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로 '현명한 사람'의 뜻. B.C. 5세기 후반 주로 아테네의 자유민으로서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고 사례금을 받던 한 무리의 사람들. 그 대표적인 사람은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Gorgias), 프로디코스(Prodikos), 힙피아스(Hippias) 등이다. 프로타고라스처럼 덕(德)을 가르친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지만, 공통적인 경향으로는 변론술을 가르쳤다. 이것은 당시의 민주 정치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변론에 뛰어나다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이었으므로 그들의 주변에는 모이는 청년들이 많았다. 그런데 소피스트들은 이 세상에서의 성공, 진위(眞僞)에 상관 없이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변론하는 재능에만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진리의 문제나 윤리·도덕의 규준(規準)에 관하여서는 회의적인 분위기를 일으켜 좋은 의미의 비판적 정신을 기르기는 하였다. 그러나 안티폰, 트라시마코스 등과 같은 후기의 소피스트들에게 엿보이는 악풍과, 자기의 이익을 꾀하고 그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일체의 도덕을 무시하는 풍조를 조장한 점도 있다. 그들이 아테네의 문화 발전을 위하여 이루어 놓은 계몽적 공적은 높이 평가되지 않으면 안되나, 그들이 흔히 악평의 표적이 되고 마침내 백(白)을 흑(黑)이라고 우기는 궤변(詭辯)의 무리, 도덕의 파괴자가 되어 근대 이후 유럽에서는 소피스트라는 말에 멸시의 의미가 붙어 다니게 되었다. (김태길 외 역, 서양 철학사, 을유문화사, 1974, pp.44∼51)
BC 5세기 무렵부터 BC 4세기에 걸쳐 그리스에서 활약한 지식인들의 호칭. 아테네를 중심으로 당시의 그리스 전역을 편력하면서 변론술과 입신출세에 필요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가르쳐, 많은 보수를 받았다. 아브데라의 프로타고라스, 레온티니의 고르기아스, 엘리스의 히피아스, 케오스의 프로디쿠스 등이 유명하다. 소피스트란 원래 ‘현인(賢人)’ 또는 ‘지자(知者)’를 의미하였다. 그들은 거의가 지방출신 학자들로, 각기 자부하는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어 개인이나 국가에서 돈을 받고 그것을 제공하였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대적 요청에 따라 가장 중요한 과목은 변론술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일신(一身)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 선(善)을 도모하고, 언론이나 행위에서도 유능한 사람이 되는 길’을 청년들에게 가르친다고 자부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가르친 것은, 개인이나 국가에 대해 선이란 이런 것이라는 지혜가 아니라, 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선한 자인 체하는 기술만을 가진 데 불과하였다. 이 같은 사실을 밝힌 것이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다. 이후 ‘소피스트’란 말은 ‘궤변을 일삼는 무리’를 의미하게 되었고, 궤변학파라고도 불리었다.(백과사전) <닫기> 프로타고라스<Protagoras>(BC 485?~BC 414?)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트라키아의 아브데라 출생. 소피스트로 자칭한 최초의 인물이다. 아테네를 여러 번 찾았고, 만년에는 시칠리아섬에 있으면서 명성을 떨쳤다. 아테네에서는 페리클레스와 친교를 맺었고, 새로이 건설된 남이탈리아의 식민지 투리오이(BC 441)의 헌법을 기초하였다. 그의 유명한 인간척도설(人間尺度說)은 플라톤에 의해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존재하는 것에 대하여는 존재하는 것의,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의’라는 말로 전해진다. 이 말의 해석은 여러 갈래이나 일반적으로는 진리의 기준을 개개의 인간의 감각에서 찾으려는 것으로 보는 해석이 유력하며, 그 때문에 이 말은 절대적인 진리의 존재를 부인하고 상대주의를 표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우주의 이법(理法)에 관해서 과학이 주장하는 것에 회의를 품었고,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불가지론(不可知論)의 태도를 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