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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어초 사이의 푹시아 꽃”
- 브레히트의 ꡔ부코 비가ꡕ 연구 (1)-
박 설 호
독일의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
(1898-1956)
1. 들어가는 말
A: 반갑습니다. 약간 늦은 감이 있지만, 함께 브레히트의 후기 연작시 ꡔ부코 비가 (Bukower Elegien)ꡕ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현재 독일에서는 브레히트의 극작품 연구 대신에, 기이하게도 “초기시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통일된 독일에서 사회주의적 이상에 관한 추적 작업보다는, 모든 이상을 무정부주의적으로 비판하려는 의식이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독일에서의 초기 시 연구에 대한 붐은 일시적이겠지요. 그렇지만 분단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후기시부터 먼저 분석하고, 그 다음에 망명 기간 동안에 씌어졌던 작품을 거쳐, 나중에 초기시로 연구 범위를 확장시키는 게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역사를 비판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B씨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B: 동감입니다. ꡔ부코 비가ꡕ가 처음에는 정치시로 국한되어 이해되었습니다만, 모조리 그렇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2) 정치와 무관하게 보이는 시들이 상당히 존재하니까요. 연작시를 분석할 때, 우리는 먼저 브레히트의 구 동독에서의 삶, 말년의 심경 등을 추적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선생님 말씀대로 망명기의 문학을, 나중에 브레히트의 초기 문학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브레히트의 후기시는 압축, 단순성, 시적 대상으로부터의 거리감 그리고 다양한 의미 등을 담고 있습니다. 40년대 말부터 브레히트는 독일어로 번역된 중국의 시작품을 흥미롭게 읽었으며, 특히 일본의 하이쿠 (俳句)와 같은 간결한 시 형식에 관심을 가졌지요. 3) 그렇다고 해서 브레히트가 동양의 시작품속에 담긴 정형의 요소를 중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시의 리듬은 듣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킨다고 브레히트는 생각했습니다. 4) 말년에는 시적 리듬을 무시하지 않았습니까?
A: 무릇 브레히트의 시작품들 역시 말씀 (言)의 절간 (寺)이며, 그 자체 아름다움인 것 같아요. 미학은 인지하는 행위 (Αισϑετικος)를 추상화시킨다는 점에서 때로는 아름다움을 해칩니다. 아름다운 은백양 나무는 멀리서 그냥 관망하는 게 좋지요. 시 분석은 (어설프고 서투를 경우) 아름다운 나무를 상하게 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브레히트의 시를 마구 재단하고, 억지로 제반 관련성을 부여하거나, 브레히트 문학의 내적 주제를 어떤 전혀 무관한 철학적 모티브에다 작위적으로 연결시키는 일에 대해 처음부터 회의하고 있어요. 아까운 목재만 낭비케 하는 시 분석 작업은 처음부터 행하지 않는 게 바람직합니다.
B: 그렇지만 내가 행여나 그러한 우를 범하지 않을까 염려스럽군요. 스스로 번역을 시도했으니......
A: 설마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브레히트의 시연구가 완벽하게 진척되지 않더라도, 이는 최소한 시도로서의 존재 가치를 지니지 않을까요?
2. 연작시의 분류
B: 브레히트가 이른바 참여 문학 내지는 노동자 문학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지만, 많은 시들 가운데 거의 빙산 일각만이 한국에 소개되었습니다. 일부 소개된 후기시는 모호하고도 난해해서 일반인이 접근하기가 힘들거든요. 이번 기회에 브레히트의 ꡔ부코 비가ꡕ 가운데 아직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만을 골라 세밀하게 분석해 봅시다.
A: 브레히트의 「부코 비가」는 표제시인 「모토」를 포함하여 도합 24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브레히트는 1953년 6월 17일 동베를린 노동자 데모라는 엄청난 사건에 휘말렸으며, 바로 그해 여름 부코에 있는 셰르뮈첼 호수 (Schermützelsee)가의 별장에서 연작시를 집필하였습니다. 24편 가운데 다만 6편 (「화원」, 「버릇들」, 「노젓기, 대화」, 「연기」, 「무더운 날」, 「소련 책을 읽으며」)만이 생전에 발표되었습니다. 나머지 18편은 브레히트 사후 (死後)인 1957년에야 간행되었습니다. 엘리자베트 카우프만 (E. Kaufmann)은 유작시들을 모아 발표했는데, 그녀의 발언에 의하면 브레히트는 몇몇 작품의 발표를 꺼렸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작 18편 가운데 두 편 (「새로운 말투」와 「목적을 위한 생필품」)은 브레히트 문서실에 오랫동안 파묻혀 있다가 1980년에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5)
B: 그렇다면 ꡔ부코 비가ꡕ는 어떻게 분류되는 게 바람직할 것 같습니까?
A: 최근의 문헌들은 이에 관해 나름대로 합당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가령 마리온 푸어만 (M. Fuhrmann)은 구체적으로 여덟 개의 주제를 상정한 뒤, 연작시들을 분류하였습니다. 6)
1. 인간과 자연: 「화원」, 「어느 소련 책을 읽을 때」.
2. 정지와 운동의 원칙: 「모토」, 「바퀴 갈아 끼우기」.
3. 살아남은 옛날의 것: 「숲 속의 외팔이」, 「8년 전에」, 「버릇들」, 「무더운 날」.
4. 소외된 인민: 「해결」, 「진리를 일치시켜라」, 「새로운 말투」, 「위대한 시대, 탕진하고」.
5. 새로운 군사적 위험: 「금년 여름의 하늘」, 「목적을 위한 생필품」.
6. 정치적, 역사적 사건에 대한 반응: 「기분 나쁜 아침」, 「쇠」, 「전나무들」, 「호라티우스를 읽으며」, 「후대 그리스 시인을 읽을 때」, 「목적을 위한 생필품」, 「뮤즈들」.
7. 긍정적 새로움: 「어느 소련 책을 읽을 때」, 「노젓기, 대화」.
8. 미학: 「소리들」, 「뮤즈들」, 「흙손」, 「화원」, 「위대한 시대, 탕진하고」, 「어느 소련 책을 읽을 때」, 「후대 그리스 시인을 읽을 때」.
B: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하자를 지니지 않을까요? 몇몇 시편들은 푸어만의 분류에서는 중복되어 있기도 하고......
