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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The Phnom Penh Post 2010-5-25 (번역) 크메르의 세계
캄보디아 국제재판 사건 제1호 선고공판일 확정
Case 001 verdict scheduled
기사작성 : James O'Toole 및 Cheang Sokha
"크메르루즈 정권"이 붕괴(1979-1-7)한지 30년 이상이 흘렀고, 수년간의 조사와 수개월의 청문회를 거쳐, "크메르루즈 국제재판" 사건번호 제1호(역주1)의 역사적 선고공판이 드디어 금년 7월 26일에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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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1) 사건번호 제1호는 뚜올슬렝 교도소장이었던 돗 피고인에 대한 재판을 말한다. 반면 향후 시작될 사건번호 제2호는, 크메르루즈 정권의 고위급 실세들 중 현재 생존해 있는 누온 찌어(NUON Chea: 전 크메르루즈 국회의장), 이엥 사리(IENG Sary: 전 크메르루즈 정권 외교부장관), 이엥 티릿(IENG Thirith: 이엥 사리 피고인의 부인으로 전 크메르루즈 정권 사회부장관 역임), 키우 삼판(KHIEU Samphan: 전 크메르루즈 정권 국가수반으로 이념적 이데올러거였던 이) 등 4인의 피고인들을 기소하는 재판을 일컫는다. |
"캄보디아 법원 크메르루즈 특별법정"(ECCC)의 "특별법정 재판부"는 과거 크메르루즈의 "민주 캄푸치아" 정권시절, "뚜올슬렝 교도소"(Tuol Sleng prison: S-21 수용소) 소장을 역임했고 "돗"(Duch)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깡 껙 이우(Kaing Guek Eav) 피고인에 대한 선고공판 일정을 확정했다. 깡 껙 이우 피고인은 살인과 고문, 반-인도주의 범죄 및 제네바협정의 심각한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있다. 그에 대한 본심 재판은 작년(2009) 3월에 시작되어 지난 11월에 최종진술 절차까지 마친 바 있다.
앤드류 케일리(Andrew Cayley) 국제 공동검사는 밝히기를, "[선고공판은] 캄보디아에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자 사법적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케일리 공동검사는 "[뚜올슬렝 교도소는] 크메르루즈 정권기를 상징하는 악(惡)의 절대적 중심지였다"고 첨언하면서, "제1호 사건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한 '[공적인] 사법적 논의체계'(judicial forum) 속에서 이러한 범죄가 인정됐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엔(UN)이 후원하는 이 특별법정의 라스 올센(Lars Olsen) 대변인은 월요일(5.24)의 발표를 통해, 하지만 재판부는 민간부문(시민사회) 이해당사자들이 발표하는 내용을 보고 그 배상금 및 문제점들에 대해 검토해서 말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에 특별법정에서 눈물의 증언을 해주었던 뚜올슬렝 생존자 중 1명인 쭘 메이(Chum Mey) 씨는, 이번에 이뤄질 선고가 피해자들로 하여금 "지난 30년간 가지고 있던 고통을 경감시켜 줄 것"이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쭘 메이 씨는 돗 피고인에게는 종신형만이 유일한 선고형량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판부가 종신형을 선고해주길 바란다. 이는 나 혼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여타 피해자들과 민간부문 이해당사자들을 위한 것"이라 말했다.
역시 뚜올슬렝 생존자 중 1명으로 최근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완 낫(Vann Nath: 화가) 씨 역시 월요일 소감을 피력하고, 선고공판을 방청하고 싶지만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정의가 실현되는 모습을 보고싶다. 하지만 결정권은 법정에 달려있다. 따라서 기다리면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11월에 진행된 "최후 진술 공판"에서 공동검사들은 돗 피고인에 대해 징역 40년형을 구형했다. 당시 공동검사들은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지 않은 것에 대해, 돗 피고인이 1999-2007년 사이에 불법구금되어 있었다는 것이 경감사유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또한 그가 "조사에 협조적 태도를 보여주었고, [정권 내에서] 그의 책임이 제한성을 갖는다는 점, 그리고 그 자신이 뉘우치고 있다는 점과, 장차 국가 화합에 있어서 가능한 영향력 등을 고려한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사진: Adrees Latif/EPA)
크메르루즈 국재재판 사건번호 제1호의 단독 피고인인 깡 껙 이우 전 뚜올슬렝 교도소장.
