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의 통일성
예수 그리스도의 양성(신성과 인성) 교리는 해결되었지만, 또 다른 논쟁, 즉 한 인격 안에 두 본성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논쟁이 이어졌다.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어있는가, 아니면 결합되어 있는가? 둘이 섞여 하나가 되었는가, 제3의 어떤 성질로 변형되었는가? 이런 질문이 제기되는 것은 어쩌면 양성교리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네스토리우스주의
네스토리우스주의(Nestorianism)는 안디옥 학파의 네스토리우스(Nestorius)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혼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신성과 인성의 엄격한 구별을 주장한 것과 관련되는 사상이다([그림11] 참조). 그는 양성의 분리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정죄를 받았다. 그는 신성과 인성이 윤리적 굴레로 결합되어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은 인간 예수의 몸을 빌렸을 뿐, 신성과 인성은 혼동될 수 없는 별개의 본성이다.” 따라서 동정녀 마리아는 로고스가 거처할 육체를 낳은 “인간의 어머니”(anthropo-tokos), 아니면 적어도 “그리스도의 어머니”(Christo-tokos)일 뿐 로고스는 하나님이기에 어머니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즉 신성은 마리아에게서 온 것이 아니므로 그녀를 “하나님의 어머니”(theo-tokos)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433년 통합신조를 통해 네스토리우스의 견해를 반대하던 키릴로스(Cyril, 376-444)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키릴루스는 그리스도의 양성이 연합되어 서로 교류될 수 있는 완전한 하나님이며 완전한 사람이며,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회의 이런 결정은 후에 마리아숭배의 이론적 발판을 마련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따라서 이 사건은 종교회의의 결정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동시에 이 사건은 어떤 종교회의의 결정이든 혹은 어떤 신앙고백이든, 그것은 언제나 성경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주었다.
유티케스주의
유티케스주의(Eutychianism)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관련된 또 하나의 사상으로 유티케스(Eutyches)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유티케스는 네스토리우스주의에 반대하는 콘스탄티노플 근방의 수도원 원장이었다. 그는 네스토리우스와는 정반대로 그리스도는 두 본성을 이루고 있지만 성육신 이후에는 한 본성만 남는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인성은 신성에 흡수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그림12 참조]). 그는 그리스도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인간의 몸을 띠고 있었지만, 그 본성은 전적으로 신성(神性)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그리스도에게는 신성만이 남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단성론(monophysitism)이라고 부른다.
교회는 몇 차례의 공방전 끝에 최종적으로 유티케스의 단성론을 정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양성교리를 확정했다. 448년, 플라비아누스 대주교가 주재한 콘스탄티노플 지역회의에서 유티케스의 단성론은 정죄를 받았다. 그리고 1년 뒤에 에베소회의가 소집되어 정세는 역전 되었고, 플라비아누스는 파면되었고, 유티케스 단성론은 황제의 군대가 동원된 상태에서 무력적으로 통과가 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단성론을 반대하는 로마감독 레오의 편지를 읽지도 못하게 하고, “그리스도에게 두 본성이 있다고 하는 자는 그 몸을 둘로 나누겠다”고 위협했다 하여 일명 ‘강도회의’(the Robber Council of Ephesus)라고 불린다. 하지만 451년 칼케돈회의(the Council of Chalcedon)에서는 다시 플라비안의 정통성이 받아들여지고, 유티케스의 이단성이 재확인되었다.
451년 칼케돈 종교회의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양성 교리를 재천명했고, 그 두 본성은 “혼동되지 않고, 변화되지 않고, 분할되지 않고, 분리되지 않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 본성들의 특징이 연합으로 인해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각 본성의 특징이 보존되고 한 인격과 한 실체 안에 함께 존재하며, 두 본성으로 분리 혹은 분할되지 않는다고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상반되는 두 요소를 지혜롭게 연합하고 본성의 구분과 인격의 통일성을 추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