A: 그렇습니다. 상기한 시편들 가운데에는 특정한 테마에 귀속될 수 없는 것도 있고, 더러는 여러 테마를 동시에 포함하는 것도 있습니다. 문학 작품은 한가지 주제를 거부하지 않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아쉬운 면이 없지 않으나- 크리스텔 하르팅어 (Chr. Hartinger)가 1982년에 시도한 소재상의 분류로 만족해야 할지 모릅니다. 하르팅어의 연작시 분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7)
1. 부코에 있는 별장에서의 관찰: 「화원」, 「무더운 날」, 「노젓기, 대화」, 「전나무」, 「소리들」.
2. 자연 묘사 및 성찰: 「연기」, 「금년 여름의 하늘」.
3. 부코 주위 환경에서 포착한 내용: 「버릇들」, 「숲 속의 외팔이」, 「8년 전」, 「바퀴 갈아 끼우기」.
4. 꿈속에 등장한 내용: 「기분 나쁜 아침」, 「쇠」, 「흙손」.
5. 독서 시에 느낀 단상: 「어느 소련 책을 읽을 때」, 「호라티우스를 읽으며」, 「진리를 일치시켜라」, 「후대 그리스 시인을 읽을 때」.
6. 직접적인 발언 및 의미 전달을 위한 시: 「해결」, 「위대한 시대, 탕진하고」, 「뮤즈들」, 「새로운 말투」, 「목적을 위한 생필품」.
분류에 관해서는 이 정도로 언급하고, 소개되지 않은 개별 작품들을 논해 보기로 하지요. 8)
3. 화원 (Der Blumengarten)
호숫가, 전나무와 은백양 나무 사이 깊숙이
장벽과 덤불로 덮인 하나의 정원
매달 피는 꽃으로 현명하게 가꾸어져 있기에,
3월부터 10월까지 항상 꽃이 핀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침 일찍, 나는 여기
앉아서 바란다, 나 역시 온 시간 동안
좋거나 나쁜,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이런 저런 편안함을 보여주기를.
(Am See, tief zwischen Tann und Silberpappel/ Beschirmt von Mauer und Gesträuch ein Garten/ So weise angelegt mit monatlichen Blumen/ Daß er vom März bis zum Oktober blüht.// Hier, in der Früh, nicht allzu häufig, sitz ich/ Und wünsche mir, auch ich mög allezeit/ In den verschiedenen Wettern, guten, schlechten/ Dies oder jenes Angenehme zeigen.)
번역할 때 나를 당황하게 만든 구절은 “현명하게 (weise)”라는 표현이었습니다. 꽃을 가꿀 때 우리는 “정성스럽게”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지적 노동을 수행할 때 “현명하게” 내지는 사려 깊게 행하지 않는가요? 어쩌면 이 표현 속에 시인의 집필 의도가 감추어져 있는지 모르겠어요.
A: 날카로운 지적이군요. 실제로 브레히트는 일찍 일어나 틈틈이 부코 별장으로 가곤 했습니다. 아마도 그곳 (근처?)의 어느 정원이 시인의 눈에 띄었는지 모릅니다. 화원이 3월에서 10월까지 아름다운 꽃으로 가꾸어지려면, 정원사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문제는 아름다운 정원 자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원사와 화원 사이의 관계이지요. (B씨가 말한 대로) “현명하게”라는 표현은 의도적인 것 같습니다. 화원에서 꽃들은 오랜 기간동안 만개해 있습니다. 이는 정원사의 세심한 노력 때문입니다. 9)
B: “화원”이란 시적 주제를 암시하기 위한 객관적 상관 물이 아닐까요?
A: 당신의 말씀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화원”은 어떤 객관적 상관물이라기 보다는, 화원과 정원사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또한 제 2연에 나타나는 “나”와의 대비를 부각시키기 위한 부수적 대상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제 1연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우리는 일차적으로 그것을 제 2연과 대비시켜야 해요. 문제는 비교 대상이 “화원”과 “나”라는 사실에 있지요. 만약 “나”라는 인물이 시인 자신을 지칭한다고 전제로 할 때, 비교될 수 있는 것은 화원 속에서 가꾸어지는 “꽃들”과 “나의 예술 작품들”입니다. 제 1연에서 화원이 오랜 기간동안 꽃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은 정원사의 “사려 깊은” 보살핌 때문입니다. 화원 외부는 “장벽과 관목”으로 뒤덮인 살벌한 곳으로서, 생명력 없는 나무는 시들기 십상이지요. 10)
그런데 예술 작품이 어느 특정한 부류의 사람에 의해서 과연 “현명하게” 가꾸어질 수 있는 것일까요? 과연 예술 작품이 마치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어느 누구의 간섭에 의해서 항상 편안함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예술은 외부적 영향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때에만 자생적으로 꽃을 피울 수 있지 않는가요? 이는 당연하므로, 몇몇 예술론을 끌어들일 필요조차 없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 물음입니다. 제 1연이 실제 상황을 다루고 있다면, 제 2연은 가상적 현실, 다시 말해 시인의 희망 사항을 다루고 있습니다. 가끔 화원을 찾는 시인은 그곳에 “앉아서” 날씨와 무관하게 “이런저런 편안함을 보여주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브레히트의 시는 논리적으로 뒤집어 읽을 때 설득력을 얻습니다. 브레히트의 시를 가급적 정확히 이해하려면 논리적 전도를 필요로 합니다. 가령 “A는 B이다”, 라는 명제는 “A가 아니라면, B일 수 없다”로 풀어쓸 때, 의미가 분명해지지요. 제 2연의 3, 4행도 그렇습니다. 그게 일견 시인의 소박한 바람처럼 보일지 모르나 11), 내적으로는 자신이 처한 여건 및 창작 생활 전반에 대한 브레히트의 거대한 불만이 내재해 있지요. 불만이란 사람들이 자신의 바람을 실현시킬 수 없을 때 나타나는 심리적 반응입니다. 브레히트 문학에 나타나는 불만 내지는 결핍 속에 이미 어떤 갈망의 상이 내재해 있어요.
「화원」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말해 다음과 같습니다. 시인은 변화 무쌍한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혹은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제약과 간섭 내지는 기대감 등에 시달립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브레히트는 편안한 마음으로 작품을 집필, 발표할 수 없습니다.
