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 言에 떨어지다.- 1 - ㄱ
어떤 경전, 어떤 어록을 공부하든지 간에 그것이
가지고 있는 주된 뜻을 놓치지 않아야 공부가
효과적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스스로 주인공이라는 것을
놓치면 엉뚱한 경계에 꺼들리면서 헤매게 되고,
그러다 보면 문제가 생기고, 문제가 생기면
고통을 받게 됩니다.
어떤 삶을 살든지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잃지 말아야합니다.
만약 내가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무엇이 있는가.
그렇게 애지중지하고 가치있고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부모ㆍ자식이나 형제ㆍ자매가 되었든,
그동안 업적과 명예가 되었든,
재산이 되었든지 간에 그와 같은 모든 것들은
“나”라는 존재의 부속물에 불과합니다.
부속물은 많이 있을 수도 있고, 적게 있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또 있다가 없기도 하고 없다가
있기도 하거든요.
내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변치 않는 것 하나는
자신이지 않습니까? 자신만이 주인공입니다.
때문에 모든 것을 책임져야하고,
모든 것을 이끌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요.
이러한 이치를 잘 아는 것이
불교를 공부하는 보람이기도합니다.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내가 주인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전심법요의 주된 취지인
唯傳一心 更無別法을 잊으면 안 됩니다.
다른 경전과 달리 전심법요는 그 주제가 뚜렷합니다.
제목이 “전심법요” 아닙니까? 마음의 도리!
마음의 이치를 전하는 아주 요긴한 가르침이라
그것만을 전합니다.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고
지루하게 느낄 수 있지만, 이것 밖에 달리 없습니다.
현대 사회는 과학문명이 매우 발달되어 사실을
감추거나 신비롭게 포장하여 세인을 속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렇듯 비밀 하나 없는 세상에 살면서 아직도
세상의 중심이 무엇이고, 주인공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존재하지도 않으며 사실도 아닌 것에
경도되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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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 言에 떨어지다.- 1 - ㄴ
鍛摩起金(단마기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깊은 산골 마을에서 삼[麻] 농사를 짓는 두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가꾸고 키운 삼나무의
껍질을 손질하여 모아 두었다가 장날에 내다 팔아
생활을 꾸려갔었지요.
그날도 여느 장날과 다름없이 삼 몇 꾸러미를
지게에 지고, 산을 몇 굽이나 돌아 장터로 가던 중
길 언저리에 몇 덩어리의 금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겁니다. 한 농부는 그 자리에서 바로
지게위의 삼을 내려놓고는 금 덩어리를 취합니다.
반면 다른 한 농부는 머뭇머뭇하면서 계속 망설이는
겁니다. 여기까지 애써서 지고 온 수고가 아까워
삼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었지요. 결국 그는 지고 온
삼을 가지고 장으로 갔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비유로 가르침을 주신 내용이지요.
진리의 가르침!
참 이치를 가르치는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 가르침 버리고 그곳에서 가르침을 받아도 좋고,
추종해도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기존에 해오던 일이나 추구 해오던 가치관이
문제가 있거나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도
자존심, 기득권 혹은 명예심 때문에 끝까지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경고하는 가르침이기도 하지요.
진리를 따르고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인생과
세상에 대한 바른 안목을 가지고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것인데, 보다 나은 가르침이 있다면
곧바로 그것을 취해야지요.
특히 불자들은 마음이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워야 됩니다.
이웃집에 내 인생의 소중한 가르침이 있다면
얼른 쫓아가서 귀담아듣고,
그것을 살림살이로 만들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