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거리 점방/박응식
신문지, 라면 박스 너덜한 밀창문을 연다
등 굽은 노파가 사탕 오물거리며
놓지 못한 점방의 이력을 침으로 굴려 녹이고 있는
서리 맞은 달빛 게슴츠레 보다가 더듬더듬 셈 만하는
술만 취하면 삼청교육대를 박살내고
알콜에 젖은 살을 뜯는 학선이도
잘린 손가락으로 시비 거는 달수성도
석탄가루 뱉으면서 궁시렁궁시렁
선탄장에서 석탄 골라내며
손가락 관절염으로 고생하던 한실아짐도
송광교통 버스를 타고 간 후
탄맥 끊어진 길을 다시 오지 않았다
다닥다닥한 판자집들은 비어 있는곳이 즐비하고
가래떡처럼 석탄이 펑펑 쏟아지던 점방 앞에서
스산함이 익숙해져버린 폐광촌을 본다
삼십 촉수가 엎드린 아스팔트 등 빨아댄다
낡은 귀퉁이에 희미하게 돋아나는 탄 무더기
전조등이 선을 그으며 어둠을 덧칠한다
삼거리 돌아 원주민이 사는 불빛이 간간히 보이고
나무판으로 꼭꼭 못질한 적막
문을 닫고 외줄 타듯 살아 온 녹슨 문고리를 잡는다
떠난 사람들 그림자 부스러기가 여기저기 떨어져 내린다
시커메진 쓸개까지 버리고 간 뒤
무엇을 더 버리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또 다른 맥을 찾기엔 막장이 깊다
막걸리에 열무김치로 텁텁한 허기를 채운다
들고양이 울음소리에 슬쩍 고개드는 삼거리 점방
갱도에 갇힌 문을 조금씩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