B: 아, “예술은 무엇보다도 어떤 불편함을 드러내야 한다”는 브레히트의 말이 떠오르는군요. 이 주제는 연작시 가운데 하나인 「뮤즈들 (Die Musen)」에서도 재현되고 있지요. 현대 사회에서는 아우라 내지는 예술 고유의 영역이었던 본원적 아름다움이 파괴된 지 오래입니다. 브레히트는 시 「화원」에서 “예술은 찬양 내지는 바람을 표출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것을 우선적으로 비판하고 파괴시켜야 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은밀히 표현했군요. 화원은 누군가의 정성에 의해서 오랜 기간동안 아름다운 꽃을 가꿀 수 있지만, 예술 작품에 대해 그러한 정성을 쏟는다면, 그것은 커다란 간섭으로서 예술을 망치게 될 테니까요. 이제 그 다음 시를 살펴보도록 할까요?
4. 기분 나쁜 아침 (Böser Morgen)
이곳에서 잘 알려진 아름다운 은백양 나무는
오늘 따라 늙은 妖婦. 호수는
하나의 늪 구정물, 휘젓지 마시오!
금어초 사이의 푹시아 꽃 천박하고 공허한.
왜?
어젯밤 꿈속에서 나를 가리키는 손가락들을 보았다,
마치 문둥이 한 명을 손가락질하듯. 그것들은 닳아 있었고
부서져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자들! 하고 나는 외쳤다
죄의식에 사로잡힌 채.
(Die Silberpappel, eine ortsbekannte Schönheit/ Heut eine alte Vettel. Der See/ Eine Lache Abwaschwasser, nicht rühren!/ Die Fuchsien unter dem Löwenmaul billig und eitel./ Warum?/ Heut nacht im Traum sah ich Finger, auf mich deutend/ Wie auf einen Aussätzigen. Sie waren zerarbeitet und/ Sie waren gebrochen.// Unwissende! schrie ich/ Schuldbewußt.)
B: 이 시에서도 “은백양 나무”가 등장하고 있군요.
A: 그렇습니다. 은백양 나무는 자연적 아름다움 내지 예술적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시어로서 나중에 「소리들」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12) 일견 시인의 개인적 꿈 내지는 사적인 느낌을 시로 표출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기분 나쁜 아침」은 당시의 시대적 갈등이 시인의 사적 감정 속에 용해되어 있지요. 일단 이 시의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해서 당시의 정황 및 시인의 심경을 개관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1953년 6월 17일, 즉 “부코 비가”가 씌어지기 2개월 전 동베를린에서 노동자 데모가 발생했을 때, 브레히트는 직접 노동자 편에서 반정부 투쟁을 벌리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서방 세계에서 침투한 파시스트들이 노동자 세력에 뒤섞여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소련군 탱크가 진군했을 때, 브레히트가 쌍수를 들고 환영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행동 역시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무렵 브레히트는 세 통의 편지를 고위층에 보냈습니다. 당 지도부에게 노동자의 요구 조건을 수용해달라고 요청한 셈이었지요. 이로써 브레히트는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의 편지는 -핵심적 구절만이 삭제된 채- ꡔ신 독일 (Neues Deutschland)ꡕ 신문에 간행되었지요. 본의와는 달리 어용 작가로 알려지게 된 브레히트는 신문을 읽으면서 참담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B: 「기분 나쁜 아침」 역시 정치적 사건과 무관하지 않겠군요. 일단 시행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합시다. 이 시는 두 연으로 이루어져 있군요. 이 시의 초고에는 제 1연의 3행이 빠져 있으며, 제 2연은 아예 생략되어 있지요. “금어초”와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 등과 같은 시구는 나중에 첨가된 것입니다. 13) 제 1연 1행부터 4행까지에는 동사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완성된 문장이 아닙니다. 이로써 제 1연의 앞부분은 시인의 순간적 느낌일 것입니다. 가령 자연이 변화된 게 아니라, 자연을 대하는 시인의 의식이 변화되어 있다는 점 말입니다.
제 1연은 5행 “왜?”를 축으로 하여 두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그것은 내용상으로도 확연한 차이를 띄고 있지요. 즉 앞부분은 잠에서 깨어난 시인의, 자연에 대한 순간적 느낌인 반면, 뒷부분은 조금 전 꿈속 내용에 대한 사실 요약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독일어로 “Vettel”은 “마귀 할멈”이라고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브레히트가 늙은 창녀에 대한 프랑스와 비용 (Fr. Villon)의 표현을 자주 사용했듯이, 우리도 그 단어를 “요부 (妖婦)”라고 번안하는 게 더 낫겠지요?
A: 그렇습니다. 하이너 뮐러의 인터뷰에 의하면 브레히트는 구 동독이 건설될 무렵, 새로 탄생하는 동쪽의 사회주의 독일 국가를 어떤 젊은 매춘부로 규정했지요. 왜냐면 구 동독은 히틀러의 패배로 인해 양대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어부지리로 탄생한 분단 국가로서, 언제나 소련에 추파를 던져야 했으니까요. 이에 비하면 구 서독은 브레히트의 눈에는 파시즘으로 무장한 창백한 모친으로 비쳤습니다. 14) 이러한 시각은 이후의 구 동독 작가들에게서도 자주 출현하는 것이지요. 15) 그런데 “호수는 하나의 늪 구정물. 휘젓지 마시오!”라는 구절은 무엇을 연상시키는가요?
B: 글쎄요, “구정물”이란 단순히 “더럽혀진 물”이라고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칠장이 히틀러의 글을 씻어낸 물로 간주될 수 있겠는데요?
A: 아, 그럴 듯 하군요. 왜냐면 구정물은 (파시스트의 색깔인) 고동색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나치 돌격대원 (SA)들이 고동색 셔츠를 입은 것을 생각해 보세요. 만약 누군가 구정물을 휘저으면, 파시즘의 똥물이 호수 전체를 오염시킬 게 분명합니다. 이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시킬 때 명확해지는군요.
B: 그렇다면 “금어초 사이의 푹시아 꽃 천박하고 공허한”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요? 제가 궁금한 사항은 왜 브레히트가 나중에 이 대목을 초고에다 첨가했을까? 하는 물음입니다.
A: 백과사전에서 “금어초”와 “푹시아 꽃”을 찾아보아도, 두 식물 사이의 공통점은 발견되지 않아요. 두 식물은 분명히 구 동독 사회의 어느 특정한 인간 군을 상징하는 게 분명한데... 두 단어는 독일어로 어떻게 씌어지나요?
B: 금어초는 “Löwenmaul”이며, 푹시아 꽃은 “Fuchsien”입니다. 참 그러고 보니, 두 단어 속에는 동물을 규정하는 단어가 감추어져 있네요. “Löwe”는 독일어로 사자를, “Fuchs”는 여우를 지칭하니까요.
