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백성답게!
2023. 9. 17. 성찬예배
오늘 드릴 말씀의 제목은 ‘주님의 백성답게’입니다. 성찬 예배 때는 사실 말씀을 길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찬식 자체가 강력한 주님의 복음이 담겨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과 우리 예수님의 부활의 살을 기념하는 것, 이것이 실재라면 우리는 굉장한 은혜를 받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은혜와 영광이 우리의 삶 속에 계속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출애굽기를 살펴보면 모세는 나이 팔십 세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바로 왕 앞에 섰습니다. 애굽 왕 바로지만 모세는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저는 그것이 예사말로 들리지 않았어요.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지요. “히브리 사람들을 보내라” 제 삼자적인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말해도 되는데 우리 하나님은 ‘내 백성’이라고 불렀습니다. 바로 왕에게 너의 백성이 아니라 내 백성이니까 강력한 언약에 근거해서 소유권을 주장하고 당당하게 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너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섬기는 내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과 저의 이름이 아닐까요? 그런데 바로 왕은 강퍅한 마음으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재앙들을 보내서 바로 왕의 마음을 열고자 했습니다. 아홉 번의 재앙을 보냈는데 고통당할 때는 잠시 위축하다가 또다시 완고한 육덩어리로 변해버린 것이 애굽 왕 바로였습니다. 피 재앙, 개구리 재앙, 이 재앙, 파리 재앙, 악질 재앙, 독종 재앙, 우박 재앙, 메뚜기 재앙, 흑암 재앙까지 이 아홉 가지의 초자연적인 재앙은 사실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예고편이었지요. 그러나 열 번째는 바로가 굴복할 수 있는 결정적인 한방, 장자 재앙을 예고하였습니다. 내 백성을 놓아주지 않으면 온 애굽의 집집마다 큰 아들들이 죽게 될 것이고 생축의 첫 새끼 중에 수컷들이 죽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는데 또 바로 왕은 목을 곧게 하고 하나님께 대적합니다.
그러나 애굽 땅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구원의 길은 “어린 양의 피를 집 문 입구 좌우 설주, 기둥을 받치고 있는 인방에 바르고 그 밖으로 나가지 마라 피 바른 문 집 안에서 불에 구운 양의 고기를 머리와 내장과 정강이를 먹어라” 그것은 우리 주님을 먹는 것인데 주님의 생각을 먹고, 주님의 마음을 먹고, 주님의 힘을 취하는 것을 뜻하지요. 그리고 “쓴 나물을 먹어라” 너희들이 이제 이 땅에서 광야로 나아가겠지만, 사실 이 땅 전체가 광야 생활이지만 고난은 각오하고 십자가를 지고 사는 것이 주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순전한 그리스도를 표시하는 “무교병을 먹어라” 죽음의 사자가 지나갈 때 어린 양의 피가 발라진 집에는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이라고 하지요.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사랑! 죄를 묻지 아니하시고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덮어주신 그 사랑! 사실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나아갈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다 허물과 죄가 있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저희들인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피를 흘리시고 우리의 죄 값을 치루시고 하나님께로부터 구원하여주신 구주요, 주님이십니다. 그 집 안에서 먹는 불에 구운 양고기, 생으로 먹지 말고 스스로 먹는 것이 아니라 물에 삶지 말고 감정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부활의 생명을 취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사야 1장 18절 말씀이 연관되어서 생각이 났습니다. 거기 보면 죄를 해결해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두 가지 방면으로 나옵니다. 하나는 흰 눈처럼 죄를 덮어주시는 은혜, 또 하나는 양털처럼 새롭게 솟아나는 부활의 생명, 부활의 생명이 있어야만 죄를 이깁니다. 부활의 생명이 충만해야만 하나님 앞에 기쁨을 드릴 수 있습니다. 아홉 가지 재앙은 상상해보십시오. 시청각적으로 대단한 재앙입니다. 그러나 열 번째 재앙은 피가 발라져 있고 각 가족마다 가족 단위로 유월절을 지내고 있어요. 가족 단위로 성찬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과정들을 상상해보았습니다. 모세가 각 지파의 두령들에게 연락을 했을 것이고, 각 지파의 두령들은 각 지파의 족속들에게 연락해서 이 삼백만 명이나 되는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성찬식을 같은 마음으로 같은 방식으로 치루었다는 것입니다. 비상연락망이 잘 된 것이지요. 일사천리로 주님의 마음을 따라서 유월절 제사를 지냈던 것이지요. 조용하지만, 소리 없지만 강력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보는 것 같습니다. 소리를 내고서 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 없이 내리는 흰 눈, 조용히 자기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었던 샘과 야벳처럼 말입니다. 우리 주님의 인격이 그러하십니다. 드러내놓고 사랑한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조용히 우리 허물과 죄를 덮어주신 깊이 있는 사랑, 조용하지만 뜨거운 사랑, 그것을 힘입은 저와 여러분입니다. 왜요? 주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말입니다. 예수님이라는 이름의 뜻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 백성의 죄를 용서해주려고 오신 예수님, 조용한 주님의 사랑 속에 우리는 죽음을 면할 수 있었고, 죄를 극복할 수 있었고, 예수님 사랑을 힘입을 수 있었습니다.
