안되고 허리와 엉덩이로 공을 쳐서 넣는 꽤 복잡한 경기였는데 경기에 이긴 편 주장의 머리를 잘라 태양신께 바쳤고, 그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여겼다는 경기이다. 또 독수리의 단(Platform of the Eagles)은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꺼내서 올려놓으면 독수리와 재규어가 와서 먹었다는 자그마한 제단(祭壇)이다. 또 잇사의 우물(세노테:Cenote)은 지름 10m 정도로 상당히 넓고 깊어 보였으며 이 속에서 제물로 바쳤던 10대 소녀의 인골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 뼈와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돌아올 때도 반쯤 걸어왔는데 중간쯤 밀림 속에 규모는 작지만 몇 개의 유적이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무들과 이름 모를 열대 꽃들, 맑은 시냇물과 어우러진 유적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7> 세계적 휴양지 칸쿤(Cancun)과 여성의 섬(Isla Mujeres)
- 카리브 海의 휴양지 칸쿤(Cancun)
2월 18일, 아침 9시 40분 피스테를 출발하였는데 오후 2시 30분에 칸쿤에 도착하였다. 거리는 200km이고 차비는 110페소였으며 여기서 4박을 하며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칸쿤은 아름다운 해변을 끼고 현대식 건물들과 공항 등 휴양 리조트시설이 가득 들어찬 그야말로 세계적인 휴양지로 첫손 꼽힐 만하였다. 인구 60만의 대 도시인 칸쿤은 해변 쪽에 있는 몇 개의 작은 산호섬들을 연결하여 거대한 호수(Lagoon Nichupte)가 형성되었는데 그 23km의 호수주변 환상(環狀)연결로인 쿠쿨칸 대로(Kukulcan Avenue)는 야자수와 망고나무 가로수로 단장되어 시원스레 뻗어있고, 도로변으로는 엄청난 규모의 리조트시설과 호텔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푸른 파도가 끝없이 밀려오는 에메랄드빛 카리브 해안은 연중 수영이 가능한데 칸쿤 해변만 아니라 북쪽에 있는 가늘고 기다랗게 생긴 무헤레스 섬(Isla Mujeres/Island of Woman)과 남쪽에 있는 보다 큰 섬인 코즈멜(Isla Cozumel)도 천혜의 관광지로 개발되어 이름을 날리고 있다.
도착 첫날, 일본 여관인‘요시다(吉田) 하우스’에 숙소를 정했는데 1박에 100페소(9달러)로 상상외로 쌌다. 이 숙소는 도미토리로 큰 방에 침대를 여러 개 들여놓고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잘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남녀 따로 화장실이 있는 것은 물론, 샤워실, 세탁실(세탁기 1회 사용 20페소), 공동 취사실, 아침 식사로 식빵과 버터가 제공되는데 양껏 구워서 먹을 수 있다. 또 휴게실에는 여행에 관한 각종 도서는 물론, 여행자들이 기록으로 남긴 각종 여행정보들도 많이 비치하고 있었다.
주인은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멕시코 여자였는데 아마 요시다의 부인인 듯, 남편은 보이지 않는다. 투숙한 손님들은 전원 일본인들로 대략 20명 쯤 되었는데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지만 50대의 중년도 서너 명 보여서 나도 그다지 서먹하지 않았다.
낮에는 각자 스케줄에 따라 관광을 하다가 저녁에는 다시 모여 여행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와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며 담소를 나누었는데 클럽에서 노래했다는 오끼나와 출신의 20대 후반 아가씨는 가지고 온 류트(우쿠레레)에 맞추어 멜랑꼴릭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서 박수를 받았다. 또 아침이 되면 모두들 식당(취사실)에 모여 식빵을 구워먹거나 각자 준비한 아침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대부분 영어도 서툴고 스페인어는 한마디도 못했는데 한 젊은이가 영어를 잘하고 나한테 제법 말을 걸기에 어떻게 영어를 잘하냐고 물었더니 호주에서 일하며 영어를 배웠다고 한다(Working Holiday). 여기서도 일본인들은 대부분 영어로 말을 걸면 꽁무니를 뺀다.
