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폭(酒暴)’ 추방 선언
우리 통일산악회는 2012년 9월, 또 한 번 ‘주폭(酒暴)’을 추방한다.
부언(附言)하자면, 그동안 수차례 거론되어 이미 공감(共感)과 합의(合意)가 이루어진바 있는
‘주폭문화(酒暴文化) 청산’의 공약(公約)을, 이번 정기산행에 즈음하여 다시금 천명하는 것이다.
자술(自述)컨대, 통일산악회의 ‘음주문화(飮酒文化)’가 좀 유별났던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먼저, ‘산상주(山上酒)’.
산행(山行)중에, 점심 먹거리를 풀어놓기가 무섭게, ‘한잔’ 이 우선이다.
물론, 근자에는 그것이 여타 산행모임에서도 일반적인 관행처럼 되어버렸고,
오히려 통일산악회는, 장기간 전승(傳承)해온 ‘산상음주(山上飮酒)’의 세(勢)가 대폭 수그러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의 가엾은 막내-실제로는 그들도 마흔을 넘긴, 이 사회의 중견급 인사-들은,
불문율(不文律)처럼, 아침 출발 때부터 막걸리 여남은 통을 나눠 메고 끙끙 산에 오른다.
그나마 매년 시산제(始山祭)를 잘 올린 공덕으로 산신령님이 귀엽게 보아주셔서
‘음주산행’으로 인한 사고가 그동안 한건도 없었다는 점에 그저 감읍(感泣)할 뿐이지,
기실(其實), 예기치 못한 재난을 부를 수도 있는, 방자한 만용에 다름 아니었다.
이어서, ‘하산주(下山酒)’.
산에서의 ‘산상주(山上酒)’는 말 그대로 ‘그날의 술맛보기’- '간(肝)을 향한 기별酒'일 뿐.
下山 이후, 2000년 창립 이래 전통으로 굳혀온 뒤풀이 ‘下山酒’ 자리에서
통일산악회의 술 문화는 드디어 본색(本色)을 드러낸다.
그중에서도, 이른바 ‘사발식’.
고려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등 각종 행사에서의 필수코스인 이 레파토리를
‘극열(極熱) 高大人’ 임을 자처하는 통일산악회 멤버들이 어찌 마다할리 있으랴.
신입회원 환영 내지 신고(申告)의 명목으로 ‘오늘의 첫잔’이 시작되는 사발식은
갖가지 명분과 구실을 담아 냉면사발 가득 채운 막걸리 잔이 돌고 또 돈다.
학번과 학과나 역대 집행부에서의 역할 등 온갖 연결고리로 묶여,
심지어는 인물이 너무 잘 났다거나, 안면에 털[毛]을 기른 것이 닮았다는 등
별별 해괴한 사유(事由)로까지 불려나와, ‘원 샷’과 ‘러브 샷’의 장단에 못이겨 잔을 비운다.
그렇게 냉면사발이 한 순배 돌고나서의 본격 술판.
‘원, 원, 쓰리’에서부터 ‘자! 들지! 네, 형니~임!’까지 각종 추임새가 요동을 친다.
(최근에는 ‘우리의 꿈은~?’ 시리즈와 ‘이게 술입니까?’ 시리즈가 그럴듯하게 합성되어
절찬리에 술과 술을 부르고 있다.)
그러면서, 그날의 山行 평(評)부터 시작해,
高大와 우정과 인생, 사회와 조국과 인류,
정치와 경제와 문화 등등 온갖 담론(談論)이 술잔을 따라 출렁이고, 넘친다.
간간이, 프로를 뺨치는 통칭 ‘삼류(三流) 名카수’들의 아리아가 장내를 제압하며
다른 손님들로부터도 열광의 앵콜을 쏟아내게 함은 물론이고.
그러기를 보통 2시간여. 따로 정열된 '빈 술통'은 대략 60~80개 전후.
대부분 숙달된 그들은, 일어나 몸을 추스르는데 별 부담이 없지만,
간혹 부축을 받아야하는 신입회원도 왕왕 있었음을 숨기기는 어렵다.
어쨌건, 그렇게 해서 공식적인 ‘下山酒 행사’는 일단 막을 내린다.
거기까지야, 그 ‘판’까지야, 좋다. 아니 나쁘지는 않다.
술의 양적(量的)인 면에서 다소 거시기 하기는 해도,
자타(自他) 누구나 기꺼이 이해하고 용인할 수 있었으리라.
