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불교에서 배우자
아야 케마는 남방불교를 공부한 최초의 서양비구니다.
스님은 58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출가한 뒤 스리랑카,
호주 등에서 수행을 했다. 만년에는 독일로 돌아가
뮌헨 근교에 '부처님의 집'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명상과 설법하다가 1997년 입적했다.
최근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자서전 <이 생명 다 바쳐서>는
왜 그녀가 세속적 행복을 포기하고 출가하게 됐는가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979년 나는 드디어 비구니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때까지 나는 여러 가지 일을 겪었으나 결코 세속적인 것에서는
행복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긴 여행을 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흥미진진한 경험을 한다고 해도
마음의 평화와 고요는 얻을 수 없었다.
마음의 평화와 고요는 오직 '내 마음'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로써 나는 최고의 이상을 향해 내 모든 것을 헌신할 준비를 했다."
케마 스님의 이 같은 고백은
서양인에게 불교가 어떻게 이해되고 실천되어지고 있는가를 엿보게 한다.
서양에서 불교도들이 불교를 공부하는 이유는
마음의 평화를 얻고 그 빛을 이웃에게 회향하기 위해서다.
저들에게 있어 부처님은 절대자가 아니라 인류의 스승이다.
서양사람들이 이해하는 불교는 합리적이고 지적인 종교다.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며 물질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불교를 주목한다. 유일신의 은총에 의해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서양종교에 의문을 가지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불교의 메시지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서양에서 불교를 믿는 사람은 적어도 중산층 이상의
교양 있고 지성적인 사람들이다.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한 서양의 출가자들도 물질적 관심보다는
인간의 영적인 평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아직은 저들에게서 종교를 빵으로 바꾸었다는 말은 들려오지 않는다.
이에 비해 불교의 본향으로 자부하는 동양의 불교도들은
개인의 물질적 이익과 구복을 위해 불교를 믿는다.
동양의 불자들에게 부처님은 현세이익을 보장해주는 신적인 존재다.
불교본래의 합리적이고 지적인 전통은
방편이라는 미명 아래 왜곡되고 만다.
출가자들도 진정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기보다는
물질적 탐착에 빠지는 예가 많다.
종교를 팔아 빵을 사려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재가불자들에게 부처님은 절대자이며
기도를 하면 가피를 주는 존재라고 가르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동양의 불교도들은
서양종교를 모방하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도나 의례의 문제는 물론이고 교리나 종교생활마저
저들을 닮아야 비로소 '종교'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좀 과장된 면도 없지 않지만
이것이 현재 동양과 서양의 불교 상황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불교에 관한 한 서양에 대해 우월하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면 이러한 생각은 터무니없는 과대망상에 불과하다.
오히려 서양 사람들의 불교이해가 더 정확하다.
실천수행 또한 우리보다 더 진지하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이제는 동양의 지식인들이
불교를 배우기 위해 서양 사람이 쓴 책을 읽어야 할 정도다.
불교이론도 역수입한 것이라야 먹혀들어 간다.
심지어는 일반법회도 외국스님이 주관하는 곳이 더 성황이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뻔하다.
오래 동안 불교가 융성했던 동양에서는
본래의 순수한 정신적 전통이 많이 퇴색되고 말았다.
반면 이제 발아를 시작한 서양불교는 도리어 싱싱하고
순수한 참 불교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부끄럽더라도
서양불교에서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한다.
서양불교의 방법이 옳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래야 고목에서 새순이 돋아날 수 있지 않겠는가.
한겨레 펌
글쓴이 : 자연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