양털을 생각해보니까요, 간혹 유투브에서 보면 목자에게서 떨어져서 길 잃은 양들을 보니까 벌써 몇 달이 안 되었는데도 양의 털이 덕지덕지 붙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어린 양들이 있더라구요. 주님의 손을 벗어나면 양은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대적들, 이리와 사자들의 밥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엉클어진 양의 털이 자신의 콧구멍을 막고, 입을 막고, 눈을 막고 스스로 죽게 되어 있어요. 목자의 손을 떠나서는 안 되지요. 내 주 되시고, 내 왕 되시는 주님의 손을 떠나지 않는 것이 주님의 백성 된 자세라 생각됩니다. 양이 스스로 어떻게 털을 깎을 수 있겠습니까? 주인의 손에 자신을 온전히 맡길 때 주인은 털을 깎으시고 그 맨 몸에 새로운 생명이 솟아나는 것이지요. 주님은 주님답게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주님답게 언약적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주님을 주님답게 모시면서 주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될 줄 압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 보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이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이가 말하노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저와 여러분은 각각 주님이 나의 왕이시고 나의 주님이 되셔서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날마다 확인했으면 합니다.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요한계시록 18장 4절에 보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계시록 18장은 큰 성 바벨론에게 경고하신 말씀이고 심판이 예정된 말씀인데 그 바벨론 안에 살고 있는 세상 안에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거기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저들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저들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지금도 큰 세력을 대단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비교해서 보면 주의 백성인 새 예루살렘은 이 땅이 기반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어린 양의 신부이지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큰 성 바벨론이 있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백성이라면 거룩이 우리 성도와 교회의 능력입니다. 거룩이 성도와 교회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52장 1절에 “시온이여 깰찌어다 깰찌어다 네 힘을 입을찌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찌어다” 무엇이 그리스도의 신부 된 교회의 능력입니까? 큰 건물도 아니고, 많은 성도의 수도 아니고, 어떠한 프로그램도 아니고 오직 주님과의 관계 속에 거룩을 힘입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룩은 우리 스스로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는 패역한 존재인데 거룩하신 주님과 아버지께 속하면 그 거룩은 나의 것이 됩니다. 거룩하신 주님과 함께 삶을 꾸려 가면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의 거룩함입니다. 큰 성 바벨론, 그 땅 그 나라는 무저갱에 들어갈 나라입니다만 그곳의 특징은 더러운 귀신과 악한 영들이 모인 곳이고 가증함이 하늘을 찌른다 했습니다. 바벨론에서 살았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 에스더, 느헤미야, 모르드개, 에스라 이러한 성도들은 비록 바벨론에 살고 있지만 그들의 중심과 삶의 추구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말씀의 핵심은 너희가 나와 함께 세상에서 구별되고 자기 육신과도 십자가에서 구별이 되어서 내게 속한 나의 다스림을 받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되기를 원하시고 원하십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우리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 주님과 함께 섬기는 영광과 영광의 열매가 있습니다. 큰 성, 크고 대단하고 기이한 일을 우리는 꿈꾸지 않습니다. 조용히 다가오시는 나사렛 예수님, 생명수 강으로 인도하시는 성령님, 나를 농부처럼 돌보아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묶인 마음으로 이 성찬식에 참여하는 우리는 ‘주님의 백성답게’ 남은 길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