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구자명 씨
고정희
맞벌이 부부 우리 동네 구자명 씨
일곱 달 된 아기 엄마 구자명 씨는
출근 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경적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 씨
그래 저 십 분은
간밤 아기에게 젖 물린 시간이고
또 저 십 분은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 든 시간이고
그래그래 저 십 분은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 거야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잠 속에 흔들리는 팬지꽃 아픔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그러나 부엌문이 여닫기는 지붕마다
여자가 받쳐 든 한 식구의 안식이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잠을 향하여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작가 소개>
고정희(高靜熙),1948~1991)
시인 전남 해남 출생 1975년 '현대시학'에 '연가' '부활 그 이후'등이 추천되면서
등단하였다. 기독교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역사의식과 여성 해방 의식을 탐구한 시를
썼다. 시집으로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 이 시대의 이별'(1983)
'아름다운 사람 하나(1991)등이 있다.
첫댓글 워킹맘마의 고된 일상
지친 하루의 시작이 못다한 잠을 보충하는 고충으로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맞벌이 부부로서 함께 나누어야 일의 분배가 여전히 남성 우월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분위기가 아닌가합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