그러나 작년의 최종진술을 앞두고, 돗 피고인과 그 국내변호사인 까 사웃(Kar Savuth) 씨는 방면 후 석방을 요구하여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케일리 공동검사는 월요일의 발언에서, 돗 피고인의 석방요청이 "그의 형량에 불리한 작용을 할 것"이라 말하긴 했지만, 기소가 가중처벌의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선 언급을 회피했다. 그는 "그러한 일(석방요청)은 그(돗 피고인)에게 조금도 유익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이 자신의 뉘우침으로 인해 겸강된 형량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케일리 검사는 "[따라서] 그의 뉘우침은 크게 고려되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까 사웃 변호사는 월요일 언급을 통해, [당시의 요청이] 국제 변호사와 전략 상 이견을 보인 것이 아니라, 자신과 국제변호사인 프랑소와 루(Francois Roux) 씨가, 국제법정이 캄보디아 국내법 및 국제법에 동시에 근거해서 설치된 법정이므로, [양 변호사 사이에] 각각 별도로 변론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까 사웃 변호사는 "일부에서는 최종진술 당시 나와 나의 동료변호사인 프랑소와 루 씨가 우리의 의뢰인 사건에 이견을 보인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업무를 분담한 것으로, 나는 캄보디아 국내법에 따라 변론했고, 그는 국제법에 따라 변론한 것"이라 말했다. 까 사웃 변호사는 첨언하기를, 국제법 상에서 돗 피고인은 이러한 범죄들에 대한 책임을 지니지만, 캄보디아 국내법에서 보면 돗 피고인은 상관들의 명령에 따라 수행한 것이므로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학살 연구를 위한 캄보디아기록보존센터"(Document Center of Cambodia on Researching the Cambodian Genocide: DC-Cam)(역주2)의 안네 하인델(Anne Heindel) 법률자문은 까 사웃 변호사의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까 사웃)와 루 변호사 사이의 상반된 반응이 그렇게 법리적으로 다른 기반 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란 점은 명백하다"고 논평했다.(역주3) 하인델 법률자문은 판사들이 판결문을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동안, 지난 11월에 나타난 것과 같은 돗 피고인의 과실 및 뉘우침 차원을 넘어서, 더 많은 문제들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이 단지 유죄냐 무죄냐만을 생각하고 있는듯하다. 하지만 판사들이 판결문을 작성하는 데는 상당히 많은 문제들을 고려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하인델 법률자문은 또한 돗 피고인이 선고를 받을 범죄의 성격에 대해 명료하게 규정돼야만 한다고 첨언하고, 이전에 설치됐던 국제전범재판소들의 관련 선례들도 검토돼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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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2) DC-Cam은 미국 예일대학이 미 국무부 및 의회의 재정지원을 받아 설치한 "캄보디아 학살연구 프로그램"의 부설 기관으로, 캄보디아 현지에 설치된 문헌 수집 및 기록보존소이다. 따라서 사실상 예일대학 역사학 석좌교수인 벤 키어난(Ben Kiernan) 교수의 영향권에 있는 기관으로 볼 수 있다.
(역주3) 작년의 이 논란에서 이 국제재판에 대한 캄보디아 정부의 압력행사 여부가 상당한 논란이 된 바 있고, 캄보디아의 고위정치인들 역시 직접적인 관련 발언을 한 바 있다. 본 카페 내의 다음 게시물들을 참조하라.
(바로가기) "훈센 총리, "국제재판 확대는 내전으로 가는 길" 엄포"(AFP 2009-12-03)
(바로가기) "찌어 심 상원의장 크메르루즈 국제재판소에 경고"(AFP 2009-01-07) |
한편 국제법정의 올센 대변인은 밝히기를, 이러한 고려들뿐만 아니라 민간의 이해당사자들에 대한 배상과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 역시 고려될 것이며, "하나의 중요한 순간"이 될 선고공판과 최종진술 공판 사이의 8개월간 공백에 공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본 법정은 현재 많은 사람들이 선고공판과 정의의 실현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가능한 한 빠른 일처리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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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 6개월만 특별재판이란 주제라 친숙함이 있네요. 내가 만약 돗의 위치에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라는 자문을 해봅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거부할 수 있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그 명령을 거부하면 당연히 그 환경에서는 사형이 눈에 보이는데.........어찌 보면 돗이란 사람도 그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지요? 그렇다고 제가 돗의 행위 자체를 긍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남아 사회를 들여다볼수록 인간사 세상사가 참 처절하고도 .. 한 세상 살다 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 생각됩니다.. 이 사람도 전쟁만 아니었으면, 그냥 시골학교의 인자하고 샤프한 교사로 남아있었을 사람인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