다음날은 쿠쿨칸 대로를 걸으며 이곳저곳을 둘러 보았는데 잔잔한 초호(礁湖)는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떠 있는데 아름다운 외관의 가지가지 위락시설과 식당들로 가득 들어서 있다. 좁고 길게 뻗은 쿠쿨칸 대로는 야자수와 망고나무 가로수가 이채롭고, 화려하게 단장한 엄청나게 거대한 호텔과 리조트시설들이 들어차 있으며 초호 바깥쪽으로는 망망대해 카리브 바다(Caribbean Sea)가 펼쳐져 있어 천혜의 관광지 입지조건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칸쿤에서 이틀째, 어제 알아보았던 여성의 섬 무헤레스(Isla Mujeres)를 관광하기로 하고 일본인 일행 세 명과 함께 미니버스로 배를 타러 떠났는데 어제 알아본 바로는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서 쾌속선 크루즈가 떠나는데 섬까지 거리는 멀어서 50분이 걸리고 배 삯은 왕복 70페소인 반면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카페리가 있는데 거리가 가까워서 45분 걸리고 배 삯은 왕복 36페소였다. 느리고 배가 자주 없기는 했지만 우리는 당연히 1시간을 기다려 카페리를 탔다.
무헤레스 섬은 좁고 기다란 섬으로 배에서 바라보면 그림 같은데 바다 빛깔이 정말 에메랄드 빛깔로 형언할 수 없이 환상적이었다. 섬은 전체가 호텔과 리조트 등 위락시설로 가득 채워져 있고 해변은 온통 오색 비치파라솔로 채워져 있는 느낌이었다. 배에서 내리자 우리는 섬의 가장 북쪽에 있는 해변으로 가서 다리로 연결된 작은 섬(전체가 호텔)이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하루 종일 수영과 휴식을 즐겼다. 물도 따뜻하고 길게 뻗은 백사장은 10여m 나가도 물이 깊지 않다. 짚으로 지붕을 덮은 멋진 비치파라솔과 긴 벤치가 있었지만 백사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여성 관광객 중에는 상반신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상반신 누드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스노클링으로 다리 밑을 들어가 보았는데 붉고 푸른 열대어들이 엄청나게 많이 모여 있어 손을 뻗으면 바로 잡을 수 있을 정도이고 어떤 것은 무척 큰 것도 있다. 또 갈매기와 함께 앨버트로스(군함새)와 펠리컨도 무척 많이 섞여서 나르고 있어서 신기했다. 이 바다를 건너면 바로 쿠바와 자메이카로 보일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서인도제도(西印度諸島), 카리브의 해적, 미스터리의 삼각해역(Miracle Triangle)이 이곳인 셈이다.
바다에서 실컷 노닥거리다가 늦은 점심으로 탁 트인 야외 식당에서 바닷가재(Lobster) 요리를 시켰는데 살아서 꿈틀거리는 가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꺼내어 바로 요리를 한다. 바닷가재 요리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사이드로 나오는 새우볶음도 푸짐했는데 특유의 향이 강한 멕시코 소스로 찍어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식당 한 옆에서는 80세쯤 되어 보이는 노인 두 분이 식사하는 내내 엄청나게 큰 마림바로 멕시코 노래를 연주하였는데 기막힌 앙상블을 이룬다. 내가 아는 베사메무초, 관타나메라도 연주하여 10페소를 통에 넣어 주었더니 노래를 해도 좋다고 하였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사양하였다. 맥주 2병씩 곁들인 식사비는 일인당 180페소(만 8천원)로 관광지임을 감안할 때 터무니없이 싸다. 서울에서 이렇게 먹으면 얼마나 내야할까....