A: 바로 그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사자는 용맹스럽고 품위 있는 동물이고, 여우는 영리하고 꾀 많지만, 때로는 변절하는 동물로 비유되지 않습니까? 사자는 권력을 지닌 인간 군이라면, 여우는 지식인 계층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이를 고려한다면 “금어초 사이의 푹시아 꽃 천박하고 공허한”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겠습니다. 지식인의 기능은 한편으로는 민중에게 감추어진 진리를 전해주는 일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정책 비판의 일입니다. 만일 이러한 기능이 수행되지 못할 때, 지식인들은 기회주의적 어용의 탈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브레히트는 ꡔ투이 장편(Tui-Roman)ꡕ에서 기회주의적으로 권력의 편에서 특권을 누리는 지식인을 비아냥거린 바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스스로 거울 앞에 섰을 때, 혹은 일반 사람들의 눈에) “천박하고 공허”하게 비치는 게 아닐까요? 따라서 “금어초 사이의 푹시아 꽃”이란 표현은 권력자들의 눈치만 보는 어용 지식인으로 추론될 수 있겠습니다.
B: 그렇다면 꿈속에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A: 손가락이 부서지고 닳은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B: 그야 노동자 세력이겠지요.
A: 네, 시의 후반부는 비교적 이해하기 수월할 것입니다. 물론 노동자들의 손가락이 “부서”지고 “닳”은 것은 자구적인 해석 외에, 또 다른 의미로 이해될 수 있겠습니다. 손가락이 닳은 것은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도 소외된 노동을 체험하는 계층이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손가락이 부서진 것은 힘든 노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하나의 세력을 규합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6) 한마디로 당시 브레히트는 구 동독의 노동자 세력을 무기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제 2연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자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요?
B: 당연히 노동자 세력이 아닐까요?
A: 어쩌면 우리는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도외시해서는 안될 것 같아요. “아무 것도 모르는 자들”은 구 동독의 당 지도부를 가리킨다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에 의하면 권력자들은 노동자 데모의 근본적 지향점을 모른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렇다고 시인이 “죄의식에 사로잡”혀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없어요. 따라서 아무 것도 모르는 자들이 노동자 세력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모르고 있을까요? 역사적 과정 속에서 반드시 진척시켜야 할 계급적 역할을 모른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동베를린 노동자 데모의 직접적인 결과를 모른다는 말일까요? 이에 관해서는 함부로 결론짓기가 어렵습니다.
B: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ꡔ작업일지ꡕ 1953년 8월 20일에 씌어진 구절이 생각나는군요. 여기서 브레히트는 “노동자들의 구호는 뒤엉켜 있으며, 무기력할 뿐 아니라, 계급의 적에 의해 침윤되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17) 실제로 동베를린 노동자 데모 당시에 노동자 세력은 평의회와 같은 조직조차 없었고, 아무런 계획 내지는 대안 등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A: 브레히트의 논평을 계속 인용해 보세요.
B: “(...) 우리는 우리 앞에 가장 타락한 상태의 계급을 맞이하고 있다. 어쨌든 그것 (노동자 집단- 역주)도 계급이다. 모든 것은 이러한 첫 번째 만남을 완전하게 평가하는 데 있다. 그게 접촉이었다. 그러니까 첫 번째 만남은 포옹의 방식이 아니라, 주먹을 휘두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것 역시 어쨌든 접촉인 셈이다. 당은 그들에게 겁을 주어야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모든 역사 발전을 고려할 때 당은 지금까지 노동자 계급의 동의를 한번도 기대할 수 없었다. 때로는 어떤 주어진 정황에 따라서는 노동자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동의 없이 관철시켜야 했던 과업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귀찮은 일이 거대하게 발생했는데, 나는 노동자 계급에게 좋은 기회가 도래했다고 믿었다. 따라서 나는 6월 17일의 끔찍한 사건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18) 이 대목에서 우리는 노동자 계급에 대한 브레히트의 입장을 읽을 수 있습니다.
A: 그렇지만 브레히트의 ꡔ작업일지ꡕ에 씌어진 언급만으로써 「기분 나쁜 아침」의 제 2연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브레히트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먹물 내지는 “문둥이”에 불과한 반면에, 시인의 입장에서 볼 때 노동자 계급은 (최소한 당시로서는) “가장 타락한 상태의 계급”이었던 것 같군요. 따라서 노동자 계급은 “아무 것도 모르는 자들”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무지 (無知) 때문이라기 보다는, 바른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으므로 나중에 악 이용당하리라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지적하도록 하지요. 「기분 나쁜 아침」이 위대한 시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서 발견될까요? 나는 그것을 “자기 비판 속에 용해된 비판”에서 찾고 싶습니다. 다시 말해 마지막 행 “죄의식에 사로잡힌 채”라는 구절이 있기 때문에 브레히트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비판은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19) 「기분 나쁜 아침」에 관해서는 이 정도로 끝내고, 다음의 시를 살펴볼까요?
5. 버릇들 (Gewohnheiten)
스프가 흘러 넘치도록
접시들이 너무 세게 놓인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명령이 울린다: 식사 시작!
프로이센의 독수리는
그는 어린것들의 입에다
찢은 먹이를 넣어준다
(Die Teller werden hart hingestellt/ Daß die Suppe überschwappt./ Mit schriller Stimme/ Ertönt das Kommando: Zum Essen!// Der preußischer Adler/ Den Jungen hackt er/ Das Futter in die Mäulchen.)
B: 브레히트는 제목에서 과거의 어떤 특정한 (나쁜?) 관습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문제삼으려 했을까요? 「버릇들」은 원래 「버릇들, 아직 항상 (Gewohnheiten, noch immer)」이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었으나, 베를린-프랑크푸르트 판에는 현재의 제목으로 바뀌게 되었지요. 원래의 제목은 옛날의 습관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줍니다. 가령 연작시 「무더운 날 (Heißer Tag)」에는 “옛날과 같이!”라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만...
A: 그럴듯하군요. “프로이센” ⇒ 히틀러의 제 3제국 ⇒ 구 동독으로 이어지는 국가는 한결같이 (개인의 사적인 행복을 무시하고) 전체주의적 관심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다만 관심사의 강도일 뿐이지요. 두 연으로 이루어진 「버릇들」은 일견 수월하게 이해되는 단시입니다. 제 1연은 수동형의 문장으로, 제 2연은 능동형의 문장으로 씌어져 있군요. 제 1연에서 명령의 주체가 생략되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제 1연의 주체를 제 2연에 의해서 추론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미리 말하자면 제 1연에서 진행되는 일은 제 2연에서 진행되는 일과 동일하지는 않으나, 무척 유사합니다. 전자는 어느 집단의 식사시간을 묘사하고 있다면, 후자는 독수리가 새끼에게 먹이를 찢어주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니까요.
