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에서 꿈꾸는 하루
병원에서 머리를 꿰매고 돌아오는 길,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오늘 아침의 부상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고.
마치 고향이 나를 붙잡으며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가지 마라.
너는 아직 내 사람이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점심도 잊은 채 영산강 둑길을 걸었다.
강바람은 초여름 냄새를 품고 천천히 불어왔고, 강가 양편으로 피어난 노란 꽃과 보랏빛 꽃들이 바람에 몸을 흔들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자전거 동호인들은 강바람을 가르며 씽씽 달려갔다.
그들의 바퀴 소리는 마치 오래전 내 기억 속 시간을 깨우는 종소리 같았다.
강 건너 논에서는 농부들이 분주했다.
모내기 철이었다.
하지만 내가 어릴 적 보았던 풍경과는 너무도 달랐다.
이제는 농협에서 모도 심어 주고, 약도 뿌려 주고, 수확과 판매까지 도맡아 한다고 했다.
농부들은 논에 물만 잘 대주면 된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내 어린 시절의 논은 사람 냄새로 가득한 곳이었다.
못줄을 길게 펴 놓고, 동네 사람들이 품앗이로 줄지어 논에 들어가면 리더의 구령에 맞춰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허리는 하루 종일 굽혀졌고, 다리에는 거머리가 들러붙어 피를 빨아먹곤 했다.
그래도 누구 하나 싫은 표정을 짓지 않았다.
점심때가 되면 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온 점심 보자기를 풀어 놓았다.
된장 냄새가 풍기는 보리밥, 갓 버무린 김치, 그리고 홍어 무침.
어른들은 동동주 사발을 기울이며 풍년을 이야기했고, 잠시 펴진 허리 위로 웃음소리가 논바닥 물결처럼 번져갔다.
그때는 몰랐다.
그 모든 것이 가난이 아니라 사랑이었다는 것을.
지금의 논은 훨씬 편리해졌지만, 어쩐지 사람의 체온은 사라진 듯했다.
젊은이들은 떠나고, 논에는 나이든 어르신들만 남아 물길을 살피고 있었다.
흙냄새 속에 살아 숨 쉬던 농심(農心)의 세계가 서서히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나는 푸르게 변해가는 들녘을 뒤로한 채 영산포 시내로 향했다.
오늘은 영산포 홍어축제 마지막 날이었다.
가기 전, 나는 먼저 나주의 다보사를 들렀다.
일주일 전 총무 원장 스님과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 때 신도들에게 나누어 준 손수건 하나를 남겨 두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봉축등 철거가 한창이었다.
총무 원장 스님은 멀리서 나를 알아보시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기다렸는데 안 오셔서 다른 분들께 다 나누어 드렸습니다.” 라고 하면서 눈빛으로 미안함을 전하셨다. 나는 아침에 머리를 다친 이야기를 하며 늦어진 까닭을 전했다. 총무 원장님은 손수건 대신 부처님 형상이 그려진 열쇠고리를 내 가슴에 안겨 주셨다.
나는 그것을 가슴에 꼭 안고 절을 내려왔다.
어쩌면 오늘 하루는 무언가를 잃고 또 다른 무언가를 얻는 날인지도 몰랐다.
영산포 홍어축제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의 열기가 강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수많은 차량과 인파, 그리고 곳곳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600년 전통의 숙성 홍어 냄새와 한우 굽는 향기가 공기 속에서 뒤섞여 있었다.
나는 천천히 축제장을 걸었다.
공짜 축제를 열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인지,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자꾸 사게 되었다.
붕어빵 하나를 손에 들고, 뜨거운 호떡을 입김 불어가며 먹었다.
그 순간 나는 뉴욕 병원의 의료인이 아니라, 다시 영산포 골목을 뛰어다니던 어린 소년이 되어 있었다.
무대 한쪽에서는 각설이 타령이 한창이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그 구성진 장단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였다.
세상을 웃음으로 풍자하면서도 그 안에 서민들의 눈물이 숨어 있는 소리.
나는 그들의 노래 속에서 내 부모님의 삶을, 내 고향 사람들의 삶을, 그리고 결국 내 삶까지도 보고 있었다.
축제장 한편에서는 터키 상인이 그들의 고기와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고, 페루 음악가들은 안데스의 선율을 연주하고 있었다. 페루 민속 음악은 내가 페루에서 담아왔던 악기와 선율의 보따리를 다시 한 번 펼쳐 보이게 했다.
그 낯선 음악 속에서도 나는 이상하게 외롭지 않았다.
세상은 멀리 흩어져 살아도 결국 사람 사는 마음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가자 메인 무대의 조명이 더 밝아졌다.
나는 이름도 모르는 가수들의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릴 적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가요가 들릴 때는 가슴이 이상하게 저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하늘 위 반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달은 마치 오늘의 무대를 위해 일부러 떠오른 듯했다.
별빛과 함께 영산강 위를 비추며, 내게 조용히 말을 걸고 있었다.
“뉴욕도 너의 삶이지만
이곳 역시 너의 뿌리란다.”
마지막 가수의 노래가 끝나고 사회자가 숫자를 거꾸로 세기 시작했다.
“오… 사… 삼… 이… 일!”
순간 밤하늘 위로 불꽃이 터져 올랐다.
불꽃들은 영산강 물결 위에서 찬란하게 흔들리며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이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웃고 있었다.
나는 그 불꽃 속에서 내 지나온 세월과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함께 바라보았다.
축제가 끝나고 나는 친구 차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강변에 가득 피어 있는 양귀비꽃들이 밤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잘 있어라.
내년에 다시 만나자.”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인사했다.
그리고 세 마리 진돗개가 기다리는 텅 빈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누추하고 오래된 집.
불편한 것도 많다.
그러나 그 집 안에는 내 어린 시절의 숨결과 부모님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다.
마당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반달과 초롱한 별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귀뚜라미 울음소리, 논에서 들려오는 맹꽁이 소리, 이름 모를 생명들의 작은 숨결이 밤공기 속을 메우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들을 자장가 삼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며칠 있으면 나는 머리에 추억의 징표를 하나 더 얹어 뉴욕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고향은 여전히 내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별들과 바람과 꽃들과 함께,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