돌아가는 배시간이 여유가 있어 식당에서 맥주를 홀짝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바다로 떨어지는 저녁노을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워 사진으로 여러 컷 찍었는데 매우 가까이 펠리컨이 날아들고 앨버트로스도 무리지어 해안을 배회한다. 배로 돌아오는데 골목길에서 음악소리가 요란하여 들어가 보았더니 흡사 브라질 카니발을 연상시키는 현란한 옷차림의 무희들이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어 관광객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거리는 불빛으로 일렁거리고, 현란한 삼바 리듬에 맞춘 무희들의 율동이 환상적이었다.
<8> 테마파크 쉬까렛(Xcaret)과 고난의 귀향길
- 멕시코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테마파크 쉬까렛(Xcaret)
마지막 날, 함께 여행하였던 일본인 동행들은 쿠바로 떠나보내고 나는 테마파크인 쉬까렛(Xcaret) 1일 관광을 하였는데 기대이상으로 매우 만족하였다. 칸쿤 남쪽 60km지점 카르멘(Carmen) 인근에 있는 쉬까렛은 버스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데 편도 버스비가 74페소이다. 아도버스 터미널에서 1일 관광 티켓을 끊었는데 왕복 버스비, 입장료, 점심값(뷔페), 음료수 2병, 스노클링 자유이용권을 포함한 가격이 99달러(10만원 정도)이다.
마야어인 Xcaret의 발음이 좀 까다로운데『쓰까렛』이라고 발음했더니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 정확한 발음은 (eesh-ca-ret)으로『이쉬까렛』정도이겠는데 강세가 맨 뒤에 있어 앞의「이」소리는 잘 안들리고「쉬까」는 약하게,「렛」을 강하게 발음해야 한다. 마야어의 특징인지 이 부근의 지명에는 첫소리가 엑스(X)인 곳이 제법 많이 눈에 띤다.
처음 큰 기대는 하지 않고 하루 쉬는 셈치고 갔는데 의외로 프로그램도 다양하고 볼 것도 많아 매우 만족하였다. 이 테마파크는 엄청난 넓이였는데 동쪽으로는 카리브 해변을 끼고 있는, 마야 유적이 포함된 넓은 밀림 한가운데에 조성되었는데 해변에서는 스쿠버다이빙을 할 수 있으며, 마야 빌리지(민속촌), 지하수로에서는 스노클링, 아름다운 풍경의 해수욕장, 돌고래 쇼와 돌고래와 수영하기, 자연 방사식의 대형 동물원(재규어, 퓨마, 태피어 등)과 식물원, 잉꼬와 플라밍고 사육장, 버섯 재배원, 물고기 양식장, 나비궁전, 대형 바다거북과 가오리 사육장, 거대한 海牛(Manatee) 사육장 등 볼거리가 널려있다. 또 언덕 위에는 아름다운 성당이 있고 바로 앞 작은 동산에는 예쁘게 꾸며진 묘지도 있었는데 매우 아름답다.
또 서너 개의 대형 뷔페식당이 있어 어느 곳이던지 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었는데 다양하고 푸짐한 해산물 식단이 갖추어져 있어 먹을만 했고, 기타(Guitar)와 우리나라 양금(洋琴)과 흡사한 악기의 생음악을 감상하며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점심 식사 후 둘러본 마야 민속촌은 마야인 고유복장의 인디오들이 전통가옥에서 살면서 여러 가지 민속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판매도 하고 있었다. 옷감 짜기, 도자기 만드는 것도 볼 수 있다.
또 야외공연장에서는 마야인들의 인간새(Flyers)공연과 인간 수레바퀴 공연, 다른 공연장에서는 흥겨운 멕시코 음악(악단이 직접 연주하고 노래)에 맞춘 흥겨운 멕시코 특유의 마상(馬上) 쇼도 보여 주었는데 여성 기수들도 다수 나온다.
