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과정
나는 영산포에서 태어났고, 위로 누님 한분과 아래로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다. 아버지가 고등학교 교사셨고 집에서는 적지 않은 농사를 짓고 있었던 덕에 크게 부족한 것이 없이 성장했다.
초등학교 때는 특별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매우 좋은 성적을 유지했는데 나는 6학년이 되어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집안 환경의 차이 때문이었다. 학교를 마친 친구들은 농사일을 돕기 위해 매일 들녘으로 나갔지만 나는 집에서 자유롭게 책과 소년잡지, TV 등을 통해 폭 넓은 상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나는 남다른 자존감을 갖고 성장할 수 있었지만 구체적인 꿈을 갖지는 못했다. 가정불화 때문이었다. 장남이었던 아버지와 나머지 형제들은 할머니 봉양과 유산문제로 심각하게 다투곤 했는데 할머니 밑에서 자란 나와 형제들은 그 싸움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자랐다. 당시 나의 꿈은 “언덕 위에 커다란 벽돌집을 짓고, 가족과 함께 단란하게 사는 것”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공부에 전념하기보다 여유롭고 낭만적으로 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는 무언가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20대 :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갖다.
대학에 입학해서야 나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국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정치군인들이 국민을 억압하고 수탈하던 시절,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 상식이 통하는 나라, 정의가 실현되고 평화가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꿈을 나눠가졌다. 이미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논밭으로 내몰고, 우리 가정을 불화의 구렁텅이로 인도한 것이 사회경제적 환경 때문이라는 것을 피부로 깨달았던 내가 급진적인 사상과 사회변혁을 수용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나의 20대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대학 3학년이던 1987년 6월 항쟁 때는 시위에 앞장서다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사경을 헤매기도 했고, 4학년 때인 1988년에는 시위를 주도하다 투옥되기도 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30대 : 지역발전과 사회개혁을 위해 노력하다.
20대 후반에 지친 몸을 이끌고 고향에 돌아온 나는 과거를 돌아보며 새로운 내일을 준비했다. 이때부터 “세상을 통째로 바꿀 수 없다면, 내 고향부터 책임지고 바꿔나가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두가 자신의 고향이나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바꿔간다면 언젠가는 세상도 바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마침 뿌리 내리기 시작한 지방자치 현장을 지켜보면서 나는 ‘나주를 바꿔 세상을 바꾸겠다’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 1995년 나주사랑청년회를 조직해 금성산되찾기운동을 시작으로 언론개혁운동, 도청이전반대운동, 노무현대통령 탄핵 반대운동, 정부합동청사 대책위 활동, 지방분권운동, 정책선거 추진운동 등 지역발전과 사회개혁을 위한 시민운동을 주도했다.
특히 비판과 감시를 넘어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는데 주력했다. 구 나주역사 활용방안, 금성산 활동방안, 학교급식 지원 조례 제정, 참여예산 조례 제정, 지역 가꾸기 사업 등 우리시 발전에 필요한 정책을 제안하고 그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인구 10만 전후의 소도시에서는 전례가 없는 풀뿌리 시민운동의 모범을 구현할 수 있었다.
40대 : 새로운 도전에 나서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풀뿌리 시민사회운동의 성과에 힘입어 개혁적인 시장이 당선되면서부터는 구체적인 지역사회의 과제를 해결하는 일에 나서게 되었다. 특히 나주교육진흥재단 사무국장으로 일하게 되면서부터 자녀교육 걱정 없는 나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5년여 동안 시내권(동지역)의 농어촌특별전형 응시기회를 확보하고 나주시 중심고를 선정해 집중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지역 고교의 학력 향상 및 대학입시 성적 향상을 유도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지역사회의 힘으로 지역교육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었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는 그간의 활동기반을 바탕으로 무소속으로 도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나주를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동안 함께 해온 동료들과 함께 호남의 정치적 맹주인 민주당에 맞서 새로운 정치를 꿈꿨지만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지방선거가 끝난 후 이제는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지역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기여하는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나주중앙요양병원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시민운동에도 참여하고,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