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산별노조의 탄생
현대차·대우차·기아차 등 자동차 회사 노조와 로템·두원정공 등 총 13개 노조 8만7천명이 금속 산별노조로 전환했습니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는 현재의 조합원 4만2천 명을 포함해 모두 12만9천여 명 규모의 거대 단일 산별노조로 거듭났습니다.
그런데 외국의 노동자들은 “한국의 노동자들이 기업별 노조를 산별 노조로 전환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다른 나라에서는 노동조합이 3백 년 전에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산별노조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서 기업별 노조라는 이상한 형태를 갖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등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기업별 노조를 산별 노조로 바꾼 것은 대단한 성과라기보다 노동조합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은 본래 처음부터 산별노조가 정상입니다.
경영계와 노동계의 상반된 시각
이번 산별 전환 결의를 두고 노동계에서는 “산별노조 건설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고 기업 단위를 넘어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등 사회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의미를 부여하는 반면, 경영계에서는 “이중 삼중의 교섭과 비생산적인 파업 및 사업장 밖 투쟁력 동원 등으로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같은 사실을 바라보는 시각이 입장에 따라 그렇게 다릅니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앞으로 긍정적인 면은 잘 살려서 극대화하고 부정적인 면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03년에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의 산별 전환 결의가 한번 실패했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이기주의”라고 비난했지만 “의결정족수인 3분의 2을 넘지 못했을 뿐이지 절반을 훨씬 넘는 조합원들이 대기업 노동자들로서는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 산별 전환에 찬성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활동가들이 있었고 이번 산별 전환 결의는 그 긍정적인 측면을 꾸준히 확장시켜 온 활동의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업자도 가입할 수 있어야
한국과 일본 등 극소수에 나라에만 기형적으로 존재하는 기업별 노조 체제로는 비정규직과 중소 영세 하청 기업 노동자, 실업자, 미취업자 등 주변노동자층을 노동운동 영역으로 끌어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선진국들 중에서 실업자라는 이유로 노조원 자격을 부여받지 못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입니다. 산별노조 체제에서만 실업자와 미취업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기업별 교섭은 요구의 내용과 수준을 기업의 경영 조건에 종속시킬 수밖에 없어서 대기업과 중소 영세 하청 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노동조건의 격차가 벌어지고 노동운동의 성과가 오히려 노동자들 간의 이질성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습니다. 산별노조는 그러한 폐단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청기업 지원과 같은 산업정책, 연금·건강보험 같은 복지정책도 교섭 테이블에 올려놓게 되고 기업별 노조 체계에서는 노조 가입조차 쉽지 않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도 해결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됩니다. 개별 기업 차원에선 비정규직이 고용의 안전판 노릇을 해 정규직 조합원들이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을 탐탁하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산별노조에선 중앙에서 다룰 수도 있고 비정규직이 산별노조에 개별적으로 가입할 수도 있습니다.
산별교섭과 기업별교섭의 내용과 시기 구별해야
산별노조 체제로의 전환이 당장 불러올 가장 큰 변화는 기업별로 진행되던 노사교섭이 중앙 차원에서 이뤄지게 된다는 점이겠지만 기업별 노조의 뿌리가 워낙 깊은 우리 상황에서는 당분간 기업별 노조가 교섭권의 상당 부분을 나누어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경영자들은 “교섭의 이원화로 교섭비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지만 산별교섭과 기업별교섭의 내용과 시기를 잘 구분해서 진행하면 얼마든지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산별교섭과 기업별교섭의 내용을 아예 법에 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경영자들은 산별노조에 대한 부정적 태도에서 벗어나 달라진 상황에 맞게 의식과 체계를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역사의 순리입니다.
기업별 노조 체제에 맞춰져 있는 지금의 노동법을 산별 체제에 맞게끔 바꾸는 제도 개선도 이뤄져야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산별교섭 결과를 전체 사업장에 적용하도록 강제하고 있고 사용자들이 산별로 사용자 단체를 구성해 산별교섭에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라도 효율적인 산별교섭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업 측이 노력해야만 산별교섭이 개별 기업 노사 갈등을 줄이는 긍정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년퇴직 후에도 노동조합원
다른 나라에서는 대부분 정년퇴직을 해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합니다. 이 말은 노동조합이 퇴직자들에게도 뭔가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한다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 금속노조(I.G.Metal)나 미국 최대 노조인 산별노조총연맹(AFL-CIO) 등 선진국의 산별노조들은 산업 관련성이 없는 다른 산별노조와 통합하는 운동을 벌써 몇 해째 벌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직 통합은 서구 산별노조의 조직 방침이 된 지 오래입니다. 우리의 산별노조 전환 결의는 그렇게 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