쉬까렛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밀림으로 모든 개천들이 지형적으로 지표면보다 7~8m 아래에서 흐르는 형태(Underground Stream)이기 때문에 내려다보면 좁은 수직의 절벽 아래로 개천의 형태가 보이고, 이따금 천연 동굴을 통하여 물이 흐르다가 다시 물줄기가 나타나곤 한다. 맹수인 재규어와 퓨마도 철망 울타리 대신 이런 깊이 7~8m의 자연 해자(垓字-물은 없음)로 둘러싸인 섬에 자연 방사하는데 해자가 너무 가파르고 깊을뿐더러 폭도 5~6m여서 건너 뛸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남미에서 가장 큰 야생동물이라는 태피어(Tapir:일명 맥)는 흡사 살찐 돼지를 닮았는데 짧은 코끼리 코를 가진 원시동물로 보였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피곤하여 시원한 해변, 짚으로 덮은 비치파라솔 밑 편안한 의자에 길게 누워 낮잠도 자다가 공짜로 제공하는 음료수도 마시며 맘껏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천연 동굴 앞에 멋지게 조성된 야외공연장에서는 멕시코 각 지역의 민속무용 공연도 볼수 있었는데 저녁 6시가 되자 관광객들은 모두 실내 공연장으로 몰려들었다. 공연장으로 가는 10여m 좁은 도로 양 편으로 그로테스크한 분장의 마야 원주민들이 서 있는데 무시무시한 차림의 토인들이 밀림 가운데, 혹은 돌을 쌓은 벽 위나 옆에 무기를 들고 괴상한 몸짓으로 한껏 고대 마야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 모두들 사진 찍기에 바쁘다.
엄청나게 큰 실내 공연장은 마야 볼경기장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 관람석을 배치한 형식이었는데 제일 처음에는 고대 마야인들의 볼 경기를 재연하였다. 엄청난 무대장치와 조명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경기를 알리는 뿔고둥 소리와 연기가 피어오르고 곧이어 경기장 가운데로 양편 선수들이 입장하여 간단한 의식을 치른 다음 경기가 시작된다.
경기에는 배구공 크기의 공이 사용되었는데 손이나 발을 사용하면 안되고 오직 엉덩이나 허리, 혹은 팔꿈치로 공을 쳐서 높은 링을 통과시키는 형식이었다. 마야인들은 이 경기에 열광하였다고 하는데 이긴 팀 주장의 목을 베어 태양신께 바쳤고 이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겼다고 하니 무시무시하고도 재미있다. 다음은 바짝 마른 코코넛 껍질인듯 한 볼에 불을 붙여 막대기로 치는 하키와 비슷한 경기였는데 너무 세게 쳐서 불이 꺼지면 곧바로 불이 붙은 다른 공이 투입된다.
다음으로는 멕시코 각 지역의 민속무용을 공연하였는데 베라크루즈(Veracruz), 푸에블라(Puebla) 등 7~8개 지역의 고유 민속무용으로 화려한 복장과 음악, 독특한 구성 등이 볼만하였다. 1시간 정도의 공연이 끝나고 20분 정도 휴식시간이 있은 후 다음 공연이 시작 되었는데 두 번째 공연은 멕시코 역사를 극화하여 보여주는 일종의 대 서사시라고 하겠다.
마야인들의 소박한 삶의 모습과 피라미드와 신전 건축 및 제사 드리는 장면, 곧 이어 스페인의 침공이 시작되는데 말을 탄 군인들의 입장과 그 뒤에 무리지어 따르는 천주교 신부들과 수사들, 말을 탄 정복자 코르테즈(Cortez)를 인디오들은 자신들을 구원하러오는 깃털 달린 성스런 뱀(Quezalcoatl)으로 오인하여 환영하고, 정복자들은 피라미드와 신전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성당을 세우고....