B: 이 시를 읽으니 병영의 취사 실 혹은 훈련소 식당이 떠오르는군요. 그렇다면 누군가 “스프가 흘러 넘치도록” 접시를 식탁 위에 놓는 걸로 미루어, 이곳의 식사는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영양 공급을 위한 식사라는 차원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완강하게 접시를 식탁 위에 놓으며 “식사 시작!”을 외치는 자는 군대의 취사반장일까요?
A: 그럴 수도 있지요. 비록 1953년 구 동독에서 아직 군대가 정식으로 결성되지 않았다고 하나, 시의 배경이 반드시 1953년의 동베를린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따라서 우리는 이곳을 군대의 식당, 아니면 기숙사 내지 휴양소의 배식 장소라고 여기면 족할 것입니다. 그밖에 두 연의 시점이 제각기 현재와 과거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약간의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20) 예컨대 제 1연이 실제로 브레히트가 목격했던 장면이라면, 제 2연은 이 순간 시인의 뇌리에 떠오른 가상적인 상일 수도 있으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이 두 장면은 마치 영화에서 두 개의 다른 장면이 서서히 뒤바뀌는 “연상 기법 (Überblendung)”처럼 그렇게 교차되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제 1연에서는 식사 행위가 비인간적인, 강압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반면에, 제 2연에서는 어린 새끼를 자상하게 키우려는 어미 독수리의 애정이 담겨 있지요.
B: 선생님께서는 “프로이센의 독수리”가 과거 19세기의 프로이센 국가로 이해될 수도 있고, 현재 두 독일, 특히 동독 국가에 대한 상징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씀하시려는 것일 테죠? 어째서 브레히트는 겉보기에는 서로 다르나, 본질적으로는 같은 두 장면을 두 개의 연으로 병렬시켰을까요?
A: 그게 바로 해석상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 같군요. 어쩌면 우리는 “프로이센의 독수리”를 일단 구 동독 국가로, “어린것들”을 1953년 동베를린에서 데모하던 노동자들이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 외의 다른 해석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실제로 브레히트는 친구인 주어캄프 (Peter Suhrkamp)에게 보낸 편지에서 6월 17일 노동자 데모는 노동자들의 불만에서 촉발되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소비재 생산의 부족에서 비롯했다고 기술한 바 있지요. 21) 따라서 「버릇들」에서는 국가가 인민들에게 식사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인민들의 식욕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아요. 독수리로서는 그저 열심히 주는 대로 식사하고 나중에 시키는 대로 일을 잘 하라고 새끼에게 부탁할 뿐이지요. 한마디로 이 시는 파시스트들의 전체성에 대한 관심보다는, 오히려 국가의 인민에 대한 전체주의적 폭력에 관한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B: 강제로 음식을 퍼 먹이든, 자상하게 “어린것들의 입에다 찢은 먹이를 넣어”주든 간에, 국가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기주의적 욕망을 위해서 인민을 돌보고 있다는 말씀이군요. 인민이 사라지면 국가도 사라지고 말 텐데 말입니다.
이 정도로 하고 1980년에야 공개된 브레히트의 시, 「새로운 말투」를 읽어볼까요?
6. 새로운 말투 (Die neue Mundart)
언젠가 그들이 여편네들과 양파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을 때
다시금 상점들은 텅 비어 있었고
그들은 탄식, 저주 그리고 유머 등을 잘 이해했으며
그럼에도 이로 인한 참을 수 없는 삶은
깊은 곳에서도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지금
지배자가 된 그들은 새로운 말투로 말하고
위협적이고 교육적인 목소리로 발설하는
허튼 소리들은 다만 그들에게 이해되고
상점들은 양파 없이 가득 차 있다.
허튼 소리를 듣는 자는
식욕을 상실하고
그걸 지껄이는 자는
듣기를 상실한다.
(Als sie einst mit ihren Weibern über Zwiebeln sprachen/ Die Läden waren wieder einmal leer/ Verstanden sie noch die Seufzer, die Fluche, die Witze/ Mit denen das unerträgliche Leben/ In der Tiefe dennoch gelebt wird/ Jetzt/ Herrschen sie und sprechen eine neue Mundart/ Nur ihnen selber verständlich, das Kaderwelsch/ Welche mit drohender und belehrender Stimme gesprochen wird/ Und die Läden füllt - ohne Zwiebeln.// Dem, der Kaderwelsch hört/ Vergeht das Essen./ Dem, der es spricht/ Vergeht das Hören.)
B: 일단 몇 가지 번역상의 문제 그리고 시의 일차적 이해를 위한 사항 등을 지적해 보겠습니다. 원래 “Mundart”라는 독일어 단어는 “방언” 혹은 “말씨”로도 번역될 수 있으나, 시의 문맥을 고려할 때 “방언”은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방언이란 지역적 폐쇄성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사투리이기 때문입니다.
한가지만 더 지적하자면, “허튼 소리”라는 조어 (造語)입니다. 원래 그것은 독일어 단어로는 “Kauderwelsch”인데, 브레히트는 이를 의도적으로 “Kaderwelsch”로 사용했어요. “Kader”라는 단어는 구 동독에서 “주도하는 엘리트 세력”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들은 정치적 혹은 전문적 식견 때문에 어떤 특정한 공동체에서 주어진 과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일반 사람들을 인도하는 그룹이지요. 브레히트는 이러한 조어를 사용함으로써, 주도하는 엘리트 세력의 발언이 한마디로 허튼 소리임을 드러내려고 한 것 같은데요?