명색이 ‘下山酒’인데다, 사람 좋고, 분위기 좋고, 그러니 술맛도 좋았을 밖에…
그쯤에서 장(場)을 접고, 각자 곧바로 귀가(歸家)하는 것을 체질화했더라면,
통일산악회의 음주문화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일은 미미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규 뒤풀이 파장(罷場) 이후, 속개(續開)되는 下山酒 ‘2 라운드’.
‘그 눔의 정(情) 때문에’ 다시 전체, 아니면 끼리끼리 펼치는 2차, 3차의 주막순례.
실컷 막걸리 잘 마시고나서 또 막걸리, 아니면 생맥주, 때론 노래방….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우리가 마시는 것은 ‘술’이 아닌 ‘정(情)’이라고 강변하면서,
우리가 즐기는 것은 ‘풍류(風流)’가 아닌 ‘인류(人流)’라고 역설하면서,
나름의 핑계와 명분을 되뇌며, 자기최면에 빠진 듯 차수(次數)를 늘려나간다.
급기야, 얼마간의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행적을 함께했던 무리들은
요란한 '하산주(下山酒) 공식행사'만으로도 한계수위를 오르내리는 상태에서
'비공식 下山酒'까지 '주종불사(酒種不辭), 시한불구(時限不拘)'- 들입다 퍼붓다보니,
종내 ‘봇물을 터뜨리고야 마는’ 결과도 종종 나오곤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즐거웠고, 행복감에 뿌듯했다.
몸이야 조금 망가진다해도, 얻는 것이 얼마나 많았는가.
일생의 멘토가 될 훌륭한 선배님과 믿음직한 후배들,
언행 하나하나에도 내공깊은 인품이 배어나오는 멋진 인물들,
짱~! 이다.
어디가서 이런 네트웍을 쌓을 수 있으랴, 다들 그렇게 자부했다.
그리고 그 매개체는 역시 '술' - '술'일수 밖에 없다고 여겼다.
공범(共犯)들의 동질감 - 동류의식, 더도 덜도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의 음주문화는 창립이래 그 모습 그대로 흘러 내려왔다.
때때로 문제제기를 하는 '우국지사'들이 있었지만, '약발'이 약했다.
'산상주, 하산주, 2차, 3차 다 좋은데, 모두가 좋아하면 됐지, 어쩌자는 것인가?'
우리의 '마셔도 사내답게~'는 '통일'을 향해 거침없이 진군해 온 것이다.
그래오던 어느 때부터인가, 말 그대로, 실소(失笑)할 일이 나타났다.
우리 통일산악회를 일컬어
‘산행(山行) 4시간에 주행(酒行) 8시간 하는 산악회’
‘山보다 술로 사람 잡는 술꾼들의 산악회’
‘한번 와본 사람은 술에 질려 다시는 안 나오는 산악회’…라는,
실제보다 '영' 부풀려진 괴담성(怪談性) 악성 루머가 여기저기서 떠돌기 시작했다.
“한번 가보고 싶어도, 정말로 겁이 나서 언감생심…” 등등의 얘기도 들린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통일산악회의 왕성한 활동에 배 아파하는 사람들이 혹 있었다면,
그들로서는 그러한 악(惡)소문이, 혀에 착 감기고 귀에 쏙 들어오는 호재(好材)인지라,
더욱 살을 붙이고 날개를 달아, 여기저기 뻐꾸기를 날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억울함.
그러나 솔직히…, 100% 틀린 말도, 근거나 증좌가 전혀 없는 낭설도 아니다보니
우리는 그냥 묵묵부답,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어찌보면 軍 특수부대 출신들이 그러하듯, 도리어 소영웅심에 우쭐했을 수도 있다.)
여하간, 그래서 그랬던가?
새로 등장한 신입회원들이 계속 나타나는 경우가 반타작 수준인 것은 그렇다 치고,
‘평생 동지’를 외치며 함께 산을 누볐던 오래된 회원들의 강건한 모습이
어느새 차츰 뜸해지는 현상마저 확연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림(酒林)에 묻혀 '닐릴리~' 신선놀음을 하는 사이,
도끼자루는 저 밑에서부터 썩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풍문처럼, 그동안 누적된 하산주(下山酒)로 인해 체력이 고갈되었음인가.
아니면 ‘가봤자, 내려와서 술만 퍼먹는… ’ 그래서인가.
그도 아니면 ‘그런 무지몽매한 패거리에 섞이는 자체가 부끄러워서… ’ 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별 흥미를 못 느껴서…’ 발길을 끊은 것인가.
그 회원들 모두, 살아가는 일이 바빠서 그럴 뿐이라고 믿고는 있지만
한 분 한 분 그리움이 겹치는 중에, 아쉬움과 자책이 떠나질 않는다.