스페인과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독립과 멕시코 혁명까지 멕시코 역사의 모든 것을 연극으로 보여주었는데 화려한 복장과 조명, 스페인 음악과 멕시코 음악의 멋들어진 조화 등으로 2시간 공연이 전연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관람을 끝내고 돌아오며 일일 관광비 99달러(10만 원 정도)가 전연 아깝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멋진 야외 뷔페에서 먹는 푸짐한 해산물 요리도 4~5만원, 저녁에 관람한 두 시간짜리 공연만도 10만원 가치는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국제 미아가 될 뻔 했던 귀향길
칸쿤에서의 여행을 끝으로 귀향길에 올랐는데 칸쿤의 푸에르토 국제공항에서 국내항공 Mexicana로 멕시코시티로 온 다음 국제항공 United Air로 갈아타고 휴스턴으로, 휴스턴에서 다시 국내항공편으로 러벅(Lubbock)으로 가야 한다. 첫 비행인 칸쿤에서 1시간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모든 비행 스케줄이 뒤엉키고 말았다. 결국 멕시코시티 공항(Benito Juarez)에서 휴스턴 행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사정을 했더니 담당직원이 컴퓨터로 한참을 뒤진 후 다음 편 비행기 표로 바꾸어 준다. 다행히 러벅으로 가는 비행기는 탈 수 있겠다. 휴스턴에 도착하자마자 비행기 시간이 촉박하여 서둘러야 했는데 멕시코에서 온 탓인지 입국심사가 시간이 많이 걸려 애를 태웠다. 가까스로 빠져나와 뜀박질을 하여 간신히 러벅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안도의 숨을 내 쉬며 자리에 앉았는데 너무 긴장했던 탓인가 앉자마자 졸음이 쏟아진다. 한참 졸다 눈을 떠보니 모두 저녁식사를 끝내고 빈 그릇을 치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배가 고파 기내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비극이란 말인가.
겨우 음료수를 한잔 부탁하여 고픈 배를 달래야 했다. 그리고 다시 끄덕끄덕.... 잠결에 무슨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제대로 듣지 못했다.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한 모양인데 시계를 보니 밤 11시 30분으로 거의 정시에 도착한 모양이다. 아이들이 마중 나와서 기다릴까 걱정되어 앞장서서 서두르는데 사람들이 엉뚱한 곳으로 몰려가서 웅성거리고 서 있는 모습이 보여 좀 의아하긴 했지만 기다리는 딸을 생각하고 서둘러 바깥으로 나왔는데 도무지 건물들이 낯설고, 사람들도 별로 없다. 이리저리 돌아 봐도 시간이 너무 늦은 탓인지 썰렁하고 도무지 감을 못 잡겠다. 다시 공항으로 돌아와 경찰 복장을 한 히스패닉계 직원에게 물었더니 여기가 러벅이 아니란다.
헉... 내가 비행기를 잘못 탄게 아닌가? 그럼 도대체 여기가 어디냐? 여기는 휴스턴이다. 내가 방금 휴스턴에서 떠나왔는데 말이 되냐? 기내 방송도 못 들었냐? 눈보라가 휘몰아쳐서 중간에 되돌아 왔다. 제기럴...
내가 졸고 있는 동안에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냐? 비행기 표는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로 바꾸어 주는데 항공사 과실이 아니고 천재지변이므로 호텔은 가르쳐 주겠는데 숙박비는 네가 내야 한다. 공항 내에 하이야트 호텔이 있는데 트램을 타고 가면된다.... 딸에게 전화해서 내일 간다고 이르고는 가르쳐 준대로 하이야트 호텔에 갔더니 1박에 258달러란다. 기가 막힌다. 12시가 넘었는데 30만원이나 주고 자야 하다니... 뒤돌아섰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소리친다. 그러면 100달러에 자라고... 세금(Tax) 포함이냐, 별도냐? 세금 별도인데 조금 기다려라 계산해 보겠다. 됐네요! 내가 칸쿤에서 9달러를 주고 잤는데 100달러를 낼 것 같으냐?(혼잣말) 이리하여 공항 터미널로 돌아와 딱딱한 의자에서 쪼르륵거리는 배를 안고 하룻밤을 쪼그려 지새우고 다음날 가까스로 러벅 딸의 집으로 돌아왔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완결>
첫댓글 로즈님 근황인 사진이라도 한 장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