A: 그렇습니다. 브레히트가 이 시를 발표하지 않으려고 했던 까닭은 아마도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첫째, 그는 당 지도부와 불필요한 마찰로 시달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둘째, 브레히트는 내심 스탈린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으나, 자신의 문학이 서구에서 스탈린주의에 대한 경박한 비판으로 매도되는 것을 원치 않았지요. 가령 브레히트는 1952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여기 (구 동독 - 역주) 머물고 있기 때문에 특정한 견해를 표방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특정한 견해를 표방하기 때문에 내가 여기 머물고 있지요.” 22)
B: “언젠가 그들이 여편네들과 양파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을 때/ 다시금 상점들은 텅 비어 있었고/ 그들은 탄식, 저주 그리고 유머 등을 잘 이해했으며/ 그럼에도 이로 인한 참을 수 없는 삶은/ 깊은 곳에서도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여기서 “여편네들”과 “양파”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A: 이 시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우리는 다른 작품을 읽을 때와는 달리 작품 내용을 우선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일까요? 그들은 남자들입니다. 그것도 왕년에는 무산 계급에 속했으나,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지배 계급으로 승격해 있는 남정네들입니다. 23) 이에 반해 브레히트의 시는 지배자로 둔갑한 무산 계급의 오만 방자한 태도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지요. 이러한 태도는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을 모른다”는 속담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과거에는 모든 사람들이 “깊은 곳”, 즉 하층민들이 사는 곳에서 평등하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함께 더러운 세상을 탓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게 되어 몇몇 사람들은 “위협적이고 교육적인 목소리”로 허튼 소리를 지껄이고 있으니까요.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옛 친구들의 “탄식, 저주 그리고 유머” 등에 관해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따라서 “여편네들”은 성과 사랑에 관계되는 대화 내용입니다. 과연 “여편네들”과 “양파”가 상호 관련되는 은어 (隠語)로 이해될지 모릅니다. 가령 “양파”란 얀 크노프가 주장한 대로 (껍질 벗긴다는 의미에서) 성적 상징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24) 그렇지만 양파는 문맥을 고려할 때 무엇보다도 소비재 식품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산 계급 뿐 아니라, 만인에게 필요한 생필품이니까요. 실제로 양파와 마늘의 냄새는 적어도 유럽에서는 가난한 자의 냄새로 간주되었습니다.
B: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과거와 현재의 대비가 중요하겠군요. 과거에는 비록 “상점이 텅”빌 정도로 생필품이 부족했으나, 사람들은 생기 넘치게 대화를 나누며 살았다는 말이지요? 이에 비해 오늘날 상점에는 양파와 같은 채소, 과일 등은 전혀 발견되지 않고, 기껏해야 삶에 직접 필요 없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겠지요? 상점에 물건이 “가득 차” 있는 것은 생산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물건이 팔리지 않기 때문이지요.
A: 그렇습니다. 상점에는 팔리지 않는 물건만 가득 차 있다는 말은 시인이 처해 있는 사회의 생산 구조가 소비자의 욕구를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다는 뜻과 직결되지요. 사회주의적 경제 체제가 모든 것을 필요에 의해 생산한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인 “필요성”을 미리 파악하지는 못합니다. 자본주의 체제만큼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으니까요. 제 2연을 읽어보세요. “허튼 소리를 듣는 자는/ 식욕을 상실하고/ 그걸 지껄이는 자는/ 듣기를 상실한다.” 따라서 문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항일 것입니다. 첫째 사항은 과거에 그토록 자연스럽게 환담을 나누던 사람들이 더 이상 서로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교육적인 목소리로 발설”할 줄만 알았지, 옛 친구들의 조언이나 견해에 대해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인간 동물은 자신의 관심사를 확장시키지 못합니다. 새롭게 배우기를 포기한 속물로 변화되어 있으니까요. 25)
둘째 사항은 삶에 대한 의욕의 상실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허튼 소리”를 지껄이는 그들의 새로운 말투는 한편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말투와는 다르므로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몹시 “위협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듣는 사람의 입장으로 볼 때 거북하게 느껴집니다. 삶에 대한 의욕 상실은 -하이너 뮐러가 예리하게 지적한 바 있지만- 구 동독에서 횡행하던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주의 내지는 유물론적으로 폐쇄된 남성 우월 주의와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B: 그러한 정적 구도는 다음의 시 「위대한 시대, 탕진하고」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7. 위대한 시대, 탕진하고 (Große Zeit, vertan)
여러 도시가 건립된다는 걸 나는 알았다.
그래서 차 타고 가보지 않았다
그건 다만 통계에 해당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역사가 아니라.
만약 인민의 지혜 없이 건설된
도시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Ich habe gewußt, daß die Städte gebaut wurden/ Ich bin nicht hingefahren./ Das gehört in die Statistik, dachte ich/ Nicht in die Geschichte.// Was sind schon Städte, gebaut/ Ohne die Weisheit des Volkes?)
여기서는 넓은 의미에서 도시 계획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A: 브레히트는 15년 동안 해외에서 망명 아닌 망명 생활을 보냈으므로, 여러 나라의 가옥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브레히트에 의하면 주택은 편안하고, 넓으며, 아름다워야 합니다. 26) 그렇기에 그는 특히 미국 할리우드의 기능주의의 건축물을 혐오했지요. 왜냐하면 그것들은 개개인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는, 자연 환경을 모조리 단순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가령 1948년 6월에 스위스에서 극작가이자 소설가, 막스 프리쉬 (Max Frisch)를 만났을 때, 브레히트는 그곳의 취리히에서 주로 일반 노동자들이 사는 아파트촌을 둘러보았습니다. 아파트촌은 생활하는 데 편리할지 모르나, 추하고, 단순하며, 비좁기 짝이 없었습니다. 브레히트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지요. “프리쉬는 나를 도시 거주지를 지나 거대한 아파트 블록에 있는 3칸 내지 4칸 방의 거주 공간으로 안내하다. 건물의 앞부분은 태양으로 향해 있고,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약간의 녹지 공간이 있으며, 실내는 (욕조, 전기 오븐 등) 쾌적할 것 같다. 그렇지만 모든 게 작아, 마치 감방 같아 보이다. 노동력과 상품을 재창조하기 위한 작은 공간들, 그건 약간 나은 슬럼에 불과하다.” 27) 거주자의 취향과 개성을 고려하지 않는 거주 공간은 브레히트에 의하면 개개인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단순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B: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도시 계획에 관한 사항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구 동독의 도시 정책에 대한 비유로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가령 제목이 시사하고 있듯이 “위대한 시대”란 구 동독의 재건의 시기를 지칭하는 게 아닌가요?
A: 물론 “탕진”해버린 “위대한 시대”는 브레히트가 말년에 살던 동쪽 독일 지역을 지칭하는 지 모릅니다. 브레히트는 로슈톡 (Rostock), 베를린 (Berlin), 데사우 (Dessau), 라이프찌히 (Leipzig) 등과 같은 “여러 도시가 건립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주로 대도시가 전쟁으로 인해 폐허로 변했으니까요.