단 한사람이라도 저어하는 이벤트나 프로그램(사발식 類)은 없었어야 했는데…
12년의 역사라면, 이제는 보다 세련되고 품격 있는 회풍(會風)을 다듬었어야 했는데…
그래서 일단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 ‘주폭(酒暴)문화 추방’을 선언한다.
‘글과 소리의 밤’을 여는 우리의 창의성,
대마도를 찾아가 ‘독도는 우리 땅’을 외치는 우리의 기개,
선배를 극진히 모시고 후배를 사랑하는, 친형제 못지않은 따뜻한 우의(友誼), 等等.
그러한 우리 통일산악회의 빛나는 전통과 이미지를 고양(高揚)시키기 위한 첫 번째 과업으로,
마침 우리사회 전역에서 불고 있는 '주폭 추방과 건전 산행 캠페인'에도 호응하여
통일산악회다운 <음주문화 캠페인>을 이제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오직 우리 회원모두의 비상(非常)한 합심(合心)과 실천만이 그 결실을 거둘 수 있으리니.
<통일산악회 음주 강령>
○ ‘산상주(山上酒)’는 공식적으로 폐지한다.
따라서 집행부에서는 山行 중에 주류를 공급하지 않는다.
다만, 개인의 오랜 취향으로 ‘山上酒’를 즐기는 회원이 있을 경우
본인을 위한 주류의 지참 및 음주는 허용하되, 주위 권주(勸酒)는 자제토록 한다.
만약, 山에서의 음주로 인해 단속요원으로부터 범칙금을 부과 받거나,
음주 이후 발생하는 부상 등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당사자 본인이 책임을 진다.
○ ‘하산주(下山酒)’는 계속 유지한다.
다만, 공식적인 ‘下山酒’는 1차로 한정한다.
이후의 음주는 당일상황과 개별희망에 따르되, 가급적 차수(次數)연장을 지양(止揚)한다.
○ ‘사발식’도 계속 유지한다.
다만, 마시는 술잔과 주량(酒量)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게 한다.
○ 모든 술은 강권(强勸)하지 않는다.
술을 권하고자 할 때는 수용의사를 먼저 확인한 후, 본인의 희망 양(量)만을 따른다.
사양하는 회원에게 계속 술을 강권하는 경우, 그 명단을 카페 및 뉴스레터에 게시한다.
○ 술을 권할 때는 찾아가서 권한다.
술을 권하고 싶은 상대가 있을 경우,
본인이 그 자리로 가서 전항(前項)의 절차에 따라 예절을 지키며 권한다.
(이것이 번거로우면, 타인에게 권주(勸酒)를 하지 않으면 된다.)
2012년 9월, 정기산행을 앞두고
(통일산악회 회원들의 많은 뜻을 모아 회장이 정리하였습니다.)
첫댓글 허어~~~!!! 드뎌 새벽종이 울리네요.
다산 정약용 선생이 말씀하시길 "술은 입술만 적시라"하셨는데 나부터 40년 넘게 그걸 못 따름이 부끄럽삽니다.
"술 덜 마셔 후회하는 법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받들어 따르겠사옵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술의 眞味, 眞境에 너무 빠져서 일부 고주망태가 되어 민폐를 끼치는
'酒黨산악회'란 오명(?)을 벗고,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는
멋진 모임이 되기위해 <주폭추방선언>을 환영합니다.
晩時之歎~~!!!늦었다 싶을때가 바로 適時!!!
쌍수를 들어 환영합니다!!! 名 節酒宣言文에 모두들 뜻을 함께 하시지요~~
이제 술은 자기 책임하에 자기에 맞게 입니다요~~
환영입니다. 변화가 필요할 때 과감하고 명확하게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이 통일산악회입니다. 더불어 술은 권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책임 하에 마시는 것이 기본입니다.
통일산악회의 품격이 더넓고 더높은 창공으로 훠얼훨 비상하는 것 같아서
일개 미천한 일원으로서 무궁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게 됩니다.~!!!
백번..천번...골백번... 옮은 절주 선언문입니다.... 품격있는 통일산악회 화이팅!!!...
짝짝짝~~~좋은 말씀입니다. 좋은산과 좋은 뒷풀이장소에서 9월산행 잘하셨는지요? 지방 문상으로 참석못해 아쉬웠읍니다.
한결 품격있는 명품 통일산악회가 되겠군요!!!
좋은 말씀이네요. 서로의 건강을 위하여
통일산악회에 꼭 필요하고 모두가 환영할 만한 아름다운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