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뱃놀이와 정월대보름
정군수 / 전주문인협회 회장
지난 1월 28일(음력 1월 3일) 부안군 위도 대리에서는 ‘띠뱃놀이’가 이 섬마을의 주민들과 육지에서 찾아온 손님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이 놀이는 조선 중기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토속신앙에 의해서 생겨난 굿으로, 음력 정월 초사흗날부터 대보름날 사이에 마을의 안택과 풍어를 빌고 모든 재액을 먼 바다로 띄워 보내는 섬마을의 부락제이다. 이 ‘띠뱃놀이’는 지난 설날에 미리 뽑아놓은 제주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풍악과 오색기를 휘두르며 무녀를 따라서 당산에 올라가 당산굿을 벌리면서부터 시작된다. 당산굿이 이루어지고 농악대의 풍물이 섬 전체에 울려 퍼지면 마을은 춤과 노래의 축제의 마당이 된다. 인사굿, 성주굿, 길굿, 문지기굿, 원당굿 등으로 이어져 마침내 용왕굿에 이르면 축제는 절정에 이르러 마을 사람들은 띠배를 먼 칠산 바다로 띄워 보낸다. 메김소리에 받음소리를 내며 이 띠배에 모든 재액을 실어 보내면서 풍어를 기원하는 노래를 부른다.
“ 빌어를 보세, 빌어를 보세, 용왕님전에 빌어를 보세. 에용 에용 에에용 ”
“ 황금 같은 내 조기야, 어디 갔다 인제 왔냐. 어낭청 가래질이야 ”
“ 칠산 바다에 들어온 조기 우리 배 마당에 다 잡아 실었다. 에에에에에에어야 ”
‘에용소리, 가래질소리, 배치기소리’ 온갖 소리로 풍어를 기원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이 띠배에는 어찌 재액과 풍어의 기원만을 실어 보낼 것인가? 고기잡이배를 타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지아비의 한을, 해풍에 절은 짜디짠 가난한 눈물을, 약 한 첩 써보지 못하고 죽은 어린 자식의 영혼을, 섬에 갇혀 바닷물과 함께 늙어온 바다안개의 시름을 그들은 띄워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한 많은 삶도
먼 바다로 실어 보내며 새해의 소망을 빌었을 것이다.
정월 대보름은 우리민족이 지니고 내려온 자랑스러운 세시풍속이다. 이날은 오곡밥과 갖가지 나물로 정갈하게 상을 차려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복조리를 걸어놓고 귀밝이술을 마시고, 부럼을 씹으며 한해의 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날이다. 아홉 집의 음식을 얻어먹고 아홉 짐의 나무를 해야 한다는 친화와 근면의 미덕을 도모하는 날이기도 하다.
정월 대보름 행사의 절정은 역시 달집에 불을 놓고 타오르는 불길 위로 떠오르는 달에게 ‘망월’을 외치며 소망을 기원하는 놀이다. 그리고 먼 하늘로 액막이 연을 날리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액막이 연날리기는 설날부터 가지고 놀았던 연의 실을 아주 끊어서 먼 하늘로 날려 보내는 풍습이다. 이 연을 액막이 연이라고 한다. 이 연에 한해의 재액을 모두 실어서 아주 먼 하늘로 날려 보낸다. 거기에다 자기의 소망도 함께 써서 날려 보낸다.
섬사람들이 띠배에 소망을 실어 먼 바다로 보내듯이 뭍에서는 연에 실어 하늘로 날려 보낸다. 이들에게 바다와 하늘은 경외의 대상이며 소망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삶과 인생까지도 띠배와 액막이 연에 의탁하여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는 다음과 같은 정월 대보름밤의 정경이 나온다.
‘ “워어이 ---- 달나왔다!”
‘아이들이 달을 향해 소리치면 강아지도 덩달아서 짖어대었다. 저마다 한 가지씩 소망을 품었을 마을 사람들이 달집 둘레에 모여들면서 불을 질렀다. 훨훨 타오르는 불길. 아낙들은 손을 모아 수없이 절을 했다. 순박하고 경건한 소망의 기원이 끝났을 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친지들의 소식을 물어보았다.’
우리들이 달에게, 띠배에게, 액막이 연에게 거는 소망은 무엇인가? 가족의 행복과 풍년에 대한 기원. 살아가는 생활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바람. 어쩌면 빛바랜 창호지 같이 애잔하면서도 다 비춰 보일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것이다. 이런 소망스러운 일들이 모두 정월달에 이루어지는 것은 새해의 꿈을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의 정서가 맥맥하게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일 것이다.
첫댓글 위도의 띠뱃놀이는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일약 유명해진 우리 도의 소중한 민속놀이로 부각되었지요. 그 띠뱃놀리와 보름날의 풍속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상세하기 써 주셔서 잊혀져 가는 풍습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고맙습니다. 연 액막이 보내기 풍습은 저희들 어렸을 때 방패연 방패줄 근처에 담배에 불을 붙이고 띄어 날려보냈던 기억을 되살려 보기도 했습니다. 토속어로 액매기 보낸다고 했는데 새삼스럽습니다. 금년 보름을 계기로 우리 월천 식구들의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면서 멋진 글 감사합니다.
띠뱃놀이와 액막이 연 날려보내기 그리고 달집 태우기에 대해서 피부로 느껴지도록 풀이를 잘 해주셨습니다. 저도 "대월기원"이라는 시를 써서 여기 카페에 올리긴 했습니다만 띠뱃놀이등 그 놀이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액운을 털어내고 복을달라고 비는 마음이 소중합니다. 요즘은 비는 사람은 없고 변명하는 사람뿐입니다. 비는 사람의 마음은 착하고 순수하고 진실합니다. 성철스님은 생전에 불자들이 뵙기를 청하면 반드시 천배를 한 불자만이 면회가 가능하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는 누구나 천번 절을 하면서 진실한 마음을 통해 스스로 깨우칠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기축년 새해 뜻깊은 글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