B: 이 대목은 생경하게도 “완료형”의 문장으로 씌어져 있습니다. 독일어에는 (영어에서와는 달리) 완료형의 계속적 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시인이 완료형을 사용했는지 모르겠어요.
A: 그건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요? 시인은 이전에 우려하던 바를 스스로 확인했다고 말입니다. 앞 뒤 문맥을 고려하면 우리는 그걸 알 수 있지요.
B: 그렇겠군요. 여러 도시에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게 되었을 때, 브레히트는 틀림없이 축성식의 초대장을 받았을 것입니다. 유명 인사이니까요. 왜 그가 그곳으로 가지 않았을까요?
A: 가 봐야 뻔하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건물들은 해당 도시에 살고 있는 일반 사람들의 욕구, 취미 그리고 개성 등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도식적인 틀과 동일한 건물 구조에 의해서 짜 맞추어졌기 때문이지요. 위정자의 관심사만을 반영한 모든 숫자와 구도를 생각해 보세요. 28) 거주지는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한 뒤, 더욱 열심히 일하도록) 무엇보다도 실용성만을 고려해서 지어졌던 것입니다. 29) 그런 식의 도시 건립은 브레히트의 표현대로 다만 “통계 (Statistik)”일 뿐, “역사 (Geschichte)”가 될 수 없어요. 역사는 역동적이고, 시간적인 뉘앙스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근본적 변화 과정을 전제로 하지요. 이에 비하면 통계는 아무래도 정물적이고 공간적인 구도를 연상하게 합니다. 전자가 다양성과 충만성 그리고 구분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라면, 후자는 동일성, 단순성 그리고 기능성을 전제로 하는 개념입니다. 한마디로 브레히트는 일반 사람들이 배제된, 위로부터 수행되는 사회주의 재건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었지요.
B: 두 번째 연, “만약 인민의 지혜 없이 건설된/ 도시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군요?
A: 그렇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정책은 인민의 요구 사항이요, 이들의 관심사를 충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항이 외면되었기 때문에 동베를린 노동자 데모와 같은 우발적인, 끔찍한 데모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당 지도부의 일방적인 통보로 이루어지는 정책은 민초들의 반발에 부딪치기 마련입니다.
B: 유명한 시 「해결」에서 브레히트는 다음과 같이 비아냥거렸지요. “그렇다면/ 더 간단하지 않을까, 정부가/ 인민을 해체하고 그리고/ 다른 인민을 뽑는 일이?” 정부가 다른 인민을 해체하고 다른 인민을 뽑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A: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요. 1956년 1월, 제 4차 독일 작가 총회에서 브레히트는 짤막하게 연설하였습니다. 브레히트가 연설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었지요. 여기서도 “인민의 지혜”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가를 통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위해서 건설해야 합니다. 만약 인민의 지혜 없이 국가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30)
B: 이 정도로 하고 1957년 브레히트 사후에 발표된 「쇠」를 살펴볼까요? 다시금 꿈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꿈을 소재로 한 부코 연작시는 「쇠」 외에도, 이미 언급한 「기분 나쁜 아침」, 「흙손」 등이 있지요.
8. 쇠 (Eisen)
꿈속에서 오늘 밤
나는 어떤 거센 폭풍을 보았다.
그것은 축대를 건드리며
건물 받침대의 쇠 부분을
찢어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 나무로 이루어진 것은
휘어져 버티고 있었다.
(Im Traum heute Nacht/ Sah ich einen großen Sturm/ Ins Baugerüst griff er/ Den Bauschragen riß er/ Den Eisernen, abwärts./ Doch was da aus Holz war/ Bog sich und blieb.)
B: 시인은 꿈속에서 어떤 큰 폭풍을 목격합니다. “바람”에 관한 시어는 ꡔ부코 비가ꡕ의 모토에서 이미 등장했습니다. 연작시 전체를 고려할 때 폭풍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걸까요?
A: 이 시를 놓고 한동안 고심했습니다. 「쇠」는 다른 연작시에 비해 (난해하지는 않으나) 상당히 모호한 면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난해하다고 말하기에는 시적 표현이 명징하니까요. 이러한 모호성은 우리가 시적 주제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2행에 등장하는 “어떤 거센 폭풍”은 일단 이중적 의미로 파악해야 할 것 같군요. 첫째로 그것은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동력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정체 상태를 파기시키고 변모의 어떤 역할을 담당하지요. 31) 따라서 “폭풍”은 현재 상태 (Status quo)의 정체성을 극복하고, 사회적 변화를 촉구하는 촉매제나 다름이 없습니다. 둘째로 폭풍의 다른 의미는 어떤 부정적인 모티브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가령 지상의 모든 것을 다 날아가게 하는 회오리바람 내지는 태풍을 연상해 보세요. 따라서 “어떤 거센 폭풍”은 어쩌면 끔찍한 전쟁 속에서 자행되는 살육 행위입니다. 혹은 비상 사태의 현실에서 강하게 몰아치는 잔악한 폭력일 수 있습니다.
B: 그러니까 폭풍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 시에 나타난 주제상의 다양성이 간파될 수 있겠군요?
A: 그렇습니다.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 함부로 하나를 단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긍정적인 면부터 먼저 살펴봅시다. 폭풍과 직면해 있는 건축물은 현재 완성된 게 아닙니다. 그렇기에 “축대”와 “건물 받침대”가 여전히 세워져 있지요. 이 경우 집은 국가 체제에 대한 비유입니다. 사회주의를 재건하려고 하는 구 동독 역시 50년대 초에는 바람직한 이념을 실천하는 중입니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구 동독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고 있습니다. 건축물 속에는 “쇠 부분”도 있고, “나무로 이루어진 것”도 있습니다. “쇠 (Eisen)”란 구체적으로 “철”을 지칭하지요. 철은 독일어로 “Stahl”이라고 하는데, 스탈린 (Stalin)을 연상시킵니다. 따라서 거대한 폭풍은 건설 현장에서의 건축물 속에서 부정적 요소를 “찢어내리”게 합니다.
B: 이와 관련하여 폭풍이란 동베를린의 노동자 데모를 암시하는 것일까요?
A: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브레히트는 노동자 데모 속에 파시스트와 같은 반혁명 운동 세력이 뒤섞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어떤 거센 폭풍”은 역사 속의 구체적 사건이라기 보다는, (앞으로 도래할지 모르는) 가상적인 사건일지 모르겠어요.
B: 그밖에 폭풍의 부정적 의미를 고려할 때 어떤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까요?
