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넘버 5' 와 가브리엘 샤넬
1921 년 30 초에 한 개씩 팔리는 세계적 상품
' 이번 세기에 프랑스에서는 세 이름만 남을 것이다. 드골과 피카소와 샤넬이다.'
이렇게 앙드레 말로가 말한 적이 있다. 샤넬은 단순한 패션 디자이너가 아니었다.
그는 패션 혁명가 였다. 모조 보석을 귀부인의 목에 걸게 하고 남자 옷과 여자 옷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장례 식에서나 입는 검은 옷을 처음으로 일상화한 것도 그녀였다.
고아로 수녀원에서 자란 그녀 를 세계적인 인물로 만든 것은 1921년에 그녀가 행운의 수라 여겨 오던 5자를 넣어서 내놓 은 '샤넬 넘버 5'라는 향수였다.
'당신은 잠자리에 들 때 무엇을 걸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마릴린 먼로는 거침없이 '샤넬 넘버 5'라고 대답했다.
1920 년 가브리엘 샤넬(당시 37세)이 자신의 이름을 딴 향수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는 11세 연하의 러시아 귀족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과 열애중이었다.
유럽 어느 나 라보다도 향수를 즐기던 러시아 궁정 취향의 이 귀족은 샤넬에게 짜르 니콜라스 2세의 천재 적인 향수 제조사 에르네스트 보를 소개했다.
이들 두 사람이 80가지가 넘는 꽃향기에 화학 적으로 합성한 알데하이드를 섞어 만든 향수는 이전 것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것이었다.
한두 가지 꽃향기에 금새 향이 날아가버리던 기존 향수와는 달리 향이 오묘하고 또 화학 성 분 덕에 오래 지속되었다.
에르네스트 보가 제시한 다섯 가지 향 중 마지막 것을 선택했다고 해서 향수엔 '샤넬 넘버 5'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무 장식 없는 투명한 사각 크리스털 병 에 '넘버 5'라는, 얼마쯤은 기계적인 이름은 '너무 난폭하고 남성적'이란 악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표현하는 실용성과 현대적인 느낌은 곧 많은 여성의 눈길을 끌었다. 사업가 버트하이머와 손잡고 샤넬 향수 회사를 설립해 대량 생산과 판매에 들어간 것은 1924년의 일이었다.
'샤넬 넘버 5'를 상징하듯 첫 발매일은 5월 5일로 잡았다.
최초의 디자이너 향수로 기록된 샤넬 넘버 5는 78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에서 30초당 한 개꼴로 팔리는 초베스트 셀러다.
지금은 사회적 지위와 부를 상징하는 최고급 브랜드가 되었지만, 디자이너 샤넬의
정신은 오랜 관습과 고정 관념을 철저히 타파하는 데서 출발했다. 그녀는 단순하고 실용적 이며, 편안하면서도 결코 우아함을 잃지 않는 20세기 스타일의 기본을 제시했다.
* 가브리엘 샤넬
가브리엘 샤넬은 태생부터 기득권을 주장할 만한 구석이 전혀 없었다. 1883년 8월 19일 프랑스 루아 르 강변의 소뮈르에서 행상인의 딸로 태어나 홑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그나마 12세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언니와 함께 고아원에 맡겨졌다. 고아원 시절의 검은 유니폼과 베이지빛 복도, 성당의 중후하고 화려한 장식들은 감수성 예민한 샤넬의 뇌리에 깊이 새겨 져 후에 샤넬 패션의 기본 색상을 이룬다.
1차 대전을 겪으며 여성들이 좀더 편안한 옷을 찾을 때 샤넬은 시대를 앞선 선견지명으로 이들의 옷 입는 법을 이끌었다.
작가 폴 모랑은 그녀를 '19세기의 막을 내린 천사'라고 불렀다. 1954년 샤넬이 15년만에 패션계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71세였다.
1971년 87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그녀는 시대를 읽는 눈길을 늦추지 않 았다. 금속 단추에 가장자리를 트리밍한 트위드 정장, 앞부리가 까만 구두, 금빛 체인이 어
깨끈으로 달린 누빈 가방 등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샤넬 스타일은 이 시기에 만들 어진 것이다.
카페 게시글
읽을꺼리
사회문화
샤넬은 누구인가
블루비니
추천 0
조회 119
04.05.25 15:59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