A: 지금까지 우리는 폭풍을 행위의 주체로서 고찰하며, 시를 대했습니다. 이번에는 “나무”와 “쇠”의 관점에서, 즉 폭풍을 행위의 객체로 고찰하며, 시를 분석해 봅시다. 이 경우 폭풍은 여러 가지 유형의 부정적 폭력입니다. 강한 쇠는 부러져 건물 받침대로부터 일탈되지만, “나무로 이루어진 것”은 굽혀질 수 있습니다. 나무 부분은 강풍에도 버틸 수 있습니다. 브레히트는 자연과 현실에 순응하고 굴복하는 게 때로는 저항이며, 주어진 난관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32)
B: 이 시를 읽을 때, 브레히트의 유명한 도덕경 담시의 구절이 떠오른 것도 우연이 아니군요. “흐르는 부드러운 물이/ 시간이 가면 단단한 돌을 이기는 법이니라/ 강한 것이 유한 것에게 진다는 것을 당신은 아시겠지요/” 말입니다. 33)
A: 여기서 브레히트의 행동관이 중요합니다. 꾀 (List)를 이용하면서 진리를 전달하고 끝까지 살아남는 것 - 이는 브레히트의 많은 작중 인물들의 삶의 방식이기도 하지요. 충격이 가해질 때 쇠는 부러지지만, 나무는 휘어집니다. 모든 쇠들은 건축물에서 떨어져 나가지만, “나무로 이루어진 것”은 “휘어져 버”틸 수 있지요. 그렇게 유연하게 처신하는 것이야말로 거대한 폭력 앞에서 살아남는 방책입니다. 브레히트는 이를 작은 위대함으로 표현했습니다.
9. 8년 전에 (Vor acht Jahren)
거기 어느 시절이 있었다
그때 여기는 모든 게 달랐다.
그 푸줏간 여자는 그걸 알지.
그 우체부의 걸음걸이는 너무나 의연하다.
그 전기공은 무슨 일을 했는가?
(Da war eine Zeit/ Da war alles hier anders./ Die Metzgerfrau weiß es./ Der Postbote hat einen zu aufrechten Gang./ Und was war der Elektriker?)
B: 유작으로 발표된 이 작품은 하나의 연으로 이루어진 단시입니다. 번역된 시를 읽으면, 수월하게 이해되지만, 번역의 세부적 사항을 고려할 때 몇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가령 “8년 전”이란 몇 년을 기준으로 하여 8년 전일까요?
A: 그것은 얼마든지 추론 가능하지요. 만약 연작시가 50년대 초에 씌어진 것을 염두에 둔다면, “8년 전”은 히틀러의 전쟁이 극에 달할 무렵입니다. 이 시는 나치 집권의 시대에 살던 자들의 삶과 그 이후 현재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의 삶을 비판적으로 비교, 조명하고 있어요.
B: “그때”와 “거기”란 40년대 중엽의 독일을 가리키는 시어로서, 지금 이곳과 비교되겠군요?
A: 어떤 시간적 비교는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두 장소 또한 동일한 독일 지역을 지칭하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번역하실 때 그 외 어떤 난제에 봉착하셨나요?
B: 난제랄 것까지는 없고, 우리는 “푸줏간 여자”라는 표현을 유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원래 “푸줏간 부인”은 독일어로 “Metzgersfrau”라고 하지요. 그런데 시인은 “Metzgersfrau”에서 “S”를 뺀 (다른 의미를 지닌) “Metzgerfrau”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어요. 34) 요즈음 독일에서는 꽤 많은 여성이 거리낌없이 이 직업을 택하곤 합니다만, 전후에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A: 그렇다면 브레히트는 왜 이 단어를 사용했을까요?
B: 어쩌면 남편을 잃었기 때문에, 그녀가 직접 푸줏간을 경영하는 게 아닐까요?
A: 정확히 알아 맞추셨군요. 소시민 계층에 속하는 남편은 파시즘 정책에 동의하였고, 어쩌면 파시즘 전쟁에서 전사했는지 모릅니다. 35) “그때 여기는 모든 게 달랐다./ 그 푸줏간 여자는 그걸 알지.” 가령 푸줏간 여자는 고기 값이 변한 사실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편 대신에 일을 해야 하므로 현재 자신의 (피곤한?) 생활 패턴을 직감적으로 느낍니다. 어쩌면 그녀는 옛날 히틀러 치하의 삶이 지금 사회주의 국가보다 더 나았다고 여길지 모릅니다. 36)
B: 그러면 “그 우체부의 걸음걸이”가 너무도 의연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A: 이 시에는 세 개의 직업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푸줏간 여자, 우체부 그리고 전기공이 바로 그 직업입니다. 푸줏간 여자가 소시민 계층에 속한다면, 우체부는 하급 관리에 해당되지요. 또한 전기공은 노동자 계층에 속합니다.
추측컨대 우체부는 과거에 “파시즘의 적극 가담자 (Mittäter)”가 아니라, “소극적 동조자 (Mitläufer)” 였는지 모릅니다. 하급 관리로서 그는 약간의 지식을 습득하였으므로, 히틀러의 야만적 폭력을 내심 느꼈을 것입니다. 이제 그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행동할까요? 현재 우체부의 “걸음걸이는 너무나 의연”합니다. 이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체부는 한편으로는 과거에 비굴하게 행동한 것을 감추려고 애를 씁니다. 둘째로 그는 새로운 사회에서 맑스 (Marx)의 입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니까요. 예컨대 맑스가 (노동의 소외를 극복한) 주체적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프롤레타리아의 모습을 “인류의 의연한 걸음”으로 비유한 것을 생각해 보세요.
B: 그렇다면 전기공은 무슨 일을 했나요?
A: 그건 브레히트의 시에서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기 기사 역시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일을 수행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구 동독에서 살고 있는 소시민, 하급 관리, 노동자들은 파시즘의 정책과 폭력에 대항하여 제대로 싸우지 못했습니다. 반전 운동, 반정부 운동을 벌리던 몇몇 뮌헨 대학생들의 “백장미 (Die weiße Rose)” 삐라는 모조리 경찰서에 수거되었습니다. 독일인 특유의 고발 정신 때문이었지요. 37)
B: 선생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겠군요. 현재 현실은 8년 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으며, 일반인들의 사고도 약간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일반인들의 직업입니다. 이로써 브레히트는 파시즘 극복 및 과거 청산에 관한 문제가 구 동독에서 추상적 과업에 불과하고, 일반인들의 직접적인 생계 문제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점을 지적하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